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214화 (214/320)

214.

RICE 치료를 하면 금방 나을 거라는 교수님은 휴식, 냉찜질, 압박, 높이기를 강조하셨다. 더불어 부상을 입은 지 48시간이 지나지 않아, 지금이 제일 효과가 좋을 때라고도 설명해주셨다. 나는 치료 방침을 꼼꼼하게 머리에 새겨 넣었다. 사실 뭐 외울 것도 없었다.

“저, 교수님.”

“네, 말씀하세요.”

“그러면 저희 활동기가 곧 끝나는데 이 주 정도 무대에 설 방법은 없을까요?”

“어느 정도로 움직이죠?”

마음 같아서는 얼마 안 뛴다고 거짓말하고 싶었으나 듣는 귀가 많아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뛰어요.”

“환자분 같은 1도 염좌는 사실 대단한 치료랄 건 없어요. RICE 치료면 충분한데 계속 혹사하는 경우 2도 염좌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석고 고정을 해야 해요.”

그래서 안 된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교수님은 날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셨다. 뭐지? 여기서 ‘하지만’이 나왔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인가? 기대감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수님을 올려봤다. 제발요, 제발!

“환자분과 같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비슷한 부상으로 종종 오는데.”

교수님 예고편이 너무 길어요! 제발 결론만! 나는 지금 그 어떤 스릴러 영화를 볼 때보다 가장 심장이 쫄깃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다들 고집들이 세더라고요. 무조건 휴식하라고 보냈더니 다음엔 더 심각해져서 오길래 포기했습니다. 적당히 타협해 보죠.”

선배님들 만세! 앞서 교수님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 선배님들 덕에 내가 특혜를 보게 생겼다. 나는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방긋거렸다.

***

김지우는 연신 미소 띤 얼굴로 너튜브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록 밤샘의 충격이 고스란히 와서 눈은 충혈되어 있고, 다크서클이 뺨까지 길게 드리웠으나 눈동자만큼은 생기가 넘쳤다.

지금 잠들면 월요일 연차가 통으로 날아갈 것 같아서 이대로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다. 디아스와 함께라면 잠 따위 안 자도 쌩쌩했다.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은걸.

휴식기에는 간간이 올라오는 자컨 이외에 머리카락 한 올 보기 힘들었던 디아스였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숙소와 회사만 오가는지 목격담 자체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들려왔다.

‘이렇게 건전하고 성실하게 살 필요 있냐고…….’

하지만 내심 내 아이돌의 이런 점이 기특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들이 열심히 하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아이돌에 관심을 둔 적 없었던 김지우는, 30대에 느지막이 찾아온 덕질에 온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연애할 때도 이렇게 심장이 뛰진 않았는데.’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도 한 번 보고 나면 재탕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디아스와 관련된 건 전부 예외였다. 장면과 대사까지 전부 외우고 있는데도 또 보고 싶었다. 볼 때마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이따금 생각날 때도 혼자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퇴근하면 디아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서 달린 나머지 생전 처음으로 과속 딱지까지 받았다. 그녀는 스스로도 미쳤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전히 디아스에 빠져있었다.

[런&런에 그들이 왔다! 디아스 편]

─ 부표 밀어내깈ㅋㅋ 하온이 엎드려 있는 거 왜케 하찮아 보이짘ㅋㅋㅋㅋ

┗ 하찮아서 귀여워...♥

┗ 엄청 경계 중인뎈ㅋㅋ?? 형아들이 하온이 밀칠리 없자너 ㅇ.<

┗ 윗댓) 이거맏다 하온이 빼고 다 안다 ㄹㅇㅋㅋ

─ 강현이한테 끌려갈 때 눈 똥그래진거 ㄹㅇ 넘 졸귀탱이라 323424시간째 못 자고 반복해서 보는 중...

─ 깍리더는 오늘도 깍깍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소리지르면서 할 건 다 햌ㅋㅋㅋㅋㅋㅋ

┗ 이서호까지 무섭더냐... 리더형아ㅋㅋㅋㅋ

┗ 울 갱얼쥐 좀비 안 무서운 이유가 반격 가능이라서인 거 개같이 호감ㅠㅠ 귀신은 못 때려서 무서워요? 오구오구

─ 댓글 보려고 여기서 보는 사람?

┗ 좋아요 어마어마하넼ㅋㅋㅋ

┗ 풀영상은 따로 보고 너튭은 댓글과 함께 즐기는 맛이지!

┗ 근데 영어 댓글 점점 늘어난다...k디어리들 힘을내...ㅠㅠ!

┗ 애들 인기 늘어나는 건 좋은데 공식 가면 한글 댓글 찾기 힘들어진 게 좀 아쉬워...

─ 덥익스 강현이가 하온이 손 꼭 잡아주는 거... 개설레 진짜 미쳤나 봐 왜 하온이한테 하는데 내가 설레는거야ㅋㅋㅋㅋ

┗ 하지만 하온이 1도 눈치 못챘죠.. 응...

┗ 앗아..새드엔딩....

┗ 하온이 겁 없어 보였는데 이런 거 무서워하는 게 또 갭모에 오짐ㅠㅜ

┗ 안전바 꼭 쥔 손이 도토리 쥔 다람쥐가타...

김지우는 너튜브 디아스 일주를 끝낸 뒤 커뮤로 이동했다. 그중에 ‘내 아이돌’ 관련 게시글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습관처럼 클릭했다.

[제목] 내 아이돌 떡밥 전부 소듕해♥ (댓글 999+)

애들 춤추는 영상은 여기저기 많으니까!

나는 질문이랑 답변 정리해옴!!

Q. 무인도에 같이 갈 멤버 고르는 질문부터!

유찬: 강현픽. 저질체력이라 안 돼요. 고생은 원래 형들이 하는 겁니다. (강현이는 해당x)

이한: 강현픽. 소중한 건 아끼는 타입이라서요!

강현: 하온픽. 옆에 두고 지킬 자신 있어요.

서호: 하온픽. 하온이랑 가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우리 하온이....

하온: 헝베픽. 생존에 유리할 거 같아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온이_대답에_망연자실한_멤들.mov)

나라 잃은 표정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중에 카메랔ㅋㅋㅋ 진짜 정성껏 한 명씩 줌 잡은 거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Q. 멤들 심심할 때 하는 거!

유찬: 하온이 보면 즐거워서 심심할 틈이 없어요.

이한: 너튭에서 마사지 영상봐요. (이거 하온이 해주려고 배우는거 디어리라면 다들 알제?ㅋㅋㅋ)

강현: 춤추거나 댄스 영상 많이 봐요.

하온: 음. 심심한 적 없는거 같은데...

(이거 나 이유 앎. 멤들이 혼자 안둠 ㅇㅇ)

서호: 게임해요!

Q. 가장 소중한 물건은?

유찬: 멤버들과 같이 쓰는 텀블러. 제가 선물했어요.

(헠헠 나도 있어!)

이한: 하온이가 선물해준 흰오목눈이 인형이요

(이때 하온이 엄청 동공지진함ㅋㅋㅋㅋㅋㅋ 이한이는 하온눈이 판가봐 (속닥속닥))

강현: 물건...은 딱히 없어요.

MC: 그럼 물건 이외에는?

(강현이 하온이 잠깐 본 거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 여튼 대답은 ‘건강한 육체’라고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생 춤춰야지 응응.)

하온: 어.. 저도 물건은 없는 거 같아요.

(같은 질문 받은 하온이는... 디어리랑 우리 형들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하 진짜 천사다ㅠㅠㅠ 하늘에서 내려준 울 천사ㅠㅠㅠㅠ 날개 뜯겼을 때 안 아팠을까ㅠㅠㅠㅠㅠ)

서호: 게임기요!

(디어리들아 서호 게임 서폿넣어야할듯ㅋㅋ)

Q. 최근 기억에 남는 티엠아이!

유찬: 최근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제대로 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뭔지는 비밀입니다!

이한: 티엠아이..음음... (한참 고민하다 하온이 봄) (하온이 영문을 모른다는 듯 끔벅끔벅) 아! 어제 하온이한테 새 요리 레시피 알려줬어요.

(할많하않 ㅎㅎ)

강현: 뮤비 촬영 마지막 날 하온이랑 같이 잔 일?

(하온이 동공지진22222 하온이가 저러니까 뭔가 되게... 여기까지 할겧ㅎㅎㅎ)

하온: 얼마 전에 서호형이랑 같이 게임했어요. 근데 형 되게 못하더라고요.

(서호: 야! 니가 이상하게 잘하는거야!)

(우리 하온이는 게임도 잘하나 봄. 진짜 못하는 게 뭐지? 춤 얼굴 목소리 노래 성격 마음씨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게임까지 잘해?)

서호: 아! 하온이가 사준 게임 엔딩 봤어요!

이번에도 게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호얔ㅋㅋㅋㅋㅋㅋㅋㅋ 유찬이 절레절레하는 것 좀 봨ㅋㅋㅋ

─ 이날 하온이가 흘린 비지땀이 한 바가지라던데...

┗ 땀까지 청량한 청온냥이

┗ 청온냥이는 뭐얔ㅋㅋㅋㅋ 이상한 거 만들지맠ㅋㅋㅋ

─ 형들이 주접 다 떨어서 나 디어리 백수 된 기분...

┗ 윗디어리맘=내맘...

─ 이한아ㅠㅠㅠ입대는 아직일러ㅠㅠㅠㅠㅠㅠㅠ 울 하온이가 디어리맘 찰떡이야 진짜ㅠㅠㅠ

┗ 나 진짜 식겁함..이한이라면 그럴 수 있어...

─ 게임기 서폿 넣으면 찬리더 치를 떨듯ㅋㅋㅋㅋㅋ

┗ 만약 그 게임이 공포겜이라면?

┗ 까마귀의 재림인가

─ 유찬이 절레절레할 때 표정에서 나 왜 울 엄마가 보이지?ㅋㅋㅋㅋ 저거 등짝스매싱 때리기 직전 표정인데?ㅋㅋㅋㅋ

┗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보고 나니까 계속 엄마로만 보옄ㅋㅋㅋ 책임져!!

┗ 윗디어리의 어머님은 유찬이처럼 잘생기지 않으셨을 텐데?

┗ 헐.. (깨달음) ㄱㅅㄱㅅ

─ 강현아 제발 하온이랑 같이 잔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ㄱ ㅔ왜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자세히 설명해줄래?ㅠㅠㅠㅠㅠㅠㅠㅠ 생략이 많이 된거같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으으아유ㅠㅠㅠ

┗ 아니 이 사람 여기서도 이러네;;

┗ 적당히 해 ㅇㅍㅅ충아 ㅡㅡ

┗ 이 정도면 멤들 보라고 남기는 거 아니냐? 진짜 극혐이네;

┗ 음지로 돌아가!!! 제발ㅠㅠㅠ

김지우는 갑자기 오래된 게시글이 왜 다시 핫해졌는지 이유를 알았다. 다른 게시글을 보니 같은 내용의 댓글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산재해 있었다.

‘에휴. 본인 취향 존중받길 원하면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지.’

김지우는 게시글을 닫은 뒤 짹짹이에 접속했다. 짹짹이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최근 하트를 눌러 놓은 게시글 복습이었다.

새벽의여롱 @dufhd

나 진짜 심각한데

하온이 모공 막힌 듯

모공이 안보여

(이렇게까지_확대해도_뽀얀_하냥둥이.jpg)

∞ 3,412 ♡ 5,983

둠칫둠칫 @dududududu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통장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롭지 않다

별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모든 떡밥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하냥이 내맘에 하며든다☆

∞ 458 ♡ 620

강현이가잘못한거맞음 @marryme-hyun

현생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디아스 수혈 타래♡

∞ 1,298 ♡ 3,109

‘아, 힐링 된다.’

잠깐 안 본 사이에 타래에 사진이 추가되어 있었다. 김지우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추가된 타래의 사진을 저장했다. 앨범에 사진이 늘어날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함을 채우기 위해 홈 버튼을 눌렀다.

“……어? 이게 뭐야?”

노랑이@jin_yellow

사녹 끝나고 하온이 쓰러짐...

멤들 다 놀라고

스탭이랑 헝베까지 무대에 뛰어 올라옴...

하... 무슨일이야진짜...ㅠㅠㅠ

속상해 미치겠다 가슴 벅벅 찢겨 진짜....

∞ 5,125 ♡ 3,109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타래가 쭉 이어졌다. 처음 짹짹이를 올린 사람 이외에도 목격담이 쏟아져 사실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설마 심각한 건 아니겠지?’

언제 행복했었냐는 듯 김지우의 얼굴이 금방 울상으로 변했다.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보니 기절한 건 아니고, 휘청거리다가 쓰러질 뻔한 걸 강현이가 안아줬다고 한다. 더불어 그녀는 곧 하온이가 출근할 때도 강현이한테 안겨서 방송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새벽부터 몸 안 좋았던 건가?’

그런데도 하온이는 강현이한테 안겨서 방송국에 들어갈 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아픈 몸으로 저렇게 예쁘게 웃어줬는데 음향 장비까지 문제가 있었다는 걸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김지우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계속 새로운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리 닦아내도 금세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글자가 뿌옇게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하온이가 W라이브를 켰다며 알려주는 짹짹이를 보자마자 그녀는 얼른 휴대폰 알람창을 확인했다. 무음으로 하는 바람에 보지 못한 W라이브 방송 알람이 떠 있었다.

[짠! 저 왔어요!]

‘하온이다!’

W라이브에 들어가자마자 봄날의 햇살처럼 싱그럽게 웃고 있는 하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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