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22화 (222/320)

222.

“다, 당연히 궁금하죠…….”

이연휘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치를 살폈다. 여기저기 불긋불긋하게 물든 피부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부러 이연휘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연휘 씨…….”

“으, 으악! 너무 가까워요!”

이연휘가 뒤로 물러나며 내 가슴을 툭 밀어냈다. 그 순간 내 허리를 붙잡고 있던 정이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조임이었다.

“윽, 이한 형. 숨 막혀요.”

“어, 미, 미안.”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서 떨어질 것 같진 않았다. 거의 밀착하다시피 한 정이한을 매달고 걸으려니 슬슬 피곤해졌다.

“이제 이것 좀 풀어줘요.”

“……싫어.”

갑자기 왜 이렇게 고집부리지?

“하온 씨가 싫어하면, 당연히 그만두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내내 소심하게 굴던 이연휘가 뱉은 말이 꽤 날카로웠다. 정이한이 딱딱하게 굳는 게 맞닿은 등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시에 유찬 형이 나와 이연휘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요?”

“네? 아, 하온 씨가…….”

언제 매섭게 굴었냐는 듯 다시 수줍음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이중적인 모습이 보였다. 이연휘는 유찬 형을 지나쳐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절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다고 하셔서요…….”

“그래? 뭔데?”

궁금해하는 유찬 형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애초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던 거라 별 의미 없었던 말이었다. 나는 장난이었다는 걸 한껏 드러내며 적당히 수습했다.

“연휘 씨 디어리 같아서요.”

“어? 그래?”

유찬 형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이연휘는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떻게 알았냐고 중얼거렸다.

“저를 보는 눈이 우리 디어리랑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느낌이 딱 왔죠.”

“윽. 그건 들킬 수밖에 없네요. 저 하온 씨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이연휘의 미소는 자연스러웠다. 왜인지 모르지만 내내 굳어 있던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긴장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그래야 방심해서 본성을 드러낼 테니까.

연습실 입구에 도착해 유찬 형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강현 형과 이서호가 따랐다. 이제 이연휘가 들어갈 차례였는데 그는 들어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거렸다.

“……알아봐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당연히 절 모르실 줄 알았거든요. 호, 혹시 기억나세요?”

“네? 뭐를요?”

“예전에 저희 만난 적 있는데…….”

이연휘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진짜 맞는 것 같은데. 스토커가 보낸 편지에 예전에 우리가 만난 적 있다는 걸 언급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기억 못 하면 서운할 거라고 했었던가. 화를 낸다고 했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나네.

“죄송해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우리가 언제 만났던가요?’하고 말을 이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날 보던 이연휘가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내렸다.

“그, 그렇죠. 당연히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어요.”

이연휘는 그렇게 말한 뒤 “조금 섭섭하지만요…….”하는 말을 덧붙였다. ‘소심하다.’와 ‘스토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았는데, 내 앞에 있는 이연휘가 바로 그 소심한 스토커 같았다.

***

두 사람을 배웅하자마자 이서호가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흐어어어…….”

평소처럼 까불지도 않았던 이서호다. 그만큼 긴장해 있었던 듯 내쉬는 숨에 안도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서호 형, 긴장 많이 하던데.”

“말도 마. 차라리 연습하는 게 낫겠어…….”

이서호가 손을 휘적거렸다. 그러더니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유찬 형에게 덥석 매달렸다.

“진이 다 빠졌어…….”

“넌 아무것도 안 했잖아.”

유찬 형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허리를 굽혀 이서호를 업어줄 것처럼 굴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이서호는 유찬 형의 등을 툭 치고 몸을 바르게 세웠다.

“나 이제 무겁거든!”

“그러냐.”

“엄청 무거움.”

이서호는 이게 다 근육이라며 힘을 주며 근육을 자랑했다. 우리는 장소를 의식해 스토커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채 연습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연습실에 도착해서 문을 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유찬 형이 말을 꺼냈다.

“이연휘 씨가 맞는 것 같은데.”

우리는 평소 회의할 때처럼 연습실 바닥에 둥그렇게 앉으며 대화를 이었다.

“확실해. 아까 나 견제했어.”

정이한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이한이 말한 ‘아까’는 떨어지라고 단호하게 말했을 때인 것 같고.

“나도 노려봤어.”

강현 형은 언제 이걸 느꼈지? 내가 갸웃거리자 강현 형이 부연 설명을 했다.

“녹음실에서 녹음할 때.”

“아.”

정이한과 유찬 형이 잘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렸다. 두 사람은 안을 보고 있었으니 당연히 모를만했다.

“아까 녹음실에서 강현 형이 제 다리 베고 누웠거든요.”

“다들 행동 잽싸네…….”

유찬 형이 다른 멤버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스토커를 제일 많이 상대한 건 유찬 형이긴 했지.

“저도 수상한 거 있었어요.”

“뭔데?”

“저랑 만났었대요.”

“어? 그거!”

유찬 형이 손가락을 튕기며 눈을 크게 떴다.

“편지에 있었어. 분명 기억 못 하면 섭섭할 거라고 쓰여 있던 걸로 기억해.”

“섭섭할 거라고 쓰여 있었어요?”

내가 떠올린 건 다 꽝이었네. 그보다 편지에 섭섭하다고 쓰여 있었다면 더 확실하지.

“그 사람 제가 기억 못 해서 섭섭하다고 했어요.”

이연휘가 스토커가 맞겠다는 강렬한 예감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가 말을 멈춘 채 제각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는 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범인은 알았어. 그런데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길을 잃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어떡해?”

그걸 증명하듯 이서호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유찬 형의 대답은 유독 힘이 없었다.

“엑? 그럼 진하온 계속 스토킹 당해야 하는 거야?”

“아직 피해 본 게 없잖아. 편지가 전부고.”

강현 형이 한숨 쉬며 말했다. 그렇지. 일단 매니저 형은 이후에 편지가 또 오면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했다. 오늘 일이 편지에 언급될 수도 있다면서. 그러면 정말 확실해지는 거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쓸 만큼 스토커가 멍청할까?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드러날 내용을 편지에 쓴다고? 하지만 오늘 내 앞에서 편지에 쓴 내용을 그대로 언급한 걸 보면 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편지 내용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뻔뻔하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우리 관계를 더할 나위 없이 은밀하고 깊은 사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편지에 오늘 만난 내용이 없다면 이상할 것 같았다. 스토커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으니 뭐든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어쨌든 범인은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 그 사람만 조심하면 되겠네요.”

“그건 그렇지.”

“게다가 직위상 우리랑 엮일 일도 별로 없어.”

유찬 형의 말에 동의하며 나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해야 하는 건.

“이제 무대 연습하죠!”

팬 미팅까지 코앞이다. 라이브 활동과 병행하면서 준비한 무대였다. 더구나 나는 다리를 다쳐서 일주일 동안 연습 못 한 공백기가 있었다. 그걸 메꾸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스토커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멤버들 모두 기합을 바짝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팬 미팅 당일.

내 스토커 때문인지 우리에게는 밀착 가드가 배정되었다. 그동안 매니저 형이 경호까지 담당했는데 앞으로는 우리 전속 가드와 함께 행동할 거라고 매니저 형이 가드분들을 소개해 주었다.

항상 그렇듯 어색하기만 인사 시간이 지나자 이서호는 어느새 가드분들과 친밀해져 있었다. 나는 조금 거리감을 느껴서 형들 틈에 콕 박혀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드분들은 우리 대기실 입구를 근엄한 포즈로 지키고 서 있을 뿐, 대기실까진 따라 들어오진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어깨의 힘을 뺐다. 아, 뻐근해. 되게 긴장되네.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고, 리허설 무대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이제 남은 건 팬 미팅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오늘 우리 무슨 게임 할지 들었어?”

이서호가 물었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디어리 투표로 받았다던데 안 알려주시네.”

“빼빼로 게임, 종이 옮기기 게임, 손바닥 밀치기 게임.”

그때 강현 형이 줄줄이 읊어서 우리 모두 형을 주목했다. 강현 형은 어깨를 으쓱인 뒤 “추측.”하고 대답했다. 근데 좀 신빙성 있어 보여. 디어리가 원하는 게임이 뭘지 이리저리 추론하며 찾아보는 사이 기다리는 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곧장 백스테이지를 향했다. 대기실을 나와 백스테이지를 향해 걷는 동안에도 디어리의 함성이 내 귀에 꽂혀 들었다. 콘서트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이 순간은 모든 걸 잊고 무대에 내 몸을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얘들아, 곧 시작이야.”

유찬 형이 눈짓을 보냈다.

- 디어리 여러분! 준비되셨나요?

영상 속 유찬 형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 호응한 디어리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동시에 우리 앞을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시야가 확 트이며 아름답게 빛나는 응원봉의 불빛이 내 앞을 물들였다.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손을 흔들며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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