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강현 형이 내 아랫배에 손을 받치고는 허리를 살짝 눌러왔다.
“읏.”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간지러운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슬쩍 허리를 꿈틀거렸더니 곧장 가만있으라는 엄포가 돌아왔다.
“수영의 기본은 유선형 자세를 익히는 거야. 고개를 살짝 들고 시선은 정면을 유지. 다리는 조금 더 높이.”
강현 형의 손이 허벅지로 내려갔다. 형이 한쪽 팔로 내 양 허벅지를 받쳐 올리자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힘 빼야지.”
“윽. 가, 간지러워서…….”
형은 날 놓아주면서 따끔하게 말했다.
“이 자세 그대로 유지해봐.”
“넵!”
만져도 되냐는 표현에 잠깐 당황한 게 무색하리만치 사무적인 태도였다. 이 형한테 안무 배울 때랑 느낌이 비슷한데? 그러고 보니 이전에 마사지를 받았을 때도, 강현 형은 마사지에 진심이었다.
“허리 너무 내려갔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강현 형의 손이 또 한 번 내 아랫배에 찰싹 붙었다. 형은 내 허리를 끌어 올린 뒤 이번에는 다리가 떴다면서 허벅지를 내리눌렀다.
“으악! 이, 이거 잘 안 돼요…….”
“처음에는 좀 불편할 거야. 익숙해질 때까지 해야…….”
내게 진지하게 설명하던 형이 별안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날 놓아버렸다.
“왜요?”
“아니, 미안. 내가 너무 과한 것 같다. 당장 도움 되는 것부터 가르쳐주는 게 나을 것 같네.”
하지만 기초부터 배우는 게 좋은 거 아니었어? 강현 형이 이번엔 어떤 방법을 가르쳐줄지 궁금한 마음에 형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하던 강현 형이 입을 열었다.
“누워서 물에 뜨는 걸 가르쳐 줄게. 그게 낫겠다.”
“네에…? 그거 고오급 스킬 아니었어요?”
“수영장에서는 이게 더 쉬워. 일단 내 목에 팔 좀 둘러봐.”
“아? 이렇… 게요?”
흥분해서 형한테 달려들 때는 몇 번 있었지만, 맨정신에 대놓고 목을 끌어안으려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형의 목덜미로 깍지 낀 손을 넘긴 채 살짝 거리를 유지했다.
“아, 좀 더 가까이.”
자세가 별로였는지 강현 형이 대뜸 내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미, 민망해! 이거 되게 민망하다고! 강현 형, 우리 자세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생각…….
“와악!”
형이 엎드린다 싶더니 갑자기 내 몸을 번쩍 들었다. 강현 형이 내 등과 오금을 받친 채 드는 바람에 나는 형의 목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다.
“이대로 물에 띄워줄 거야.”
형은 나를 수면에 반쯤 잠기도록 띄웠다. 상체만 바짝 들어서 형한테 매달려 있었더니 안으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놓으란다.
“이, 이거, 이거 되게 무서운데요?”
“절대 안 빠트리니까 나 믿고, 누워봐.”
형은 신뢰할 수 있을 법한 진지한 시선으로 날 응시했다. 불안한 내가 주저하는데도 더 채근하지 않고 날 안아 든 채로 기다려줬다.
그 태도에 용기를 얻고 천천히 매달린 팔을 풀어냈다. 하지만 뒤통수에 차가운 물이 닿는 순간 다시 온몸이 바짝 굳었다.
“괜찮아. 긴장 풀고 몸의 힘을 빼는 게 중요해. 익숙해질 때까지 잡아줄게.”
“……저 안 무거워요?”
“물에 떠 있는데 뭐가 무거워.”
그래. 부력으로 떠 있을 수 있기야 하겠지.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근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걸 어떡해?
그래도……. 힘들 텐데 내색하지 않는 강현 형에게 미안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강현 형을 믿자. 나는 눈을 감고 몸의 힘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물 위가 아니라 편안한 침대에 누웠다고 생각하며 아까 강현 형에게 배운 대로 다리부터 천천히 힘을 몰아냈다. 오직 몸에 힘을 빼는 데에만 집중할 때였다.
“하온이, 잘하고 있어.”
강현 형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날 받치고 있는 체온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몸은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제대로 받치고 있는 거 맞겠지? 왼쪽 눈만 슬쩍 떠서 확인해 보니 믿을 수 없게도 형은 두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어?”
내가 혼자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몸이 물 속으로 꼬르륵 잠겨 들었다.
“푸하!”
“긴장만 풀면 떠 있는 건 쉽지?”
강현 형이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다정하게 웃었다.
“근데 저 놀라서 바로 가라앉았어요…….”
“괜찮아. 물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금방 배울 것 같은데?”
“진짜요?”
“응.”
오오. 강현 형이 하는 말이면 믿을 수 있지. 나는 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번 더 해 보자는 말에 얼른 강현 형의 목에 팔을 둘렀다.
“띄워줘요!”
“간다.”
“네!”
훈련은 내가 제법 물에 동동 떠다닐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됐다. 팔이나 다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바로 가라앉긴 했지만, 그래도 떠 있을 수 있는 게 어디야.
“강현아, 하온아. 우리 이제 바다로 이동해야 해.”
“엇! 네! 나갈게요!”
나는 강현 형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 수영장에서 나왔다. 유찬 형이 가져다준 배스 타월로 몸을 감싸고 젖은 머리를 닦아냈다. 이제 바다로 가는 건가. 이서호랑 같이 강현 형 빠트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미안해지네.
“아, 맞다. 강현 형.”
“응?”
“아까 형들 가위바위보 하던데 뭐 정한 거였어요?”
“어? 아, 아니. 별거 아니야.”
강현 형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이거 봐라.
“뭔데요? 비밀이에요?”
“형들이랑 정할 게 좀 있어서…….”
왜 안 알려주지? 뭔가 추리해 보려고 해도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 유찬 형. 튜브 옮기는 거 도와줄게.”
강현 형은 내게서 도망치듯 유찬 형을 향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양쪽 허리에 튜브를 하나씩 낀 뒤 유찬 형을 지나쳐 먼저 해변으로 쌩하니 내려가 버렸다.
역시 수상해. 유찬 형이라도 붙잡고 물어볼까? 하지만 강현 형이 안 알려주는 거면, 유찬 형도 비밀로 할 확률이 높단 말이지.
이럴 땐 역시 정이한인가. 으음. 아니다. 나 편할 때만 사람을 이용하는 건 할 짓이 못 되지. 정이한 나한테 약한 거 뻔히 아는데. 이도 저도 못 한 채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였다.
“진하온.”
“어?”
“아이스크림 먹어.”
이서호가 아이스박스를 열어 안을 보여줬다. 막대 아이스크림부터 쭈쭈바까지 다양했다. 아무거나 하나 집어서 껍데기를 깠는데 이서호가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강현 형으로 할 거지?”
“그냥 다른 형 하면 안 돼? 미안해서.”
“안돼! 난 강현 형 빠트리고 싶단 말야! 평소에 절대 못 이길 거 아냐. 이럴 때 이겨봐야지, 언제 이김?”
얘는 제대로 해 볼 생각인가 보네. 정말 뜻대로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확고하니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강현 형, 접수.”
수영 가르쳐 준 보답은 나중에 따로 해야겠다. 미안해요, 형. 이번엔 배신할게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강현 형을 향해 마음속으로 사과한 뒤 찜찜함을 털어버렸다.
***
해변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펜션에 딸린 프라이빗 해수욕장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들어 올 방법은 없어 보였다. 위에서 봤을 땐 뻥 뚫려 있는 느낌이었는데, 내려와서 보니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어쩐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진하온, 네가 유인 좀 해봐.”
“강현 형이 나 피하고 있어. 형이 해.”
“잉? 왜?”
나는 내게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강현 형을 턱짓하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형들이 가위바위보 하길래 왜 한 거냐고 물었더니 도망치던데.”
“그래? 뭐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이라도 바꾸나?”
“그럼 나한테 왜 숨겨?”
“아~ 모르겠다. 때 되면 알려주겠지. 강현 형은 어떻게 유인할까?”
이서호는 모래사장에서 강현 형을 들고 나르는 건 절대 무리라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건 나도 동감이야.
일단 우리는 해변가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이서호가 어색하게 휘파람을 불어대길래 옆구리를 콕 찔러줬다.
“연기 배웠잖아. 자연스럽게 해.”
“……나 자연스럽지 않았어?”
“완전 어색했어.”
누가 봐도 수상한 걸 계획 중이라고 떠벌리는 모양새라는 말도 덧붙여줬다.
“무슨 얘기해?”
“우악!”
“헉.”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우리는 지레 놀라서 펄쩍 뛰었다. 우리가 놀라는 바람에 덩달아 같이 놀란 정이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이한 형!”
이서호가 이때다 싶어 눈을 빛냈다. 강현 형을 빠트리자는 이서호의 제안에 정이한은 강현 형 쪽을 힐끔거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형이 자연스럽게 저기 저 앞까지 데려가 주라.”
이서호의 부탁에 정이한은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고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유찬 형도 우리의 행동에 뭔가 수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유찬 형은 정이한과 눈빛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대뜸 강현 형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걸로 유찬 형도 한 편인 건가. 덕분에 유찬 형과 정이한이 양쪽에서 강현 형을 잡는 모양새가 되었다.
“고!”
이서호가 신호를 주면서 강현 형을 향해 돌진했다. 먼저 도착한 이서호가 강현 형을 뒤에서 끌어안자 정이한이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유찬 형이 눈치껏 반대쪽 허벅지를 들자, 강현 형은 세 사람에 의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뭐해?”
이 상황에도 강현 형은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한 발짝 늦게 도착한 나는 멤버들을 빙 돌아 강현 형의 두 다리를 살포시 붙잡았다.
이상하다. 왜 저항을 안 하지?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