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51화 (251/320)

251.

내 등 위로 멤버들의 손이 올라왔다. 토닥이는 손길은 전부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이런 민폐를 끼쳤는데도 다들 여전히 날 소중히 여겨주고 있었다.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눈가가 시큰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강현 형의 등에 이마를 기댔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지하 2층.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보였다.

“여러분! 저희는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강현 형의 벌칙 완료가 코앞이네요!”

우렁찬 목소리로 발랄하게 말하며 이서호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앵글 밖으로 벗어났다.

우리는 밴에 도착할 때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서호가 인터뷰하듯 물어보면 다른 멤버들이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내가 밴에 타자마자 제일 먼저 유찬 형이 내게 생수를 건넸다.

“많이 놀랐을 텐데 일단 물부터 좀 마셔.”

아, 그래. 나 목이 아팠었지…….

생수를 몇 모금 마시고 손에 쥐고 있었더니 정이한이 내 손에서 생수병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이마를 짚어본 뒤 아직 내겐 낯설기만 한 로드 매니저를 힐끔거렸다.

“열이 높아서 빨리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

정이한의 혼잣말 같은 부탁이 들린 건지 로드 매니저가 얼른 시동을 걸었다.

“다들 안전벨트 매십시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로드 매니저는 몸을 뒤로 돌려 우리가 안전벨트를 맨 걸 확인한 뒤, 차를 출발시켰다.

“형님께서 병원 측에 전달해놨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리고 하온 씨.”

“네.”

몸 안쪽이 절절 끓는 느낌 때문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목소리는 엔진음에 파묻힐 정도로 작고 연약하기만 했다.

“말씀하세요.”

유찬 형이 대신 로드 매니저에게 대답했다.

“열나는 것 말고 아픈 곳은 없습니까? 병원 측에 미리 전달해 놓겠습니다.”

“아……. 손목이랑, 발목, 자국이 좀 남았는데 병원에서 진료받아도 될까요?

내가 묻기 무섭게 유찬 형이 로드 매니저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괜찮으니 전부 사실대로 말해달라는 대답이 돌아와 나는 솔직하게 모든 걸 말했다.

“손목, 발목만 좀 아프고……. 아, 그리고 약, 먹은 것 같아요.”

“약?”

“약이라고?”

“뭐? 무슨 약!”

“미친 새끼 아냐!”

기겁한 형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아니, 내 목소리 지금 엄청 작은데 어떻게 다 들었대? 깜짝 놀라서 움츠렸더니 형들은 억지로 표정을 폈다. 이서호가 욕했던 건 다들 신경도 안 쓰이는 모양이었다.

“무슨 약이야, 하온아?”

애써 웃으면서 묻는 유찬 형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모, 모르겠어요. 몸에서 힘이, 풀리고, 팔다리가 저려서, 움직일 수 없었어요.”

열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어서 말이 뚝뚝 끊겼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헐떡임이 섞여 들어서 말하면서도 민망했다. 아프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죽도록 팼어야 했는데.”

강현 형이 잔뜩 화가 나 중얼거렸다. 괜찮다는 뜻으로 형에게 손을 뻗어 토닥였다. 하지만 형의 표정이 풀어지기는커녕 더욱 험악해지는 걸 보고 슬그머니 손을 거뒀다. 뭔가 역효과 나는 느낌인데…….

그 순간 완전히 거두지 못한 내 손을 강현 형이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표정과 사뭇 다른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손등을 가르는 강현 형의 손가락이 차가웠지만, 시원한 느낌이 오히려 기분 좋았다.

“하온이는 눈 좀 붙여.”

정이한이 내 눈두덩이에 손을 올렸다. 정이한의 체온 역시 서늘해서 불이 날 것 같이 열이 오른 눈두덩이가 시원해졌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어져서인지, 열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쉬고 싶었던 참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몸의 힘을 풀고 늘어트렸다.

의식이 멀어져 주변 소음이 점차 희미해질 무렵, 유찬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곤 형, 박현철이 하온이한테 약 먹였대요. 뭔지 모른다는데 알아내 주실 수 있어요? 네. 저희는 절대 용서할 생각 없습니다. 선처 따위 없어요.”

유찬 형도…… 화 많이…….

***

갑자기 몸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나를 옮기고 있다.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새하얀 병원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눈부셔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분, 정신이 들어요?”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 의사……맞겠지? 나는 얼른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막 병실 침상으로 옮긴 듯, 스트레쳐카가 병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 근처에 옹기종기 서서 날 보는 멤버들을 보고 난 뒤에야 여기가 병원이 맞고, 날 보는 사람이 의사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상황 파악 후 안심이 되자 나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이어 팔에 링겔이 꽂히고, 해열제가 섞인 수액이 투여됐다.

의사가 약물 관련해서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기억 나는 대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형들이 듣고 있는 게 조금 신경 쓰여서 눈동자를 굴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의사는 그 이후에도 내 몸 상태를 여러 번 확인한 뒤 쉬라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멤버들이 내 곁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이제 해열제 투약했으니까 열 내리겠지?”

정이한이 내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걱정했다. 시간이 좀 흘렀을 테니까 상태 이상 끝날 때가 됐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약 안 들었을 때 있었잖아…….”

유찬 형의 말에 잠시 미소를 되찾았던 정이한은 다시 불안해했다. 결국 내가 링겔을 맞는 동안, 멤버들은 불안한 얼굴로 내 침대 근처를 서성거렸다. 거의 일 분마다 내 체온을 체크하며 확인하던 형들은 상태 이상이 끝나고 열이 내리고 나서야 안도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유찬 형이 한숨과 함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형의 목소리에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유찬 형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날 어떻게 찾았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뒤로 미루는 게 좋겠지……?

“유찬 형, 좀 쉬어요. 피곤해 보여요…….”

“진하온 네가 유찬 형 피로 회복제 아니었냐?”

이서호가 킬킬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그런 이서호를 쏘아 보는 유찬 형을 향해 나는 팔을 벌렸다.

“안길래요?”

“……잠깐. 그 발언 괜찮은 거야?”

“네? 뭐가요?”

유찬 형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연거푸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선 내 쪽으로 슬그머니 상체를 기울였다. 아직 좀 먼데…….

하지만 형은 더 가까이 오지 않고, 나와 거리를 유지한 채 미묘해 보이는 얼굴로 날 내려봤다. 두 팔로 단단하게 시트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자긴 여기서 더 숙이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지? 팔에 바늘 꽂혀 있어서 신경 쓰이는 건가. 나는 상체를 일으켜 주저하는 유찬 형의 목에 팔을 걸어 훅 잡아당겼다. 형의 팔이 꺾이면서 내 쪽으로 체중이 쏟아졌다.

“억!”

나는 허겁지겁 일어나려는 유찬 형을 꼭 끌어안은 채 등을 쓸어줬다. 나는 형들이 이렇게 해주면 안심되었으니까. 그러자 어색한 듯 딱딱하게 굳어 있던 유찬 형의 몸이 점차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좀 더 편하게 안겨도 괜찮아요.”

“……아니, 그거, 좀 부끄러운데 하온아…….”

“뭐가 부끄러워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유찬 형이 끙끙 앓다가 소리를 냈다.

“……안, 기라는 거.”

“네에? 평소에 자주…….”

“그건 내가 안아준 거지!”

유찬 형이 머리를 번쩍 들고 항변했다. 나는 형을 내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다른데요?”

“……다른 건, 다른 거…….”

한참 중얼거리던 유찬 형은 어쩐지 허무한 듯한 얼굴로 “그러게, 뭐가 다르지…….”하고 허탈하게 말했다. 기분이 뭔가 묘하다는 형을 보며 웃고 있자 정이한이 소심하게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다음엔 나.”

“좋아요.”

내 대답에 정이한이 밝게 웃었다. 내친김에 강현 형이랑 이서호도 안아줄까 물어봤더니 반응이 정말 천지 차이였다.

“히엑! 난 괜찮아!”

이서호는 치를 떨며 도망치듯 내게서 멀어졌다. 강현 형도 이서호처럼 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형은 줄을 서듯 정이한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형들 때문에 미치겠네.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하온이 웃으니까 보기 좋다.”

내가 헤죽거리면서 웃고 있었나? 정이한이 그렇게 말하며 날 보고 웃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그 순간 머리에서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윽.”

“어, 어? 왜, 왜 그래?”

정이한이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동시에 유찬 형이 벌떡 일어나 날 살폈다.

“어디 아파?”

“……아, 머리가.”

나는 더듬거리며 내 두피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한 부위에 손가락이 스치자 찌잉, 하고 울리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큼지막한 혹이 생겨 있었다.

“머리 아파?”

“혹, 난 것 같아요.”

“그 자식이 때렸어?”

강현 형의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아, 아니요. 맞은 게 아니라…….”

나는 형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입도 막히고, 꼼짝할 수 없어서 쓸 수 있는 게 머리밖에 없었노라고. 그러자 유찬 형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걸 왜 지금 말해!”하고 소리쳤다.

“까, 깜박했어요…….”

“기다려. 당장 쌤한테 말하고 올 테니까.”

유찬 형이 허둥거리며 나가서 의사를 불러왔다. 촉진할 때도 너무 아파서 끙끙 앓았다. 잊고 있을 땐 괜찮았는데 한 번 통증을 느끼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아픔이 몰려왔다.

결국 머리 CT까지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런 경우에는 뒤늦게 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단단히 겁을 줬다. 형들은 내가 이대로 입원하길 바랐지만 가면가왕 촬영이 있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추적 검사를 위해 병원을 꼬박꼬박 오기로 약속한 뒤에야 나는 퇴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약물 검사 결과만 나오면 되겠는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