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98화 (298/320)

298.

쾅! 쾅! 쾅!

폭발음이 연속해서 세 번 울렸다. 세 번째 폭발음이 들렸을 때, 마치 폭발에 휘말린 사람처럼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나는 착지한 반동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앞으로 나갔다.

내 앞에는 라이 형과 레인이 마주 서서 손바닥을 천장 쪽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어깨를 짚고 손바닥을 밟아 몸을 거꾸로 세웠다.

타앙!

이어서 들려온 총소리와 함께 나는 몸을 떨었다. 그대로 넘어가 추락하는 나를 나위 형과 다윈이 받아줬다. 넥타이가 펄럭거리며 어깨 뒤로 넘어갔다.

횟수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반복한 연습 덕에 내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이 서커스를 어떻게 할지 심란했는데, 연습하니까 다 되더라. 물론 그 과정에서 내 몸에서는 파스 냄새가 빠지질 않았지만.

느와르 컨셉에 맞게 몰아치는 멜로디와 혼연일체가 된 우리는 바쁘게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과장 좀 보태서 1초도 두 다리를 동시에 바닥에 붙일 수 없는 격한 안무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무대를 부술 듯 우리는 발을 굴렀다.

인이어 너머로도 선명한 환호성에 내 모든 세포가 반응하며 전율했다. 지치지 않았다. 지칠 수가 없었다. 무대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았으니까.

무대 중앙에서 만난 나윈 형과 라이 형이 몸싸움하듯 어깨를 부딪쳤다. 그러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굽혔을 때 뒤쪽에 빠져 있던 레인이 빠르게 달려 나왔다. 레인이 형들을 뛰어넘는 타이밍에 착지 지점에서 대기하던 나는 레인이 아직 공중에 있을 때 손을 맞잡았다.

내 손을 잡고 착지한 레인은 나를 기준 삼아 발을 쭉 미끄러트렸다. 이때, 나윈이 레인의 반대쪽 손을 마저 잡자 레인은 사선으로 미끄러트린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어서 허공에서 고정. 쿵쿵거리던 멜로디가 일순간 정지하며, 고요하게 바뀌는 분기점이었다.

인이어에서 나오는 MR 대신 객석에서 터지는 함성이 가득 들어찼다. 숨을 헐떡이며 객석을 돌아봤다.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디어리와 멤버들은 왜 이렇게 찾기 쉬운지. 강현 형은 안 보이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일순 정이한과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멈췄던 멜로디가 다시 흐르자 레인의 다리가 박자를 따라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우리가 재빠르게 정렬하자, 뒤이어 군무 파트가 시작됐다. 천천히 거리를 벌린 우리는 무대 중앙을 비운 채 사방으로 흩어졌고 멜로디가 정점에 달했을 때, 서로 교차하듯 지나가며 텀블링을 했다.

어수선하지 않게, 두 명씩 교차하는 텀블링 타이밍을 맞추느라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우리의 목표는 정면에서 봤을 때 한 사람이 텀블링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였다. 성공했을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었지만, 느낌은 좋았다.

멜로디는 조금씩 힘이 빠지며 잔잔해졌다. 잔뜩 경계하고, 싸우는 듯한 안무도 조금씩 편안하게 바뀌어 갔다. 마지막 순간, 나를 중심으로 우리가 전부 모였을 때, 연속적인 총성이 크게 울렸다. 나는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가슴을 크게 부풀었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의도된 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들었다. 나는 객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다른 네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조명이 꺼졌다.

“아아아아악!”

“꺄아악!”

돔을 뒤흔드는 거대한 함성이 몰아쳤다. 무대가 잘게 떨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라이 형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내 앞에 레인과 다윈이 앉아 있었고, 나는 양옆에 라이 형과 다위 형을 끼고 중앙에 서 있었다. 몸을 사선으로 돌려 삐딱하게 선 채 정면을 바라봤을 때 조명이 다시 켜졌다.

조금 전보다 더 큰 함성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돔의 천장을 찢어 버릴 듯한 벅찬 환호성이었다. 나는 거칠게 숨을 쉬며 정면을 바라봤다. 카메라가 우리를 잡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헐떡이는 숨이 제대로 폐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목을 조이는 넥타이가 답답해 손가락을 걸어 끌어당겼다.

옆에 서 있던 라이 형이 내 목 쪽으로 손을 올렸다. 툭, 툭. 끝까지 조인 단추가 몇 개 풀어졌다. 덕분에 숨 쉬는 게 훨씬 편해져서 라이 형을 보며 방긋 웃었다. 형은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이는 눈빛으로 웃어 보였다.

우리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 나는 마지막까지 객석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무대를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정신력으로 지탱하고 있던 다리의 힘이 풀렸다. 바닥에 형편없이 널브러져서 목을 부여잡고 쌕쌕거렸다.

지쳐서 쓰러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연습할 때도 힘들었는데,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난 지금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없었다.

“하온아, 괜찮아?”

강현 형이 내게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대주며 물었다. 천천히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숨을 들이쉬며 웃었다. 숨 쉬는 게 훨씬 편해졌다.

“헉, 허억. 삐, 약아. 허억. 형은, 후욱, 안 보이냐.”

“형은 괜찮아 보여요. 하온이가 힘들어 보이지.”

“하여, 간. 허윽, 키운, 보람 없, 흐어어, 죽겠다.”

와중에도 말을 할 수 있다니. 강현 형 말마따나 라이 형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마디도 못 뱉겠는데.

“하온 형,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레인이가 내 옆에 쪼그려 앉으며 걱정스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얘는 벌써 회복했네. 다윈이도 힘들어 보였지만, 호흡이 좀 거칠어 보일 뿐 꽤 멀쩡해 보였다. 역시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좋은가 봐.

“하온이 연습할 때도, 후우, 제일 힘들어했잖아.”

나위 형이 넥타이를 잡아끌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는 멍한 눈으로 나위 형을 올려봤다. 나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저 형도 벌써 회복했네. 나만, 나만!

나는 한참 동안 강현 형에게 의지한 채 숨을 고른 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거의 강현 형에게 기대다시피 했다.

“업어줄까?”

“하아, 아니요. 그 정도는…….”

나는 막 태어난 밤비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걸었다. 땀으로 범벅된 메이크업도 수정하고, 체력을 좀 회복한 뒤에 우리 자리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디어리가 나 아프다고 오해하면 어떡해.

“형, 일부러 저 기다려준 거예요?”

“응. 무대 끝나면 하온이 쓰러질 것 같았거든.”

“아하…하.”

나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이렇게까지 힘든 건 처음이었다. 꼭 세 번 연속 무대에 선 것만 같았다.

“산소호흡기는 어디서 났어요?”

“정곤 형이 가져다줬어. 너 내려오면 바로 쓰라던데.”

와. 역시 우리 정곤 형 유능하다니까.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정곤 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온이 이거 마시고, 몸 좀 회복되면 메이크업 수정하고 옷 갈아입고 나가도 돼.”

“네.”

나는 매니저 형이 내미는 텀블러를 받아 들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핫초코 향이 확 풍겼다.

“헉. 혀엉…….”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넘치는 감동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정곤 형을 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어떻게 말해야 내 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 단어를 고르느라 고심하고 있자 정곤 형은 크게 웃으며 내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렸다.

“네 눈만 봐도 알겠다. 이렇게 좋아하니 내가 다 뿌듯하네.”

“정곤 형이 제일 멋져요!”

“……나는?”

강현 형이 어린애처럼 툭 끼어들었다.

이 형이 어리광을 다 부리네?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강현 형이 부끄러워하며 웃지 말라고 투덜거렸다.

아, 진짜 좋다. 무대도 완벽했고, 핫초코도 완벽해. 나는 핫초코를 호호 불며 마시다가 시야 한쪽에서 깜박거리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언제 떴는지 모를 춤 스탯 등급 업 알람이었다.

“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 강현 형이 의아한 듯한 눈으로 날 봤다.

“아, 그게……. 하, 핫초코가 너무 맛있어서요.”

“그렇게 맛있어?”

“형도 드실래요?”

컵에 따라 줄 생각으로 일어나려는데 형이 내 어깨를 잡고 꾹 눌렀다.

“아니야. 나는 이거면 돼.”

형은 손에 들고 있는 커피 믹스를 흔들었다. 하긴. 형이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다음에 핫초코 가루라도 사줄까? 뭘 제일 좋아해?”

“음. 디어리가 많이 보내줘서 평생 먹을 수 있을 걸요…….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형의 커피 믹스처럼. 강현 형은 숙소에 넘쳐나는 커피 믹스를 떠올렸는지 “하긴…….”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저 이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대기하고 있던 메이크업 누나들과 코디 누나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빠르게 재단장을 마친 나는 핫초코가 들어 있는 텀블러를 꼭 쥐고 이동했다.

지금은 퍼포먼스 3개 팀의 무대가 전부 끝나고, 다른 그룹의 합동 무대가 한창이었다. 나는 무대 감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지정석에 앉았다. 멤버들이 나와 강현 형을 환영해줬다.

이서호 오른쪽에 있던 정이한이 주춤주춤 움직여 나와 이서호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우, 이 형 또 시작이네.”

“미안. 하온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옆으로 한 칸만 비켜줄래?”

“어련하겠어~”

이서호가 옆으로 비켜 앉았다. 내 옆자리를 차지한 정이한이 내 귓가에 고개를 바짝 들이밀고는 손날을 세워 입을 가렸다.

“하온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막, 다른 남자가 단추 풀게 두면 어떡해…….”

다, 다른 남자라니. 표현이 너무 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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