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63화 (263/320)

263.

“와, 내가 했지만 너무 예쁘다.”

메이크업 담당자가 날 보며 무척 흡족해했다. 담당자는 갤러리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화가처럼, 어디 한번 보라며 장난스럽게 거울을 향해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복숭앗빛이 도는 발그레한 뺨에 뺨과 비슷한 색으로 표현한 입술. 거기에 웨이브가 들어간 긴 가발까지 착용한 내 모습은 내 눈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아서 이상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메이크업이란 건 참 대단해. 이런 분장을 찰떡같이 소화하게 만들다니…….

“어때요? 예쁘죠?”

“하하…….”

맞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러니 그냥 웃어 버렸다.

“헐, 영주 쌤 대박.”

“그쵸그쵸?”

“오늘 컨셉이랑 찰떡이네. 하온 씨 옷도 갈아입고 나와 볼래요?”

“넵.”

나는 코디네이터가 주는 하얀색 원피스를 받아 탈의실로 들어갔다. 다른 무늬나 색은 일절 없이 오직 새하얗기만 한 원피스였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카라를 정리한 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나를 위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사이즈가 딱 맞아떨어졌다. 아무래도 여성복이라 전체적으로 조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문제는 상의는 슬림핏으로 떨어지고 허리 중간부터 스커트가 퍼지는 핏이라, 내 납작한 가슴이 너무 어색해 보였다. 이거 괜찮은 건가.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저…….”

간이 커튼을 치고 나가 한마디 하기도 전에 코디네이터가 박수를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꺄!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리네요!”

와중에도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삭 훑고 지나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코디네이터는 나를 뒤로 돌려서 뒷모습까지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돌려놓은 뒤 뿌듯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좋네. 어디 남는 곳 없이 딱 맞아요. 소속사가 사이즈 되게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어쩐지 불편한데 없이 잘 맞더라니. 진짜 맞춤이었나 보네. 코디네이터가 자기 팔에 걸려 있던 연한 분홍색 천을 쭉 잡아당겼다. 내 원피스와 같은 재질의 천을 보고 용도를 눈치챈 나는 얼른 허리를 숙여 높이를 맞춰주었다.

“어우, 하온 씨. 눈치도 빠르고, 배려심도 있고, 잘 생겼는데 예쁘기까지 하네. 너무 완벽해서 멤버들한테 미움받는 거 아니에요?”

“희연 쌤, 디아스 모르시는구나? 디아스 멤버들 막내 사랑으로 유명해요~”

“아잉, 농담이죠! 왜 모르겠어요. 오늘 이한 씨도 같이 왔는데. 하하하.”

코디네이터의 손길이 떨어지자 어느샌가 라운드 카라 아래쪽으로 떨어진 풍성한 리본이 밋밋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오,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아!

“이한 씨 어때요?”

코디네이터가 내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며 정이한에게 물었다. 정이한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너무 예뻐요. 우리 하온이.”

정이한이 눈가를 곱게 접자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담당자가 꺄아, 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 어색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며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두 분이 멀어지고 난 후, 정이한이 내 옆에 바짝 붙어 물었다.

“긴장돼?”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어색해서요.”

“괜찮아. 되게 잘 어울려. 엄청 예뻐.”

“……그, 래요?”

“응.”

정이한이 내게 손을 뻗다가 화들짝 놀라 거둬들였다. 머리라도 쓰다듬으려고 했나?

“머리 만지려고 했죠?”

“응. 큰일 날 뻔.”

정이한이 아이처럼 웃으면서 제 손등이 별개의 생물이라도 되는 듯 탁탁 두들겼다. 그게 또 귀여워 보여서 정이한을 보며 웃었다. 아주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긴장하고 있긴 했었구나.

***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앵글 밖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눈을 떴다. 준비되면 언제든지 들어가도 된다는 말에 마음을 가다듬고 감독님께 신호를 보냈다. 오케이 사인을 받은 나는 통유리창에 한쪽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다른 손은 길게 늘어트려 장미꽃 한 송이가 바닥을 향하도록 들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등 뒤로 레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딱 통유리창 중간까지 이동한 뒤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본채 정지. 그리고 그다음 늘어트린 장미꽃 한 송이를 들어 입가에 가져가 장미꽃잎을 한 장 입술에 물었다.

“컷. 잘했어요. 잘했는데 한 번만 더 해 보자. 이번에는 조금 슬픈 무표정 느낌으로.”

“아, 넵.”

슬픈 무표정은 뭐지. 조금 알쏭달쏭한 느낌이 되었지만 일단 시킨 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표정은 그대로 두고 눈썹만 조금 늘어트렸더니 곧장 NG가 났다.

“아냐 아냐. 그건 너무 처연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와아, 예쁘다!’ 하는 감탄이랑 뭔가 좀 슬퍼 보이네. 싶은 느낌이 동시에 들어야 해요.”

“아…….”

그게 뭔데. 어떻게 하라는 건데. 무표정을 유지한 채 슬픈 상상이라도 해야 하나. 제대로 감을 못 잡은 상태에서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고 역시나 나는 장렬하게 NG를 받았다. 이번엔 또 너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음. 하온 씨, 좋아하는 사람한테 거절당한 적 없어요?”

“있겠어요?”

옆에서 한 여성 스태프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없을 것 같긴 해.”하며 크게 웃었다. 촬영 분위기는 좋아서 다행이었지만 나는 연달아 NG를 내면서 마음이 불안해졌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거절당했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는 거지. 지금은 그런 경험이 없지만 전생의 나에게는 무척 흔한 일이었다.

아,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픈 거 숨기고 웃어 보이는 일. 그거 내가 제일 잘하던 거였는데.

그때와 똑같이 하되 표정만 무표정을 유지하면 되는 건가. 나는 그때의 내게서 감정만 빌려 오기로 하면서 이미지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친해진 주한 형이 나를 포기한다고 했을 때의 심정을 떠올렸다.

생각하자마자 가슴 안쪽이 꽉 조여와 마음을 억누르고, 무표정을 유지하며 앞을 봤다. 장미꽃을 물기 직전, 나는 그것을 잠시 물끄러미 내려봤다. 이걸 물면 무언가 달라진다는 걸 각오해야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이내 천천히 꽃잎을 물었다.

“오케이! 아주 좋아요! 잘하네! 그럼 이번엔 상큼한 버전으로 해 볼게요!”

상큼한…….

그렇게 여성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버전의 광고를 찍었다. 감독님은 무척 흡족해하시며 나를 칭찬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잠시 쉬었다가 이어갈게요.”

“하온아, 고생했어.”

누구보다 빠르게 내게 다가온 정이한이 음료수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목이 타던 중이라 몇 모금 마신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으음.

지금 내 꼴로 나가도 되나……. 같은 층에 스튜디오가 몇 개 더 있어서 우리 스태프가 아닌 사람을 마주치면 좀 민망할 것 같은데.

“이한 형. 저 화장실 가고 싶은데…….”

“아, 같이 갈까?”

“네.”

멤버라도 같이 있으면 덜 민망하겠지. 내가 스튜디오를 나가려고 하자 근처에 있던 스태프가 10분 뒤에 촬영 재개라고 알려줬다.

“네. 화장실만 다녀올게요.”

“넵. 다녀오세요.”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정이한이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았다. 왜 그러는가 싶어서 의아한 마음으로 올려 봤더니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쩐지 말을 꺼내기 힘들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왜요? 할 말 있으면 저 화장실 다녀와서 하면 안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으음.”

정이한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나를 뒤쪽으로 살짝 밀어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사람 있나 보고 올게.”

갑자기 왜? 이해할 수 없는 내 감정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네에……?”

“아니, 하온이 보고 놀랄까 봐…….”

“아. 아아……! 그, 그래요. 그렇게 해주세요…….”

완전히 이해해 버렸어. 그래, 나라도 여장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오면 좀 놀라긴 할 거야. 심지어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지금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위화감이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괜히 화장실에서 소동 일으켜 봤자 좋을 게 없지.

정이한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는 그 앞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나?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저,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요.”

그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 진짜 만나도 여기서 만나냐. 하필이면 텐스타의 준이 내 앞에 서서는 머쓱하게 남자 화장실과 나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

“어? 그런데 낯이 익은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아니, 이거 구시대 유물 급 작업 멘트 같네. 작업은 아니고요, 진짜 그냥 낯이 익어서 그래요.”

“하온아, 지금……. 어. 준 선배님?”“어, 이한이. 그런데 하온이? 하온이였어?”

준 선배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이리저리 쳐다봤다.

“아니, 왜 너라고 말을 안 해?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준 선배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는 계속 어색하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선배님.”하고 인사했다. 이걸 어쩐담. 오늘 교주에게 들은 정보로 인해 이 사람이 그저 마약 게이트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이한이는 평소랑 같은 거 같은데 하온이만 여장했네? 무슨 촬영 해? 아, 나는 화보 찍으러 왔거든.”

“개인 촬영이라서요. 선배님, 저 화장실 가려고 온 건데…….”

“아, 그래그래. 나도 화장실 가려고 오긴 했는데…….”

준 선배님은 시선으로 나를 훑어본 뒤 “근데 좀 기분 이상하네. 여자랑 같은 화장실 가는 기분이야.”하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먼저 다녀오세요. 그 뒤에 제가 갈게요.”

내가 한 발 빼자 준 선배님은 내 어깨에 팔을 툭 걸치고는 나를 화장실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가자 가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