소설리스트

화산천마-270화 (270/391)

270화

무림맹의 한 전각.

“두 개의 별동대를 제가 다 전담하라는 겁니까?”

부군사 설검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군사 제갈공의 말에 놀람을 감추기 어려웠다.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가 직접 제안해서 창설한 별동대였다.

아무리 급조된 대대라지만 무림맹의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고, 그 위명은 훗날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직접 전담해서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자신에게 넘긴다?

다른 이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으나, 설검은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의심부터 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머리로는 천하에서 제일을 다투는 인물.

자신의 패를 그냥 넘길 리 없었다.

‘무슨 꿍꿍이지?’

설검이 눈앞의 제갈공을 바라봤다.

그는 파격적인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이 무심한 태도였다.

눈빛도, 표정도,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명경지수와도 같은 평정심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설검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이유가 있습니까?”

설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괜히 어중간하게 떠봤다가는 자신의 속내만 읽히게 될 뿐이었다.

그때 군사의 입술이 떼어지고.

“이유가 뭐 있겠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혼자 맹의 전력을 모두 통솔하기는 시간이 없고 버거우니, 부군사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네.”

설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얼추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맹의 인원이 어디 한두 명인가.

물론 군사라면 그런 인원들을 모두 통솔하고 다룰 수 있겠지만, 한시가 바쁜 전시 상황이라면 힘들 만도 했다.

대대의 움직임 파악, 인원 분배.

사흑련의 행보와 계략 등.

그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정보량이 너무나도 방대했으니까.

그리고 전쟁에서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전쟁에서의 승산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싫다면 다른 이를 찾아보지.”

군사의 나직한 말에 생각에 잠겼었던 설검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여전히 의심은 가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잘됐군.”

이미 그러한 대답을 할 것이라 예상했었는지, 담담하게 말하던 군사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이 얘기를 위해 왔었으니.”

“그러지 말고 차라도 한잔…….”

찻주전자를 슬쩍 잡는 설검을 응시하던 군사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다음에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군사는 지체 없이 방문을 열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벅, 저벅.

닫힌 방문 너머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별동대라니.”

설검은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문서를 집었다.

생각지 못한 전력을 얻게 되었다.

“일단 자세히 봐야겠어.”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설검은 손에 든 문서를 차분하게 읽기 시작했다.

빼곡하게 적힌 글씨들.

이 얇은 문서에는 별동대에 대한 정보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문서가 빠르게 넘어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모든 문서를 읽은 설검은 문서를 내려놓으며, 섭선을 들었다.

툭, 툭.

섭선으로 목을 가볍게 두드리던 설검이 두 문서로 눈길을 옮겼다.

“옥기린과 매화신협이라.”

그의 시선이 두 문서의 가장 위에 적혀진 두 사람의 신상에 박혔다.

“꽤 까다롭겠어.”

설검은 섭선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들이었다.

그 둘은 지금 강호에서 그 명성을 혁혁하게 날리고 있는 자들이었다.

거기다 별동대의 특성상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날의 검인가.”

설검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루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두 별동대를 자신의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설검은 두 문서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이렇게 상반될 수 있지?”

옥기린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 천하 삼대 후기지수로 이름을 널리 알려 온 자였다. 그 반면에 매화신협은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갑자기 부상한 신진 고수였다.

그뿐이랴.

구파일방의 오랜 수좌인 무당파와 꾸준히 그 자리를 노려 왔던 화산파.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모든 것이 정반대인 둘이었다.

“거기에다가 별동대를 다루는 방식도 많이 다르단 말이지.”

그가 생각에 빠져 속닥이던 그때였다.

“부군사님!”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썹을 찌푸린 설검은 손에 든 문서를 슬쩍 기울이며, 입을 달싹였다.

“무슨 일이냐?”

날이 선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바로 문을 뚫고 그의 귀를 두드렸다.

“매화신협과 별동대가 임무를 마치고 무림맹에 곧 당도합니다!”

* * *

멸절대가 무림맹의 근교까지 도착한 것은 꼬박 사흘이 지나서였다.

임무를 떠났을 때 적호채에 도착하기까지 겨우 한나절밖에 안 걸렸던 것을 떠올리면 참 늦은 복귀였다.

하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첫 실전이기 때문일까.

치명상은 없다지만, 멸절대의 대부분이 부상을 입은 상태라 출발할 때처럼 신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녹림도들을 관군에게 넘기고, 짐들도 가져와야 했으니.’

천휘는 적호채를 떠나기 전 해야 했던 뒷수습을 떠올리며, 슬쩍 옆구리를 만졌다.

뭉툭한 전낭이 느껴졌다.

순간 천휘의 눈초리가 휘어졌다.

그래도 녹림이라고 적호채엔 상당히 많은 보물과 돈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천휘는 멸절대를 데리고 가서 그것들을 빠르게 처분했다.

그 결과가 이 전낭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헐값에 처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아.’

천휘는 전낭 안에 있는 전표를 떠올리며 웃다가, 슬쩍 뒤를 바라봤다.

“헉, 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뿜어지는 새하얀 입김이 사방에서 피어났다.

멸절대원들은 이 추운 날씨에도 전신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겨우 이걸로 너무 힘들어하네.”

천휘가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에 멸절대원 몇몇이 눈을 치켜떴으나, 곧 목소리의 주인공이 천휘임을 확인하고 시선을 내렸다.

이틀째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걷고, 달리고, 걷고, 달리고.

누군가 지쳐 쓰러지지 않는 한 천휘는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된 일었다.

하지만 그 덕분일까.

실전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대원들이었으나, 계속 몸이 힘들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깨끗이 비워졌다.

그리고 고된 강행군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챙겨 주며, 관계가 끈끈해져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움 가운데 계속 나아가던 멸절대는 이내 성문에 도착했다.

수문위사들은 꾀죄죄한 멸절대원들의 모습에 당황했으나, 천휘가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다는 말을 건네자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쿠구궁―

무거운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

사방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응? 뭐야?’

천휘는 시끄러운 환대에 미간을 좁히며, 모여 있는 군중들을 쳐다봤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보통이라면 대대가 임무를 수행했다고 이렇게 많이 몰릴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했다.

닷새 전 사흑련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첫 임무를 수행한 것이니,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린 것이었다.

거기다 이번에 창설한 새로운 별동대의 활약이니, 어찌 눈이 가지 않으랴.

소문으로만 듣던 매화신협.

그리고 그 휘하에 있는 별동대.

그들을 향한 경외감으로 이 많은 이들이 전쟁 이후 첫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그들을 기다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천휘가 모인 군중을 의아하게 바라볼 무렵.

“저분이 매화신협이구나!”

“와아! 소문대로야!”

천휘와 눈이 마주친 군중들이 술렁거리며 두 눈을 반짝였다.

소문대로의 모습이었다.

훤칠한 외모와 날카로운 인상.

도사답지 않은 오만한 표정이었지만, 그 모습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특히 여인들은 몽롱한 눈으로 천휘를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천휘를 따라서 막 들어선 별동대원들에게 눈을 돌린 순간.

“……별동대?”

들떴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천휘를 뒤따라서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의복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는 몸을 감싼 붕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걸을 때마다 고약한 금창약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 왔다.

그러한 별동대원들의 모습에 군중들이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워할 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게 어떻게…….”

별동대원들도 당황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런 환대에 기뻐하며 가슴을 폈을 일이었으나, 그러기엔 지금 그들의 모습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어색해지던 그때.

“오랜만입니다. 소협.”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중들을 뚫고 나온 설검이 천휘의 앞에 서서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제가 소협의 별동대를 전담하게 됐습니다.”

“전담……?”

“그렇습니다.”

설검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봤자, 임무 보고를 주고받는 것뿐이지만 말입니다.”

설검의 말에 천휘는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먼저 전각으로 가요.”

그 말에 멸절대원들은 어색하게 웃더니, 황급히 움직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후에 뵙겠습니다.”

그 이후 대원들은 바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것도 취하는 것이지만, 계속 집중되는 많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설검은 멀어져 가는 멸절대를 슬쩍 보다가, 군중들을 보며 입을 뗐다.

“자, 가시죠.”

천휘가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들은 설검과 천휘의 만남을 보곤 기대감에 부풀어 속닥거려 댔다.

부군사와 별동대주.

필시 보통 일이 아니리라.

잠시 후 군중들을 뚫고 거의 뛰다시피 걸어간 둘은 전각에 도착했다.

‘오랜만인걸.’

천휘가 전에 화산파의 전각을 빼앗기 위해서 왔던 때를 회상하던 중.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설검이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천휘 소협의 별동대를 맡게 된 설검입니다.”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알았고.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죠.”

“무엇을…….”

“아까 전 그거 그쪽이 한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천휘는 시침을 떼는 설검의 옆모습을 힐끗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에 설검은 움찔했다.

눈에 떠오른 광망은 지금의 차디찬 날씨보다도 싸늘했다.

“……맞습니다.”

결국 그 시선에 굴복한 설검이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모두 소협과 별동대를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사흑련과의 전쟁의 첫 임무를 수행하셨는데 그냥 넘어가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뿐이에요?”

“…….”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참. 소협은 못 속이겠군요.”

설검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왕이면 이목을 집중시켜서 소협과 별동대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설검이 노린 바가 이것이었다.

별동대는 이제 갓 신설된 부대.

그래서 속히 알릴 필요가 있었다.

천휘가 누구인지.

별동대에 누가 속해 있는지.

“그런데 설마 그러한 모습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 전 달려가던 멸절대원을 떠올린 설검이 섭선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가 예상한 것은 천휘와 별동대의 금의환향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자가 있는 한 아무런 위험도 없이 복귀할 거라 생각했는데…….’

속으로 생각한 설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별동대원들이 저렇게 다친 것을 보면 적호채가 꽤 강했나 봅니다.”

설검이 조곤조곤 속닥였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무인의 자존심을 긁는 말이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천휘는 그런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경험이 부족하더라고요.”

단 한 마디에 설검은 바로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이해했다.

“일부러 나서지 않은 겁니까?”

“실전에서 경험을 쌓아야죠.”

설검이 눈을 빛냈다.

‘훈련이 아닌 실전으로 실력을 쌓겠다는 건가?’

뒤가 없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이기도 했다.

‘……강심장이야. 만약 한 명이라도 죽었다면 책임을 물었을 텐데.’

설검이 속으로 혀를 찰 무렵.

“아참, 그리고 별동대가 아니라 멸절대에요.”

천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계속 별동대라고 하기도 그래서 이번에 따로 명칭을 정했거든요. 어차피 권한은 내게 있으니 이름 정도야 마음대로 해도 괜찮죠?”

그 말에 설검이 피식 웃었다.

“상관없습니다. 한데 꽤나 과격한 이름이군요. 멸절이라…….”

멸절이란 말은 보통 정파보다 사파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왜인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길 잠시 설검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뱉었다.

“그럼 이제 이번 임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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