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김지우는 탐정이라도 된 듯한 매서운 눈으로 화면 속의 하온이를 뚫어지게 봤다. 쓰러졌다고 하던데 괜찮은 건가? 조금 창백한 것 같기도 하고. 김지우는 최애가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평면적인 모니터를 보면서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하온이의 안색을 집중하여 살폈다.
[어어……. 저 괜찮은지 묻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하온은 난처하게 웃으면서 뺨을 긁적였다.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자 풍성한 속눈썹이 음영을 만들면서 부드럽게 팔락거렸다.
‘내 새끼 너무 예뻐!’
김지우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머리를 박았다.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경건하게 해주는 미모였다. 앞에서 숨만 쉬어줘도 여생이 행복할 것 같았다.
‘잠깐, 진정. 진정하자.’
김지우는 심호흡하며 채팅창에 ‘이제 괜찮은 거야?ㅠㅠ 아픈 데 없어?ㅠㅠ’하고 물었다. 비록 그녀의 말은 수많은 채팅에 섞여 쓸려갔으나 묻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그냥 좀 피곤했었나 봐요. 형들 성화에 병원도 다녀왔는데 그냥 하루 푹 쉬면 된대요.]
‘진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하온이 옆에 멤버들이 없었다. 정말 몸이 안 좋았다면 멤버들이 옆을 딱 지키고 있었을 테니 괜찮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고, 하온이가 아무 일 없이 카메라 앞에 서준 게 고마웠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와준 건가?’
그 마음을 뻔히 알기에 이번에는 감동으로 눈가가 시큰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느낌이었다. 하온이는 항상 그랬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애틋했다.
[그러니까 우리 디어리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걱정해줘서 고맙고, 걱정끼쳐서 미안해요. 음, 그보다 저는 우리 디어리들 보니까 너무 좋은데 우리 디어리는 어때요?]
이걸 질문이라고 하나? 아무리 최애라지만 이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당연히 답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니냐고! 김지우는 ‘당연하지! 너무 좋아! 행복해!’하고 씩씩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사실 저희 다음 스케줄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숙소로 돌아왔거든요. 지금 좀 소란스럽죠?]
하온은 주변 눈치를 보듯 뒤를 힐끔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속닥거렸다. 그 바람에 얼굴이 화면에 가까이 다가와 김지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강현 형이 특제 점심을 준비 중인데 서호 형이 옆에서 보조하고 있거든요. 지금 서호 형이 주방을 뒤집어엎고 있어요.]
하온눈이 별명 누가 지었냐, 진짜 찰떡이야. 목소리 너무 좋잖아! 하온이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새의 지저귐 같았다.
[지금 주방 상황 보여드릴까요?]
[이동하려고?]
화면 속에서 유찬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반가움에 인사하기도 전에 갑자기 유찬이 화면 밖으로 벗어났다. 동시에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더니 곧 초점이 흐릿해졌다.
[잘 잡아야지. 그러다 떨어진다.]
[아, 잠깐만요, 형. 휴대폰……!]
어? 뭐지? 카메라 초점이 돌아오고 나서 보니 하온과 유찬이 나란히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 보였다. 카메라가 일정한 박자로 흔들렸다.
이건 꼭, 꼭……. 하온이가 유찬이한테 안겨있는 그런 느낌인데? 김지우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채팅창을 터트릴 듯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 모야모야? 지금 찬리더 하온이 공주님 안기한 거?
─ 둘이 무슨 일 있었어?!
─ 우리도 알려주라ㅠㅠㅠ!
채팅을 봤는지 박유찬이 푸흐, 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
[저희끼리 게임을 좀 했는데 제가 졌거든요. 그 벌칙입니다. 일주일 동안 하온이 발이 되기로 했어요!]
‘유찬이한테는 벌칙이 아니라 상 아닌가?’
그 말을 증명하듯 유찬은 연신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어떤 게임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하온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화면이 이동했다.
화면에 잡힌 건 숙소의 주방이었다. 하얀 밀가루가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서호가 우왕좌왕하며 밀가루를 닦는 중이었다. 강현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는데 그 손도 밀가루투성이였다.
[강현 형, 디어리한테 인사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강현이 카메라를 보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마에 선명하게 남은 하얀색 손바닥 자국에 김지우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강현이 저런 거 처음 봐! 아하하!”
[이서호, 제대로 치워라.]
[형, 근데 이거 때 나오는 거 같아…….]
젖은 행주로 바닥을 닦던 이서호가 뭉쳐서 굴러다니는 밀가루를 가리켰다. 강현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행주로 바닥 닦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젖은 걸로 밀가루를 문지르면 당연히 뭉치지.]
[……그럼 뭐로 닦아?]
[얘들아! 청소기…….]
청소기를 번쩍 들고 나타난 정이한이 사태를 보고는 멈칫거렸다. 허망한 얼굴로 엉망이 된 바닥을 보던 정이한은 바닥에 청소기를 내려놓았다. 개그 프로그램이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이돌 자체 컨텐츠만으로도 이렇게 웃긴 데 당연하지.
채팅에 ‘ㅋㅋㅋ’가 도배되고 있었다. 김지우도 신나게 웃으며 그 대열에 합류했다. 좋아하는 디아스 멤버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이 느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
지난 일주일 동안 편하면서도 불편한 시간이 계속됐다. 휴식할 때는 심장보다 발을 높게 들어주고, 압박 밴드를 항시 착용하고, 틈틈이 냉찜질을 하다가 온찜질로 바꿨으며, 물리치료도 받았다.
이런 건 괜찮았으나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우리 멤버들이었다. 특히 유찬 형이 유독 내 부상에 대한 책임감을 덜어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형이 자발적으로 내 수발을 들어주고 싶다고 했을 때 나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적당히 부축 좀 받으면 형의 멘탈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보는 눈이 있을 때 발목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다니기 위해서는 멤버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유찬 형이 외부인의 눈이 없는 회사나 숙소에서도 나를 업거나 안고 다니려고 들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첫날에는 씻는 걸 도와주겠다고 욕실까지 들어올 기세였다고!
진심으로 싫다고 치를 떤 덕에 나는 무사히 혼자 씻을 수 있는 자유를 얻어냈다. 다리 염좌 가지고 샤워까지 돕겠다는 건 좀 오버잖아.
유찬 형뿐 아니라 정이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껌딱지력이 올라간 정이한은 한사코 내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강현 형도 계속 내 발목 상태를 확인했고, 이서호는 내 옆에서는 발꿈치까지 들고 조심스럽게 다녔다. 저가 실수해서 나와 부딪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다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지.
나를 막 태어난 밤비처럼 취급하는 멤버들 덕분에 무대에 올라갈 때의 컨디션은 좋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일상생활을 할 때는 묘한 불편함이 차곡차곡 쌓이던 중이었다. 과보호가 과해도 너무 과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오늘로 끝이다. 나는 당당하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며 개운하게 웃었다. 지금 막 교수님께 완치 판정을 받은 참이었다. 진짜 몸조심해야지.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이제 괜찮대?”
“네. 관리 잘했다고 칭찬도 받았어요.”
나는 내 다리의 건재함을 증명해 보이고자 바닥을 쿵 내리찍었다. 신경을 거슬렀던 통증은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해야 해.”
강현 형이 내 어깨를 지그시 짚었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조심할게요!”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설 수 있어.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비록 활동기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다른 스케줄이 거의 없어서 온전히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우리의 첫 팬 미팅도 예정되어 있었다. 디어리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나는 발목 부상이 나은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밴에 올랐다. 오늘은 숙소에 돌아가서 마음 편하게 휴식하고, 내일부터 무대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온아, 잠깐 밴에 남아 있을래?”
매니저 형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백미러 너머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평소와 같은 어조였지만 내게만 전해야 할 말이라는 게 좋은 소식인 것 같진 않았다. 좋은 소식이었다면 멤버들이 다 같이 있는 곳에서 했을 테니까.
“엥? 왜요?”
이서호가 궁금해했으나 매니저 형은 개인적인 일이라는 말로 함축했다. 다른 형들이 나를 힐끔거리다가 하나, 둘 밴에서 내렸다. 날 걱정하는 듯한 눈빛들을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줬다.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인 일’이라는 말에 마음이 편해졌으니까. 개인적인 일이라면 가족과 관련된 것뿐이겠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애들 데려다주고 올게.”
“넵.”
나는 창밖으로 매니저 형이 멤버들을 소몰이하듯 몰아가는 걸 지켜봤다. 나를 기다리려고 했었던 건가? 하지만 짧은 실랑이 끝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매니저 형이 멤버들 모두를 욱여넣었다. 그 앞을 지키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매니저 형은 밴으로 돌아왔다.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분리하려고 하는 건 처음인데……. 좀 이상하긴 하네.
“무슨 일이에요?”
매니저 형은 내 맞은편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너한테 스토커가 붙은 것 같다.”
“그래요?”
사생이랑은 또 다른 건가? 이제는 사생에게 쫓기는 건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게 뭐가 큰 문제라고 이렇게 따로 부를 정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