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마지막으로 세화 형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나는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 천장을 보았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런지 목이 뻐근했다.
그래도 번호 옮겼다는 소식은 다 전했다. 단체 메시지를 보냈는데, 계속 답장이 돌아오는 통에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교주랑 가족인데…….
더 쉬운 쪽을 먼저 하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가족보다는 교주가 더 쉬운 것 같단 말이야. 나는 뜨끈하게 달궈진 휴대폰을 배 위에 올려놓은 채 잠시 눈을 감고 고민했다. 도와주는 대가로 정보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그 뒤로 교주에게 연락 온 게 없었다.
이대로 모르는 척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교주의 회귀 목표가 궁금해서 먼저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회귀 목표만 정확하게 파악하면 교주를 대하는 게 훨씬 편해질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락처가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틈으로 거실을 살폈다.
유찬 형이 게임하는 이서호 옆에 앉아서 훈수를 두고 있었다. 정이한도 뭔가 열심히 꼼지락거리고 있었는데, TV에 연결한 게임 화면에 플레이어가 둘인 걸 보니 이서호에게 붙잡힌 모양이었다.
당분간은 멤버들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 얼른 문을 닫고 교주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선배님. 쉬고 계셨어요?
“……그쪽은 스케줄도 없어?”
- 선배님을 위해서라면 스케줄도 빼먹어야죠.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헛소리하는 교주에게 코웃음을 선물했다. 교주의 웃음소리 사이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김호채는 에프터 서비스까지 끝냈어.
“에프터 서비스?”
뭘 어떻게 했지? 내가 읽지 않은 소파남의 메시지가 관련 있던 거였나? 궁금하지 않아도 봐둘 걸 그랬나.
- 모르는 모양이네?
“그 뒤로 만난 적 없으니 난 모르지.”
별 흥미 없다는 듯 건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교주가 궁금하지 않냐고 묻길래 딱히 궁금하지 않다고 대꾸했다. 사실은 좀 궁금하긴 해. 그렇다고 덥석 물 순 없잖아.
- 재미없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감정이 그쪽한테 중요한 건 아니잖아.”
- 중요하지. 협조를 얻으려면 잘 보여야 하잖아?
“나한테 신뢰 얻어서 스킬 쓰려는 건 아니고?”
- 아, 들켰네.
교주가 재미있다는 듯 킬킬거렸다. 그런데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기보다는 농담인 것처럼 가볍게만 느껴졌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본론만 이야기하고 끊자.”
- 매번 이렇게 냉담하다니까.
교주가 서운한 티를 내려는 건지, 가짜 울음소리를 냈다. 나야말로 매번 저런 식으로 능글거리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괜히 말꼬리를 잡으면 통화만 더 길어질 뿐이라, 울음소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궁금한 거나 빨리 물어봐.”
- 알았어. 아, 그 전에 설마 내가 너한테 스킬 쓴다고 한 거,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지? 농담이었는데.
“내가 방심하면 언제든 쓰겠지.”
그러고 보니 멤버들한테 스킬 쓰는 건 알아도, 나한테 쓰는 건 알아챌 방법이 없네. 어느 날 갑자기 교주에 대한 내 감정이 바뀐들 나는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질 테니까. 이거 진짜 경계해야겠다.
- 어차피 너한텐 못 써. 아마 같은 회귀자라 안 통하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니면 네 스킬에 막는 게 있나?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나도 모르게 ‘아니.’하고 대꾸할 뻔했다. 말리지 않기 위해 잠깐 숨을 고른 뒤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 아, 됐어. 대비하고 하는 말은 신뢰도가 낮거든.
“……그쪽이 할 말은 아닌데.”
- 나도, 너도 할 수 있는 말이지.
교주는 재미없다고 투덜거린 뒤 다시 소파남의 이야기를 꺼냈다.
- 내가 김호채에게 한 에프터 서비스를 듣고, 마음에 들면 그만큼 신뢰도 높은 정보를 알려줄 것. 이게 내 조건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하나 정도는 사실대로 까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궁금하던 내용이라 슬쩍 집어 들었다.
“들어보고.”
교주는 끝까지 도도하게 군다면서 또 크게 웃었다.
- 김호채가 네게 가진 감정은 흥미랑 집착이야. 집착도가 훨씬 높길래 그걸 좀 건드렸어.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소파남 따위에게 순정이 있을 리 없다.
- 그랬더니 흥미가 호감으로 변하더라고?
“뭐?”
순간적으로 소름이 팔뚝을 타고 머리끝까지 쭈뼛 기어 올라왔다. 진짜 마지막까지 불쾌함만 주는 인간이었다.
- 그렇게 질색할 정도인가?
“그 대상이 너라고 생각해봐.”
- 난 좋은데? 그만큼 다루기 쉽다는 거니까.
……그래. 내가 뭘 바라. 교주가 교주했을 뿐. 나는 조금 맥이 빠져서 허탈하게 말했다.
“이야기나 계속해.”
- 김호채가 좀 멍청하더라고. 스킬 쓰고 나니까 별의별 말을 다 떠벌리더라. 널 협박했다는 것까지.
“그래서?”
- 녹음본이 있다길래 들었지.
아니, 그걸 왜 녹음했어? 설마 내가 동의했다고 여긴 거야? 황당하네, 진짜. 소파남 소속사에서 왜 소파남을 팽했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 그래서 알았어. 너도 녹음하고 있다는 걸. 그런데도 만난다? 답은 하나지. 아, 뭔가 사고 치려는구나.
확실히 소파남에 비해 교주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만약 교주 앞에서 저런 연기를 했다면 곧장 들켰을지도 모르겠네. 교주를 상대할 때 낚시용 연기는 통하지 않겠어.
- 그래서 김호채의 ‘호감’을 더욱 키웠어. 아마 김호채는 너와 자신의 관계가 로미오와 줄리엣쯤 된다고 생각할걸?
“그게…!”
말도 안 되는 비약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거실의 멤버들을 의식해 가까스로 나를 가라앉힌 뒤 말을 이었다.
“……서비스라고? 장난해?”
- 아니. 덕분에 네가 거절했을 때 김호채가 쉽게 흥분했잖아. 그런 식으로 이성을 잃게 만들려면 얼마나 섬세하게 해야 하는지 하온이는 모르겠지.
교주는 이틀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란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슬슬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아.
“……나 진짜 진심으로 끊고 싶거든.”
- 아하하!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 본론이야.
아직도 본론이 아니었다고?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 말하라고 대꾸했다.
- 네가 쓰러진 뒤 김호채에게 전화가 왔어.
“그래서?”
- 본인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뒤늦게 알아차린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말해줬지. 하루 정도 잠적한 뒤 당분간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라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어려워 보이네.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김호채가 따랐어?”
하루 잠적 후 활동 중단 선언? 일을 더 크게 키우면 키우는 거지, 소란을 가라앉힐 방법은 전혀 아니잖아. 황당해하는 내게 교주는 웃음을 흘렸다.
- 따랐으니 입장문이 벌써 떴겠지?
이거 진짜 위험한 스킬이네. 신뢰 5단계가 되면 이성이 통하지 않는, 말 그대로 광신도 상태가 되는 건가? 교주의 말이 진리고, 정답이다. 뭐 그런?
교주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 그리고 마지막 한 방 더 남았다?
“뭔데.”
- 네가 차단했다길래 네 욕을 한 바가지 해줬지. 그래서 내가 키운 호감도 확실히 꺼트렸어. 이 정도면 완벽하지 않나?
교주는 정말 완벽한 서비스였다면서 재차 중얼거리며 자신만만하게 굴었다. 확실히 이건 괜찮네. 내 욕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 마지막 건 잘했네.”
- 호오. 이거 생각보다 기분 좋네.
“뭐가.”
- 하온 선배님께 칭찬받는 거요~
교주가 다시 능글맞은 태도로 돌아갔다. 나는 잘게 고개를 젓다가 내 정보 하나를 깠다.
“나한테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볼 수 있는 스킬이 있어.”
- 재능?
“그래. 예를 들자면, 유찬 형은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있지. 그리고 그 스킬을 통해 네게 당한 사람한테는 ‘신뢰’라는 표식이 생기는 것도 알아.”
- 내가 스킬을 쓰면 네가 알 수 있다고 한 건 사실이었네.
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또 맞는 말이었기에 모르는 척 “그래.”하고 대꾸했다.
- 그럼 그 스킬, 나중에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 써 줄 수 있어?
“누구한테?”
- 아직은 나도 모르지. 필요할 때가 온다면 말이야.
“그쪽 재능은 궁금하지 않고?”
- 내가 잘하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교주는 칼 같이 자른 뒤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재차 물었다.
“에프터 서비스는 네 마음대로 한 거니까 이건 우리 거래 외적인 부탁 맞지? 그때 봐서 결정할게.”
-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교주가 혀를 끌끌 차면서 웃었다. 거실에서 이서호가 더 하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저쪽이 파하는 듯해 서둘러 교주와 통화를 끝냈다.
교주와 대화하면 할수록 알쏭달쏭했다. 나쁜 사람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 회귀 목표 물어보려던 거 잊었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가족에게는 연락처가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답장이 오거나 교주처럼 전화라도 오면 할 말 없기도 하고, 말 섞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
[제목] 풀문에 입장문뜸... 하ㅋㅋㅋ (댓글 999+)
떱라 본 디어리들은 다 알거야.
하온이가 힘든일 있었는데 다 해결됐고,
이제 괜찮다고 했던거 ㅇㅇ
근데 풀문 입장문....
이번 사태 얘기 하나도 없고
갑툭 아픕늬디예,, ㅇㅈㄹ 하면서 휴양 간다함?ㅋㅋㅋ
진짜 힘들었던 건 쓰러진 우리 하온인데
끝까지 개빡치게 만드네 진짜 ㅋㅋㅋㅋ
─ 근데 사실상 프로그램 올 하차된거 보면 ㄱㅎㅊ버린듯
┗ 이게맏다 걍 아웃된거ㅋ
┗ 평소 행실이 추문킹이라 뭐 놀랍지도 않네
─ ㅇㄷㅇㅇ는 어케되는거임?
┗ 멘토 새로 뽑겠지 머
┗ 일단 울애들 출연은 끝남 뒤는 내알바ㅋㅋ
┗ 아 ㅅㅍ 생각하니 또 빡치네 아니 애를 얼마나 괴롭혔길래 태도만 보고 이상하단걸 눈치채냐고?????? 진짜 다 뿌셔버리고 싶다... 하온이 괴롭힌 것들 걍 다 죽어ㅋㅋ 왜사냐
─ 진하온 절대 지켜!!
─ 주머니에 쏙 넣어서 어디든 델고다니고 싶은 애기천사 괴롭힐데가 어딨다고ㅠㅠ
─ 이래놓고 한 n개월 뒤에 자숙 끝났다고 기어나오는거 아냐?
┗ 풀문이 문라 남은 멤들 싱글로 돌린다는 소문있음. 지금 문라 자컨도 중단됐다더라
┗ 달빛 초상집임ㅋㅋㅋㅋ 아니 도대체 ㄱㅎㅊ같은거 왜 빠는지 1도 이해 안됨
┗ 눈막귀막새~
─ 지옥으로 꺼졌으면 ㅎㅎ
[제목] 떱라 영롱한 온요뎡 (댓글 999+)
유달리 넘 오랜만인거 같고
내 새끼 괜찮은지 보려고ㅠㅠ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와 ㅠㅠㅠㅠㅠㅠ
우리 하온이는 1초마다 리즈 갱신하는 듯...
(눈웃음으로_세상을찢어.mov)
(정수리마저_갓벽한_요뎡.mov)
(하온이_하온했다.mov)
─ 만약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죄라면 하온이는 사형이었어....
─ 내가 하온이 낳을걸..ㅜ
─ 움직이는 하냥이는 진짜 그냥 존예 그 잡채 ㅠㅠ
┗ 존예=하냥. 하냥이 존예네=하냥이 하냥이네.
┗ 뭔가 이어 받고 싶은데 할 말이 없네... 하냥이는 내 천사!!! 아 난 왜 드립이 찰지지 못한거야ㅜ
┗ 닥눈삼 ㄱㄱ
┗ 주입식 교육 외워라
┗ 하온이를 사랑하는 맘으로 하다보면 안될게 없음
─ 부끄러워하는 하온이 보고 벽치다가 옆집이랑 방틈...
┗ 무료 리모델링까지 해주는 아이돌이란...
┗ 평수까지 넓혀줬네 이 정도면 진하온 얼굴 복지 인정해야 한다
┗ ㅁㅊㅋㅋㅋㅋㅋ 리모델링ㅋㅋㅋㅅㅂㅋㅋ
─ 하온이가 백화점에서 쇼핑한거 멤들 선물이라고 누구한테 줬는지 말해줬는데 찰떡인것도 개발려...ㅠㅠ
┗ 떠호 넘 즐겜해서 혼난거 커엽ㅋㅋㅋ
┗ 아 백화점 붙순이들 ptsd오네...
[한궁] 오늘 떱라 떡밥 대박ㅋㅋㅋㅋ
♥♥♥무려 한이 작사 작곡한 <<백야>>♥♥♥를 궁한테 선물했다고함
근데 가사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너는 나의 빛
나의 태양
어둠을 끝내준 유일한 빛 = 궁ㅋㅋㅋ
고백송 아니냐고!ㅠㅠㅠ
침착하게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ㅡ ㅁㅊ 개설렌다 ㅅㅍ;;
─ 고백 아니면 설명이 안됨 저런 형 동생이 어딨어?
┗ 강속구로 하트 날린 급 (ノ´ з `)ノ—̳͟͞͞♡
┗ 에잇에잇 (っ'-')╮=͟͟͞♡
─ 심지어 둘이 룸메^^ 할많하않..
┗ 애들아 행쇼하렴 (´∇ノ`*)ノ
─ 내가! 그렇게! 티내지 말랬는데!!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