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59화 (259/320)

259.

이서호가 우울해하는 원인이 개인적인 상처를 건드릴 수 있을 만한 사정이라면 나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악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니터 뒤에 숨어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악플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악의에서 탄생한 말인 만큼 날카롭고 치명적이기도 했다. 아무리 뽑아낸다고 뽑아내더라도 자신을 향한 악의적인 말들은 가슴 깊숙이 남는 법이었다. 나는 이서호가 그런 상처에 매몰되길 바라지 않았다.

커다란 몸을 자그맣게 옹송그린 채 내 품에 안겨 있던 이서호가 내 쪽으로 무게를 실어 왔다. 어깨에 이서호의 숨결이 닿았다.

나는 이서호가 마음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이서호의 등만 토닥여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호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그 웃음은 마치 상처 입은 마음을 숨기려고 무장하는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하하……. 야, 진하온. 나 힘든 거, 어떻게 알았냐…….”

오히려 알아차리는 게 늦어진 거다. 어쩌면 이서호는 그동안 자길 알아봐 달라고, 도와 달라고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몰라. 형은 내 가족인데. 항상 같이 있잖아, 우리.”

이서호는 나를 마주 안은 채 아주 조용히 흐느꼈다. 그런 이서호가 진정될 때까지 나는 묵묵히 품을 내어 주며 등을 쓸어줬다.

이서호는 한참을 울고 난 뒤 코를 훌쩍거렸다. 어깨가 좀 축축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건 괜찮았다. 나는 이서호에게 휴지를 뽑아 건네준 뒤 가만히 올려보았다.

“나도 자존심 있어.”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이서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짧게 ‘응.’하고 대답해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 호응만 했다.

“나도, 내 한계를 알아.”

“……응.”

“나도…… 내가, 잘하는 거 아무것도 없는 거 알아. 누구보다도 내가 잘…….”

하지만 이 말에는 동의 못 해주겠다.

“멤버들한테 업혀 간다는 거, 나도 잘 알고. 멤버들 아니었으면 나 이렇게 성공 못 했을 거라는 것도 알고, 그런데도 주제넘게 드라마 같은 거 한다고 깔짝대는 것도 알아. 다 알아. 다 아는데……. 왜 그런 말들이 이렇게 사무치냐.”

나는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짓씹으며 감정을 다스렸다. 이서호에게 상처 준 말들에 대해서는 전부 부정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말이 단순 위로가 아닌, 진심이라는 걸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혹여 섣부르게 위로한다고 생각해 더 상처를 줄까 봐 조심스러웠다.

“흑, 끄흑, 흡…….”

서럽게 우는 이서호의 눈물이 계속 뺨을 타고 흘렀다. 나는 손으로 이서호의 눈물을 닦아주며 안타까움에 인상을 찡그렸다.

“……어리광 부리는 것 같았어. 너도, 형들도 다 알아서, 다 잘하는데, 나만 힘들, 다고 우는 소리, 할 수 없어서, 참, 참았, 참았는데…….”

“그랬구나. 형, 많이 힘들었겠네.”

“흐, 흐어어어엉…….”

조금 그쳐가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엉망으로 얼굴을 찡그린 채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서호의 뺨을 연신 쓸어주다가, 괜히 내 손에 여린 뺨이 쓸려 아플까 봐 나는 다시 이서호의 등을 토닥여줬다.

나는 조용히 이서호의 눈물을 받아주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간헐적으로 울음소리를 비집고 나온 서러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한참 동안 날 붙잡고 울던 이서호는 이제 마음이 좀 추슬러졌는지 온통 새빨갛게 충혈되어 토끼 같은 눈을 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크흥, 미안…….”

“미안할 게 뭐 있어. 안에 담아두면 곪기밖에 더 하나. 이렇게 한 번씩 터트리는 게 훨씬 좋은 거야.”

이서호는 내 말에 동의하듯 말갛게 웃고는 “조금 시원한 것 같긴 하다.”하고 쑥스러운 것처럼 중얼거렸다.

“진하온…….”

“응?”

“……형들한텐 비밀이다.”

“그게 걱정돼?”

이서호는 하도 울어서 빨개진 뺨을 마구 문지르면서 “당연하지!”하고 꿍얼거렸다.

“형들한텐 비밀로 할게. 그리고 서호 형.”

“엉?”

“휴대폰 좀 줘봐.”

“……왜.”

이서호가 날 경계하며 휴대폰을 등 뒤로 잽싸게 숨겼다. 나는 조용히 손바닥을 내민 채 까딱거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이서호는 결국 내 압력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제 휴대폰을 넘겨줬다.

“비번 풀어줘야지.”

“뭐하게…….”

“얼른.”

이서호는 코를 훌쩍이면서 휴대폰 잠금을 풀어줬다. 나는 바로 갤러리를 열었다. [정신 차리자]라고 쓰인 앨범명을 보니 왠지 여기에 이서호를 힘들게 한 악플들이 모여 있을 것 같았다. 눌러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가 바로 악플 소굴이었다. 앨범 속 스크린샷을 뒤로 넘기면 넘길수록, 내 얼굴이 굳어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ㅅㅎ는 노래도 못해~ 와꾸도 안돼~ ㅈㄴ민폐덩어리넼ㅋㅋㅋㅋ]

[일단 팀에 민폐 안 끼치는 게 1순위 아닌가? 휴식기에 연습해도 모자랄 판에 드라마? ㅇㅅㅎ는 언제까지 주제 파악 못하고 날뛸 건지 정신 좀 차려라 형들 힘들게 하지 말고ㅗ]

[아 ㅇㅅㅎ 목소리 ㅈㄴ 째져서 듣기 싫음 진짜 칠판 긁는 소리 같음-- 근데 귀여운 척 우욱씹]

나는 빠르게 폴더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이런 건 도대체 왜 모으는 거야?

“어? 야, 그거 지우면 어떡해…….”

“이거 왜 모은 건데?”

“……보고 더 노력하려고.”

방향이 틀려도 너무 틀렸잖아. 이런 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존감만 깎아 먹지. 이걸 설교하듯 말해 봤자 이서호가 듣기나 할까. 얘도 은근히 고집이 세단 말이야. 나는 간접적으로 이서호를 이해시켜주기 위해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뜬금없게 느껴질 질문을 툭 던졌다.

“형이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는 노래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착하고, 예뻐…….”

“단점은?”

“가끔 형 빼고 부르는 거 말곤 없는데…….”

이서호한테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예상하지 못한 평가라서 솔직히 깜짝 놀랐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또 내 주둥이가 멋대로 움직였다.

“……나 재수 없다며?”

“아, 그건 농담이지! 너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

심각해진 이서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어왔다. 나는 휴대폰에 내 이름을 서칭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아니야.’하고 대답했다.

“나 오해한 줄 알고 섭섭할 뻔했잖아!”

크흠. 나 왜 이렇게 칭찬받는 게 부끄럽지. 진짜 이건 적응이 안 된다. 아마 평생 적응 못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아 이서호가 잘 볼 수 있도록 휴대폰을 들었다.

“서호 형. 이거 한 번 봐봐.”

“뭔데?”

호기심을 드러내며 글자를 읽는 이서호의 표정을 관찰했다. 눈을 크게 떴다가 인상을 확 찌푸리고는 내 손에서 휴대폰을 휙 낚아채 갔다.

“야! 이런 걸 왜 찾아봐!”

내가 이서호에게 보여준 건 내 안티팬이 업로드한 영상의 악플이었다. ‘형들도 피곤한데 지긋지긋할 정도로 달라붙는 무개념.’ 이라거나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형들한테 앵기냐, 다 큰 사내새끼가 형들한테 부비는 거 ㅈㄴ 징그러워 구웨웨에엑.’ 하고 내 태도를 지적하는 것도 있었고, ‘저질 체력이 자랑이냐?ㅋㅋㅋ 약한 척 좀 그만햌ㅋㅋ 그거 다 컨셉질이잖앜ㅋㅋㅋㅋ’ 하고 비아냥대는 댓글도 있었다.

“서호 형이 보기에 나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무개념에, 징그럽고, 컨셉질하는 사람이야?”

“절대 아니지!”

이서호는 씨근덕거리며 하나하나 반박해주었다. 그러다가 그게 다 내 칭찬으로 이어져서 머쓱한 얼굴로 듣다가 적당한 시기에 이서호의 말을 끊었다.

“형도 마찬가지야.”

“……어?”

“형의 휴대폰에 있던 말들.”

나는 이서호가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이서호를 바라봤다.

“서호 형한테 해당하는 거 하나도 없어.”

“…….”

이서호는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멍하니 굳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연습생으로 들어와서 노력했기에 데뷔할 수 있었던 거고, 꿈을 좇기 위해 힘들고 고된 시간을 버텼으니까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거잖아. 끈기 없는 사람은 그렇게 못 버텨.”

“…….”

이서호는 입술을 벌린 채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이서호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디아스는 우리 다섯 명을 칭하는 말이야. 그중에는 서호 형도 있어. 우리와 함께 연습하고, 함께 노력하고, 함께 울고, 웃은 사람. 다 함께 힘을 합쳐서 얻어 낸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아니. 맞아. 나 노력했어. 무대에서 더 잘하려고 정말, 정말 열심히 했어…….”

“알아. 죽을힘을 다해 연습한 거 내가 곁에서 지켜봤잖아.”

이서호는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작게 웃으면서 “내가 좀 투덜대긴 했지만.”하고 내 말을 받아줬다.

“형이 노력해서 얻은 자리야. 당당해도 괜찮아. 상처 주려고 작정한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 없어.”

“…….”

이서호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침묵이 조금 무거워진다고 생각이 들 때쯤 이서호가 고개를 들었다.

“사실……. 팬미팅 자리에서 내 안티 만난 이후로 계속, 마음이 안 좋았어. 나 진짜 힘들었거든. 괴로운데 말도 못 하고, 나 힘든 거 알아차려 주길 바랐지만, 또 아무도 몰랐으면 했고 그랬어.”

역시 그건 이서호가 보낸 신호였던 걸까.

“그런데 나 사실 위로가 받고 싶었나 봐. 나 열심히 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나 봐. 그걸 눈치채 줘서 고마워…….”

“내가 고맙지. 내 멤버가 되어줘서, 내 가족이 되어줘서 진짜 고마워. 서호 형.”

“……넌 무슨 애가.”

이서호가 길게 한숨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귀가 새빨갛게 익어 있어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나 간다. 잘자.”

“어……. 가라.”

이서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충 손만 휘적거려 날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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