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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46화 (46/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46. 열쇠(1)

아시엘은 니엔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다른 이들도 모두 저마다 자리를 잡고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니엔 씨. 이야기를 계속 해 볼까요? 아까 죽이지 않았다는 말은 뭐죠?"

"....."

니엔은 아예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그 행동에 아시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좋아요. 말 하기 싫다, 이거죠?"

"...."

여전히 묵묵부답인 니엔 때문에 아시엘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잔심부름 용으로 헨슨을 잡았던(?)때와는 조금 달리, 이것은 정보를 캐내는 심문이었다.

과묵한 카이스와 제르닌이 해내기는 무리고 다혈질인 케빈 역시 주먹부터 나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가장 적합자라고 판단된 아시엘이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았지만-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난감해졌다.

"음..."

답답함에 아시엘은 뒷통수를 긁었다. 도대체가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야 알아내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마지막 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니엔 씨."

"...."

아까와는 약간 다른 어조의 부름에 니엔은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었다. 지루함에 딴청을 부리던 기사들도 조금 달라진 아시엘의 분위기에 의아해져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말 꺼내기를 망설이는 듯 했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두고 눈을 데루룩 굴린 아시엘은 뒤에 앉아있는 제르닌과 카이스 그리고 케빈을 살짝 돌아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케빈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웃지 말아주세요."

니엔에게 들리지 않도록 입모양으로만 말한 아시엘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대충 알아듣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케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하지만 아시엘은 이미 고개를 돌려 눈앞의 니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

"니엔 씨. 당신-"

아시엘은 애써 긴장감을 숨기며 운을 띄웠다. 그 진지한 모습에 니엔의 얼굴에 불안감이 드리워졌고 세 기사들 역시 저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려나,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심호흡을 한 아시엘은, 대형 폭탄을 투하했다.

"당신이 피해자, 레베카 씨의 연인이죠?"

".....?!"

푸컵! 케빈은 당장에 마시던 물을 입 밖으로 뿜어냈다.

"잠깐, 잠깐잠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다짜고짜!"

물론 경비대 안에 피해자의 연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니엔이라니- 케빈은 더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제르닌이 손을 뻗어 그를 저지했다.

니엔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처럼 새하얘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케빈 역시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끙-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불신과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카이스는 묵묵히 아시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 할 것을 재촉했다.

"그렇죠?"

"....."

니엔이 다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담배를 찾는 듯 떨리는 손끝으로 품 안을 필사적으로 뒤지던 그는 결국 주먹을 꾸욱 쥐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콰앙! 나무로 된 허술한 탁자가 덜컹거리며 위에 있던 물이 쏟아져 그의 손을 적셨지만 니엔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소리질렀다.

"아니야!! 난...난.."

하지만 이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는 그. 그 반응으로 이미 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케빈이 뒤에서 "헐, 진짜야? 진짜?"하며 중얼거리는 것을 한 대 치는 것으로 중지시킨 제르닌은 아시엘에게 의문스럽다는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냥.. 짐작했을 뿐이에요."

아시엘은 마치 아슬아슬하게 시험 문제를 맞춘 학생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장소, 인적도 드물고 인가랑도 먼 곳이라면서요. 그런 곳을 순찰 돌 만큼 경비대가 부지런하진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니엔 씨는 왜 그런 곳으로 갔던 걸까?-란 생각을 해봤어요."

"그 답이.. 그거였어?"

살짝 손을 들며 카이스가 끼어들자 아시엘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였다.

"영상석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확실하게는 못 봤지만 말이야, 그 피해자 여성이 누워 있던 피웅덩이가 내 눈엔 다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였거든. 왜 하필 그 시간에 그 곳으로 갔고, 시신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는가.. 그게 궁금했어."

"....."

"그래서 제르닌 선배한테 현장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어요. 연인이 범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죽였다면 니엔 씨는 그저 약속장소로 갔다가 발견해버린 게 아닐까-하고. 안그래요?"

마지막 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니엔을 향한 것이었다. 아시엘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자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었다.

"젠장! 제가 죽이지 않았어요! 전 그녀를.."

"그렇겠죠. 그러니 말 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시엘은 니엔을 차분하게 타일렀다. 폭탄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 부드러운 목소리 안심한 것인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던 니엔은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대로.. 전 그저 그녀와의 약속장소로 갔을 뿐이에요. 에슈튼 씨가 일을 맏기고 가셔서 조금 늦고 말았는데...."

"죽어 있었다, 이거에요?"

"예."

니엔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 눈에 잠깐, 아주 잠깐, 연인을 잃은 남자의 슬픔이 스쳐지나갔다.

"혼자 어쩌나, 하고 허둥지둥하고 있었어요.. 안그래도 그때 스토커가 따라 다닌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

"스토커요?"

"예. 누군지 아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더군요."

아시엘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스토커란 말인가? 처음에 진범이라고 생각했던 연인은 지금 그의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니엔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하아.. 그래서요? 당신은 발견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벌벌 떨고, 우리를 피했어요?"

"그, 그거야..! 첫 발견자인데다 그 때 보고도 하지 않고 외출한 거니까 의심받을 게 당연하잖아요."

니엔은 거의 울먹이면서 대꾸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정말 경비대원이 맞긴 한 건가? 이해가 가면서도 어쩐지 그가 한심하게 느껴져 기사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그 한심한 발상은 네가 한 거냐?"

질책하는 말투의 케빈에 니엔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사실대로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슈튼 씨가.."

"에슈튼이 뭐?"

우물거리는 니엔의 말투가 짜증났는지 케빈이 결국 버럭 고함을 쳤다. 그 흉흉한 기세에 니엔은 찔끔하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무단으로 외출한 절 따라오셨는지.. 레베카의 시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에슈튼 씨가 오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상황을 물으시더니 제가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면서.. 도와주겠다고."

그 말에 아시엘, 카이스, 제르닌 그리고 케빈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멍하니 니엔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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