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75화 (275/320)

275.

“……행복해 보이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교주가 날 힐끔거렸다. 나는 그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란다를 수놓은 색색의 꽃들이 저마다 만개해 시야를 어지럽혔다.

“꺅! 아, 안녕하세요! 재혁 오빠!”

처음 보는 동생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홍조 핀 뺨이 귀여운 아이는 딱 중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동생이 몇 살이더라. 열여섯? 열일곱? 어쨌든 고등학생은 안 됐을 테니 아직 중학생이 맞겠지. 유란은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린 채 눈을 홉 뜨고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손톱이 떨리고 있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꼭 우리 디어리 같아서 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유란이 입단속은 교주한테 시키면 되겠네.

“네가 유란이구나.”

교주가 아는 척을 하자 곧장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어억! 제, 제 이름……! 헉, 어떡, 어떡해에…….”

유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하염없이 교주만 바라봤다.

“아, 아, 맞다. 저 온리원이거든요……. 진짜 데뷔했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이, 이렇게 뵙게 되어서 가문의 영광이고, 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고, 그리고 또, 아아아아, 오빠 너무 잘 생겼어요오오…….”

진짜 우리 디어리랑 똑같아. 왠지 웃음이 나와서 필사적으로 참고 있을 때 교주가 눈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와, 우리 리원이구나. 하온 선배님 동생이 내 팬이라니. 기분 좋은데?”

“에헤헤.”

유란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는지 연신 수줍게 웃었다.

“어머, 유란아. 웬일이니? 귀찮다고 잠옷만 입고 있던 애가.”

“아, 엄마아! 그런 말 하면 어떡해!”

어머니가 들고 온 딸기만큼 순식간에 익어버린 유란이 칭얼거렸다. 그런 딸이 귀엽기만 한지 유란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이 집의 분위기처럼 다정하고 따스했다.

“오랜만에 보는 오빠인데 인사는 했어? 재혁이만 찾는 것 같던데?”

“어, 그게…….”

유란은 눈동자만 데굴 굴려서 나를 힐끔거렸다. 눈이 마주치면 휙 도망가고, 조금 기다리면 다시 또르륵 굴러온다. 그러다가 또 눈이 마주치면 재빠르게 반대편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친해지기 어려운 길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인사해도 되겠지만 유연이 몇 살부터 자취했을지 모르기에 주저됐다. 유란이 기억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얼른 인사해.”

어머니가 팔꿈치로 유란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유란은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께 투정 부리듯 웅얼거렸다. 어머니가 한 번 더 ‘얼른.’하고 재촉하자 그제야 무척 어색하고 낯설어하는 듯한 시선이 내게 똑바로 닿았다.

“그, 오빠, 안녀엉……?”

“안녕…….”

“……으응.”

어떡하지. 더 할 말이 없는데. 껄끄러운 침묵이 이어지려는 순간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고 느리게 이어지는 소리가 끝나자 문이 열렸다.

“엇, 아빠랑 오빠 왔다!”

유란이 냉큼 일어나 현관으로 마중 나갔다. 나와 교주도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 네 가족은 서로 짐을 건네고 받으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원래 유연이의 아버지라고 하는, 저 사람이 저런 인상이었나.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것 같은데 저렇게 풀어지기도 하는구나.

“부탁한 거 전부 사 왔네. 고마워요. 잘했어.”

“엄마, 짐은 내가 옮길게. 이거 무거워.”

“그러면 싱크대 위에 갖다 놔 줄래? 엄마가 정리할게.”

“오케이.”

방청객이라도 된 기분이네. 코너의 이름은 단란한 가족의 한때, 정도면 되려나. 자꾸 생각이 삐딱하게 흘러갔다. 계속 속이 뒤틀리는 이 기분의 원인을 모르겠어.

그냥 빨리 끝내고 가고 싶은데. 나는 조용히 서 있는 교주의 등을 톡톡 건드려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교주의 시선이 돌기 무섭게 목소리를 낮췄다.

“어떨 것 같아?”

스킬을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묻는 말이었다.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데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교주가 대답했다.

“마음은 안 변했어?”

“응.”

교주는 무언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스킬…… 안 먹히는 건가?

“번복은 안 돼. 앞으로 영원히. 평생이야. 괜찮아?”

“원래 내 인생에 없던 사람들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도 된다. 어차피 그들은 이미 아들을 잃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그 누구에게도 보듬어지지 못했던 영혼은 지금 데우스의 품에 있다. 그러니 내가 그들의 삶에서 빠지는 건 오히려 잘못된 현재 상황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것뿐이다.

“알았어.”

부엌으로 향하던 유준이 거북한 듯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뒀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교주를 보는 듯 눈동자를 굴리고는 지나가 버렸다. 그래, 이런 무시가 정상이지. 어머니가 이상한거다.

“하온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어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막 신발을 벗고 집으로 발을 들인 아버지의 표정은 언제 풀어졌었냐는 듯 내가 아는 얼굴로 돌변해 있었다. 깊숙이 박힌 굳은살처럼 절대 풀어지지 않을 듯 딱딱한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잘 왔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그 충동을 가까스로 누른 채 눈웃음을 지었다. 표면적인 부자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이는. 그게 끝이에요?”

“좀 어색하네.”

아버지가 애써 웃으면서 억지웃음 소리를 냈다. 본인의 집인데도 선뜻 들어오지 못하고 아직도 현관 근처에 서 있는 것만 해도 답 나오지. 저 사람은 내가 싫은 거다. 여전히.

아이러니하게도 저런 태도를 보이는 아버지가 가장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온아, 배고프지? 우리 하온이가……, 뭘 좋아하는지, 엄마가 잘 몰라서……. 제육볶음 하려고 하는데 괜찮니? 제육볶음 좋아해?”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러니? 그럼 금방 해줄게. 갓 지은 따끈한 밥도 같이 먹이고 싶어서 아직 안 했거든. 남자들끼리 사는데 숙소에서는 집밥 먹기 힘들 거 아니야.”

아닌데. 우리 잘 먹는데. 요리할 줄 아는 멤버가 셋이나 되는 데다가 유찬 형과 이서호네 가족들이 주기적으로 숙소로 반찬을 보내주신다. 게다가 나한테 집은 여기가 아니라 숙소다. 그러니 숙소에서 먹는 게 내게는 집밥이었다. 이건 외식이지.

“아, 하온 선배님도 요리 잘하지 않아요?”

“하온이가?”

어머니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쓸데없는 말 하고 있어. 나는 교주를 흘겨본 뒤 말했다.

“……멤버 중에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배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멤버들이 제가 만든 걸 먹어주는 게 기뻐서 종종 만들어요.”

“엄마도 그 마음 알아. 맛있게 먹어주면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니까. 우리 하온이가 엄마 아들 맞네!”

얼마나 유연이를 모르면 공통점이라고 찾은 게 고작 이런…….

“하하…….”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웃는 수밖에. 역시 미소는 최고의 무기이자 회피 수단이었다.

“진하온. 잠깐 내 방으로 올래?”유준이 그의 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얼굴만 쏙 뺀 채 나를 불렀다. 교주가 내게 끄덕이는 걸 확인한 뒤 움직였다. 여기도 화분이 있네. 어머니가 관리하는 건가, 직접 하는 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방을 휘둘러봤다.

“진하온, 음. 하온아?”

“네.”

“예전에 내가 너 괴롭혔던 거 기억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지. 대답 없이 멀뚱거리기만 하자 유준은 무언가 맥이 풀린 사람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말 없고 조용한 건 여전하네. 그런데 예전이랑 다르게 이제 눈치는 안 보는 것 같다. 눈빛이 살아있어.”

“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거든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보다 눈높이가 낮은 유준을 향해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순간 유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 도발하면 어쩌잔 건데, 멍청한 진하온.

“그, 하. 그래. 네가 나한테 화낼 만하지. 나도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너만 보면 그냥 속이 부글부글 끓었거든. 근데 지금은 아니야. 그래서 사과하려고 불렀어. 미안했다. 형인데……. 괴롭히기만 해서.”

아아. 내가 지금 그들을 보며 속이 꼬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그들에게 유연이가 죽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였다. 당신들의 아들은, 형제는 죽었어. 당신이 사과할 사람도, 그 사과를 받아 줄 사람도 내가 아니야. 이 말이 하고 싶어서.

활화산에서 뛰쳐나오려고 하는 마그마처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혀끝에 맴도는 말을 꾸역꾸역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분노가 기도를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버렸으면서. 방치했으면서. 목숨을 끊는 그 순간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게 만들었으면서. 도와달라고 했어도 도와주지 않았을 거면서.

영혼이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대우가 달라지는 게 서러워서…….

그래서 화가 났다. 유연이의 삶은 내 삶이었으니까. 나도 저들처럼 가족의 일원으로 자랄 수 있었다는 게 피부에 와 닿았다. 막연히 내 영혼이 폐급이었기에 거부당했다는 걸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전혀 달랐다.

“야, 분위기 이상하게 왜 그렇게 조용해. 크흠,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응?”

민망해하는 유준을 앞에 두고 나는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당장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멤버들이 보고 싶었다.

“어……. 그게 끝이야?”

유준은 당혹스러워하며 날 올려봤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마치 나 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정이한한테 온 전화였다. 아, 정이한. 매번 타이밍도 좋지. 내가 지금 보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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