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어서 오세요.”
교주가 문을 활짝 열며 나를 환영했다. 한창 요리하는 중이었는지 까만색 앞치마를 한 상태였다. 의외로 그럴듯한 냄새가 나서 내심 놀라는 내 눈에 나를 담는 카메라가 보였다. 리얼리티 예능이라 집 내부에는 거치 카메라와 스태프가 가득했다.
카메라 없는 척하는 건 쉽지. 나는 방긋 웃으면서 도중에 들러서 사 온 과일을 내밀었다.
“여기 선물이에요.”
“아, 그냥 오셔도 되는데.”
교주가 두 손으로 과일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친근하게 물었다.
“저녁 메뉴 뭐예요? 좋은 냄새 나는데.”
“갈비찜이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그럼요.”
교주는 당당하게 가슴을 쫙 펼쳤다. 그때 교주의 휴대폰에서 우렁찬 알람 소리가 들렸다.
“아, 시간 됐다. 잠시 앉아 계세요.”
교주는 휴대폰을 보며 부엌으로 돌아가 중얼거리면서 도마 위의 재료들을 쏟아부었다. 냄새는 진짜 그럴듯한데 레시피를 보고 한 거구나. 맛……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어차피 밥 먹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맛있는 저녁은 반쯤 포기한 채 오피스텔 내부를 둘러봤다.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이 혼자 살기에는 좋아도 너무 좋은 곳이었다. 교주의 오피스텔은 펜트하우스임을 증명하듯 층고가 높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방이 몇 개야, 도대체.
“재혁 씨 여기에 혼자 살아요?”
“활동기에는 숙소에서 생활하는데 지금은 휴식기라서요.”
“아하.”
“집 구경하셔도 돼요. 별로 볼 건 없겠지만요.”
“침실은 어딘데요?”
“침실부터 보려고요?”
의외라는 듯 되묻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이러다가 내 이미지 나락 갈라. 나는 별것 아닌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거긴 좀 사적인 영역인 것 같아서, 침실 빼고 보려고요.”
교주는 작게 웃고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뭐, 그렇다면야. 내가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스태프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먼저 눈에 띈 방문을 열어봤더니 방이 아니라 욕실이 나왔다.
“와…….”
그런데 뷰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욕실 창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뻥 뚫린 한강이 고스란히 보였다. 밤에 한강 보면서 목욕하면 기분 좋긴 하겠다. 그래도 나한테 여기서 혼자 살 건지, 멤버들이랑 살 건지 물어보면 무조건 후자를 선택하겠지만.
교주는 외롭지 않은 걸까. 숙소에서 북적북적하게 지내는 게 익숙해진 지금, 이따금 혼자 남아 있으면 외롭던데. 나는 욕실 문을 닫고 나오며 주방에 서 있는 교주의 등을 바라봤다.
“재혁 씨.”
“네?”
뒤를 돌아보며 대답하는 교주에게 나는 혼자 지내면 외롭지 않은지 물었다. 교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멤버들이랑 지내는 것도 좋지만, 저는 휴식할 땐 혼자 있어야 충전되더라고요.”
카메라가 앞에 있는데 내가 뭘 바라냐. 판에 박힌 듯 그럴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냥 적당히 받아치며 다른 방문을 열어봤다. 의도치 않았는데 이번엔 침실이었다.
킹사이즈 침대 하나만 방 중앙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 흔한 서랍장이나 테이블 하나가 없어서 어찌 보면 심플했고, 또 어떻게 보면 삭막했다.
다른 방들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한 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과 드레스룸, 그리고 욕조가 없는 샤워실 하나가 더 있었다. 크기에 비해 들어차 있는 가구가 거의 없어서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생활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건 2층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구경하는 게 의미 있는 건가. 카메라가 날 따라다니고 있으니 적당히 리액션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전부 편집될 각이었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문이 잠긴 곳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이 안에 들어가면 진짜 교주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하온 씨 인터뷰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나는 철수하는 스태프분들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교주와 함께 스태프분들을 배웅하고 나니 드디어 오피스텔에는 교주와 나. 둘만 남았다.
“하, 피곤하네.”
내내 생글거리던 교주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교주는 피곤한 몸을 소파에 던지듯 주저앉아, 소파 등받이에 깊숙하게 기댄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 여기 부른 거 계획한 거야?”
교주와 나란히 앉기는 싫어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교주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너한테 맡겼다가는 1년 지날 것 같아서.”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퍽이나. 그리고 계획한 거 아니야. 우연히 맞아떨어진 김에 끌어들인 거지.”
하긴. 이걸 교주가 계획했다면 스케일이 너무 커지긴 한다. 개인 예능 섭외에 촬영 날짜까지 형들 촬영일에 맞춰야 하니 스킬을 남발해도 어려울 거다. 가끔은 우연이 꼭 필연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맞아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나 보다.
“잘됐네. 위에 잠긴 문이 있던데 거기엔 뭐가 들어 있어?”
“……아. 별거 아니야.”
“양궁 했을 때 물건들?”
한층 깊어져 날카로워 보이는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해 굴러왔다. 매서운 눈초리 끝에 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유달리 서늘했다. 저렇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면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는데.
“양궁에 진심이었나 보네.”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와 양궁은 상관없지 않나.”
“그냥. 너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네가 알 필요 없잖아.”
능글거리며 넘기기 일쑤인 교주가 삐딱한 얼굴로 까칠하게 대답했다. 교주는 양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지만 나는 교주가 진짜 원하는 삶이 그의 진짜 목적을 파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돌이 되는 게 꿈이었어. 한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지. 그 뒤에 혼자 틀어박혀 살다가 어이없게 죽었어. 그리고 신을 만나 두 번째 삶을 얻었지. 내 두 번째 삶은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된 삶이었어. 네 경우는 어떤데? 너도 꿈을 이루고 싶어서 회귀한 거 아니야?”
“……진짜야?”
“지금 내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잖아.”
교주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그럼 네 목표는 뭔데.”
“좀 추상적이긴 해. 꿈을 이루라고 듣긴 했는데, 아이돌로 데뷔하고 싶었던 꿈도 이뤘고, 사랑받고 싶었던 내 소망도 이뤄졌어. 내게는 디어리와 멤버들이 곁에 있으니까. 그런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게이지가 부족해?”
“게이지? 나는 좀 달라. 게이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따라다녀.”
교주에게 솔직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나도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눈치 빠른 교주는 내 거짓말을 알아채고 입을 다물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신뢰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솔직한 내 사정을 털어놓으며 나는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시스템?”
“응. 전에 말했던 스킬도 그렇고, 나한테는 페널티가 있거든.”
“페널티가 뭔데?”
“너도 대충 눈치채고 있지 않나? 맞춰보고 싶은 거라면 이야기해 줄게.”
교주는 대답 대신 조용한 눈으로 날 응시했다. 나는 그걸 긍정의 신호로 보고 말을 이었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면 강제로 상태 이상이 터져. 종류는 몇 가지 있는데 좀 위험한 건 기절이나 호흡곤란 같은 거.”
“아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지난번에 소파남 앞에서 상태 이상을 터트렸고, 그 전에 교주와의 첫 만남에서도 손을 잡자마자 기절했으니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테지. 그런 내 예상이 맞은 듯한 반응이었다.
“꽤 솔직하게 말하네.”
“네가 솔직해져야 내가 도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사실대로 말해준 거야. 내 패는 다 까 보였어. 이제 네 차례야. 힌트를 찾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줘. 진짜 준재혁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말이야.”
교주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부엌 쪽으로 이동하더니 와인 한 병을 들고 돌아왔다. 잔은 하나뿐이었다.
“넌 아직 못 마시니까 나 혼자 마신다.”
“음료수라도 주지?”
“갖다 마셔.”
“참나.”
나는 터덜터덜 일어나 냉장고를 벌컥 열었다. 딱히 마실 건 없어 보여서 즐비한 탄산수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치익, 하는 탄산 빠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라임 냄새가 났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교주는 이미 와인을 한 잔 따라 마신 뒤 두 번째 잔을 따르는 중이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준 건데 아직 준비가 안 된 건가. 나는 탄산수만 홀짝거리며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기다렸다.
연달아 네 잔을 비운 교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죽기 전의 나는 국가대표 양궁 선수였어.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땄고.”
“헐…….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니.”
교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삐뚜름하게 웃었다.
“하지만 행실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 그렇다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어. 난 누구보다 국대인 내가 자랑스럽고 소중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훈련소에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어.”
교주는 와인을 한 번 더 따라 단숨에 비웠다.
“죽은 나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눈을 떴어. 뭐, 내 영혼이 타락했다나? 조상이라고 해야 하나. 내 이전의 영혼들이 너무 많은 죄를 지었대. 그러면서 새로 받을 삶을 잇지 못하면 영원히 그 어두운 공간에 갇히게 될 거라고 경고를 들었지.”
……나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게는 보상처럼 주어진 기회였으나 교주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억울했어. 나는 누군가를 해친 적이 없는데. 억울하다고 외치는 내 말은 허공에 대고 짖는 개 같았지.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거든.”
교주는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무언가에 몸이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눈을 뜨니 19살, 봄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