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25화 (25/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25.꼬이다(1)

"하..하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참 만에 돌아온 아시엘은 옷매무새가 잔뜩 흐트러진 엉망진창의 몰골이었다. 말을 끌고 카이스와 돌아온 아시엘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들과 경비대원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괜찮냐?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정신이 조금 없지만 괜찮아요."

케빈의 말에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인 아시엘은 곧  바쁘게 제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머리를 위로하듯 슥슥 정리해준 제르닌은 아직도 뻘쭘하게 서 있는 경비대원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어서 그러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무뚝뚝한 그의 말에 경비대원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아시엘이 탄 말이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자신 옆을 스쳐지나갔을 때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많이 봐줘봤자 10대로밖에 안 보이는 외모에 그는 대충 납득할 수 있었다.

"수도 제 6구역 경비부대장 에슈튼입니다. 제 5 경비대장 케른 폰 테이룬 님의 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소속의 제르닌이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녀석들은 오른쪽부터 케시비언, 아시엘 그리고 카이스."

차례로 짧게 목례를 하는 그들에게 에슈튼이  경례를 했다.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제르닌은 대충 통성명이 마무리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이쪽으로 넘어온 자료에는 상세한 설명이 없더군.그래서 바로 현장을 보고싶다."

"아-"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슈튼의 얼굴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띄웠다. 어떻게 말해야하나 하고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데루룩 굴리는 그를 네 사람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결국 카이스가 답답함에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굳이 거기까지 가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어젯밤에 범인이 잡혔으니까요."

순간 그들은 동시에 자기 귀가 잘못되었나 의심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사람의 황당하다는 시선을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받아들이며 에슈튼은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밤을 타 도주하던 것을 체포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만들어놓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바로 경비대 본부로 가셔서 쉬시면 됩니다."

그의 사과에 퍼뜩 정신을 차린 케빈은 어이가 없어져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3개월 동안이나 코빼기도 안 보이던 범인이 갑자기 어젯밤에 잡혔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게다가 밤에 도주하던 걸 잡았다니 그녀석은 여태까지 도망 안 치고 뭐했대?"

"케빈."

비꼬는 듯 한 그의 말을 제르닌이 짧게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저지했다. 불만스럽게 끙-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케빈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린 제르닌은 입을 열었다.

"케시비언 경의 말대로 3개월동안 제대로 단서조차 잡지 못한 사건의 범인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오기 바로 전날 밤에 잡혔다는 사실은 믿기가 힘들군."

에슈튼은 살짝 움찔했다.하지만 제르닌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들에게 넘어온 자료도 아주 빈약했다. 그저  제 5구역에 두 명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만 되어 있었지."

"......"

"발생 장소, 발견 시간, 사인 이런 걸 세세하게 기록하라고 매뉴얼에 나와있지 않던가? 아니면 셀레니스 기사단이 우스워보이는 건가."

싸늘한 목소리로 조용히 몰아붙이는 제르닌을 바라보며 케빈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에슈튼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으로 차차 굳어가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그가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오해십니다. 일단 경비대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어쩐지 힘이 빠진 듯 한 어조로 말끝을 흐린 그는 네 사람의 말고삐를 거의 빼앗듯 받아들고는 앞장서려다 무언가를 잊은 듯 발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지금 경비대장님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만나실 수 없을 겁니다."

"......"

말을 마치고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그를 네 사람은 결코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를 따라 발을 옮겼다.

제 5구역 안으로 들어가자 곧 낡았지만 깔끔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수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눈으로  좇으며 아시엘이 중얼거렸다.

"이 구역에도 사람들이 꽤 사는 모양이네요. 사건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나요?"

"이곳은 외곽 지역입니다.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한데 모인 곳이죠. 사건이 일어났다고 추정된 시간은 늦은 밤이었을 뿐더러 이들에겐 다른 사람을 눈여겨 볼 여유같은 건 없습니다."

"아.."

에슈튼의 말에 아시엘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5 구역의 중심부로 들어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대 건물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미리 마중을 나와있던 한 대원에게 에슈튼은 자신이 쥐고 있던 말들의 고삐를 넘겨주고 네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밖에서 보기보다 꽤 넓은 내부에 아시엘과 카이스가 짧게 감탄을 흘렸다. 깔끔한 목조 건물이 다소 낡았지만 튼튼하게 보였다. 마침 한 명의 대워뉘 에슈튼과 기사들을 알아보고 재빨리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니엔. 난 바쁘니까 네가 이 분들 이층의 방으로 안내해 드려. 그리고 잠깐 나 좀 보자."

"....예? 아, 예."

멍하니 있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니엔을 바라보며 에슈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 다시 제르닌에게 시선을 주었다.

"머무실 곳은 이 녀석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따로 수사할 필요는 이제 없어졌으니 부디 푹 쉬다 가시길. 헛걸음을 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시엘은 살짝 얼굴을 구기고 그가 사라진 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