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71. 그의 이야기 (1)
아시엘이 파티장을 나가버리고, 그를 찾으러 갔던 슌까지 돌아오지 않자 결국 케빈은 직접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 도중에 술에 잔뜩 취한 루이카엔이라는 짐덩어리까지 떠안아버린 그는 씩씩거리며 단장을 부축하고 밖으로 향했다.
"아시엘!"
"흐히히히.. 우리 예쁜 꼬맹이이~ 어디갔을까~요!"
"넌 헛소리 좀 그만해! 젠장.. 술 처먹었으면 어디든 박혀서 잠이나 자라고!"
히히덕거리는 루이카엔에게 버럭 소리친 케빈은 조금 초조해진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미 아시엘이 사라진 지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듯 했지만- 그는 불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 씨! 슌은 또 어디로 간거야!"
이쯤 되니 따라간다고 했다가 같이 없어져 버린 슌이 원망스러워졌다. 허공에다가 바락바락 악을 쓰던 그는 결국 제 풀에 지쳐 입을 다물었다. 그 때 잠자코 케빈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루이카엔이 다시 실실 웃기 시작했다.
"히히.. 케빈 군이 성질낸다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졌네?"
"아, 넌 좀 닥쳐!"
아, 던져버리고 싶다. 그는 진지하게 루이카엔을 버리고 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나름 셀레니스 기사단의 단장인데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 기사단의 명예를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하도 추잡한 짓을 많이 해서 이미 명예랑은 거리가 멀지만.'
속으로 울적한 생각을 떠올린 케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이렇게 답지 않게 흐트러질 거였으면서, 또 이렇게 상처를 받을 거였으면서 그 징글징글한 '가족'은 왜 만난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질책하는 것도 못 할 일이었다.
"하아."
여러모로 골치 아픈 것이 많아졌다. 지금 당장 그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정체불명의 구슬부터가 문제였다. 한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단장을 질질 끌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끄응.. 도대체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운거야?"
"여러분의 사랑! 헤헤."
"미친놈."
케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루이카엔은 아랑곳않고 실실 웃을 뿐이었다.
"우리 케빈은 왜 화를 내는걸까아? 내가 못난이라서 그런가?"
"......."
케빈은 대꾸하지 않고 먼산을 보기로 했다. 일일히 상대하다가는 머리털이 다 빠지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멍하니 걸음만 옮기고 있는데, 갑자기 루이카엔이 뻣뻣하게 멈춰섰다.
"또 뭐야?"
"저기."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한 목소리에 케빈은 신경질을 내면서도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그 역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방치된 지 꽤 된 듯한 낡은 벤치에, 한 소녀가 기대어 늘어져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도 화사하게 빛나는 금발에귀여운 빨간색 드레스.
아시엘이었다.
루이카엔은 순식간에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케빈의 어깨를 뿌리치듯 놓은 그는 그쪽으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케빈 역시 거의 뛰다시피 그에게 달려갔다.
"아시엘!"
간발의 차로 먼저 도착한 루이카엔은 아시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힘없이 루이카엔의 손에 몸을 맡길 뿐 눈을 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야, 괜찮은 거냐?"
"그냥 잠든 것 뿐인데.. 뭐야, 왜 이런 데서?"
루이카엔이 얼떨떨하게 묻자 케빈은 칫, 혀를 차고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아까 거래 건으로 나한테 찾아왔었는데, 꼬리를 잡일 것 같더라고. 그 뒤는 나도 몰라. 나중에 녀석한테 물어보자고."
그는 몇 번 더 아시엘의 어깨를 흔들어 보고는 여전히 반응이 없자 어쩔 수 없이 혀를 쯧, 차며 소년을 안아들었다.
"어쨌든 생활관으로 돌아가자. 파티도 거의 다 끝나가니까."
"그러자. 근데.."
루이카엔은 말꼬리를 늘이며 아시엘을 안고 있는 케빈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어쩐지 기분나빠, 케빈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뭐야?"
"아니. 안고 있는 자세가- 아니다. 나도 저번에 그렇게 안았으니까."
루이카엔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케빈이 아시엘을 안고 있는 자세는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 그로서도 일전에 잠든 아시엘을 옮겨 줄 때 그렇게 안은 적이 있었지만- 소년을 안기에는 심히 문제가 많은 포즈였다. 물론 위화감은 전혀 없었지만.
별 싱거운 소리를 다 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케빈은 앞서서 생활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루이카엔 역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남은 취기를 몰아내고 그 뒤를 따랐다.
"끄.."
머리가 깨어질 것 같은 느낌에 아시엘은 눈을 떴다. 주위는 칠흑같은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도대체 오늘 몇 번이나 정신이 끊기는 거야. 그는 머리를 감싸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락, 하고 몸을 덮고 있는 시트가 겉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으.. 머리야."
마치 술을 잔뜩 마신 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신은 이상할 정도로 말짱해서 더욱 괴로웠다. 아시엘은 이마를 짚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 자신이 생활관의 방 침대에 앉어있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되었다.
목이 타는 것처럼 말라 그는 침대 옆의 서랍을 더듬어 램프를 켰다.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슌이 있어야 할 침대가 텅 비어있는 것이 보였다.
"어라.. 슌 선배는 안 들어오셨나?"
아시엘은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물병이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컵 가득 물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 살겠다.."
탁, 컵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그는 입가를 훔쳤다. 그러다 어느새 옷도 간편한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혀 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 민폐끼친 것 같네.'
그는 앞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케빈이 두고 갔는지 손수건에 감싸인 구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시엘은 얼굴을 살짝 굳히며 그것을 집어들어 수건을 살짝 벗겼다.
안에서는 여전히 시커먼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은은하게 배여나오는 보랏빛의 구슬을 바라보던 그는 손을 뻗어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자신의 서랍에 갖다댔다.
"언 록."
작게 시동어를 중얼거리자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서랍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 손에 들려있는 구슬과 똑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아시엘은 그것을 꺼내들고 다른 쪽 손에 있던 구슬을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이걸로 두 개인가.'
기분 나쁜 마력이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물건과 대공, 슈베이만과 아울이라는 남자 그리고 루아 이클립스- 레이.
그 모든 게 빙글빙글 머릿속에서 뒤섞여 엉망이 되는 것 같았다. 다시 두통이 지끈지끈 밀려오는 듯 해 아시엘은 재빨리 두 개의 구슬을 서랍에 밀어 넣어버렸다. 찰칵. 서랍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걸리는 것을 확인한 아시엘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탄식 조로 내뱉은 그는 골치가 아파져 책상 위에 엎드렸다. 기분 나쁜 꿈이 아직도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뇌를 꽉 붙들어놓은 것 같았다.
"후-"
그는 더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편하게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그 상태로 있던 아시엘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 짜증나!"
그는 인상을 쓰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슌이나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깜짝 놀라며 몸을 사렸을 정도의 사나운 기세로 혼자 신경질을 내던 그는 결국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잠시 텅 빈 방 안을 배회하다 더 자기는 그른 듯 해 바깥으로 나갔다.
복도는 코고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시엘은 다른 사람들이 기척에 깰세라, 조심조심 방들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 로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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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언입니닷\( ˚ ▽ ˚ ) /
음.. 갑자기 이렇게 튀어나온 이유는 잠깐 연재 공지를 하기 위해서인데요..
제가 이번 주 토요일부터 해외여행을 가게 되서 말이죠.. 부득이하게 다음주에는 휴재가 될 것 같습니당..
이번주에 최대한 많이 업데이트하고 갈까 생각을 해 봤는데 약 3달 전 비축분을 싸그리 날린 뒤로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올리는 중인지라ㅠㅜ
일단 이번주 목요일에는 정상적으로 업데이트되고 다음주는 또 휴재(젠장ㅠ 죄송합니당 돌 던지셔두 돼요) 입니당.. 복귀는 28일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