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45화 (245/320)

245.

아무래도 사진을 본 이후부터 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체력 회복이 잘 안되어서 강현 형과의 페어 댄스 연습도 멈춘 상태였다. 내가 기운 없이 흐느적거리니 형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밥이라도 잘 먹으면 낫겠는데, 박현철 씨를 만난 이후로 뭘 먹든 입 안에서 쓴맛이 돌았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잠도 못 잘 텐데.

원래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부터 돌변하곤 했었다. 그게 극에 달하면 잠을 못 자고. 안 좋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헤집어 대니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지.

상태창의 제약만 없었다면 아마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사달이 났는데도 체력 제한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게 한탄스러웠다.

“하온이 더 안 먹어?”

깨작거리기 무섭게 정이한이 내 밥그릇 위에 제육볶음을 올려놓았다.

“한 입만 더 먹자. 너 요즘 많이 안 먹잖아.”

성의가 있으니 먹어보려고 밥과 고기를 퍼 올렸다. 하지만 이게 맛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쓰레기처럼 느껴져서 선뜻 입에 넣을 수 없었다.

“……저 좀 배불러요. 평소대로 먹은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니거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깜짝 놀라서 팔이 흔들리는 바람에 숟가락 위의 반찬이 밥그릇으로 떨어져 버렸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반찬을 올려 입에 넣었다. 우윽…….

“하온아.”

“……?”

씹느라 대답은 못 하고 고개만 들어 유찬 형을 봤다. 형은 젓가락으로 밥풀을 이리저리 건드리더니 식탁 위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진짜 이유가 뭐야?”

꿀꺽. 나는 씹던 걸 억지로 넘긴 뒤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을 헹궜다.

“진짜 이유요?”

뭘 물어보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때. 박현철 씨 만난 날. 너답지 않았거든.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 너 제대로 못 먹는 것도 그날 이후잖아.”

유찬 형의 말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형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던 걸까. 유찬 형은 내 말 이면에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식탁을 둘러보니 멤버들 모두 평소 먹던 것보다 반도 못 먹은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니.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니 더 이상 식사가 이어지긴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형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인정하자. 그날 강하게 나간 내 작전은 실패했다. 이미 형들도 그걸 눈치챘고, 때마침 내 상태도 좋지 않으니 그냥 이실직고하고 조금이라도 형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그동안 내심 형들한테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그날은…… 죄송했어요. 사실 형들이 걱정돼서 그랬어요.”

“우리?”

“네. 그 사진, 형들 얼굴에 칼……로 그어서 너덜너덜해진 구멍을 본 순간 너무 섬뜩해서. 빨리 잡지 않으면 형들이 다칠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래서 밥도 안 넘어가는 거야?”

끄덕.

유찬 형의 한숨과 정이한의 탄식이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감고 있던 유찬 형이 갑자기 눈을 떴다. 각오를 다진 듯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이한아, 그거 주문해.”

“시계?”

“어.”

“알았어.”

정이한이 곧장 휴대폰을 꺼내 빠르게 액정을 두들겼다. 갑자기 시계는 왜?

“하자.”

“정곤 형한테는?”

“말해야지.”

“실장님 반대가 크다던데.”

갑자기 뭔 이야기를 하냐며 질문할 겨를도 없이 유찬 형과 강현 형의 대화가 이어졌다. 느낌이 꼭, 내가 제안한 계획대로 하자는 이야기 같은데…….

“정곤 형은 내가 설득할 거야. 하온이 저러다 쓰러져.”

“……그럼 제 계획대로 하는 거예요?”

“너 쓰러지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 하지만 네가 충분히 안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실행에 옮길 거야. 대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네가 건강해져야만 도와줄 거니까 알아서 해. 어떻게 할래?”

“밥 먹을게요.”

나는 곧장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입맛은 썼지만, 그렇다고 못 넘길 건 아니었으니까.

***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한 뒤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가면가왕 사전 미팅에 가는 날이었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게 정말 다행이었다.

진짜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자 나는 꽤 멀쩡한 상태로 회복되었다. 여전히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입에 넣으면 그래도 요리의 맛이 느껴지긴 했다.

도중에 회복되는 건 처음이네. 보통 이렇게까지 몰리면 갈 데까지 가던데. 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이 그날 형들한테 못된 말을 한 거였나? 스토커는 그대로고, 유찬 형은 여전히 매니저 형을 설득하는 중이었는데도 내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막 방에서 나가려던 나는 문을 열다 말고 몸을 돌렸다. 이걸 잊었네. 평소 시계 차는 습관이 없어서 깜박한단 말이지.

나는 협탁 위에 고스란히 놓인 스마트 워치를 챙겼다. 정이한은 유명한 브랜드는 눈치채기 쉽다고 무명 브랜드에서 나온 스마트 워치를 사준 걸 되게 미안해했었다. 다음에는 꼭 좋은 걸 사주겠다며 시무룩해했던 정이한을 떠올리자 웃음이 터졌다.

시계를 채우고 모자를 눌러 쓴 뒤 방을 나섰다. 거실 소파에는 강현 형과 매니저 형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형, 저 진짜 숙소에 있어요?”

“그럼 진짜지. 너 날 못 믿어?”

“믿어요.”

“그럼 나한테 맡겨.”

“그거랑은 별개죠.”

아직도 저러고 있네.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멤버들한테는 내 스케줄을 비밀로 하고 데려다준 뒤였다. 덕분에 유일하게 숙소에 남은 강현 형과 매니저 형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강현 형, 저 혼자 다녀올게요. NBC잖아요. 거기에 형이 혼자 있을 걸 생각하면 숨 막힐 것 같아요…….”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나는 그렇게 조심하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자신을 잘 안 챙기니 나만 안절부절못했다.

“하…….”

강현 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정곤 형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 다녀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저 귀한 거 알아요.”

뻔뻔하게 턱을 척 치켜들고 말하자 강현 형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현관까지 배웅해 준 형은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모자 안쪽으로 정리해줬다.

“금방 오지?”

“네. 오늘 스케줄 가면가왕 미팅밖에 없어요.”

“……어.”

나는 강현 형에게 스마트 워치를 찬 팔을 보여줬다.

“이것도 챙겼고요.”

“그래. 다녀와.”

“다녀올게요!”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 형을 따라 현관을 나서면서 강현 형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움직이자 가드분이 따라나섰다.

“아, 오늘은 괜찮습니다. 여기 지켜주세요.”

매니저 형이 가드분을 제지하고 나를 챙겼다. 강현 형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매니저 형과 함께 방송국으로 향하는 차 안은 조용했다. 익숙한 길이라 네비게이션도 틀지 않아, 정말 말 그대로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자동차 엔진음을 들으며 이따금 매니저 형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하온아.”

“억!”

“왜 놀라?”

“아, 아뇨. 형 몰래 훔쳐보고 있었…….”

매니저 형이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날 힐끔거렸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왜요?”하고 화제를 전환 시켰다.

“스토커 유인해 보겠다는 거 지금도 생각에 변함없어?”

“……네.”

“그럼 해보자.”

“헐, 진짜요?”

실장님을 이겼단 말이야? 아니, 어떻게? 놀란 내가 순간적으로 상체를 바짝 세우는 바람에 안전벨트가 꽉 조여왔다. 윽, 어깨 아파. 나는 다시 시트 등받이에 기대며 “실장님 어떻게 설득했어요?”하고 물었다.

“박현철 씨 만난 이후로 너 컨디션 안 좋아 보였는데, 요즘 괜찮아졌잖아. 유찬이가 날 설득하며 그러더라. 밥 잘 먹기로 약속했다고.”

“……아, 맞아요. 저 열심히 먹고 있어요.”

“그거였어. 이러다가 애 잡을 것 같다고 했지. 미팅 끝나고 실장님 면담하러 갈 거야.”

“아! 알겠어요.”

***

다행히도 실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실장님과의 면담은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실장님은 이대로 보안을 강화하며 지내길 원하셨지만, 나는 죄송한 마음을 숨기고 빨리 편해지고 싶다고 고집부렸다. 결국 내 컨디션이 무너져 입원하게 되는 걸 더 걱정하셔서 원하는 대로 해볼 수 있게 해주셨다. 다만 기회는 딱 한 번뿐이라는 걸 거듭 강조하셨다.

박현철 씨와 연락해 우리의 작전 개시일은 가면가왕 1회차 촬영이 끝난 직후로 결정됐다. 그 뒤에는 참가곡 연습, 연습, 또 연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면가왕 촬영 당일. 우리 소속사에서 방송국에 어떻게 이야기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출입구에 우리 측 가드가 배치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승 축하드려요, 힐러님!”

“감사합니다!”

나는 치렁치렁한 옷을 끌고 변조된 마이크로 스태프분들에게 인사하며 [힐러] 라고 쓰여 있는 내 대기실로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날 걱정하는 실장님과 매니저 형이 나간 뒤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이제 시작이네. 경찰이 함정수사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라니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이렇게 하는 게 베스트잖아.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잡아야지. 정확한 증거를 얻기 위해 카메라가 달린 단추를 채운 뒤 녹음기까지 주머니에 넣었다. 형들이 준비해준 미니 호신용 스프레이가 녹음기와 함께 부딪혀 짤랑거렸다. 소리가 좀 거슬렸던 나는 다른 주머니로 스프레이를 옮긴 뒤 박현철 씨에게 연락했다.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온 씨.”

“들어오세요.”

대기실로 들어온 박현철 씨는 내부를 휘익 둘러본 뒤 “혼자예요?”하고 물었다.

“네. 혼자요.”

“그때 GPS 추적할 수 있게 하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가지고 오셨어요?”

“스마트 워치 차고 있어요.”

“녹음기는요?”

“주머니에 있죠!”

“스프레이는요? 지난번에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주머니에…….”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지?

“다른 건 없어요?”

“네. 없어요.”

묘한 느낌이 들어서 단추 카메라 이야기는 함구했다.

“그럼 녹음기 잘 되는지 테스트해 보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미리 확실하게 체크하고 가시죠.”

그냥 직업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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