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윽, 아파…….”
“미, 미안해.”
화들짝 놀란 이서호가 황급히 손을 물렸다. 얼마나 세게 눌렀는지 아직도 어깨가 욱신거렸다. 이서호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움직이면 낫는 데 더 오래 걸린댔단 말이야…….”
“……그래도 이한 형 얼굴 보고 싶은데 어떡해…….”
“중환자실 면회 시간 정해져 있어. 이따 8시나 돼야 해.”
“지금 몇 신데?”
“12시.”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8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또 눈물이 나올 것처럼 눈가가 시큰거렸다.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나는 팔등으로 눈을 가렸다.
“……진하온, 울어?”
이서호가 내 눈치를 살피듯 기웃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서 대답 대신 고개만 잘게 흔들었다.
“우, 울지마. 너 울면, 나, 나도……. 흐으, 흐어엉…….”
갑자기 이서호가 통곡했다. 당혹감에 비집고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나는 다급히 팔을 내리고 우는 이서호의 손을 토닥거렸다.
“나 안 울어. 봐봐. 안 울지?”
“흐읍, 흑, 너, 너는, 안 일어나지, 이, 이한 형은, 흐으, 얼마,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미안해.”
이서호는 네가 왜 미안하냐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순식간에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됐다. 이걸 어떻게 달래줘야 한담…….
“이서호 왜 울어! 무슨 일이야!”
병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사색이 된 유찬 형이 공이라도 된 것처럼 튀어 들어왔다. 형은 오열하는 이서호를 보고, 나를 본 뒤 한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온이, 정신이 들었구나.”
“유찬 형…….”
유찬 형은 들고 있던 봉투를 병실 한쪽에 내려놓고 내게 왔다. 조심스럽게 뻗어온 손이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다행이다……. 가슴은 안 아파? 안전벨트 때문에 늑골에 금이 갔대. 다행히 다른 데는 괜찮고.”
그래서 그렇게 가슴이 아팠구나……. 나는 답답할 정도로 칭칭 감긴 붕대를 내려 봤다.
“수술이나 시술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 진통제 처방만 해줬어. 다친 부위는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고 했고. 정곤 형은 이마가 좀 찢어지고, 뇌진탕 소견이 있었어. 에어백이 터져서 괜찮은가 봐. 지금은 퇴원했어.”
차근차근 설명해 주던 유찬 형이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한이 상황은 들었어?”
“……네. 서호 형이.”
유찬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붙잡아왔다.
“오전 면회 시간은 끝났고, 이따 8시부터 30분 동안 면회할 수 있어. 이한이 어머님이랑 우리 멤버 중 한 명이 같이 면회하거든. 그때 보러 갈래?”
정이한의 어머니…….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봐? 정이한 그렇게 된 건 전부 내 탓인데, 무슨 낯짝으로 그분을 뵈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유찬 형이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이한이가 자랑스럽대. 아들이 애써 구한 막내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졌다. 당황해서 손으로 마구 얼굴을 비비고 있자 유찬 형이 티슈를 건네줬다.
“죄송해요. 갑자기 울어서…….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왜 미안해? 자연스러운 건데. 슬프고, 속상하고, 무섭고, 때로는 기쁠 때도 그렇고. 사람은 그런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누구나 울어.”
유찬 형은 무서운 게 전부 떠내려갈 때까지 울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나는 흐느꼈다. 내 병실은 나와 이서호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유찬 형은 내가 진정될 때까지 묵묵히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다독여줬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쓸어주고, 뺨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면서 계속 내 곁을 지켜줬다.
그런데 나는, 나는 지금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정이한이 아니라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서러웠다.
유찬 형에게 미안해서.
정이한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
흐느낌이 조금씩 진정되어 갈 무렵이었다. 유찬 형이 전화를 받았다.
“어, 강현아.”
강현 형답지 않은 다급함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뭐라고 말하는지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높아진 강현 형의 목소리만으로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했다. 심장이 철렁였다.
“……뭐, 라고?”
얼음장이라도 된 것처럼 파리해진 유찬 형이 나를 봤다. 형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든 신호가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할 거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저 갈래요……. 저, 이한 형한테 갈래요.”
면회 시간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유찬 형의 옷을 끌어당기며 애원하는 눈길로 올려봤다. 유찬 형은 참담한 어조로 말했다.
“알았어. 하온이랑 같이 갈게.”
통화를 끊은 유찬 형이 내가 일어나는 걸 도와줬다.
나는 형의 도움을 받아 중환자실을 향했다. 끅끅대며 우는 이서호가 우리 뒤를 따라왔다. 병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으나, 그걸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중환자실까지의 거리가 무척 멀게 느껴졌다. 조급함에 걸음이 빨라졌다. 뛰면 안 된다는 유찬 형의 말은 들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형을 뿌리치고 중환자실까지 달렸다. 뛸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 정이한은 더 많이 아플 거잖아.
중환자실 앞에는 실장님과 매니저 형들, 그리고 강현 형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슴을 쥐어 짜내듯 비통하게 통곡하는 중년 여성도 보였다. 직감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저분이 정이한의 어머니라는 걸.
“이, 이한, 형은…….”
“하온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정곤 형이 얼굴을 찡그린 채 흉포하게 울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형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실장님이 휘청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나를 꼭 안아 주면서 등을 토닥여줬다.
“……일어나줘서 고마워, 하온아.”
“이한, 이한 형은요? 실장님, 이한 형은 어떻게 됐는데요? 왜 다들 그러고 있어요?”
“……하온, 네가 하온이니?”
정이한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실장님이 “어머님!”하고 외쳤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나를 중환자실 유리문 앞으로 이끌었을 뿐이었다.
“저기요! 선생님! 여기, 여기 이 아이 좀 들여보내 주세요!”
어머니는 목에서 피를 토할 것처럼 간절하게 외쳤다.
“우리, 우리 아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한, 사람이에요……. 이 친구 목소리 좀, 들을 수 있게……. 이한이가, 목소리 듣고 일어날 수 있게, 들여보내 줘요. 제발. 제발요…….”
중환자실 너머는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가 소리쳤다.
“마음의 준비 하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어머니는 본인의 몸을 부술 듯 퍽퍽 가슴을 때렸다.
“……마음의, 준비요?”
멍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실장님이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또다시 내 머릿속을 헤집는 이명이 날 괴롭혔다. 귀에서 시작된 소리는 뇌 전체를 울리는 것처럼 커졌다.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다가 무너지는 나를 누군가가 받쳐줬다.
“……하온아.”
강현 형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울었다. 여기서 내가 가장 죄인이었다. 정이한을 저렇게 만든 게 나잖아.
나는, 슬퍼할 자격도 없었다.
그때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정이한의 보호자를 찾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나를 이끌었다.
“이 아이, 들여보내 줘요. 우리 아들이, 막내를, 얼마나, 얼마나 예뻐하는데……. 목소리 들으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아직, 아직 한 번도 못 들었어요. 하온이 목소리, 못 들었어요…….”
간호사는 착잡한 얼굴로 우리를 보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이 통곡과 섞였다. 그로부터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렸다.
“한 분만 가능합니다. 면회하시겠어요?”
이번에 나온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의사였다.
“여기, 여기 이 친구요. 이 친구가 면회할 거예요.”
어머니가 다급한 손길로 나를 꾹꾹 밀었다. 의사가 내 의사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날 힐끔 봤다. 정이한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하, 하고 싶어요. 면회…… 하게 해주세요.”
“들어오세요.”
나는 힘이 풀린 다리에 힘을 줬다. 의사가 가리킨 곳에서 정이한은 신호음을 내는 기계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가끔 있거든요. 현대 의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저는 그걸 환자분의 생명력과 의지라고 보고 있어요.”
의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정이한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했습니다. 남은 건 환자분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어요. 보호자분이 그토록 간절하게 면회를 희망하는 분이라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의사는 5분 정도밖에 시간을 줄 수 없다고 말한 뒤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조용히 정이한의 얼굴을 내려봤다. 무표정한 얼굴이 낯설었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비틀려 버린 입술이 안타까워서 손끝으로 더듬어 보다가, 잘못될까 무서워서 손을 뗐다.
「나 머리 쓰다듬어주라……. 응?」
애교 부리듯 고개를 기울이며 올려다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머리 만져주는 거, 되게 좋아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쓰다듬어줄걸……. 머리 한 번이라도 말려줄걸…….
엄청 좋아했을 텐데, 생각만 하고 한 번도 못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이한의 머리를 매만졌다.
“……이한 형, 일어나. 정신 차리고 있겠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하온아, 괜찮아?」
“나 하나도, 안 괜찮아. 형이 없어서, 너무 힘들고, 무서워…….”
분명 정이한을 보고 있는데도, 그가 끔찍하게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