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37화 (237/320)

237.

나는 반사적으로 교주의 팔을 붙잡았다.

“누군지 알아?”

나를 내려보던 교주가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만으로 대답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군지 물어보기는 좀 그렇고. 나중에 전화라도 해 봐야 하나.

“알려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건 무슨 서비스야?”

“변덕.”

아, 그렇군. 교주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묘하게 납득되는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더니, 교주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뭘 또 이해하고 있어요?”

“재혁 씨니까?”

“날 얼마나 잘 안다고.”

“최소한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는 내가 제일 당신을 잘 알지 않을까 싶은데.”

교주는 유쾌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양궁 금메달은 제 거예요.”

“나도 호락호락하진 않아.”

“9점 몇 번 맞췄죠?”

“…….”

아, 그래! 너 잘났다! 나는 10점은커녕 9점 두어 번 맞춘 걸로 양궁 준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이건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기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교주는 텐텐텐을 터트리다 못해 과녁 중앙에 있는 카메라까지 깨는 실력을 보여줬다.

전생에 올림픽이라도 나갔던 거 아니야? 그런 의심을 담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삐죽거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따셨나 봐?”

“뭐, 금은 아니었지만.”

“……어?”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아니, 진짜 전생에 양궁 국가대표라도 한 적 있다는 거야? 뭐야?

“우리 차례네요. 가시죠, 선배님.”

와, 이거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고 보니 교주가 활을 잡았을 때 MC들이 교주의 자세가 국가대표 못지않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일단 금메달은 포기하자. 나는 원래 안 되는 거엔 포기가 빠른 사람이니까. 내 목표는 은. 은이다!

하지만, 이런 내 각오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메달을 땄다. 마지막에 6점을 맞추는 바람에 1점 차이로 은메달을 놓쳤다. 내내 잘했는데 하필 결승전에서!

이번에도 텐텐텐으로 퍼펙트 점수를 낸 교주가 금메달을 가져갔다. 교주는 금메달에 키스한 뒤 팬 석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쏟아지는 함성의 주인공은 교주였다. 치트 썼으면서 쓸데없이 멋있고 난리야.

속 마음과 달리 나는 순진한 미소로 무장한 채 교주의 승리를 축하하며 박수 쳤다. 그리고 교주의 들러리가 된 듯한 메달 시상식이 끝나자 터덜터덜 시상대에서 내려왔다.

“동메달도 진짜 잘한 거야!”

내 표정이 얼마나 시무룩했으면 이서호가 나를 다 위로하지. 나는 괜히 내 목에 걸린 동메달을 만지작거리면서 내려봤다.

“우리 금, 은, 동 다 모았네.”

유찬 형이 들고 있던 메달들을 내 목에 걸어줬다. 메달이 세 개가 되니까 은근히 무거운 것 같기도 하고…….

“야야. 내가 100미터에서 금메달 하나 또 따줄게.”

“아! 나도 나가잖아, 결승전!”

“스포츠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아무리 너라도 봐줄 수는 없어. 진하온.”

이서호의 태도는 진지했다. 자기가 언제부터 스포츠맨이었다고. 게다가 나는 봐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나도 안 봐줄 거거든?”

이서호는 영혼 따위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어투로 ‘그래, 힘내라!’하고 응원했다. 어디 두고 보자. 전생의 힘까지 끌어모아 달려 줄 테니까.

***

농구 결승전을 보기 위해 우리 세 사람은 농구장으로 들어갔다. 결승전이라 그런지 다른 경기보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전반전은 다 날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작이 좀 늦어졌던 모양이었다. 전반전이 시작된 지 고작 10여 분이 지난 시간이라, 형들이 농구 하는 건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한 걸그룹 선배님들이 우리를 향해 나긋한 눈웃음과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반사적으로 마주 인사한 뒤 허리를 들자, 선배님들은 손을 흔들며 화답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걸그룹 멤버들이 꽤 보이네. 준결승전에는 몇 명 안 보였는데, 여성팀도 끝난 종목이 늘어나서 그런가.

“강현 씨 너무 멋있어…….”

소란스러움을 뚫고 강현 형의 이름이 내 귀에 걸렸다. 우리 뒤쪽에서 들린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거렸다.

“나는 이한 씨가 더 내 취향이야.”

“너도 진짜 소나무다. 난 저렇게 사나운 인상은 별로.”

“생긴 거랑 다르게 완전 초식남이야. 그 갭에 발린다니까.”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가 자꾸 신경 쓰였다. 강현 형 멋있는 건 나도 잘 알고, 정이한이 다정한 건 내가 더 잘 안다. 사람들이 우리 멤버를 좋게 봐주면 좋은 건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지.

디어리가 우리 멤버들을 좋아해 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걸그룹이라 그런가. 괜히 연애설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잖아. 아무리 그들이 두 사람을 마음에 둔다고 해도 정이한이랑 강현 형은 받아 줄 사람들이 아닌데…….

미묘하게 싱숭생숭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이서호가 폴짝거렸다.

“와악! 이한 형! 3점 슈우우웃!”

“꺄악!”

뒤에서도 멋있다고 난리가 났다. 운동 잘하는 초식남이라 더 완벽하다나 뭐라나. 뒤를 돌아보고 다 들린다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조심성 없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뭐 하는 건지. 다른 멤버들이 옆에서 안 말리나?

괜히 신경이 쓰여서 농구 경기가 눈에 안 들어왔다. 차라리 자리를 이동했으면 좋겠는데…….

“유찬 형.”

흥분한 유찬 형의 귀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형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다시금 형을 불렀다.

“유찬 형!”

“어? 왜? 하온아?”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 안 들려요?”

“응? 뒤에서?”

형이 뒤를 돌아보려고 하자 깜짝 놀란 내가 황급히 말했다.

“아니! 돌아보지 말고요.”

“아.”

유찬 형은 눈짓으로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낸 뒤 귀를 기울이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가만히 들어보던 유찬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중하니까 들리긴 하네. 그런데 왜?”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자꾸 형들보고 멋있다고 하잖아요…….”

내가 설명에도 유찬 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굴었다.

“응. 그런데?”

나만 이상한 거야? 유찬 형의 태도에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나는 지금 왜 이런 이상한, 무언가가 발치에서 스멀거리는 듯한 묘한 불쾌감을 느끼는 거지?

“……그냥 신경 쓰여서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한 뒤 농구 코트로 시선을 옮겼다. 유찬 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콕 찌르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 애들 인기 많으면 좋은 거지, 뭐. 먹힌다는 소리잖아. 그렇다고 애들이 마음 받아줄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

유찬 형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저 형의 말에 동조하며 웃어 보였다. 가슴 안쪽이 답답해. 내가 느끼는 불쾌감의 기원을 찾지 못해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점점 가라앉는 내 기분과 달리 농구 결승전은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상대 팀 선수들도 만만치 않아서 전반전 내내 두 팀은 비슷한 점수에서 다투었다. 하지만 후반전으로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강현 형과 정이한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귀신같이 강현 형에게 공을 돌리는 정이한과 공을 잡기만 하면 골인으로 연결 시키는 강현 형. 두 사람의 연계 플레이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매끄러웠다. 그 때문에 농구장에는 내내 감탄을 섞은 함성이 떠돌았다.

형들이 활약하면 할수록 뒤에서 들리는 환호성이 귀를 갉작갉작 긁어댔다.

***

드디어 농구 경기가 끝났다. 강현 형의 굳히기 3점 슛으로 옐로우 팀이 농구 종목의 최종 우승팀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곁눈질로 내내 강현 형과 정이한을 두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누군지 모르겠어……. 선배님들한테 실수하면 안 되니까 대부분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전부를 아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뭘 경계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내 경계 대상에 넣어두고는 이서호와 유찬 형을 잡아끌었다.

“형들 데리러 가요!”

빨리 강현 형과 정이한을 데리고 디어리가 있는 우리 대기석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고고!”

얼굴에 열이 오를 정도로 열띠게 응원한 이서호가 내게 호응했다. 우리는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농구 코트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주섬주섬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 사람은 또 누구야? 정이한 앞에 낯선 여성분이 수줍은 얼굴로 서 있었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그 여성분은 연신 까르르, 웃으면서 부끄러워했다.

“엥? 누구지?”

“그러게.”

이서호와 유찬 형도 그 모습을 발견했는지 나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는 강현 형은 한 발짝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 강현 형의 곁에도 성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으나, 정이한의 주변과는 다르게 누구 한 명 형에게 선뜻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강현 형은 말 그대로 분위기만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이한의 곁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든 것 같았다.

……아, 이거 뭐지. 기분 되게 찝찝하네. 진짜.

생글거리는 정이한을 보고 있자니 아까 느꼈던 불쾌감이 다시 퍼지고 있었다.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투명한 물에 퍼지는 물감처럼 순식간에 내 마음에 이상한 색을 입혔다.

“하온아!”

뒤늦게 나를 발견한 정이한이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쪽으로 오는 정이한은 강현 형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뿌듯해 보였다.

“우리 경기 봤어? 나 어땠어? 잘했어?”

정이한은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강현 형이 잘했죠.”

그냥 잘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막상 뱉고 보니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이 툭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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