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65화 (265/320)

265.

교주의 오피스텔에 갈 명분이 생기니 일주일간 고민 없이 온전히 내 스케줄과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혼자 다니지 말고. 준재혁 씨 오피스텔 갈 거면 미리 상주한테 연락해. 잠깐 와서 너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을게.”

“넵.”

나는 매니저 형을 향해 고개를 바짝 치켜든 채 밝게 대답했다. 매니저 형을 안심시키고 난 뒤에 나는 유찬 형과 강현 형이랑 인사할 수 있었다. 복도까지 나가서 형들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보고 숙소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내 손에는 휴대폰이 꼭 쥐어진 상태였다.

평소에도 필요할 때만 들고 다녀서 형들의 연락을 잘 못 받던 나였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라도 교주 연락을 받지 못할까 봐 손에 쥐고 다닐 예정이었다.

퀴즈는 뭐가 나오려나.

컨셉이 ‘친구’에게 연락하는 거라고 했으니 교주에 관한 질문도 있겠지? 일단 벼락치기로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외웠다. 그룹 데뷔 날짜나 나이, 고향, 가족 관계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이외에 교주가 한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교주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대충 머리에 욱여넣었다.

[아, 네. 어릴 때부터 양궁은 좋아했어요. 집안 반대가 심해서 활을 놓긴 했지만 결국 집에서 더 반대한 아이돌을 하고 있네요.]

흐린 눈으로 교주의 인터뷰를 보던 중 내 신경을 확 잡아채는 내용이 나왔다. 양궁. 지난번 아추대 때 마치 자기가 양궁 국대라도 했었다는 듯 굴었었는데…….

[아니, 이걸 어떻게 찾아왔어요? 맞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양궁 전국체전에서 개인전 금메달 딴 적 있어요. 그때 기념사진이네요.]

교주는 추억에 잠긴 듯한 눈으로 사진을 들여다봤다.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가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는 듯 행복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전 금메달이면 세계 선수권 실력이라고 봐도 되는 거잖아. 그런 재능이 있었는데 왜 교주는 지금 아이돌을 하고 있을까. 그리움에 가득한 눈을 보면 양궁을 접은 건 자의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왜 그만뒀는지에 대한 물음에 교주는 난처한 웃음으로 회피했다.

교주의 진짜 꿈은 양궁 선수였던 걸까.

분명 아이돌은 회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 같았는데. 나는 교주가 스치듯 지나가면서 했던 ‘이렇게 바쁜 줄 알았다면 아이돌 안 했다.’라는 말을 기억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만약 데우스가 내게 내민 조건이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가 아니었다면 나는 환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그저 숨만 쉬며 사는 건 전생의 내 삶과 다를 게 없으니까.

교주는 왜 회귀한 거지? 선택권이 없었던 건가? 그게 아니라면 누구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걸까. 꿈을 포기할 만큼.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교주 이외에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인터뷰를 끝까지 본 뒤 노트북을 닫았다.

“하온아. 뭐 하고 있었어?”

내 어깨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집중해서 그런가 정이한이 거실로 나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네. 나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요?”

“응. 완전 푹. 형들은 벌써 나갔네. 나도 깨우지. 배웅하고 싶었는데.”

“형 어제도 새벽에 들어왔잖아요. 형들이 깨우지 말랬어요.”

“으응.”

정이한은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가서 앞치마를 둘렀다.

“배고프지? 밥해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마침 배우고 싶었던 요리가 있어서 눈을 빛내며 일어났다.

“파스타요!”

“어떤 걸로?”

“크림이 제일 쉽죠?”

“토마토가 제일 쉽지. 소스 부으면 끝인걸.”

“……아, 그럼 크림이요. 저 파스타 배우고 싶거든요.”

“좋아. 이리 와.”

정이한이 앞치마를 하나 더 꺼내 펄럭거렸다. 쪼르르 다가가 앞에 섰더니 정이한이 손수 내게 앞치마를 걸어줬다. 허리끈을 묶으려고 아래를 내려 본 순간, 정이한의 가슴이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어.”

정이한은 나를 끌어안듯 내 등허리로 팔을 둘러 앞치마 끈을 매어 주고 있었다.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져 정이한의 목울대가 너무 선명하게 시야에 가득 잡혔다.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자,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듯 단단한 팔이 퇴로를 막았다.

“어디 가려고. 내가 매줄게.”

바로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니, 잠깐. 꼭 이 자세일 필요가…….”

정이한의 어깨를 양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뒤로 쭉 뺐다. 나를 내려 보며 눈웃음 짓던 정이한이 내 등에 손을 올려 나를 바짝 세웠다.

“있지.”

“……없잖아요.”

“있는데.”

이제는 허리끈을 매주는 게 아니라 그저 정이한에게 안겨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괜히 긴장돼서 입이 바짝 말라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뭔데요.”

정이한은 대답 대신 나를 품에서 놓아주며 “됐다.”하고 상큼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내 양쪽 팔을 툭툭 두들긴 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돌아서서 찬장에서 파스타 면을 꺼냈다.

도대체 뭐였는데……. 나는 정이한을 힐끔거리며 갑자기 이런 스킨십을 한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뭐였는데요?”

궁금해하면서 옆에 바짝 붙어 올려다보자, 정이한이 날 내려 본 뒤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안 돼. 비밀로 할 거야.”

“아, 뭔데요. 저 궁금하단 말이에요.”

“그럼 그렇게 계속 내 생각하면 되겠다.”

“……네에?”

돌아온 대답이 황당해서 헛웃음 짓는 사이, 정이한은 우유까지 꺼내와 내게 파스타의 크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영부영 넘어간 듯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레시피는 열심히 열심히 머리에 넣었다.

***

“……서울 출신!”

- 정답. 설마 하온 선배님이 이렇게까지 맞춰주실 줄은 몰랐는데.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교주의 목소리는 내내 정중했고,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다. 벼락치기 한 효과가 있었는지 중간중간 교주에 관한 질문을 제대로 클리어했다. 물론 몇 가지 상식 퀴즈에서 실수했지만, 그 이외에 곡 이름 맞추기와 교주에 관한 문제는 전부 맞혔다.

“제가 재혁 씨의 숨은 팬이거든요~”

- 아하하. 기분 좋네요. 오늘 선배님이 맞춰주신 덕분에 좋은 재료로 제대로 된 식사 준비가 가능할 것 같은데,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될까요?

“음. 재혁 씨 요리 잘하세요?”

- 글쎄요.

“……믿어도 되는 거예요?”

- 오시려고요?

“생각은 있는데…….”

- 꼭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먹기 적적해요~

교주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게 꼭 허공에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예능에서의 교주는 내가 알던 사람이랑 전혀 달라서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인터뷰를 보면서 대외적인 모습을 조금이라도 본 탓에 그런 교주의 행동에 어색하게 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러모로 벼락치기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그러면 가야죠. 그런데 진짜 요리 잘해요? 잘못하면 제가 만들어도 되는데.”

- 와, 선배님 요리요? 선, 배님 요리……. 음. 저 미역국 영상 봤는데…….

“아니, 그게 언제 적이에요!”

- 바다 본연의 맛…….

“아, 지금은 아니거든요!”

- 미역이 뚜껑을 뚫는 패기…….

“아! 재혁 씨!”

남의 흑역사를 왜 자꾸 꺼내는 거야! 내가 씩씩거리자 휴대폰 너머에서 교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 농담이에요. 지금은 잘하시는 거 잘 알죠. 그래도 손님으로 모시는 거니까 식사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알겠어요.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 선배님 지금 숙소에 계시죠?

“네. 맞아요.”

- 저희 측 차를 보낼게요. 타고 오시면 됩니다.

매니저 형이 상주 형 부르라고 했는데……. 서호 촬영장에 있는 상주 형이 혼자서 나와 이서호를 둘 다 케어하려면 힘들겠지?

“그럼 그렇게 할게요. 감사해요.”

- 별말씀을요. 이따 뵙겠습니다!

교주와 인사를 마무리하고 통화를 끊었다. 내내 옆에서 지켜보던 정이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갈 거야?”

“네. 가려고요.”

“…….”

정이한은 탐탁지 않다는 듯 입술을 잔뜩 모았다. 불룩 튀어나온 입술이 가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푸흡. 형 표정이 왜 그래요. 저 나가는 거 싫어요?”

“……응. 예전에 너, 재혁 형 불편해했잖아. 그때 쓰러진 것도 형 때문이지? 나는 그거 못 잊어.”

“……아.”

언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담. 나는 웃음기 띤 얼굴로 정이한의 손등 위로 내 손을 포개 올렸다.

“이젠 안 그래요. 재혁 씨랑 좀 친해지기도 했고.”

“언제?”

“그냥, 뭐. 이런저런.”

“항상 우리랑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친해졌어?”

누가 같은 멤버 아니랄까 봐 유찬 형이랑 똑같은 질문을 한다. 일주일 전에 유찬 형도 딱 이랬었는데. 그날 밤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아추대에서요.”

“으잉? 그때도 계속 나랑 있었는데…….”

“저 재혁 씨랑 같이 양궁 했잖아요. 대기 중에 마주쳐서 이야기 좀 많이 했는데 괜찮은 사람이더라고요.”

유찬 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대답했다. 정이한은 그래도 내가 가는 게 싫은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나는 살랑거리는 정이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전화만 한 댔으면서.”

“혼자 먹기 외롭다잖아요.”

“나도 혼자 남는데…….”

“형은 2차 경연 준비하러 회사 갈 거잖아요.”

정이한이 제 팔을 베며 고개를 돌려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왜 몰라요. 형들 스케줄 제가 다 꿰고 있는데. 저녁 먹고 형 보러 회사로 갈게요.”

그제야 정이한이 표정을 풀고 웃음 지었다. 좋아. 그럼 이제 교주를 만나러 가기만 하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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