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65화 (165/320)

165.

“어? 뭐야 이거? 편집 왜 이래?”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리는 이서호의 말이 들렸다. 설마 했는데 정말 이런 식으로 악마의 편집을 할 줄이야. 나는 잔뜩 굳은 얼굴로 스크린 속 영상을 바라보았다.

주한 형과 하윤이가 있는 팀 ‘디어’의 무대 직전, 준비 과정이 무대 뒤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

“아…….”

저절로 짜증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을 와락 구기고 있는데 유찬 형이 조용히 날 불렀다.

“이거, 네가 말했던 그거지? 편집…….”

“네. 설마 했는데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네요.”

편집 영상만 보면 하윤이는 고집부려서 ‘메인 보컬’이 된 사람이었다. 우리와 참가자에게 열의와 진심을 담아 정중히 도전해보고 싶다고 부탁하는 장면은 송두리째 빠졌다.

그 대신 곤란한 얼굴로 하윤을 보는 강승운 참가자의 모습만 길게 잡혔다. 게다가 소파남이 왔었던 것 또한 완전히 편집됐다. 그 탓에 하윤이 혼자 우겨, 참가자와 우리를 곤란하게 하면서까지 메인 보컬 포지션을 고집한 것처럼 느껴졌다.

화룡점정은 연습 장면이었다. 연습하는 내내 화기애애했던 모습이 전부 빠진 건 물론이고, 체력이 딸려서 쉬는 내 모습이 유달리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앞뒤 정황상 꼭 ‘하윤이 때문에’ 피곤해서 쉬는 것처럼 느껴질 만한 편집이었다.

“……너무해.”

마지막에 가서야 다 같이 웃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미 방청석은 술렁이고 있었다. 싸가지 없다, 얼굴만 믿고 나댄다, 진하온 닮은 걸로 이득 보려고 저러는 거 아니냐 같은 말들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내 동생이, 나 때문에 사람들한테 욕먹는 것만 같았다. 죄책감과 분노, 속상함, 안타까운 마음들이 마구 뒤엉켜 속이 울렁거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윤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건가. 서브 미션이라도 나오면 돌파구가 있겠구나, 판단이라도 설 텐데 영 잠잠했다.

잠깐만. 설마 무대 뒤에서 하윤이도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충격받을 텐데……. 그런 멘탈 상태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제 말을 지키고 싶어서, 증명해 내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하윤이가 처참하게 짓밟힐 것만 같아 무서웠다.

누군가의 악의에 노출되기엔 하윤이는 너무 어리잖아. 성인들도 마음의 상처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마당에,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사랑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더 크고 많은 상처를 받겠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윤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만한…….

“하온아, 괜찮아? 너 하윤이 좋아했잖아…….”

정이한이 내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너무 골몰했나. 어느새 정이한은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 놀랐어요…….”

정이한이 내 손등을 덮으며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줬다. 하윤이는 좋은 아이니까 다들 알아줄 거라면서. 단단한 미소는 정이한이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순진해서야……. 정말 어디 가서 뒤통수 맞고 와도 아픈 줄도 모를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이번 팀은 곡명을 그대로 팀명으로 차용했네요! 팀 디어! 나와 주세요!”

다섯 명의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하윤인 잔뜩 굳어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굴 것만 같았다.

역시 본 게 분명해.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을 때였다.

“우씨, 이러면 하윤이가 뭐가 돼?”

이서호는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씩씩거리다 돌연 영혼까지 끌어모은 듯한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지인! 하아! 유운! 파아! 이잇! 티이잉!”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게 괜히 우리 팀 최대 성량을 자랑하는 멤버가 아니었다. 이서호 덕에 초대석과 가까운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디아스’라고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느낌표가 섰다. 이서호가 도움 될 때도 있다니!

“서호 형! 그거 한 번 더 해줘.”

“어떤 거? 응원?”

“어어. 형들도 같이!”

다른 멤버들을 독촉하면서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진하윤 파이팅!”을 연호했다. 우리가 괜히 가수가 아니지. 천장을 뚫을 듯한 성량 덕분에 MC의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하윤이도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

사람들 틈에서 나를 발견한 듯 하윤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는 이내, 아주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만면 가득 띄웠다.

“이야, 이 열띤 응원의 목소리가 누군가 했더니 설마, 서얼마 디아스 여러분이 직접! 팀 디어를 응원하러 와주신 것 같은데요!”

“꺄아아아아!”

MC가 멘트를 치는 사이 스크린에 우리 모습이 잡혔다. 멤버들은 프로 아이돌답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고, 브이를 하고, 하트를 날렸다. 방청객의 환호성을 뚫고 MC의 멘트가 이어졌다.

“사실 디아스 멤버분들 뿐 아니라, 라스트원 멤버 분들도 응원을 와주셨습니다!”

이제 스크린은 우리에서 라스트원 멤버들로 옮겨갔다. 경연 무대까지 방청 온 그룹은 우리와 라스트원 뿐인 듯했다.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두 그룹 멤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MC는 그렇게 마무리한 뒤 곧장 무대를 시작하겠다면서 내려가 버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우리가 말할 기회는 없었다. 그 사이 참가자들이 대형에 맞춰 선 뒤 자세를 잡았다.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디어리가 우리를 응원하듯, 목청껏 다섯 사람의 이름을 순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디어리의 응원은 초대석과 가까운 방청석부터 조금씩 퍼져나가 이내 아주 큰 울림을 만들었다.

“강승운! 이주한! 김민수! 진하윤! 김현진!”

마지막 응원이 끝나고, 고개를 든 하윤이의 표정은 아주 좋았다. 이걸로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무대를 보는 내내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 다행히 팀 디어는 연습보다 더 훌륭하게 무대를 장악했고, 곡이 끝남과 동시에 스튜디오 홀이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다행이다. 다들 잘했네.”

유찬 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처럼 긴장하고 있던 형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난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하윤이를 악편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분명 본방 때 우리 응원은 싹 빠져있을 터였다.

“유찬 형, O.D.I 방송 다 챙겨보고 있댔죠?”

“응. 왜?”

“어떤 내용까지 나왔어요?”

“원곡자들이랑 참가자들 만났고, 예고편으로 우리가 포지션 변경하자고 제안하는 게 나갔어.”

그렇다는 건, 지금 내가 하윤이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스포해도 상관없다는 소리겠지. 두고 보자. 악편으로 애 이미지 망치는 거 다 깨부숴줄 테니까.

“왜?”

“이따가 무대 끝나고 같이 사진 찍어서 짹짹이에 올리려고요.”

“아! 그거 좋네.”

유찬 형이 입꼬리를 스윽 당겨 올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 목적을 알아차린 듯했다. 나는 든든한 유찬 형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짹짹이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사진이었다. 특히 단체 사진은 일부러 무대 의상을 벗기 전에 찍은 것으로 골랐다.

디아스@Dias_SR

디어리 안녕하세요? 하온이에요.

오늘은 O.D.I 평가 무대 응원을 왔습니다!

사실 ‘Dear’팀 여러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헤어질 때마다 눈물바다예요. 특히 우리 서호 형이랑 하윤이가 많이 울었어요. 둘 다 귀엽죠?

(헤어질때마다_우는_울보_서호형.jpg)

(하윤아_잘했어_고생했다.jpg)

(방송종료후_디어팀_멤버들과.jpg)

#보고싶은 #우리디어리 #항상사랑해요

우는 이서호를 귀여워하는 디어리들 틈에 나한테 안겨서 우는 하윤이가 귀엽다는 반응도 보였다. 공식 계정이라 그런지 긍정적인 답글뿐이었다.

평소에 서칭 같은 건 하지 않는데, 혹시나 해서 하윤이 이름으로 이리저리 검색해봤다. 그 덕에 나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실력도 안 되는데 그저 닮았다는 이유로 내 포지션을 가져간 것 같다는 글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그중에는 ‘궁예’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소설을 쓴 글도 있었는데, 그게 이번 악편의 흐름과 비슷했다.

역시 다음 방송 나가기 전에 하윤이를 만나야겠어.

아무래도 짹짹이만으로는 화력이 부족할 것 같았다. O.D.I 촬영은 이틀의 휴식 기간을 가진 뒤 수요일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했다. 그날 탈락자 결과 발표를 한다는, 아주 악질적인 일정이었다. 차라리 오늘 결과까지 발표해주면 마음이라도 편할 거 아니야.

디어 팀 자체의 성적은 좋았지만, 하윤이는 팀 내에서 최하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능할지 지금으로서는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 했다. 최대한 이번 휴일 중에 만나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월요일은 드라마 마지막 촬영이 잡혀 있었고, 수요일에는 소파남을 만난 뒤 쓰러질 예정이다. 화요일만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숙소에 도착해 옷도 갈아입기 전에 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이한에게 먼저 씻으라고 눈짓하는 그 찰나의 순간, 전화가 연결됐다. 무척 들뜬 목소리로 인사하는 하윤에게 화요일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 헐! 허얼! 물론이죠! 당연히! 무조건 돼요! 안 돼도 돼요!

“그럼 학교 끝나고 만날까?”

- 네! 저는 무조건 좋아요!

잔뜩 신나서 방방 뛰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힐 듯 선했다. 데리러 가겠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다가, 결국 학교 근처의 룸 형식 카페로 장소가 정해졌다.

일단 알겠다고 했지만,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딜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정이한이 말을 붙였다.

“하온아, 화요일에 혼자 갈 건 아니지?”

불쑥 끼어 들어온 정이한을 마주 보면서 몇 번 눈을 끔벅거렸다. 혼자…가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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