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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37화 (37/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37.깊어지는 의혹(1)

"흐윽..흑...흑.."

몸을 파르르 떨면서 여자는 숨죽여 눈물을 훔쳤다. 난생 처음으로 오는 감옥이라는 장소가 두려웠고, 자신에게 씌워진 살인이라는 누명이 저주스러웠다.

어느 날, 친한 친구인 레베카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왠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찾아왔던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슬프고 비통했다. 찾아왔던 경비대원에게 울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했고, 그 대원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며 나가버렸다. 그 뒤는 몰랐다. 범인이 잡혔는지 아니면 도망쳐버렸는지.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그저 흘러갔고 어느덧 삼 개월이 지난 어젯밤, 다시 경비대원이 찾아왔었다. 가게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다.

살인범이라며 다짜고짜 끌려오는 바람에 그녀는 항변 한 마디 못했고 그대로-이렇게. 친구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라며 감옥에 처넣어진 것이다.

"...윽.."

다시 한 번 울음보가 터져나오는 것을 그녀는 눌러 담으려 애썼다. 하지만 새어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 때. 퉁-하고 바로 앞에서 거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꺄아악!!"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다고 죽이러 온 건가? 무릎꿇고 싹싹 빈다면 용서해 줄까. 단 몇 초의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이 새하얘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용기를 내어 살짝 고개를 든 그녀의 눈물에 젖어 흐릿해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두 명의 남자.

바로, 제르닌과 카이스였다. 그저 정신없이 울고 있는 여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검으로 철창을 살짝 두드렸을 뿐이었는데.  꽤나 격한 반응이 돌아와 두 사람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던 차였다.

"저, 저 끌고가려고 오신 건가요?"

여전히 물기 섞인 목소리에 제르닌과 카이스는 곤란한 듯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뚝뚝함의 대명사인 두 사람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를 달래줄 만 한 재주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었다.

한참을 바보같이 서 있기만 하는 두 남자를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경비대도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뭘 하러 온걸까.

결국 카이스와의 눈싸움에 진 제르닌은 체념의 한숨을 푹 내쉬고 눈 앞의 여성을 직시했다.

"..저흰 당신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을 도우려 찾아온 겁니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좁은 감옥에 울려퍼지자 여자는 더더욱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그게 정말이에요?"

마구 떨리는 음성. 그녀는 순간 창피함을 느꼈지만 그 감정을 삼켜버리고 눈앞의 두 남자를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최대한 딱딱하게 말하지 않으려 애쓰며 카이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진범을 잡기 위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이, 이야기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그녀는 멍하니 더듬더듬 말했다.

"하, 하지만 그.. 경비대에 다 이야기 했는데..요."

"..사정이 있어서 그쪽과는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한번 더 저희에게 해주시겠습니까."

제르닌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결심을 했는지 손을 들어 대충 얼굴을 닦았다.

"알겠습니다. 뭐가 궁금하시죠?"

얼룩덜룩 눈물자국이 남아있고 눈이 퉁퉁 부어 있어 꽤 웃긴 몰골이었지만 그녀도, 두 사람도 신경쓰지 않았다. 제르닌은 화색을 밝히고 입을 열었다.

"당신과 피해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당신이 사건에 대해 아는 모든 것."

"..음.."

잠시 기억을 되짚는 듯 고민하던 여자가 입을 연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제 이름은 엔나... 고, 첫 번째로 발견된 건 제 친구 레베카였어요. 슬프지만 두 번째로 발견된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레베카는 제 친한 친구였어요. 그 애가 죽기 전날에도 제가 일하는 가게에 찾아왔었죠."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그녀는 입술을 한번 꼭 깨물었다.

"남작의 딸이었지만 그 아버지도 검소하게 살아서 거의 평민처럼 지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밝고 솔직한 편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기 전날...그애의 표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안색도 창백했고."

"무슨 고민이 있었던 겁니까?"

"그런 것 같이 보였지만... 항상 그랬듯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고 말았죠, 그 앤. 그러고 나서 나가버렸어요. 만날 사람이 있다면서. 아마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에나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말 해 주지 않은 친구에 대한 원망, 그리고 그녀를 잃었다는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카이스는 굳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거라면 그자가 범인인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제르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계획된 살인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우발적 범행인 경우도 있으니까. 엔나 양."

"네?"

"그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엔나는 살짝 고민에 빠진 듯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곧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경비대원 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전에 레베카가 자랑삼아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 네?"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제르닌과 카이스는 뜻밖의 사실에 놀라 반쯤 벽에 기댔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엔나는 어느 새 둘의 안중에는 들어있지도 않았다. 재빨리 카이스와 눈빛을 교환한 제르닌은 저도 모르게 철창을 거칠게 붙잡고 다그쳐물었다.

"확실합니까?"

"네... 아마도요."

"더 이야기 할 것은 없습니까? 혹시 남자친구의 이름이라던가 인상착의는 모르십니까?"

엔나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말씀드릴 건 없어요."

"..감사합니다."

제르닌은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고 카이스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장 몸을 빙글 돌려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탁, 탁, 탁, 탁. 그들의 부츠 굽이 바닥을 차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잠시 멍하니 그들이 멀어진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가슴 속에 작게 희망이 한 줄기 피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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