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이틀 뒤, 풀문과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난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고작 이틀 동안 입원했을 뿐이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쉰 탓에 뺨에 살이 좀 오른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답답함을 못 이겨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매니저 형의 철통 감시 탓에 병실에서 나갈 방법이 없었다. 멤버들이 연습을 마무리하면 매니저 형이 데리러 가느라 혼자가 되었지만, 그건 곧 나를 감시할 인력이 네 명으로 바뀐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몸은 편했어도 정신적으로는 피곤했던 짧은 입원이 끝나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매니저 형은 퇴원 기념으로 W라이브를 할 거라면서 나를 샵으로 데리고 갔다.
원장님이 기사를 보셨다며, 쓰러졌었다더니 못 본 새 더 하얘진 것 같다고 혀를 끌끌 차셨다. 그러더니 내 앞에 초콜릿과 과자 한 바가지가 놓였다. 그래도 살 빠졌다는 소리 안 하시는 걸 보니 살이 좀 찌긴 쪘나 봐.
“유찬 형, 저 살쪘어요?”
거울 속의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물었다. 확실히 얼굴에 살이 좀 붙은 것 같기도 하고…….역시 빼야 하나. 원장님이 날 단장하는 사이 유찬 형은 “뭐?”하고 되물었다가,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 하나도 안 쪘는데?”
정이한이 내 입에 초콜릿을 밀어 넣어주면서 “너는 좀 쪄야 해.”하고 말을 얹었다. 나는 초콜릿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다가 화들짝 놀랐다. 초콜릿은 이미 내 입으로 들어와 녹아가는 중이었다.
범인은 이 안에 있었잖아!
초콜릿을 빨리 씹어 삼키자 자연스럽게 하나 더 내미는 정이한의 팔을 슥 밀어냈다.
“아, 이한 형. 저 자꾸 먹이지 마세요.”
“한 번만 더 먹자.”
“안 돼요. 저 얼굴에 살 오른 것 좀 봐요.”
“푸하학! 진하온! 개 웃겨!”
뭐라는 거야. 배를 움켜잡고 폭소하는 이서호를 흘겨보는 사이 유찬 형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리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정곤 형이 살 빼래?”
“아니요? 그런 말은 못 들었,”
“하온아, 음. 하자. 음.”
원장님의 요구에 강제로 입이 다물렸다. 입술에 촉촉한 립밤이 발리는 사이 유찬 형의 말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럼 안 빼도 돼. 고작 이틀 쉰다고 살 안 쪄. 아니, 살 좀 찌면 어때? 너는 좀 쪄도 다이어트 안 해도 되거든? 자꾸 그런 소리 하면 화낸다?”
유찬 형은 진짜 다이어터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면서 꿍얼거렸다. 그, 런가. 안 빼도 되면 좋은 거고……. 괜히 유찬 형에게 미안해진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
이번 W라이브는 내가 건강하다는 걸 알리는 게 목적이었기에, 꾸안꾸 스타일로 가볍게 메이크업과 헤어 손질을 받았다.
“실장실에 들렀다가 W라이브 방송할 거야.”
“넵!”
매니저 형의 뒤를 따라 실장실에 들어갔다. 멤버들도 함께였다.
“왔니?”
“네!”
우리는 동시에 대답한 뒤 앞에 놓인 의자에 쪼르륵 앉았다. 실장님은 우리가 모두 앉을 때까지 기다리신 뒤 운을 떼셨다.
“풀문이랑 협상한 내용 알려주려고 불렀어. 일단, 김호채는 무기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어. 건강 문제로 휴양하는 쪽으로 발표한다고 해. 더불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연히 오디아이도 하차야.”
오! 소파남 잘 가라. 배웅은 하지 않으마.
“사실상 문라이트는 해체. 다른 멤버들은 개인 활동으로 돌릴 것 같은 느낌이었어.”
실장님은 사고를 좀 많이 쳤어야지, 라고 덧붙이시며 혀를 찼다. 그럼 사실상 소파남은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잖아? 몇 개월 좀 숨죽이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올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요원한 것 같았다.
“증거가 너무 확실하고, 하온이가 미성년자라 만약 법정 공방으로 번지게 되더라도 무조건 우리가 승소하는 일이야. 하지만 우리 쪽도 이 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실장님은 내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말씀을 마무리하셨다. 법정 공방으로 가게 되면 단순 괴롭힘이 아니라는 게 드러날 것을 염려하시는 것 같았다.
“그건 저도 그래요.”
내가 원하는 건 디아스 활동에 집중하고, 디어리랑 알콩달콩 지내는 것뿐이다. 소파남 때문에 내 시간과 신경을 빼앗기고 싶진 않았다.
실장님은 조금 안심한 듯 미소 지은 뒤 계속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건은 오늘 W라이브 하면서 ‘힘든 일이 있었지만, 전부 마무리되었고 이젠 다 괜찮다.’ 라는 뉘앙스를 조금 흘려주는 걸로 끝내려고 해.”
내가 생각했던 전면 부정이 아니라, 사실상 반쯤 인정하는 말이라서 조금 놀라웠다. 실장님은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나갔다.
“인정하는 거 맞아. 우리가 방송하고 난 다음에 풀문 쪽이 김호채 휴양 기사 배포할 예정이야. 그러면 이 건은 완전히 끝나.”
그렇겠네. 대놓고 ‘쟤가 가해자입니다!’라고 말하진 않았으나, 최근 사태와 소파남의 기사가 겹치면 루머가 기정사실화 될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W라이브를 해야 한다고 한 거구나.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추가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합의를 끝냈어. 물론, 우리 쪽은 추후 김호채가 또다시 네게 접근하는 경우 이 합의는 무효가 된다고 조건 달았고. 일주일 이내에 합의금 받기로 했거든. 이거 받으면 전액 하온이에게 줄 거야.”
합의금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소파남과 얽힌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괜히 기분만 더러워지지.
“저는 돈 필요 없는데요.”
내가 무작정 거부하자 실장님이 조금 난처해하셨다. 나는 정산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네가 안 받으면 어떡하니? 네 합의금인데.”
“그럼 그 합의금, 그냥 저희 앨범 제작비에 보태주세요.”
“그건 안 되지.”
실장님은 합의금은 그런 곳에 쓸 수 없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아니, 나도 필요 없다고. 필요 없어! 그런 돈이 내 통장에 묻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진하온, 무슨 소리야? 돈은 죄가 없어.”
이서호가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건 아는데. 어? 잠깐. 그렇지! 이번에도 이서호의 뻘소리에 힌트를 얻었네. 저 녀석 은근히 도움이 된단 말이야…….
나는 머릿속으로 합의금의 사용처를 정한 뒤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실장님이 기쁜 듯 웃으셨다.
“그리고 이거는…….”
실장님이 책상 밑에서 쇼핑백 다섯 개를 꺼내서 올려두셨다.
“새 휴대폰이야. 오늘 중에 데이터 다 옮기고 기존에 쓰던 건 정곤 매니저님께 드려. 모아서 폐기할게.”
“와!”
“감사합니다!”
새 휴대폰을 받아들고 실장실을 나왔다. 새로 받은 휴대폰을 덜렁덜렁 흔들었더니 이서호가 소중히 여기라면서 잔소리를 했다.
“하온이는 바로 W라이브 하러 가자.”
“네! 아, 유찬 형. 이거 부탁해요.”
“어어. 연습실에 있을게. 잘하고 와!”
“넵!”
유찬 형이 내 휴대폰이 든 쇼핑백을 팔목에 걸면서 손을 흔들었다. 형들의 응원을 든든하게 어깨에 걸친 채 매니저 형의 뒤를 쫄랑쫄랑 쫓았다.
***
“준비됐어?”
“네!”
의자에 앉은 나는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휴대폰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다. 내 손에는 실시간으로 채팅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휴대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사전 예고 없는 라이브였는데도,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디어리들은 바람처럼 접속했다.
- 하온아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
- 우리 애깅이ㅠㅠ 이제 괜찮아? 안아파?ㅠㅠ
- 진짜 죽도록 보고시펐어ㅜㅜㅜ
동시에 디어리들의 통곡이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나는 최대한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진하온입니다. 우리 디어리들 잘 있었어요?”
- 하온이가 아파서 나도 아팠어...
- 어떠케 우리만 잘있었겠니?ㅜ
-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8ㅅ8
“미안해요. 걱정 많이 했죠? 서호 형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디어리 눈물 때문에 침수될 뻔했다고.”
조금 웃었으면 하는 마음에 슬쩍 던졌는데, 다행히 ‘ㅋㅋㅋ’가 조금씩 눈에 띄었다. 나는 나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신 방긋거리면서 웃었다.
“사실 진작 퇴원해도 됐었는데, 회사에서 푹 쉬라고 해서 나이롱환자로 입원해 있었어요.”
몇몇 디어리가 소파남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금방 쓸려 올라갔다. 이제는 정말 끝이 났기에 나는 홀가분한 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아주 조금 힘든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몸 관리를 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 해결됐어요. 그러니까 우리 디어리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괜찮아요!”
슬쩍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면서 윙크를 보냈다. 여전히 날 염려하면서 우는 디어리, 소파남의 초성을 언급하면서 때려죽이겠다는 디어리, 무작정 사랑한다고 전해주는 디어리들까지 다양한 반응이 돌아왔다.
- 하온이 건강이 최고야ㅠㅠ 다른건 다 필요없어ㅠㅠㅠㅠㅠㅠ
- 우리 하냥이가 웃어주기만 하면 나는 행복해!
- 덥라에서 얼굴 보니까 너무 조타ㅠㅠㅠ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에는 온통 다정한 말들 뿐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디어리들이 정수리를 외쳐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헉, 죄송해요…….”
민망함에 어색하게 웃던 내 입에서 절로 헛기침이 나왔다.
- ㅋㅋㅋㅋㅋㅋㅋ 아우 커여워 우리 요뎡!
- 정수리도 갓벽해... 도대체 모자란게 모야?
- 하오니 누누슴 넘 예뻐♡
또 정수리만 보여줄까 봐 채팅이랑 카메라를 번갈아 보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노래 요청을 받아서 노래도 불러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흘렀다.
매니저 형이 신호를 보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디어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는 형에게 채팅 확인용 휴대폰을 건네주고, 연습실로 향했다.
막 연습실 앞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형들일 것 같아서 샐쭉 웃었는데, 소파남의 톡이었다. 마지막까지 질척거리네.
나는 1이 떠 있는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먼저 톡부터 차단한 뒤 그냥 지워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자를 한 통 띡 날렸다.
[차단합니다.]
전화번호까지 싹 차단하고 나니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어차피 폐기할 거지만 차단하겠다는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해맑게 웃으면서 연습실 문을 벌컥 열었다.
“형들! 저 왔어요!”
“우리도 떱라 끝난 거 봤지!”
이서호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찬 형은 잘했다면서 잔뜩 칭찬해줬고, 정이한은 내가 백야를 불러준 게 그저 감동이라면서 기뻐했다. 형들 틈에 섞여서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내가 거울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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