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탈락이요.”
천휘의 선택은 거침이 없었다.
벌써 수십 명이 천휘의 앞에 섰지만 통과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체 누구를 통과시키려고.”
“설마 아예 수하를 뽑을 생각이 없는 건 아니겠지?”
처음 기대에 가득 차 있었던 분위기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마치 북풍한설과도 같은 냉랭함.
그 와중에도 천휘는 탈락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인원들을 계속 선별해 갔다.
사람 수가 빠르게 줄어 갔다.
당당하게 왔다 탈락이란 고배를 마신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최근 명성을 얻었다고, 이렇게 제멋대로일 수가 있나.”
“매화신협이라는 위명에 속아 내가 잘못 찾아왔군. 이런 자인 줄 진작에 알았으면 옥기린 대협에게 먼저 찾아갈 것을…… 괜한 시간 낭비를 했어.”
분노, 의문, 배신감, 실망 등.
그러다가 이따금씩 격정적인 반응을 내보이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인정할 수 없소!”
말끔한 황색의 무복을 입은 청년, 정청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지금 분통이 터졌다.
옥기린에게 가라는 사부님의 말을 거부하고 대신 선택한 매화신협이었다.
한데 이게 무엇인가.
검을 뽑아보기는커녕, 그냥 대면한 것뿐인데 바로 떨어졌다.
화가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익힌 무공을 보지도 않고, 그냥 눈대중으로 뽑는 것이 어디 있소!”
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지켜보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 간 탓이었다.
사실 그들도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 정청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 반응에 힘입은 정청이 눈을 부라리며, 불만을 모조리 토해 냈다.
“이게 어디 간단한 임무요? 그 무엇도 아닌 사흑련과의 전면전에 나설 별동대요. 한데 겨우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대원을 뽑다니…… 지금 매화신협께서는 별동대를 장난으로 생각하는 것이오?”
구구절절 옳은 말이 쏟아지자 대기하던 이들이나 탈락하고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동조하며 외쳤다.
“그 말이 맞소!”
“나도 그리 생각하오!”
기세를 타기 시작하며 점차 커지는 외침에 천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
정청이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그렇소.”
“그럼 잘된 거 아닌가요?”
“무슨…….”
천휘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차피 저도 이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뽑을 생각이 없거든요. 서로가 싫어하니, 각자 갈 길 가죠?”
말과 함께 천휘는 손가락으로 대문 밖을 가리켰다. 즉, 나가라는 의미의 손짓이었으니 정청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휙 하고 몸을 돌렸다.
더 말해 봐야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된 터였다.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 된 별동대를 꾸릴 수 없을 것이오.”
끝내 울분을 삭이지 못한 정청이 나가기 직전, 천휘를 노려보며 말했지만.
“알았으니까, 얼른 가요. 아직 봐야 하는 사람 한참이나 남았는데, 괜히 시간 잡아먹게 하지 말고.”
그는 끝내 핀잔만 받았다.
“…….”
정청이 눈살을 구기며 나갔다.
침묵이 흘렀다.
그 상황에서 천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입을 달싹였다.
“방금 봤죠? 제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면, 지금이라도 나가면 돼요.”
천휘의 무심한 말에 줄을 선 이들이 움찔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차라리 지금 나가는 게…….”
“지금이라도 옥기린 소협에게 가면 받아 주지 않을까?”
“그래도 합격할지 모르는데.”
구파일방에 소속된 이들마저 우수수 떨어진 상황에 몇몇 이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렇게 누구도 움직이지 않을 때.
“난 가겠어.”
한 청년이 마음을 정한 듯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 그럼 나도.”
“여기보다는…….”
그리고 그것이 시발점이라도 되었는지 눈치를 보던 이들이 하나둘 몸을 돌리며 뒤를 따라갔다.
한순간에 삼분지 일이 떠났다.
‘아직도 이렇게나 많네.’
천휘는 혀를 내둘렀다.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건만, 아직까지도 줄은 한참 남아 있었다.
‘이러다 하루 종일 하겠어.’
잠시 혀를 차던 천휘는 다시 그들을 스윽 훑어보며, 입을 달싹였다.
“다음 둘 오죠.”
그렇게 선별 작업이 재개되었으나, 역시나 탈락자들만 계속 나왔다.
탈락자의 대부분은 바로 이곳을 떠나갔지만, 몇몇은 오기가 생겼는지 대체 누가 통과할지 확인하겠다는 듯 눈에 불을 켜면서, 천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뒤에 서요.”
처음으로 나온 다른 말에 몇몇 이들이 놀라며, 천휘를 바라봤다.
“뭐라고?!”
“설마 통과?”
그들이 시선이 천휘 앞에 있는 자에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 또한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때.
“말이 안 됩니다!”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좀 전에 탈락했던 이였다.
그만이 아니었다.
천휘의 선택에 반발하듯 몇몇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겼다.
도저히 저 여인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에 여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배경도 없고 강호에 이름을 떨치지도 못했다지만, 면전에 두고 저런 말을 듣는 것은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하나 탈락한 이들은 여인의 표정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소리쳤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왜 저 여인입니까!”
천휘는 그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귀청 떨어지겠네. 시끄럽게 할 거면 나가요. 쯧쯧, 어차피 떨어졌으면서 대체 뭐 하려는 건지…….”
할 말조차 없게 만드는 천휘의 말에 탈락한 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괜히 봤어.”
“…….”
이어서 중얼거린 그들이 전각을 빠져나갔다.
천휘는 그들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다시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자, 다음 둘 와요.”
다시 진행되는 상황 속 어느 순간부터인가, 천휘의 뒤에 서는 사람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그리고 아직 줄을 선 이들은 통과한 이들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무언가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나 그들은 곧 고개를 흔들었다.
천휘의 뒤에 선 자들은 각자 다 달랐다.
구파일방에 속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옆에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는 작은 문파의 문도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공이 강한가 하면…….
‘기세가 약한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그중에는 각자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후기지수도 있었지만, 몇 명은 아예 문파조차 처음 들어 보는 곳의 제자였다.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마음대로 뽑는 건가?”
대부분이 그렇게 결론을 내릴 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종남파의 도사, 무홍(武弘)이 개방의 호광개(豪光丐)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의 말대로 매화신협 마음대로 대원을 뽑는 것 같나?”
“아니, 명확한 기준이 있어.”
호광개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하나 무홍은 의아했다.
기준이 있다기에는 뒤에 선 자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만약 마음대로 뽑을 거라면 이렇게 줄을 서게 할 리가 있겠어?”
단번에 답한 호광개의 시선이 천휘에게 향했다.
귀찮음이 물씬 풍기는 표정이었다.
“저 얼굴 보라고. 그냥 마음대로 누군가를 뽑을 생각이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떠날 인물이지. 이렇게 한 명씩 보면서 판별하지 않아.”
게다가 호광개는 이곳에 오기 전, 이미 개방주에게 천휘의 성정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듣고 온 상황이었다.
‘제멋대로에 모든 걸 귀찮아한다고는 들었지만.’
그는 기름진 머리를 긁적였다.
들었던 것보다 더 심했다.
‘저렇게 적을 만들어서는…….’
그는 슬쩍 떠나는 이들을 봤다.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결과에 불복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으리라.
그때 무홍이 미간을 좁혔다.
“그럼 기준이 무엇인 것 같나?”
호광개가 머리를 벅벅 긁던 손을 거적때기에 슥 닦으며, 피식 웃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한편 근처에서 둘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는 이가 있었다.
‘……기준이라.’
청성파의 이름 드높은 후기지수.
세류도(細流刀) 단리관천이었다.
그는 생각에 잠겨 무심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앞에서 걸어가는 둘의 발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렇군.’
둘이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그가 무언가를 알아채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눈치가 빠른 몇몇 이들 역시 단리관천이 깨달은 것을 알아채곤, 앞에 가는 이들을 보며 시퍼런 광망을 토해 냈다.
“뒤에 서요.”
“정말입니까?”
“싫음 말고요.”
“아, 아닙니다!”
또 한 명의 합격자를 추가한 천휘는 옆에 있는 청년을 응시했다.
“그쪽은 탈락이에요.”
“……알겠소.”
여러 번 소동을 겪은 덕분일까.
탈락한 이들은 대꾸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순순히 물러났다.
“다음 와요.”
말하던 천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왔네.’
눈여겨본 이들 중 한 명이 있었다.
바로 청성파의 도사였다.
‘어쭈구리, 이것 봐라?’
한 걸음씩 내디디며 다가오는 그를 보던 천휘의 눈이 크게 휘어졌다.
“청성의 단리관천이오.”
“세류도?!”
“저자가 청성의 그…….”
모두가 놀라며, 단리관천을 봤다.
세류도라는 별호는 강호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 모습은 그다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주변이 술렁였다.
“소, 소정문의 장학일입니다.”
옆에 있던 사내가 위축되어 말을 뱉었다.
천휘는 그에게는 시선을 두지도 않고, 눈앞의 단리관천만을 봤다.
그러다 만족스럽게 웃었다.
“합격이요.”
처음으로 천휘의 입에서 ‘합격’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에 모두가 놀라며 바라볼 때.
“……이것만 보고 뽑는 것이오?”
뒤로 가려던 단리관천이 불현듯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런데요.”
“다른 것은…….”
“그건 지금 그쪽이 해냈잖아요.”
천휘의 말에 단리관천이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그의 뒤에 섰다.
한편 먼저 서 있던 이들은 단리관천을 힐끗 바라보기 바빴다.
‘설마 세류도가 별동대에 오다니.’
놀랄 노 자였다.
단리관천 정도의 배경과 명성 그리고 무위라면 이런 별동대가 아니라 삼단 사대에서도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할 일이었다.
‘단리관천과 같이 별동대라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몇몇 이들이 단리관천을 보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킬 무렵.
“종남의 무홍이오.”
“하하핫! 나는 개방의 호광개네.”
또 만만치 않은 자들이 나타났다.
“뒤에 서요.”
천휘는 지체 없이 말했다.
“……흠, 합격은 아니군.”
“쩝, 역시 무언가 있나?”
둘은 합격임에도 불구하고 천휘의 말이 약간 불만이라는 듯 꿍얼거리며 뒤에 섰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쨍쨍하게 내리쬐던 해는 어느새 기울어져, 은은한 노을빛을 흩뿌릴 때.
“탈락.”
천휘가 마지막 사람을 보며 말하더니, 찌뿌둥해진 팔을 쫙 뻗었다.
“아, 이제 끝났네.”
그가 가볍게 몸을 풀며, 뒤돌아섰다.
“하나, 둘, 셋, 넷…….”
뒤편에 서 있는 무인들을 한 명씩 세어 보던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 사십이 명인가? 적당한걸.”
한편 선별이 끝남을 확인한 무인들은 딱딱하게 굳었다.
하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휙!
호광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대주, 궁금한 것이 있는데.”
천휘는 바로 대주라고 부르는 호광개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뭔데요?”
“왜 우리를 뽑은 것이요?”
그 말에 모두가 흠칫했다.
사실 그들도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휘는 호광개를 보며, 씩 웃었다.
“왜요? 뽑은 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럼 지금 나가도 되는데.”
“쩝, 그걸 묻는 게 아니란 것을 알면서…….”
호광개가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족적 아니오?”
단리관천이 나직이 말했다.
뜬금없이 끼어든 그의 목소리에 호광개는 당황했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합격이었나!’
단리관천이 천휘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새겨진 족적을 보고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오만.”
“맞아요. 남은 족적을 보고 판단했어요. 얼마나 보폭이 일정하고, 바른지. 그 기준을 넘으면 합격시켰죠.”
그제야 자신이 들어온 이유를 알아챈 이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보법만 보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소? 상대는 사흑련이오. 그런데 무공 실력이 부족하다면…….”
잠시 말을 흐린 단리관천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죽는 것은 둘째치고, 같은 대원에게 방해만 될 것이오.”
차가운 시선에 몇 명이 움찔했다.
그 말대로 지금 그와 이곳에 있는 몇몇 이들의 실력 차이는 한 부대가 되기 어려울 만큼 컸다.
하나 천휘는 담담하게 말했다.
“흠, 지금 일을 헷갈리는 것 같은데…… 별동대가 하는 일이 뭐죠?”
물음에 단리관천은 미간을 좁혔다.
“본대와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
순간 단리관천은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것처럼 멍한 얼굴로 속닥였다.
“그래서 보법이었나…….”
별동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성과 살아남는 것, 보법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보법을 펼치는 것으로 시험을 봤으면 되지 않소?”
“몸에 밴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크죠. 아무리 상승의 신법과 보법을 펼칠 줄 알아도, 자연스럽게 매 순간 펼치지 못한다면 그만큼 무쓸모인 게 있나요?”
천휘가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거기다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졌는데, 뛰어난 보법을 익혔다고 숙련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물었던 단리관천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도 익숙하지 않다면, 빛 좋은 개살구인 법.
“확실히 보법이라면…….”
“자신이 있는 분야이긴 한데.”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본 천휘가 피식 웃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긴 해.’
고작 보법의 실력만으로 뽑았다면 통과할 이들은 더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 있는 놈들 모두 내가 본 적이 없는 무공들을 익혔단 말이지.’
개인적인 그의 무공 욕심이 섞여 있었다.
‘나중에 펼치는 거 보면 좋겠어.’
흥미와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한차례 훑던 천휘가 말했다.
“그럼 마지막 기회를 주죠. 지금이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요.”
천휘가 나직이 말했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휘는 결심의 눈빛을 선보이는 그들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인원도 다 뽑은 것 같으니. 자자, 서둘러서 짐들 챙겨 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왜 갑자기 짐은…….”
뜬금없는 말에 모든 이들이 당황할 때 천휘의 입술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왜긴요. 이제 일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