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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모드 아이돌-196화 (196/320)

196.

눈을 떴더니 강현 형과 몸이 딱 붙어 있었다. 나는 강현 형의 허리에 팔을 올려놓고, 형은 나를 품에 가둔 채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상태였다.

일순간 뇌 정지가 와서 하염없이 동공만 흔들다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나마 내가 강현 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다행이지. 눈 뜨자마자 형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면 소리를 빽 질러서 깨워버렸을지도…….

분명히 어제 놀란 가슴 때문에 한참 꼼지락거리다가 강현 형이 먼저 잠들고 나서야 나도 잠들었던 것 같은데. 으음.

그냥 잠버릇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지금 일어나면 형을 깨울 것 같아서 어떡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새벽녘에 서늘함을 느껴서 더듬더듬 이불을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몽롱한 의식 너머로 “추워?”하고 묻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고개를 끄덕였던가. 아니면 날 포근하게 감싸는 온기에 파고들었던가.

기억났다. 분명히 파고들었다. 내가 먼저 강현 형한테 매달리다시피 안겨들었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왜 그랬어, 진하온! 사람이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일어났어?”

“헉!”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헛숨을 삼켰다. 나는 평정심을 가장한 채 고개를 들어 생글거렸다. 자연스럽게 굴자. 자연스럽게.

“방금 일어났어요. 형은요?”

어색하지 않게 슬그머니 팔을 내린 뒤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도 막 일어났지.”

“아하…….”

동시에 침묵이 찾아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침묵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색한 거야! 지난번에 무인도에서 강현 형과 정이한 사이에서 자고 일어난 날도 오늘이랑 비슷했었잖아. 이번엔 형이랑 단둘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가? 이 정도로 민망하다니.

“잘 잤어? 내가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강현 형이 미소 띤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저는 잘 잤죠! 하나도 안 불편했어요. 엄청 편했어요! 다음에 또 같이 자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거치지 않고 떠들다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지만 말은 이미 뱉고 난 다음이었다. 다음에 또 강현 형이랑 단둘이 자라고 하면 못 잘 것 같은데…….

“아, 다음에…….”

그런데 강현 형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이라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 직후에는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현 형이 씻고 내려가자는 말과 함께 먼저 방에서 나간 뒤에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지…….

나 진짜 실수한 건가?

나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엎드렸다. 강현 형은 불편했던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도망치듯 나간 거 아니야?

앞으로 절대, 두 번 다시는 강현 형과 둘이서 자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었다.

***

“하온이 잘 잤어?”

1층으로 내려가자 이서호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모여 있었다. 평소라면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을 텐데 다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형들 일찍 일어났네요.”

“어어, 잠을 좀 설쳤어.”

유찬 형이 눈가를 비비적거리면서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또 테라피 해달라는 거군. 형의 신호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나는 그 옆으로 쪼르르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따 시간 되면 낮잠 좀 자야겠다…….”

유찬 형은 길게 하품하면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버렸다. 나는 유찬 형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며 물었다.

“저희 오늘 추가 씬 촬영하는 거죠?”

“응. 근데 아직 감독님 연락이 안 와서 일단 대기 중.”

유찬 형은 완전히 몸을 돌려 정자세로 누운 뒤 휴대폰을 꺼내 가슴에 올렸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듯 톡톡 두들기더니 그대로 휴대폰을 가슴에 엎어놓고 눈을 감는다.

“하온이가 무릎베개해 주니까 졸립다…….”

“나도 베고 누워도 돼?”

반대편에서 정이한이 우물쭈물 물어왔다. 유찬 형이 없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미 내 허벅지는 만석이다.

“이한 형까지 눕기엔 좁지 않아요?”

나는 남은 면적을 가리키면서 웃었다. 둘이 함께 눕는다면 필연적으로 뺨끼리 찰싹 달라붙을 것 같았다.

“유찬 형, 다리 하나만 양보해 줘.”

“싫은뎅~”

“아, 형!”

정이한이 유찬 형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유찬 형은 내 배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면서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절대 쫓겨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우는 애들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형들, 그만해. 하온이 다리 저려.”

소파 뒤에 선 강현 형이 내 어깨를 짚어왔다.

“강현이는 어제 하온이로 충전 많이 했잖아~”

유찬 형은 더 있고 싶다면서 내게 어리광 부리듯 배에 뺨을 비비적거렸다. 간지러움에 몸이 움찔거렸다.

“읏, 형. 가, 간지러워요…….”

“아, 미안.”

유찬 형이 머쓱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라는 건 아니었는데 미안하네.

“더 누워있어도 돼요.”

“아니야, 이제 서호 깨워야지.”

형은 끙차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난 뒤 팔을 걷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다녀올게!”

성큼성큼 2층 계단을 올라가는 유찬 형의 보폭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2층에 욕실이 하나 더 있어서 다행일지도. 형 혼자서 이서호를 둘러매고 1층 욕실까지는 내려오지 못했을 테니까.

***

오전 10시가 되자 감독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촬영 캠프에 도착하자 어제와 달리 대부분의 스태프가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감독님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하룻밤 새 감독님 얼굴에 자리 잡은 거뭇한 다크서클과 제멋대로 자라난 턱수염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감독님, 왜 그렇게 만신창이가 됐어요?”

이서호가 커다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감독님은 허허, 웃으신 뒤 우리를 불러 모으셨다. 초벌 편집본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스태프들의 상태가 왜 이런지 알 수밖에 없었다. 다들 밤새웠구나.

“너희가 찍은 영상은 이런 식으로.”

감독님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뮤비가 어떤 느낌으로 제작될 건지 보여주셨다. 아직 영상을 잘라서 이어 붙인 정도의 수준이라 흐름과 느낌만 보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끼리 노는 모습이 실제보다 더 신나 보였다. 중간중간 우리가 직접 촬영한 영상도 들어가서 그런지 현실감이 확 와닿았다. 감독님은 우리가 연신 감탄하자 만족스럽게 웃으셨다.

그리고는 곧장 오늘 추가 촬영해야 하는 장면들을 설명해 주셨다.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힐링하는 모습과 노는 장면 중에 추가로 필요한 구도와 분위기를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로웠던 첫째 날 촬영과 다르게 오늘은 진짜 뮤비를 찍는 느낌이었다. 내일은 군무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 안에 필요한 장면을 모두 얻어내려는 감독님의 열정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혹사당한 뒤, 느릿느릿 넘어가는 노을을 보며 해변을 걷는 촬영을 하게 되었다.

“나 힘들어서 경치가 눈에 안 들어와…….”

이서호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기면서 웃었다. 동시에 가차 없이 감독님의 컷 사인이 들이닥쳤다.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노을을 보며 감탄하라는 요구에 이서호는 울상을 지었다.

“야, 진하온. 너는 어떻게 표정 관리를 그렇게 잘하냐?”

스탯의 힘이지.

“재능의 차이?”

생각과 전혀 다른 대답을 하면서 빙그레 웃어주자 이서호가 재수 없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이서호의 등을 찰싹 두들긴 뒤 앞서나갔다.

“형은 노력 좀 해야겠다!”

“아~ 진하온!”

이서호가 씩씩거리면서 나를 쫓아왔다. 그런 우리를 향해 유찬 형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컷! 지금 장면 좋다!”

“네에?”

이서호가 검지로 제 얼굴을 가리키면서 황당해했다. 누가 봐도 감독님이 요구한 것과는 정반대의 표정이라 웃음이 터졌다.

***

“얘들아, 2박 3일 동안 고생 많았어.”

매니저 형은 늘어진 우리를 대신해 에어컨 온도를 내려줬다. 나는 소파에 눌어붙은 채 고개만 빼꼼히 들어 올렸다.

“내일 오전에 데리러 올 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푹 쉬어.”

마지막 날에는 매니저 형도 같이 자는 줄 알았는데? 마치 나갔다가 오는 듯한 뉘앙스에 나는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쭉 들어 올려 물었다.

“형은 어디서 자요?”

“지금까지 나 자던 숙소에서 자지.”

매니저 형이 내 머리를 토닥거리며 챙겨줘서 고맙다고 윙크를 보냈다.

“그럼 내일 올게. 촬영 팀 전부 철수했으니까 밤에 문단속 잘하고 자야 한다. 알았지?”

“네!”

우리는 매니저 형을 배웅한 뒤 다시 제각각 늘어졌다. 나는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댄 채 길게 누워버렸다. 어제 촬영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군무와 개인 퍼포먼스 위주로 촬영을 해서 그런가, 더 힘들었다. 솔직히 저녁이고 뭐고 이대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오늘 촬영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남은 체력이 10%가 채 안 됐다. 어제랑 그제는 그래도 20% 이상 남아서 여유로웠는데 말이지.

“드디어 다 끝났다…….”

이서호는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녔다. 바닥 더러울 텐데. 하지만 힘들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나는 모르는 척 눈을 감아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 그늘이 지는 느낌에 뻐근한 눈을 뜨니 정이한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온이 피곤해?”

“……조금요.”

“어떡하지…….”

피곤한 건 난데 왜 정이한이 곤란해 보이는 거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정이한을 보고 있자니 뭔가 느낌이 왔다.

“왜요? 할 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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