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83화 (83/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79. 대전회의(3)

"긴장되는 건가?"

갑자기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아시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제르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금요?"

아닌 게 아니라, 대전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의 심장박동 역시 빨라지고 있었다. 긴장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에 가까운, 그런 오묘한 기분. 여태까지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하게 있었지만 정작 때가 되니 은근한 압박감이 그에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제르닌은 그제야 이 유능한 신참이 겨우 16 살 밖에 안 된 어린애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애쓰며, 그는 아시엘의 머리에 살짝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역시 애는 애였다. 아무리 그게 마검사라도, 무섭도록 영리한 녀석이라도. 제르닌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픽 웃었다.

"황제 폐하 듭십니다-!"

대전 입구를 지키던 근위병이 우렁차게 외치자,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는 가운데의 문이 드드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서 반짝이고 있는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거대한 샹들리에였다. 각종 보석들로 휘양찬란하게 꾸며진 그것은 적어도 아카데미 홀에 있던 것 보다 5배는 더 커 보여, 아시엘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에는 마찬가지로 화려한 카펫이 쭉 깔려 있었다. 그 길의 양 옆으로 대신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예를 차리고 있었고, 카펫이 끝나는 부분에는 조금 높은 곳에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황좌가 자리잡고 있었다. 국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는 라이펜 답게 그 모든 것들은 제국 내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그 밖에도 군데군데 놓인 아름다운 조각 장식들과 은촛대 등등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사치스러운 인테리어에 아시엘은 완전히 질려 버렸다. 얼굴에 '으아아' 라는 말을 써 놓은 듯 한 그를 힐끗 쳐다본 라이펜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천천히 카펫을 밟고 대전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 한 발 움직일수록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대신들과 귀족들은 몸을 더더욱 깊이 숙였다.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없었지만.

황제의 측근으로서 함께 입장한 아시엘과 제르닌, 웨슬린 백작은 고개를 숙이고 라이펜의 뒤를 따랐다.

곧 백작은 가장 앞쪽 대신들 사이에 멈춰 서 자리를 잡았고 아시엘과 제르닌은 호위 기사라는 호칭에 걸맞게 황좌의 바로 아래에 섰다.

그들의 건너편에는 대공, 슈베이만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동생이자 정적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붉은 옷의 기사, 루아 이클립스 두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꽤 낯이 익었다. 이클립스의 단장- 에피로스 경이었다.

"...."

아시엘은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대공을 응시했다. 어젯밤의 그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듯 했다.

도대체- 한낱 신참 기사일 뿐인 자신이 뭐라고 관심을 둔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 때, 줄곧 가만히 바닥을 응시하던 슈베이만의 시선이 살짝 움직여 아시엘의 눈과 마주쳤다.

"...!"

라이펜과 닮은 듯, 다른 듯한 황금빛 눈동자. 아시엘은 순간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그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슈베이만은 입가에 가느다란 곡선을 그리며 다시 시선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렸다.

잠시 후. 황좌에 앉은 라이펜은 도도하게 다리를 꼬며 대전을 죽 둘러보았다. 다들 충직한 모습으로 예를 차리고는 있었지만 그 속은 열 길의 물 속보다 알 길이 없었다.

"그럼, 오늘 자의 회의를 시작하겠소."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황제는 미미하게 웃으며 힘있게 선언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가면 연극을 보는 것 처럼 지루하고 뻔하지만, 그럼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방심하는 순간 적은 웃는 얼굴로 심장에 비수를 찔러 올 것이었다.

한편, 아시엘은 갑자기 싹 바뀐 라이펜의 말투에 소륻이 오소소 돋는 것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원래 대충 이렇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했다. 익숙해진 듯 제르닌은 의연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썩 유쾌하지는 않은 듯 한쪽 눈썹을 미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폐하. 오늘 대동하신 저 소년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아시엘은 갑자기 대신 중 한명이 자신을 언급하자 의아해져 그쪽을 바라보았다. 삼심 대 중반쯤 되었을까. 꽤 젊어 보이는 그 귀족은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인물을 경계라도 하듯 아시엘을 바쁘게 살펴보고 있었다.

라이펜은 느긋하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지나가는 말서럼 대꾸했다.

"제복을 보면 알겠지만 셀레니스 기사단의 신입이지. 동시에 나의 친우, 루이스 아르셰인 경의 양아들이기도 하고."

"...루이스 경의? 이 아이가?"

귀족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확 쏠렸다. 아시엘은 뻘쭘해져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궁 안에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사실 루이스라는 사람을 아는 자들은 거의 믿지 않고 있었다.

일 처리에 손속을 두지 않고, 황제와 자신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그가(아시엘이 안다면 펄쩍 뛸 말이었지만) 아들을 들였다니, 그들의 상식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허어.. "

가장 앞쪽에 있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흥미로움으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르셰인 경이 인정하는 인재라면 그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지요. 경하드립니다, 폐하. 그리고 이번에 메르티스 가의 셋째 아드님도 셀레니스로 받아들이셨다지요?"

"고맙소, 파슬렌 공작. 둘 다 아직 어리지만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기사들이오."

저건 진심일까,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일까. 아시엘은 라이펜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여전히 귀족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어 섯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쯧.'

어째 동물원의 원숭이나 어항 속의 금붕어가 된 듯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렇겠지요. 거기다 희귀한 마검사라고 하던데. 그건 사실입니까?"

조용히 있던 슈베이만이 특유의 느긋한 음성으로 말하자, 라이펜 역시 손가닥을 까닥거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입니다, 형님."

"-하지만, 아직 대전회의에 참석시키기는 조금 어린 것이 아닌지."

아, 젠장. 하지만 곧 이어진 그의 말에 라이렌의 눈썹이 조금 구겨졌다.

"어리긴 하나, 그는 오늘 안건의 중요 관계자입니다. 그래서 호출한 것입니다."

"단순히 증언을 위해서라면 저기 있는 제르닌 경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케시비언 경도 함께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저 소년을 이 자리에 세우신 저의가 무엇인지."

슈베이만은 여전히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에 황제 역시 싱긋 미소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그냥-일찍이 저 소년의 입지를 만들어두고자 하시는 것이 아닌지 여쭈고 싶었을 뿐입니다."

"...!"

순간 대신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묘하게 바뀐 공기를 읽은 슈베이만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아무도 보지 못할 정도로 작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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