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그런데 너 그 집 사람 아니지? 뻐꾸기알 같은 건가?”
교주한테는 상식이 없는 게 상식인가. 아니면 회귀자라 틀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는 걸까. 일반적인 사람은 저렇게 추론할 수 없을 텐데 그걸 딱 맞췄다. 교주의 말마따나 지금 나는 딱 뻐꾸기알 같은 거니까. 다만 내 둥지는 집이 아닌 사람 그 자체라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단 네 얼굴이 그 집 가족들이랑 어울리지 않아.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잖아. 게다가 집 비밀번호도 모르고. 앞으로도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그렇지.”
교주의 까만 눈동자가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속내를 파악하려는 듯한 진득한 시선이었다.
“또 네가 어릴 때부터 그들이 널 배척했다고 했지. 그래서 아버지가 이제부터 잘 지내보자는 걸 거절했고, 그걸 받아들였다고. 이게 제일 이상해. 그렇게 순하고 곧은 사람들이 그동안 자식을 외면했다?”
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건 뭐 내가 떠먹여 준 거나 다름없었네.
“외면한 게 아니라 과거에 네가 없었던 거 아니야? 애초에 너는 그들과 가족이 아니었던 거겠지. 그럼 당연히 같이 공유한 시간이 없을 테니 외면과 배척으로 설정을 짜 맞춘 거고.”
엉? 어라? 잠깐. 이거 좀 미묘한데. 제대로 맞춘 줄 알았는데 약간 핀트가 다른 것 같다? 교주가 말하는 건 꼭 원래 4인 가족이었던 그들에게 장성한 내가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뻐꾸기알이라고 한 거구나. 의미 그대로 진짜 가족이 아닌 내가 그 집에 기어들어 갔다는 뜻으로.
“……내 스킬은 너랑 다른데?”
교주는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것들이 한 거 아니야? 너는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며. 원하지 않는 걸 갖고 있다는 건 남이 욱여넣었다는 거잖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저것들밖에 없지.”
……이게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나는 교주에게 어디까지 솔직해도 되는 걸까. 이걸 정정해줘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수긍해야 하나. 웬만한 건 다 사실대로 말하겠는데, 이건 너무 내 근본부터 설명해야 하는 일이라 곤란하긴 했다.
“……머리 굴리는 거 보니 내가 틀렸군. 그럼 뭔데.”
나는 멍한 눈으로 교주를 올려봤다. 아니, 잠깐 고민했을 뿐이었는데. 자기 추측이 틀렸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다고? 내가 표정에 티를 낸 거야, 저 녀석 눈치가 빠른 거야. 아니면 둘 다 인가.
내가 다른 차원에서 온 것과 유연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시간을 끌기 위해 힘든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다행히 이번엔 눈치채지 못했는지 교주는 날 지켜볼 뿐, 더는 말을 얹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전에 네가 영혼 이야기한 적 있지?”
“어.”
“나도 너랑 비슷했어. 나는 반대로 영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그러니까 마지막 삶이었어. 그 뒤는 영혼의 소멸만 남은 거지.”
“……그래서?”
“그렇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무서움을 느껴서 꺼리고, 싫어한대. 진짜 그렇더라. 세상이 전부 날 싫어했어.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혼자 살다가 죽었어. 그런데 죽은 뒤에 신을 만났고, 그가 나를 다시 살 수 있게 해줬어.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내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줄 알았던 얼굴들이 아직도 선명했으니까. 마치 영혼에 깊게 새겨진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받았던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 오히려 기분이 이상해.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삶이 이런 거였구나 싶어서. 차라리 몰랐던 게 더 나은 것 같아.”
“그럼 그들이 네 진짜 가족이 맞다는 거야?”
……이 질문을 받을 것 같긴 했는데, 막상 대답하려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유연이의 가족이 내 진짜 가족일 순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 만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미론 그렇지.”
“다른 의미는 뭔데?”
“내가 인정한 가족은 내 멤버들뿐이거든.”
교주는 알 만하다는 듯한 얼굴로 날 봤다. 유연이 이야기만 하지 않았을 뿐, 나머지는 전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래서인지 교주도 내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눈치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나는 교주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
오후 5시가 되었을 무렵, 상주 형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돌아간다고 말한 직후부터 계속 서운해하시던 어머니가 저녁까지 먹고 가는 게 어떠냐며 나를 한 번 더 잡았다.
“죄송해요.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그래도…… 어렵게 본 건데 이렇게 보내기 너무 아쉽네.”
다음에 또 오겠다고 대답하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끝까지 삼켰다. 대신 난처하게 웃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씁쓸해 보였으나 이내 감정을 갈무리하신 듯 밝은 미소로 나를 배웅해줬다.
“또 연락해 줄 거니?”
“모르겠어요. 바쁠 것 같아서…….”
“으응. 아니야. 언제든지 좋으니까 엄마 생각나면 전화 줘.”
나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을 나서서 교주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의 손에는 들고 온 선물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교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진짜 안 받으시지?”
“아, 어. 그렇더라.”
교주는 산책을 끝내고 돌아간 직후 부모님께 선물을 내밀었다. 명품이라는 걸 알자마자 두 분은 완강하게 선물을 거부하셨다. 어머니는 다음에는 선물을 주고 싶다면 사과 정도가 좋겠다며 웃었다. 예의를 차린 거절도, 아쉬워하는 느낌도 전혀 없어서 저들에겐 물욕이 없다는 교주의 말이 피부로 와닿았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제대로 겪어 보지도 않고, 오해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저 사람들을 보니 유연이도 참 순수하고, 욕심 없는 아이였을 것 같은데. 유연이를 떠올리자 가슴 안쪽이 찌릿찌릿 따끔거려서 나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상주 형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파트 건물을 나오자 주차장에 차를 댄 형이 창문 밖으로 팔을 쭉 뻗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저쪽이네.”
교주는 반대편 지상 주차장을 보며 말했다.
“어,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그래. 간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하온아, 잘 다녀왔어?”
“네. 나쁘지 않았어요. 아, 그보다 상주 형, 소화제 있어요?”
“하온이 체했어? 많이 아파? 약 가지고 괜찮아? 병원부터 들를까?”
안전벨트를 매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뒤이어 와다다 쏟아지는 상주 형의 걱정스러운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형은 허리까지 틀어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요. 저녁에 강현 형이 치킨 튀겨 준다고 했거든요. 그거 먹으려면 소화를 좀 시켜놔야 할 것 같아서요.”
본의 아니게 걱정 끼친 게 미안해서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야? 그럼 다행이고. 아프면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병원 가기 싫다고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돼.”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상주 형은 조수석 글로브 박스에서 작은 약품 상자를 꺼내줬다. 내가 소화제를 먹는 사이 형은 주차장을 나서며 물었다.
“숙소로 갈래? 아니면 회사로 갈래?”
음. 지금 숙소에 누가 있으려나. 강현 형은 오늘 스케줄 없고, 유찬 형이랑 정이한은 둘 다 작업실. 이서호는 촬영이니 없을 거고. 그럼 지금 강현 형만 숙소에 있으려나?
“숙소에 누구 있어요?”
“지금은 강현이 혼자 있지. 아, 어쩐지. 갑자기 일찍 들어간다더니 치킨 튀겨 주려고 그런 거구나?”
“헤헤. 제가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럼 저 숙소로 갈게요.”
혼자 고생하게 하는 것도 미안하니까 도울 수 있는 거 있으면 도와야지.
아, 맞다. 출발할 때 연락한다고 했는데.
나는 얼른 휴대폰을 찾아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들 참 빠르단 말이지. 멤버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슬슬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나는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쥔 채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상주 형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우리 숙소 주차장이었다.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주차장이라니.
“……저 계속 잤어요?”
“응. 푹 자길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모셨지.”
“죄송해요, 형 운전하는데 혼자 자서…….”
“미안하긴. 얼른 들어가서 푹 쉬어.”
상주 형과 헤어진 뒤 곧장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있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나씩 층수가 바뀌는 걸 보며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나서 서성거렸다. 빨리 안 오나. 빨리.
몇 분 되지 않을 기다림이었지만,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나는 닫힘 버튼을 힘차게 꾹 눌렀다.
띵, 소리와 함께 나를 집 앞에 내려준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왔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계속 서두르고 있다는 건 알지만, 숙소가 그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장에 손을 기댄 채 머리부터 안으로 들이밀었다. 강현 형이 어디 있지? 부엌에 있나?
“강현 형! 저 왔어요!”
대충 뒤꿈치로 운동화를 벗겨낸 뒤 빨려 들어가듯 집 안으로 발을 넣었다.
“하온이 어서와.”
강현 형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검은색의 단정한 앞치마를 한 형의 위생장갑 위로 하얀색 반죽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뛰다시피 강현 형에게 달려들었다.
“형!”
강현 형을 와락 끌어안으며 형의 가슴에 이마를 부딪쳤다. 평소라면 마주 안아줬을 텐데 영 잠잠하길래 고개를 빼꼼 들었다. 나를 내려보는 형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기분 좋아 보이네. 다행이다.”
강현 형은 수술실의 의사처럼 두 손을 들어 올린 채였다. 그게 왠지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왜 이렇게 좋은 거지. 한 일 년은 나가 있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