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42화 (242/320)

242.

강현 형과 춤 연습을 하다가 제대로 발이 꼬여 버렸다. 이건 완전히 넘어지는 각인데!

“헉!”

그 순간 강현 형이 내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팔이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공중에서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균형을 되찾은 내가 몸을 다시 똑바로 세우자 형은 내 팔목을 놓아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매트리스 깔자.”

“매트리스 재질 때문에 스텝이 잘 안 되는걸요.”

지금 우리는 내가 영상을 보고 가장 심란해했던 그 구간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형의 옆구리에 붙어 깍지를 낌과 동시에, 강현 형의 발을 기준으로 45도 정도의 사선으로 내 몸을 뒤로 젖힌다. 그리고 그대로 스탭을 밟아 형의 등을 지나 정면까지 돌아야 하는 동작이었다.

스텝과 손깍지 바꾸는 타이밍까지 전부 머리로는 계산이 끝났는데, 문제는 이걸 몸으로 하려고 하니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거였다. 매트리스 위에서 운동화는 너무 뻣뻣해서 미끄러지질 않았고, 그렇다고 양말만 신고 하자니 또 너무 미끄러웠다.

그래서 매트리스를 빼고 맨바닥에서 해보는 중인데 확실히 매트리스 위에서 할 때보다 진도가 쭉쭉 빠지고 있었다. 문제는 위험성도 함께 높아졌다는 거지만, 그래도 강현 형이 제때제때 잘 잡아줘서 괜찮았다.

“이러다 다칠 것 같아. 그냥 위에서 해.”

강현 형은 한쪽으로 치워둔 매트리스를 다시 질질 끌고 왔다. 발이 푹푹 빠지는 매트리스 위에서 신발 바닥을 비벼보던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 저었다.

“여기는 너무 뻑뻑해요. 그래서 버티는 힘은 좋지만 움직일 때 자꾸 발이 걸려요.”

“맨발로 해보면?”

“양말 벗고요?”

“어.”

그 생각은 못 했네. 일단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에 나는 벤치에 앉아 운동화를 벗은 뒤, 양말을 신발 안에 콕콕 쑤셔 넣었다. 그 뒤에 아무 생각 없이 벌떡 일어났더니 연습실 바닥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어으, 바닥 엄청 차가워요…….”

나는 발끝으로 종종 걸어 빠르게 매트리스 위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폭신한 매트리스가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왔다. 어우, 이제 살 것 같다.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었더니 강현 형이 어쩐지 좀 흐뭇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귀여워서.”

“…….”

까암짝 놀랐네, 진짜. 민망함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당황하고, 부끄러워서 고장 나는 건 고치지 못하는 건가.

“빠, 빨리 다시 해봐요!”

티 나게 화제를 돌렸더니 강현 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형은 한층 더 그윽해진 눈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이 분위기 진짜 못 참겠어…….

“노래 틀어주세요…….”

“그래, 알겠어.”

대답하는 강현 형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괜히 헛기침하고 있자 형이 노래를 재생했다. 문제가 되는 안무 바로 앞에 있는 미러 댄스부터였다. 여긴 이미 안무 습득이 끝난 구간이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미러 댄스가 끝나고 이어서 문제의 동작이 시작되었다. 나는 강현 형의 옆에 붙어 형과 깍지를 낀 다음, 형의 발등에 발가락을 올린 채 몸을 뒤로 젖혔다.

거울을 보며 내 몸이 제대로 일직선이 되었는지 체크한 뒤, 스텝을 밟았다. 왼쪽 발을 오른쪽으로 넘기고, 오른쪽 발을 또 왼쪽으로 넘긴다. 그와 동시에 깍지 낀 손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으며 정면을 보고 있는 형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주의한다.

맨발로 하니 발의 감각이 더 예민해져서 그런지, 지금까지 중에 스텝 밟는 게 제일 쉬웠다. 이 기세를 쭉쭉 밀어 한 바퀴를 다 돌고 강현 형의 가슴 앞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어? 됐어요!”

처음으로 성공한 기쁨에 제 자리에서 폴짝 뛰었더니 강현 형이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쓰다듬었다.

“잘했어. 몇 번 더 연습하고 그다음에는 원래 템포로 가자.”

“좋아요!”

한 번 성공했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원래 템포대로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빨라져야 하지만 어쨌든 한 번은 성공했잖아? 그렇다는 건 이제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될 때까지 연습하는 건 자신 있었다.

***

강현 형과의 페어 댄스는 하루가 거듭될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연습에 진심인 사람들이라 연습실에 콕 박혀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이니까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는걸.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벌써요?”

아직 11시밖에 안 됐는데. 나는 땀으로 범벅된 트레이닝 상의를 펄럭거렸다.

“내일 박현철 씨 만나러 가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나는 좀 더 해도 되는데. 아쉬움에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더니, 강현 형이 연습실 구석을 향해 턱짓했다. 그곳에는 매니저 형이 잔뜩 꾸겨진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매니저 형 많이 피곤한가 봐요…….”

“그렇겠지.”

아직 본격적인 개인 스케줄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우리는 회사에 자율적으로 출퇴근하는 중이었다. 유찬 형과 정이한은 다음 앨범 곡 작업 때문에 한창 바쁜 상태고, 이서호는 드라마 캐스팅을 받아들여서 연기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강현 형은 연습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출퇴근 시간이 각기 다르다는 거였다. 가드가 우리와 함께 다니는 데도 매니저 형은 운전대를 넘겨주지 않고 모든 멤버를 손수 케어하려고 했다. 그러니깐 저렇게 피곤해하는 건 당연하지.

유찬 형과 정이한은 오전 9시쯤에 숙소로 돌아가고, 나랑 강현 형은 새벽 1시에서 2시에 귀가. 그러고 7시에서 8시 사이에 우리는 다시 회사로 간다. 마지막으로 이서호는 오후 2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쯤 되면 퇴근.

거기에 중간중간 멤버들의 개인 스케줄 미팅과 사무 업무까지 하고 있으니. 확실히 생체 리듬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스케줄이었다. 저렇게 형이 구석에서 조는 걸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그 때문에 더 연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쑥 내려가 버렸다.

내 스토커 때문에 멤버들은 자유를 잃었고, 매니저 형은 과로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전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울적해지네. 스토커 빨리 잡았으면 좋겠다…….

“하온이 잘못 아니야.”

……이 형은 독심술이라도 하나. 뜨끔한 심정이 되어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만 봐도 알지.”

강현 형은 피식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어 토닥거렸다.

“정곤 형 좀 더 쉬게 하고 옥상으로 바람이나 쐬러 갈래?”

“아, 좋아요!”

우리는 매니저 형이 깰까 봐 살금살금 움직여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

옥상 정원으로 나오자마자 상쾌한 가을바람이 바짝 열이 오른 몸을 식혀줬다. 옥상 정원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강현 형뿐이었다. 옥상을 전세 낸 듯한 기분에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난간 끝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빌딩 아래로 펼쳐진 야경은 꼭 은하수를 내 발밑에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원하다.”

뒤에서 들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동시에 강한 바람이 옥상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흔들며 연주를 시작했다. 평화롭다…….

“그러게. 구름도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강현 형을 따라 나도 고개를 들었다. 띄엄띄엄 빛을 내는 별이 몇 개 보였다. 나는 난간을 붙잡은 채 상체를 뒤로 젖혀 두 눈 가득 까만 하늘을 담았다.

“서울에서는 별이 잘 안 보여서 아쉬워요.”

무인도와 남해에서 봤던 쏟아질 것 같던 별이 내 머릿속에 선명했다. 그 하늘을 또 보고 싶었다. 유찬 형이 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니까.

또 한 번의 바람이 우리를 휩쓸고 갔다. 가을밤의 바람은 생각보다 더 서늘해서 열기가 식다 못해 살짝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트레이닝 저지의 지퍼를 채워 올렸다.

“추워?”

“땀이 다 식었나 봐요.”

“땀 식으면서 열도 앗아 가니까.”

강현 형이 입고 있던 저지를 내 어깨에 걸쳐주려고 했다. 그럼 형은 반팔 셔츠 하나뿐인데? 드러난 팔뚝이 너무 추워 보여서 나는 두 손을 마구 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아요. 형도 춥잖아요.”

“난 아직 더워.”

그러면서 얼굴을 내게 가까이 붙여왔다. 잘생긴 얼굴이 다가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렸다.

“……왜, 왜요?”

“봐봐. 나 아직 땀 나잖아.”

그걸 보여주려고 얼굴을 가져다 댄 거야? 황당함에 헛웃음을 짓는 사이 어느새 형의 저지가 내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하온이는 감기 걸리면 안 되고.”

“이 정도로 감기 걸리진 않아요.”

다시 벗어주려고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강현 형이 내 손목을 붙잡은 채 지그시 내리눌렀다.

“그냥 입어.”

“힘으로 이러기 있기에요?”

“이런 건 좀 강압적이어도 돼.”

그렇게 말하는 강현 형의 눈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못이기는 척 형의 저지에 팔을 꿰어 넣었다. 내 저지 위에 겹쳐 입었는데도 품이 커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좋네.”

“뭐가요?”

“남친 셔츠.”

“……이, 이게 무슨 남친 셔츠에요!”

강현 형은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는 날 감상하듯 내려봤다. 나는 팔로 엑스자를 만들어 가슴을 가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상해. 강현 형 수상해 보여.

“내가 경계 받을 짓을 했나?”

“형 눈빛이 수상해요, 지금.”

“하온이, 의외로 눈치가 빠르잖아?”

“진짜예요? 뭔데요? 방금 그 눈 뭐였는데요?”

강현 형은 입을 다물고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아, 진짜 뭐였는데요. 저 궁금해요!”

“들으면 후회할 텐데?”

“그……정도예요?”

그럼 안 들을래. 후회할 만한 내용이면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때, 강현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였다면 지금 당장 키스했을 텐데, 라는 생각.”

“어, 어? 네? 뭐, 뭐요?”

“그것 봐. 후회할 거라니까.”

형의 말이 백번 천번 맞았다.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는 사이 강현 형의 손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동시에 형의 얼굴이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머리를 뒤로 빼려던 내 시도는 강현 형의 손에 막혀 허사로 돌아갔다.

“가, 강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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