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당장 전서구를 보내!”
“밖에 임무 나간 문도들에게 모두 복귀하라고 전달해!”
무림맹은 한창 시끌벅적했다.
사흑련과의 전쟁.
그것이 무림 대회의로 확정됨에 따라서 모두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사흑련과 인접한 문파의 무인들은 불안감을 흘려 내면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하나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무림맹에 머무는 몇몇 무인들은 지금의 상황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드디어 내 실력을 보여 줄 때군.”
“명성을 쌓을 기회인가!”
전쟁이 있을 거란 말에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어린 무인들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구주삼패세의 시대에 갇혀 진절머리가 난 그들은 전쟁을 그 누구보다도 반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쌓아 온 자신의 힘을, 무공을 천하에 선보일 기회였다.
아직 젊고, 야망이 넘쳐흐르는 그들로서는 어찌 반기지 않겠는가.
혈기를 뽐내던 그들은 뒤이어 들려온 소식에 두 눈을 빛냈다.
“별동대라…….”
“맹이 칼을 뽑아 들었군.”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급조해 만들어진 부대였으나, 활동 반경과 구성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부대.
거기에 별동대를 이끄는 대장이라는 자들은 현 강호에서 명성이 혁혁한 옥기린과 매화신협이었다.
“강 형은 어쩔 생각이오?”
“당연히 지원할 생각이라네. 우리 같은 놈들이 어찌 이 기회를 놓치겠나.”
이 소식에 몇몇 이들이 눈에 불을 켰다.
그들은 바로 삼단과 사대의 입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물론 그 임무가 위험천만할 게 분명했지만, 무림맹의 삼단과 사대에 들어가지 못한 무인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느껴졌다.
그렇게 별동대가 창설된다는 말이 퍼지며, 젊고 소속이 없는 무인들이 일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편 한창 무림맹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별동대의 대주 중 한 명으로 낙점된 천휘는…….
“네? 별동대를 맡으라고요?”
갑자기 찾아온 군사의 통보나 다름없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 상태였다.
“싫은가?”
“당연하죠.”
군사는 의뭉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유가 있는가?”
“뭐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하기 싫은 이유는 아무래도…….”
말을 잠시 멈춘 천휘는 군사와 똑바로 눈을 맞춘 뒤, 미간을 좁혔다.
“귀찮잖아요.”
“귀찮다……?”
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작 그것 때문에 이 자리를 거부하려는 겐가?”
“그거면 충분한 이유인데.”
영 귀찮아하는 표정의 천휘를 바라보던 군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문파에서는 맡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자리이거늘.”
군사의 말에 천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쏘아붙였다.
“그렇다면 하겠다는 사람들 시키시죠? 괜히 안 하겠다는 사람 시키지 말고, 그럼 서로 좋잖아요,”
“그러나 안 되네.”
“왜죠?”
군사가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다른 별동대주가 누구인지 아나?”
물음에 천휘가 코웃음을 쳤다.
“방금 제가 별동대를 맡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걸 알겠어요?”
“그것도 그렇군.”
군사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한 명은 옥기린일세.”
“옥기린? 아! 무당파의 최고 후기지수니 뭐니 하는…….”
그놈이 다른 별동대주야?
옥기린이라면 아주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삼대 후기지수 중 한 명이니.
‘거기에 최근 들어서 나랑 비교하는 것도 많고.’
최근 명성을 쌓은 자신과 비교하던 것을 떠올리던 중 군사가 말했다.
“그래. 그자라네.”
뒤이어서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현 강호에서 옥기린의 실력과 명성에 비할 만한 자는 별로 없네. 사흑련주의 막내 제자인 흑야차나, 제갈세가의 장남 천룡 정도가 전부지. 한데 얼마 전부터 한 명의 이름이 비슷할 만큼 계속 떠오르는 중이더군.”
군사가 더욱 강렬한 눈빛으로 천휘를 보며 말했다.
“그게 자네일세.”
눈이 마주친 천휘는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명성이 높으니 하란 거네.
이내 머리 긁적이길 멈춘 천휘가 입을 뗐다.
“즉 옥기린과 비슷한 명성을 가진 절 대주로 만들어서 두 별동대의 균형을 맞추려는 거네요.”
“맞네.”
군사가 시원하게 말했다.
둘의 균형은 딱 맞아떨어졌다.
사실 현 강호에서는 매화신협이 옥기린보다 우위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녹림대제를 쓰러트리고, 도망치게 만들었지 않은가.
아무리 옥기린이 무당에서 애지중지 키워 놀라운 무위를 지녔다지만, 그와 같은 협행 앞에선 빛이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옥기린에게는 그러한 것을 충당하고도 남는 것이 있었다.
‘무당파가 뒤에 있지.’
무당과 화산.
물론 최근 화산파가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지만, 그 격차는 현격했다.
특히나 맹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현재 무림맹에 남은 화산파의 도사는 화산신검과 매화신협, 단둘뿐, 훗날 지원이 온다 해도 그 수는 결코 많지 않을 터…….’
물론 화산파의 무위는 뛰어났다.
백귀성을 무너트린 화산신검과 매화신협이라면 일개 군소문파와는 부딪쳤을 때 승리를 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결국 적은 인원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변함이 없었다.
특히나 전쟁에서 인원의 수란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기 때문에 현재 화산파가 지닌 영향력과 별개로 전력의 차는 명확했고, 이는 전쟁에 들어가면 더욱 확실해질 터였다.
“아, 그래도 귀찮은데…….”
군사는 아직까지도 못마땅해하는 천휘의 표정을 보고는, 그를 달래기 위해 준비한 말을 꺼냈다.
“물론 그냥 하라는 것은 아닐세.”
별동대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사흑련과의 전쟁 전면에 나서는 일이었으니, 언제 죽을지도 몰랐다.
한데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당근이 없으면 안 되겠지.’
군사는 어제 무림보고로 갔을 때의 천휘를 떠올리며, 입을 달싹였다.
“만약 별동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면 비천서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맹주님께 청해 보겠네.”
“비천서고요?”
천휘가 바로 반응했다.
무림비고에서 색다른 병기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비천서고까지 들어갈 수 있다면.
‘귀찮지만 괜찮을지도?’
천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쩝, 알았어요. 하죠. 별동대니, 뭐니 하는 그거.”
“고맙군.”
“고맙긴요 뭘. 어차피 제가 거절할 수도 없는 걸 텐데, 안 그래요?”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천휘의 물음에 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이 긍정의 대답이었으니.
무심하게 바라보는 군사를 마주 바라보던 천휘가 입을 달싹였다.
“대신 고맙다면 한 가지만 넘겨주세요.”
“무얼 말인가?”
“별동대를 운영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되죠?”
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확히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가?”
“별거 아니에요. 별동대를 제 식대로 운영할 거니까, 무슨 일이 생기든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즉 별동대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겨달란 말이로군.”
“이거 대화가 잘 통하네요.”
“권한이라…….”
군사가 잠시 생각하는지, 눈을 감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어라? 이걸 받아 줘?
의외였다.
아무리 새로 만들어진 별동대라지만 결국 무림맹 휘하 부대였다.
한데 평소 무림맹에 직급도 없던 자신이 대주가 되는 것인데,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파격적인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임무만 잘 수행해 준다면 상관없네. 하나 이것만을 알아 두게. 그렇게 모든 권한을 넘겨줬는데도 불구하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자네가 져야 할 걸세.”
“그 정도면, 감수할 만하네요.”
순간 천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 미소에 군사는 무언가 꺼림칙함을 느꼈으나, 고개를 좌우로 저어 불안함을 털어 냈다.
그때 천휘가 물어 왔다.
“아 참, 세작은 찾았나요?”
“세작 말인가?”
군사가 놀란 듯한 얼굴로 천휘를 바라봤다.
이전에 대화할 때도 관여할 생각은 없어 보인 데다가, 여태껏 안 물어 오기에 별 관심 없는 것이라 생각해 왔었다.
한데 이렇게 묻다니.
“아직 완벽히 찾지는 못했네. 몇몇만 골라냈을 뿐이지.”
군사가 차분히 대답하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데 그건 왜 묻는가?”
천휘는 의아한 듯 쳐다보는 군사의 표정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을 위해서죠. 세작 중에 별동대에 들어오려는 자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천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말했다.
“소림과 아미파 그리고 곤륜과 숭무문은 안심해도 되네.”
“거긴 안전하다 확신하나 보죠?”
“그들은 내가 비천회와 관련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더군. 만약 세작이었다면 관심도 안 줬을 일이지.”
군사는 무림 대회의가 끝난 뒤에도 의심하던 그들의 시선을 떠올렸다.
“그 네 곳이라…….”
턱을 쓰다듬으며 속닥이던 천휘는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한데 의외네요. 비은당(非隱黨)은 군사님의 수족인 것으로 아는데, 거기도 의심하고 있는 건가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곳이 강호라네. 가까운 자일수록 더욱 경계해야지.”
군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천휘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듣고는 피식 웃었다.
의심되는 자를 가까이 둔다라…….
그렇다면 나도 의심한다는 거네?
웃던 천휘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부군사를 놔뒀나 보죠?”
“미끼가 있어야, 물고기가 오는 법이지 않나.”
“거참, 미끼가 참 튼실하네요.”
“물고기가 꽤나 커서 말일세.”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별동대 인원은 몇 명까지 생각하고 있으시죠?”
“최대 오백 명까지 고려하고 있네.”
“흠, 오백 명이라…….”
천휘는 수를 곱씹으며 턱을 긁적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었다.
“꼭 오백 명을 채울 필요는 없죠?”
“자네 편한 대로 하게나. 하나 인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일세. 숫자가 줄어들 경우 충당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때마다 모집하기는 힘들 테지.”
군사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아니, 냉혈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의 인명을 숫자로 파악한 것이니.
그러나 천휘는 이해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 오히려 저렇게 냉정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나중에 누군가 죽고 나서 뒷일을 처리하지 못할 터이니.’
전쟁이란 그만큼 지독한 것이었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만이 남는 일.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서 진두지휘하는 자는 그 결과를 확실하게 파악해야만 했다.
죽은 자들에게 휘둘려서, 살아남은 자가 죽어 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때 군사가 할 이야기는 다 끝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오는 길에 듣자니 옥기린은 대주 임무를 들은 즉시 별동대의 인원을 모집 중이라더군. 자네도 서둘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네.”
그러고는 나지막한 충고를 건넸다.
“안 그러면 무림맹 내에 남아 있는 인재들을 모두 빼앗길 테니.”
“이미 다들 가지 않았을까요?”
하나 천휘는 웃음기 어린 말로 반박했다.
“맹 내에 있는 대부분이 거기로 갔을 것 같은데.”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았다.
옥기린의 뒤에서 무당파가 전폭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다가 옥기린은 다른 문파들과 많은 관계를 쌓아 오지 않았나.
자신과는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웃던 천휘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차피 인재가 오든 말든 상관없기도 해서.”
“무슨 말인가?”
“그 말 그대로죠.”
천휘가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큰 기대도 안 하거든요.”
“……그렇군.”
나직이 말한 군사가 천휘를 무심하게 쳐다보기를 잠시.
스윽―
품에서 종이를 꺼내서, 내밀었다.
지도?
천휘가 종이에 세세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를 보던 중 큰 원이 그려진 한 곳에 시선을 두었을 때다.
군사의 손가락이 끼어들어 천휘의 시선이 머문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이 별동대가 머물게 될 전각일세.”
* * *
“쓰읍, 이곳이라고?”
고개를 들어서 눈앞에 있는 전각을 올려다본 천휘는 마뜩잖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 찼다.
“너무 낡은 거 아니야?”
첫인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된 것인지 전각의 처마뿐만이 아니라, 눈앞의 대문 또한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런데 안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어라? 이 기운은…….’
생각과 함께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은 천휘는 대문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힘을 주어서 열자.
끼이익―
낡은 나무문 특유의 소리가 들려오며 귀를 자극했다.
이윽고 대문이 완전히 열리고.
툭.
천휘는 잡초가 자라나 있는 정원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풍겨 오는 기운에 비해서 생각보다 어린걸.’
말끔한 인상의 미청년이었다.
태극(太極)을 연상시키는 청·백색의 도백을 입은 미청년은 뒤늦게 천휘를 발견하곤, 눈을 반짝였다.
“무량수불.”
옅은 도호를 중얼거린 미청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도우가 천휘 소도장이군요.”
“누구죠?”
천휘의 물음에 미청년은 ‘아차’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결례를 저질렀군요.”
말과 함께 미청년은 표정을 바꿔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의 일광(日光)이라고 합니다.”
일광이라 이름을 밝힌 미청년을 훑던 천휘가 입술을 천천히 비틀었다.
‘얘가 옥기린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