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교주는 나를 지나쳐 일행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이 누구길래 스킬을 써달라고 하는 거지? 나중에, 라는 걸 보면 아직 스킬을 쓰기 위해 작업 중인 걸지도 모르겠네.
교주가 예의 차리는 거로 봐서는 힘이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소속사 임원인가? 아무리 많이 봐줘도 40을 넘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남자는 교주가 말을 건네는데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얇은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저런 태도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기 어렵겠네. 그러니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거고?
스킬이 써졌는지 확인이 필요한 사람, 심지어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 정도로 중요한 인물. 그렇다면 저 사람이 교주의 회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인물이라는 뜻인가?
하지만 교주의 정확한 목표를 모르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도와주기에는 애매했다. 그전에는 나한테 ‘디아스가 크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었잖아. 본인의 회귀 목표를 이루는 것과 우리 그룹의 성공이 어떻게 연관되는 건지에 대한 해답도 아직 찾지 못했다.
흐음.
나는 나란히 가게를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했다. 무슨 부탁이든 전부 다 들어주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 대가로 회귀 목표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해 볼까.
그런데 만약, 교주가 거짓으로 대답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출입구의 센서가 작동하면서 자동문이 양쪽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식당을 나간 두 사람은 주차장을 향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교주가 내 쪽을 흘끔거렸다.
시선은 금방 거두어졌다. 교주는 흠잡을 데 없는 말끔한 미소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남자가 내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금방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기분 나쁘네.
그 순간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하윤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 하윤아.”
- 혀엉~ 어디에요?
“지금 출입구 앞에 있어. 어디야?”
- 저 주차장이요! 방금 준재혁 선배님 뵀어요!
하윤은 곧 ‘앗, 이제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데…….’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얼른 가게를 나서며 주차장 쪽을 향했다. 때마침 교주 일행이 차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형!”
반대쪽에서 날 발견한 하윤이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 앞에 멈춰선 채 날 올려보는 표정이 무척 환했다.
“헤헤.”
“들어가자.”
“넵!”
나는 교주에 관한 생각을 조금 뒤로 미룬 뒤 하윤이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
식사하는 동안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화제가 자연스럽게 O.D.I로 넘어갔다. 유찬 형이 조심스럽게 하윤에게 물었다.
“아이돌 포기한 거 후회 없어?”
하윤은 씹던 음식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제가 하온이 형처럼 되고 싶은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형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저는 형이 보고 싶었던 거예요.”
“……나를?”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실 너튭에서 처음 형을 본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고, 그리고…….”
하윤은 말을 하다 말고 날 올려다보며 부끄러워했다.
“편하게 말해도 돼.”
“내 형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랬어?”
“헤헤. 사실 저희 엄마가 유산하지 않았으면 저한테 형이 있었을 거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나?”
잠시 갸웃거리던 하윤은 금방 화제를 옮겨 오늘 제 엄마가 날 만나는 걸 무척 부러워했다며 쫑알거렸다.
“형이랑 찍은 사진 보여줬더니 엄마가 완전 형 팬 된 거 있죠? 우리 가족은 유전자에 ‘진하온을 사랑하라!’가 새겨진 것 같다니까요!”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저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색하지 않게 잘 웃고 있겠지. 하윤이 눈을 반짝거리며 엄마 이야기를 이어가는 걸 보니 다행히 내 기분은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엄마가 내 팬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처럼 행복하게 웃는 하윤을 보며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하윤과 재회한 뒤 부모님의 존재는 일부러 의식 밑에 가두고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들을 사랑했다. 사랑한 만큼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가족을 완전히 포기하고 놓았을 때 몇 날 며칠 울며 괴로워했던 날이 선명했다. 가슴을 깊게 파고든 기억은 예리한 칼날 같았다.
웃긴다. 나 이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잖아. 그저 괴로운 감정을 모른 척하고 회피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윤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 아니다. 몰입해서 생각하지 말자.
그 세계에 두고 온 내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안도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꺼림칙한 사람이 사라진 거니까.
“……좋아해 주시니까 고맙네. 그럼 하윤이는 나중에 뭘 하고 싶어? 아이돌 말고 다른 꿈이 있어?”
더는 가족에 관해 생각하기 싫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하윤이까지였다. 애초에 이제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들에게 사랑받아도, 사랑받지 않아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면 또 금방 잊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꿈…… 은, 음. 사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일단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려고요!”
멤버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꿈이 확고했던 사람들이라 다들 ‘그렇구나.’할 뿐 딱히 말이 없었다. 화제의 방향은 간신히 돌렸지만 할 말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엿보기 스킬을 써 볼까.
하윤의 재능을 보면 뭐라도 조언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저녁 먹고 바로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라 체력을 좀 낭비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곧장 하윤에게 엿보기 스킬을 사용했다.
[진하윤]
특화 재능: 암기, 암산
암기: S(?)
암산: A+(?)
버프: 충만한 자신감, 노력가
디버프: 방황
특화 재능을 보니 하윤이 아이돌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어쩐지 열심히 하는 것 치고는 실력이 많이 늘지 않더라니, 잘하는 게 따로 있었네. 덕분에 할 말도 찾을 수 있었다.
“공부는 좋아해?”
“네. 그럭저럭! 딱히 어렵진 않더라고요. 그냥 외우고 계산하면 되는 거라.”
그래, 너의 재능을 보니 그렇긴 하겠지.
“헐, 진하윤 기만자네!”
공부라면 학을 떼는 이서호가 진저리를 쳤다. 하윤이는 “쉬우니까 쉽다고 한 건데요!”하고 받아쳤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까.”
하윤이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운을 띄웠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예전에, 형 입원했을 때요.”
“아, 으응.”
이 얘기를 왜 또 꺼내는 거야. 민망함에 등줄기에 땀이 고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때 형 잘못될까 봐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아무것도 못 하는 제가 답답하기도 했고.”
“……그랬어?”
“당연하죠! 저 그때 ‘내가 의사였으면 형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하고 생각했었는데…….”
눈을 끔벅거리던 하윤은 별것 아닌 듯 가볍게 말을 이었다.
“의사에 도전해볼까 봐요! 저 의사 되면 형 나중에 저한테 검사받으러 올 거예요?”
“물론이지.”
내 대답에 하윤은 낯빛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윤은 호언장담했다.
“제가 디아스 형들의 주치의가 되겠습니다!”
재능을 보고 나니까 그 말이 퍽 믿음직스럽긴 했다.
“그럼 하윤이 의사 될 때까지 우리 활동해야겠네.”
내가 웃으며 대꾸하자 하윤이는 “디아스 50주년 콘서트까지 꼭 부탁드려요!”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어진 분위기는 내내 밝고 따스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떠올려 버린 부모님에 관한 생각을 쉬이 잊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은 하윤을 집에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 더 커졌다. 익숙한 거리와 내가 살았던 집을 본 순간, 잊고 있던 기억까지 모조리 끄집어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멤버들을 신경 쓰이게 하기 싫어서 억지로 밝은 척하고, 대충 몸을 씻은 뒤 침대에 누워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자꾸만, 아주 조금 열린 방문 틈으로 보였던 풍경이 떠올랐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였다. 같은 조도일 텐데도 어두운 내 방과 달리 더 환하게 느껴지는 거실을 나는 종종 훔쳐보고는 했었다.
내가 빠진 가족의 모습은 완벽하고 화목해 보였다.
매번 고사리손으로 한 뼘가량 열어 둔 방문은 내 나름의 주장이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아빠, 나를 눈치채 줘.
어릴 때부터 나 혼자 지내던 방은, 가족들을 위한 격리소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방문이 한 뼘보다 조금 더 열린 걸 발견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며 문을 쾅 닫아버리곤 했었다.
쾅, 그건 나를 거부하는 소리였다.
한 번 떠올린 과거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려댔다. 내가 영원히 그 시간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걸 일깨우는 듯한 경고음 같았다.
쾅, 쾅, 쾅.
안 되겠어. 이대로 있다가는 기억에 매몰될 것 같았다. 이럴 때 내가 어떻게 했더라. 어떻게 잊었지? 어떻게…….
아, 기억났다. 나 일했었지……. 아무것도 떠올리기 싫어서 그렇게 일만 했었다. 힘들 때마다 나를 더 혹독하게 굴렸다. 그래야만 과거의 아픔이 희미해졌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나는 자는 걸 포기하고 억지로 신경을 돌리려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소리를 쉽게 쫓아낼 순 없었다.
예전엔 쉬웠던 일이 지금은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는 더 크고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우연히, 정이한의 침대가 텅 비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어디 갔지? 내가 방에 있을 땐 대부분 같이 있었는데……. 정이한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니.
그 순간, 시끄러운 소리 사이로 정이한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끼어들었다.
「너도 의지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나는 정이한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팔에 힘을 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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