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26화 (26/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26.꼬이다(2)

"....."

에슈튼이 사라진 곳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니엔은 뒤에서 아시엘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돌려 그들을 어색하게 마주보았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니엔입니다."

우물쭈물하며 자기 소개를 한 그는 네 사람의 대답도 듣지 않고 "따라오세요"하고는 급하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저 녀석."

"아무래도.. 엄청 긴장한 것 같은데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곤소곤 케빈과 아시엘이 귓속말을 하자 동감인 듯 카이스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르닌은 한숨을 푹 쉬고 세 사람의 등을 떠밀어 니엔의 뒤를 따라갔다.

2층으로 올라오면서도 니엔이라 불린 경비대원은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가끔 가다 아시엘 일행과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움찔 떨며 어색하게 웃고는 급하게 다시 얼굴을 돌리곤 했다. 결국 잠자코 따라가던 아시엘이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니엔 씨."

"아, 아, 아, 아닙니다!"

아닌 것 치곤 표정이 심히 안 좋은데.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억지웃음을 짓는 니엔을 아시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뚜벅 뚜벅. 딱딱한 부츠가 나무바닥을 밟는 발소리만이 귀에 들어오는 어색한 침묵. 그것은 네 사람이 쓸 방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여기, 이 방들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곳을 사용하시면 되고... 저녁식사 때 부르겠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태연한 척 하며 빠르게 할 말을 끝낸 그는아시엘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조차 눈치채지못하고 쿵쿵거리며 1층으로 내려가버렸다.

"...뭐지?"

아시엘은 내밀었던 손을 뻘쭘하게 거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빈도 그런 그를 따라 니엔이 사라진 계단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말로 이상한 놈이네. 아니면 진짜 어디 아픈건가? 뭐 어쨌든- 나중에 알아보든 말든, 난 먼저 들어간다. 여기서 멀뚱멀뚱 서 있어봤자 될 일도 없고.."

미간을 찌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이상한 상황에 이래저래 신경질이 나는지 짜증스럽게 자신의 짐가방을 들었다. 쾅!하고 다소 요란스럽게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때려 아시엘은 살짝 인상을 썼다가 자신의 짐을 들어올리는 제르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어가시게요?"

"어. 너희도 들어가. 아시엘은 루이카엔한테 상황보고하고 철수할지 말지 물어보고. 일단 명목상으론 끝난 사건이니 철수 명령이 내려올지도 모르니까."

쉬어, 란 말을 끝으로 그 역시 케빈의 옆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두 소년만 덩그러니 복도에 남겨지게 되었다.

"....."

멀뚱멀뚱. 한참을 '너 먼저 들어가'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아시엘과 카이스는 결국 지루한 눈싸움을 그만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며 각자의 짐을 챙겼다.

"들어가.오랜만에 말을 탔더니 피곤하네."

아시엘은 카이스에게 생긋 웃어보이고는 손을 흔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 살짝 문을 닫은 그는 잠시 카이스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곧 희미하게 문이 닫히는 소음이 들려오자 아시엘은 방에 딱 하나 놓인 침대 위에 짐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아으- 첫 파견인데 뭔가 되게 복잡하게 된 것 같네."

이미 범인이 체포됬으니 상관 말라는 에슈튼과 이상하게 벌벌 떠는 니엔. 그리고 아파서 드러누웠다는 경비대장 케른. 도대체 뭐지? 잠시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그는 곧 제복의 긴 코트를 벗어 대충 던지고 곧바로 오른쪽 귀의 붉은 귀걸이에 손을 갖다댔다.

'처음 쓰는 건데..잘 되려나.'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아시엘은 귀걸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물방울모양 장식은 웅-하는 소리를 내며 희미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연결이 된 것이다.

"음?"

루이카엔은 오랜만의 비번이라 잡일은 모조리 아델레트에게 떠맡겨 놓고 단장실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애완 독수리 에니르와 손장난을 치던 중이었다. 여유를 만끽하던 그는 책상 위의 수정구가 발광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하며 파견을 나간 팀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손에 수정구를 올린 그는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이카엔 씨. 받으셨어요?]

"어라,아시엘? 무슨 일이야? 도착은 했고?"

[아-네.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문제라는 단어에 순간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문제?"

[어젯밤에 범인이 잡혔대요.]

"뭐?진짜?"

루이카엔이 황당하게 되묻자 아시엘 역시 그 상황이 당혹스러운 듯 대꾸했다.

[제르닌 선배도 그게 이상하다면서 현장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는데 부대장이란 사람이 그걸 거절했어요.]

"자료 요청은?"

[그것도 이쪽으로 온 자료에 설명이 빈약해서 제르닌 선배가 요구했는데 어물쩍 넘어가버렸네요.]

루이카엔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쩐지 불안불안 하더라니. 속으로 투덜거린 그는 다시 수정구를 고쳐쥐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죠? 잡았다는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해. 물론 난 거기 없어서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어쩐지 방금 들은 음성에서 아시엘의 의구심 가득한 표정이 보인 듯 한 느낌에 루이카엔은 웃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부대장이랑 또- 그 방까지 안내해 준 대원 태도도 좀 이상해요. 꼭 아픈 사람처럼... 아니지,아프다기 보다는 잔뜩 긴장한 것 같았어요. 심장소리도 엄청 컸고.]

"넌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냐? 어쨌든 일 해결은 거기 있는 너희들 몫이니까 수고해. 것보다 그거 보고하려고 연락했어?"

[제르닌 선배가 명목상으론 끝난 문제니까 루이카엔 씨한테 철수할지 말지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쪽 경비대에서 해결되었다고 보고 올릴지도 모르고요.]

"음.."

그의 말에 루이카엔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이 상황에 철수란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과연 이 신입들을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차라리 아시엘과 카이스는 다시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갈등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황제폐하가 직접 보내라고 하신 걸 내가 불렀다고 잔소리들을지도 모르고."

[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아시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루이카엔의 입술은 무언가를 결정한 듯 곡선을 그릴 뿐이었다.

"아시엘. 넌 어떻게 하면 좋겠냐?"

[....에?]

[아시엘.넌 어떻게 하면 좋겠냐?]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시엘은 순간 말문이 막혀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루이카엔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넌 어쨌으면 좋겠냐고. 복잡한 문제니까 너랑 카이스는 돌아와도 돼. 아니면 더 조사해보고 싶어?]

뜻밖의 질문에 아시엘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들이 있어봤자 제르닌과 케빈에게 방해가 될 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때? 어떻게 할래?]

"..당연히 있을래요.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까."

루이카엔의 두 번째 질문에 아시엘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루이카엔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하지만 잡힌 녀석은 3일 후에 황성으로 압송될 테니까 그때까지 해결해야 해. 그리고... 뭐, 좀 과감해도 상관 없으니까. 열심히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이카엔 쪽에서 통신이 끊겼다.

"......"

과감,하게? 단장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아시엘은 곰곰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식사를 하라며 부르는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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