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내 부모님……. 유연이가 부모님을 용서해서일까. 내가 죽고 나서 내 부모님이 울었을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하지만 만약 울기는커녕 속 시원하다고 웃었을까 봐, 그게 왜인지 두려워서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울었어.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어. 네 어미는 울다가 혼절할 만큼.”
“……그래도, 제가 아들이긴 했나 봐요.”
우습게도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용서……가 됐다. 나는 그 사람들의 자식이었다. 내게도 어머니가, 아버지가 있었다. 유연이가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조용히 눈을 접어 웃었다.
“당연한 소릴 하네.”
심드렁한 대답에 나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이제는 정말 부모님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궁금한 건?”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다급히 데우스를 불렀다.
“아! 하나 더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내 상태창 없어졌잖아. 그럼 내 스탯은 어떻게 되는 건데?
내 머릿속을 읽은 데우스가 스탯에 관해 묻기도 전에 대답했다.
“아, 그거. 그거 원래 네 거야.”
“네?”
“원래 네 재능이었어.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고 말했잖아. 네 재능을 가시적으로 바꿨을 뿐이야.”
그래서 작사과 작곡 스탯 성장이 멈춘 거였구나……. 그쪽 재능이 궤멸적이라는 소리네. 어? 잠깐만.
“그럼 매력은요? 매력은 스킬권으로 올렸잖아요.”
“응. 어차피 올라갈 거 빨리 올려준 것뿐이야. 만약 S까지 올리지 못하는 스탯에 썼다면 맥스까지만 올라가고 없어지는 거고.”
……와. 이런 함정이 있었을 줄이야. 그럼 작곡이나 작사에 했다면 S급 스탯권을 날릴 뻔했다는 거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한 가지, 흐으음.”
데우스는 나를 뚫어지게 보며 갸웃거렸다. 왜 저러는데? 뭔가 수상쩍은 느낌에 뒷걸음질치자 데우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사라졌던 체력바가 다시 시야 한쪽에서 반짝거렸다.
“어? 이거 왜 다시 생겼어요?”
“과로사 방지.”
“……네?”
“기껏 살려 보내줬는데 금방 죽어서 돌아오면 재미없으니까.”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눈을 끔벅거렸다.
“네 성격을 네가 모르냐?”
아니, 물론 내가 체력 시스템 때문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었지. 그러네.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나를 잘 안 챙겼다. 그래서 죽은 거긴 하지만, 그, 그래도 체력 시스템을 달고 돌아가라니…….
“하지만 상태 이상은 너무 불편해요…….”
“그건 없어. 그냥 네 몸을 잘 살피라고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야. 물론 0이 되면 쓰러질 거야.”
“저거 너무 빨리 닳던데요…….”
“아, 그건 네가 하드모드로 골랐으니까 그렇지.”
……그런 거였군.
“이번 건 신의 은총이니까 저걸 무시하지 마라. 괜히 까맣게 만들어서 죽어 나자빠지지 말고.”
“그, 그럴게요.”
나도 오래 살고 싶다. 디아스 멤버들, 디어리, 그리고 정이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서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 거다.
“그래, 그거 좋네. 하하하. 한 100년 뒤쯤 그 친구랑 손잡고 다시 찾아오라고.”
데우스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마구 헝클어트렸다. 100년 뒤면 120살인데 그건 또 너무 오래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
눈을 뜨자 또 병원 천장이 보였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가슴이 아릿하게 쑤셔와서 현실로 돌아왔음을 알게 됐다.
“어…….”
“하온아!”
유찬 형이 나를 보고 얼굴을 환하게 폈다. 내 머리맡에 있던 강현 형이 ‘후우…….’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호는 안 보이네……?
“형들, 이한, 이한 형은요?”
유찬 형의 입꼬리가 스르륵 말려 올라갔다. 처음 이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와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내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리며 뛰었다. 설렘과 벅참으로 뛰는 기분 좋은 고동이었다.
“완전히 안정됐대. 그래서 VIP 병실로 옮겼어. 이제 그쪽에서 처치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거의 기적 같은 회복이라더라.”
“의식은 아직 안 돌아왔어요?”
“응. 아직 마취로 재우는 중이라. 그래도 벌써 자발 호흡도 돌아와서 인공호흡기도 뺐어! 이대로 쭉 안정적인 수치를 유지하면 조만간 깨울 거래. 우리 이한이, 이제 괜찮아. 하온아. 이제 정말 괜찮아.”
유찬 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기쁨으로 맺힌 눈물은 투명하고 영롱했다. 유찬 형을 따라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가 불현듯, 형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내가 정이한을 선택했다는 것을…….
“유찬 형, 강현 형.”
유찬 형은 날 보며 그저 웃어 보였고, 강현 형은 내 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이동했다. 왠지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 시트를 꽉 움켜잡았다. 꼭 오늘 해야 하나? 다음에 해도…….
하지만, 이제 마음을 정했는데 이대로 숨기는 건 형들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렵게 운을 뗐다.
“……저, 이번 사고로 깨달은 게 있는데요.”
나는 형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얀 시트에 박힌 병원의 이름을 의미 없이 눈으로 읽다가 말을 이었다.
“저 이한 형 좋아해요…….”
“선택했어?”
강현 형의 목소리는 꽤 덤덤하게 들렸다.
“……네.”
“그래. 이한 형이라면 우리가 잘 감시할 수 있겠네. 그렇지? 유찬 형.”
……감시?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유찬 형과 눈이 딱 마주쳤다. 형은 생각보다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하온이 눈에 눈물방울이라도 맺혀 봐. 이한이를 탈탈 털어 줄 테니까.”
“……저 이번에 많이 울었어요.”
“그러니까. 건강해지면 궁디를 아주 그냥.”
유찬 형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팔을 내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나를 안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온이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야.”
“……그런 건.”
싫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형들을 찬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금방 마음을 접을 순 없어. 그래도 선택했으니 우리는 물러날게. 이제는 같은 그룹의 형으로서 하온이를 예뻐할 거야. 그건 괜찮겠지?”
“그럼요.”
정이한도 된다고 했다. 이미 예전에 물어봤었다. 그때도 이미 난 정이한을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는데…….
그래도 데우스 덕에 나는 또 한 번 기회를 얻었다. 내가 정이한,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이한이 얼굴 보러 갈 거지? 서호가 어머니 모시고 식사하러 갔어. 지금 정곤 형 혼자 있을 테니까 얼굴 보고 싶으면 보고 와. 바로 옆 병실이야.”
강현 형이 턱짓으로 정이한의 병실을 알려줬다.
“……그래도 돼요?”
“어. 되지.”
나는 강현 형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아프던 가슴이 신기하게 별로 아프지 않았다.
정이한의 병실 문을 열었다. 정곤 형이 소파에 찌그러져서 잠들어 있었다. 머리에 감은 붕대에 빨간 흔적이 여실했다. 병실 한쪽에 있는 담요를 꺼내 정곤 형에게 덮어준 뒤 침대에 누워있는 정이한에게 다가갔다.
매달린 기계들은 여전히 많았으나 인공호흡기를 물면서 비틀려 있던 입술이 반듯했다. 혈색도 좋았다. 아픈 게 아니라 꼭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얼른 일어났으면 좋겠다. 데우스가 살려 준대서 벌떡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네. 하긴. 중환자가 갑자기 멀쩡하게 일어나면 난리 났겠지. 정이한이 실험실에 끌려갔을지도 몰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키득거렸다.
***
다음 날, 나는 교주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나의 신, 데우스에게 들은 힌트를 전했다. 교주는 믿지 못하는 듯 떨떠름한 반응이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은 잡았다고 했다. 이제 교주는 됐네.
그 이외에는 온종일 정이한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 덕에 안색이 밝아진 정이한의 어머니와 친해졌다. 둘이 남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또 다음 날,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곧장 전화가 연결됐다. 내 기사를 보고 가족들 모두가 날 걱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멀쩡하다는 말과 앞으로 잘 지내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아버지는 한참 침묵한 끝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무척 멋쩍어하시며 어머니가 넷째를 임신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 이름을 고민 중이라길래 나는 주저 없이 ‘유연이는 어때요?’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유연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워하셨다. 그 순간, 넷째의 이름은 진유연이 됐다.
내가 정이한의 병실을 떠나지 않자 1인 VIP실에 침대가 하나 더 들어왔다. 나를 위한 자리였다. 정이한 옆에 조금 더 붙이고 싶어서 형들 몰래 슬쩍 밀다가 가슴이 아파서 끙끙거렸다. 유찬 형에게 걸려서 폭풍같이 혼나고 있을 때 강현 형이 옮겨주더라…….
그리고 사흘째가 된 오늘. 의사가 드디어 정이한의 마취를 중단하고 깨운다고 했다. 모든 수치가 완벽하단다. 빠르면 한두 시간 안에 정신이 돌아올 거라는 말에 가슴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정이한이 눈 뜨는 걸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설레고 기대되어 자꾸만 마른침이 꿀떡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정이한의 굳게 닫힌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들려 올라갔다.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찡그렸다. 흐릿한 동공은 아직 초점을 잡지 못한 것처럼 배회했다. 그러다가 그 눈동자가 내게 고정된 순간, 동공이 확 좁아 들며 또렷해졌다.
“……이한 형.”
“하, 콜록. 하온, 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크게 뜨인 눈이 날 보고 있었다. 정이한의 어머니, 멤버들과 매니저 형들, 실장님까지 모두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왠지 세상에서 격리된 것만 같았다.
이 공간에 나와 정이한만 남아 있는 듯한 기묘한 착각이 일었다. 어쩌면 오직 내게 고정된 저 까만 눈동자 때문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