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72화 (172/320)

172.

“네 생각은 알겠어. 하지만 하온아. 풀문 쪽이 소홀해진다고 우리까지 그럴 것 같았니?”

……아. 실장님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시며 날 지그시 바라보셨다.

“원본을 우리가 쥐고 있는 이상 억제력이 있다는 소리야. 나한테 맡겼어도 네가 원하는 결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었어.”

“……죄송합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알아. 나는 처음부터 널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니까. 항상 생각했었어. 왜 여기 남아주는 걸까. 나라면 다른 기획사로 갈 텐데, 하고.”

실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씁쓸하게 웃으셨다. 아…. 데뷔 초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 봐.

“하온아. 미안해. 네게 신뢰를 얻지 못한 건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야.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실장님은 애틋한 눈길로 날 보시다가 고개를 숙이셨다. 깜짝 놀란 내가 어버버 거리는 사이 실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믿어줄래? 나는 정말 너희가 소중하고, 너희를 지켜주고 싶어.”

나는 허겁지겁 목소리를 높였다.

“믿어요! 당연히 믿죠. 실장님을 믿지 못해서 이런 게 아니었어요.”

날 보는 실장님의 미소에 죄책감이 배여 있었다. 실장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려던 게 아니었는데. 나는 정말 괜찮은데. 그때의 나는…….

나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실장님이 ‘우리 애’라고 불러주신 게 좋았어요.”

“……응?”

“그리고 또 우리 하온이, 라고 불러주셨잖아요. 그래서였어요. 여기 계속 있었던 건. 아무도 없었거든요. 저를, 그렇게 불러줬던 사람. 실장님이 처음이었어요. 저 서운한 거 없고요, 믿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내뱉었다. 실장님은 조금 놀라신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자상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셨다. 이렇게 다정한 실장님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겠냐고.

“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 형들 괴롭히는 게 너무 싫어서. 그게 저 때문이라는 게 정말, 너무 싫었어요. 어떻게든 확실하게 떼어내고 싶은 마음에, 그래서 욕심을 부렸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정말 실장님을 믿지 못한 건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내 간절한 성토에 실장님은 몸을 일으켜 나를 안아 주셨다. 실장님의 품은 무척 포근했다. 엄마에게 안긴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실장님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처음 들었던 우리 애, 라는 말이 꼭 엄마 같아서.

꽤 오랜 시간 날 안아 주고, 등을 토닥여주신 실장님이 웃으면서 의자에 앉으셨다.

“그럼 우리 화해한 거다?”

“싸운 적도 없는데요…….”

실장님이 나를 향해 유쾌하게 웃었다. 그에 덩달아 같이 방긋 웃어 보였다.

“좋아! 그럼 이제 본론을 꺼내 볼까?”

본론이라는 말에 나는 살짝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바라는 걸 말해줘.”

“제가 바라는 거요?”

“응. 김호채 그 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실장님은 병실 내부를 쭉 훑어본 뒤 내게 말했다.

“우리 아티스트를 감히 협박까지 해서, 스트레스로 쓰러지게 만든 책임은 확실히 져야지. 하온이 네가 원하는 요구 사항이 있다면 그것까지 포함해서 협상할 거야.”

“오디아이에서 하차하는 거요.”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주한 형과 하윤이를 위해서라도 그 사람은 꼭 하차해야만 했다.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거리시면서 더 바라는 게 있는지 물으셨다.

“앞으로 제게 접근하지 말고, 저희랑 같은 프로그램에도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그 외에는 또 없어?”

“……으음. 네. 생각나는 건 없어요. 아, 그리고 실장님.”

“응?”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저희가 해명해주는 것도 무기가 되죠?”

그 말에 실장님이 헛웃음을 터트리셨다. 영악한 머리에 계획이 다 있었다면서 눈을 흘기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쪽은 조용히 마무리하길 원할 테니까.”

“그럼 저는 입장문 써줘도 되니까 나머지는 실장님께 맡길게요.”

“확실히 이해했어요. 제 소중한 아티스트님.”

“억.”

장난스레 돌아온 말에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가 튀어 나갔다. 실장님이 그런 날 보고 귀엽다는 듯 웃으셨다.

“며칠만 더 입원하자. 확실히 뜯어내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네!”

그거야 상관없지. 이번에는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내심 속으로 흡족하게 웃을 때였다. 병실을 나가시던 실장님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아!”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셨다.

“검사 예약 잡아놨으니 전부 받아.”

“……또요?”

“받기 싫으면 다시는 쓰러지지 않기.”

“으윽. 네…….”

누굴 탓하겠어. 내가 선택한 건데…….

“얘들아, 거기서 서성거리지 말고 들어가.”

실장님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멤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일 뒤에 따라붙은 매니저 형은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는데…….

매니저 형은 단어를 고르는 듯 날 지켜만 보다가 묵직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다음엔 절대 안 된다.”

“……넵!”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어갔는데? 매니저 형은 이렇게 된 거 편하게 쉬라면서 병실을 비워줬다. 형이 나가자마자 이서호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우, 정곤 형 화내는 거 진짜 무섭더라.”

“……그러니까.”

정이한이 간이 의자에 앉아 이서호의 의견에 공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였다.

“하온이 안 혼나서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양심이 더 찔리는데. 주동자는 나였는데, 정작 나만 안 혼난 것 같은 이런 찝찝함이라니.

형들한테 더 잘해야겠다…….

***

실장님이 예고한 대로, 풀 코스 검사를 받고 병실로 돌아왔다. 진짜 이게 제일 힘든 것 같다. 나는 침대에 털썩 엎드리며 널브러졌다.

“불편하게 그러지 말고 편하게 누워서 쉬어.”

계속 나를 따라다닌 정이한이 내 팔을 톡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귀찮아서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잘해주자고 마음먹은 게 조금 전이라 어쩔 수 없이 정이한의 의견을 따라 움직였다.

“하온아, 너 쓰러진 사이 연락 많이 왔어. 일단 내가 충전해뒀는데.”

유찬 형이 깜박했다면서 내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살펴보니 정말로 제법 많은 사람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팀팀 촬영을 함께했던 봉재범, 추덕수, 전동진, 전재규, 강도준 선배님부터 시작해서 드라마 촬영을 함께한 고우진 선배님, 심지어 승리한에게도 왔다. 세화 형도 잔뜩 걱정하고 있었고, 주한 형과 하윤이한테 온 연락도 있었다.

나의 세계가 더욱 넓어졌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또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보답하듯 열심히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회신하면 또 새로운 톡이 날아드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에 얼굴을 박다시피 하면서 계속 톡을 주고받았다.

“으아……. 다 했다.”

모든 사람과의 톡이 마무리되자 큰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었다. 일단 주변 사람들은 됐는데, 제일 걱정인 건 디어리였다.

“유찬 형.”

“응?”

“디어리는… 어때요?”

“어떻긴. 걱정 많이 하지. 일단 너 정신 차리고 회복 중이라는 기사는 배포됐어.”

그러면 다행이다. 이번에 내가 뿌린 것들이 많아서 반응을 좀 살펴볼까 했는데, 이서호가 대뜸 끼어들었다.

“진하온, 너 진짜 몸 관리 잘해야 해. 디어리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아? 대한민국 침수되는 줄 알았네.”

그렇게 걱정을 많이 끼쳤구나. 이서호의 과장된 표현이 오늘따라 유독 피부에 와닿았다.

“그럴 거야. 이제 이런 일 없게 해야지.”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죽어도 고 스킬도 올려야겠어. 엿보기 스킬도 많이 바뀌었으니 ‘죽어도 고’도 올려보면 달라질 것 같았다. 스탯은 경험치를 쌓아서 올리고, 스킬 위주로 포인트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여론은 진하온 네 뜻대로 움직이고 있더라.”

이서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앨범을 보여줬다. 김호채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는 글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는지 원하는 내용이 전부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찌라시까지 추가된 채였다.

그뿐 아니라 이서호는 다양한 반응을 수집해 놓고 있었다. 그걸 찬찬히 읽다 보니 김호채가 내게 윽박지르는 것을 본 목격자가 많았기에 제법 득을 본 듯했다.

소파남을 만났을 땐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넘어갔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는 꽤 잘하는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이서호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면서 교주의 스킬 효과를 가늠했다. 교주는 내게 두 가지 힌트를 줬는데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라는 것과 ‘판단력을 잃게 할 수 있다.’라는 거였다.

그러니 목격자가 많은 곳으로 약속 장소를 바꾸게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 소파남이 급발진한 것도 교주의 스킬 영향에 넣느냐는 것이다.

일단 이서호랑 비교해 보면 맞는 것 같지?

하지만 최근 이서호는 광신도다운 면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교주를 좋아하고 따르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이성을 잃고 교주만 중요하다고 떠들진 않으니까.

그렇다면 디버프는 그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신뢰’ 혹은 ‘호감’을 가리키는 척도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교주가 대상에게 ‘어떤 말’을 했느냐에 따라 대상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짐작일 뿐이지만, 그러니까 언어로 유인한다고 했겠지.

즉, 소파남이 급발진한 이유 또한 결국엔 교주가 속삭인 ‘어떤 말’ 때문이라고 보면 말이 됐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거부했을 때 유독 화를 냈으니 자존심 같은 거였을지도.

이번에 교주의 도움을 받길 잘한 것 같았다. 소파남은 교주 없이도 무찌를 자신 있었지만, 덕분에 교주의 정보를 꽤 많이 얻어냈으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나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정이한이 깎아 준 복숭아를 날름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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