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소파남은 손마디가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현 형의 어깨를 꽉 쥐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현 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뒷짐을 진 채 가만히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소파남이 강현 형을 괴롭히는 모습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카메라 앞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저 자식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언젠가 꼭 복수한다. 나는 속으로 이를 득득 갈며 다짐했다.
“여기는 디아스구나? 좋은 곡 뽑았네. 이 친구들이 잘하거든.”
소파남은 별일 없었다는 듯 강현 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뒤 참가자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도대체 왜 온 거야. 뉘앙스만 보면 연습실을 차례대로 둘러보는 중인 것 같긴 한데……. 우연인가? 아니면 알고 왔으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건가? 뭐가 됐든 소파남과의 만남은 언제나 거북했다.
“김호채 멘토님! 응원하러 와주신 거예요?”
반가워하는 하윤의 목소리에 나는 강현 형의 팔을 잡은 채 고개만 기울여 훔쳐봤다. 생기 넘치는 얼굴로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하윤은 촬영하는 동안 정이라도 붙였는지 김호채를 무척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섬뜩한 불쾌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 잠깐만. 설마……. 아니겠지?
하윤이는 17살이다. 나는 그나마 19살이잖아. 올해만 지나면 성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하윤은 진짜 아니야.
‘혹시’ 하는 가정이 머릿속을 스침과 동시에 떠오르는 상상들에, 구역질이 치밀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저질은 아니겠지. 저런 인간이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양심은 있을 거 아니야.
“당연히 연습하는 거 응원하러 왔지. 나는 너희가 잘 되길 바라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김호채는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의 김호채와 눈이 마주쳤다. 기분 나쁜 눈동자는 거울 속에서도 음험하게 빛났다.
“포지션은 다 나눴고?”
“아, 나누긴 했는데요…….”
하윤이 시선을 내리깔면서 우물쭈물했다. 소파남은 상체를 살짝 숙여 하윤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보호자라도 되는 양 다정하게 묻는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왜? 문제라도 생겼어?”
“그게…….”
진하윤은 우리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소파남이 허리를 세우고는 우리 쪽을 돌아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유찬 형이 나서서 간략하게 요약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소파남은 검지로 턱을 문지르곤, 참가자들을 보며 자신의 앞에서도 한 번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네, 그럼요!”
멘토의 요구를 거절할 순 없으니 다들 당연하다는 듯 주르륵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참가자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소파남은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네. 그런데 너희는 오디션을 보는 거야. 오디션은 완성된 멤버를 뽑는 게 아니라,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굴해내는 장이고. 부족한 건 데뷔 전까지 배우면 돼.”
“……아.”
“그리고 승운이가 노래 잘하는 건 예선에서부터 이미 증명했잖아? 아이돌은 팀으로 굴러가는 거야. 한 사람한테만 계속 스포트라이트가 가면, 오히려 그룹 활동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이번 기회에 실력 발휘보단, 그룹에 너를 녹아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봐.”
와……. 카메라 앞의 소파남은 미심쩍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매우 멀쩡한 멘토였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선배의 조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오디션에서 제일 중요한 건 ‘노출’ 싸움이었다. 자주 노출되어야 팬이 늘어나고, 팬이 늘어나야 투표에 유리하니까.
이러니저러니 이유를 붙여도 결국 눈에 띄게 잘해야 했다. 물론 시청자들은 성장 스토리를 좋아하고, 못 하는 참가자가 노력으로 극복해내는 과정을 응원하며 지켜봐 주겠지만.
하지만 실력이 덜 다듬어진 탓에 팀에 민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부족한 실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꼭 메인 보컬에 덜컥 발탁되는 거로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진하윤은 시작이 엉망이었으니까 당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단,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성장하는 걸 보여주는 게 좋을 텐데…….
게다가, 메인 보컬 자리를 팀을 위해 양보하는 모습만으로도 우호적인 여론이 생길 수 있는데 말이지. 이런 분위기는 진하윤에게 좋을 게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 하윤을 위해 머리 굴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헛숨을 삼켰다. 진하윤이 어떻게 되든 나랑은 상관없잖아. 오히려 보컬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적으로 빛나 보일 주한 형은 다음 무대에 진출할 확률이 높았다.
더는 이 일에 머리 쓸 필요 없이, 제작진이 아주 자극적으로 편집할 수 있을 만한 소재를 가져다 바치는 중인 진하윤에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왜지?
하윤이가 사람들에게 비난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이러나저러나 하윤이는 내 동생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진짜 웃긴다, 진하온.
마주치자마자 겁부터 집어먹고 벌벌 떨더니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그래도 내 동생’이란 생각이 들어? 평생 가족으로 인정받은 적도 없으면서. 그런데도 동생이라고 감싸고 돌고 싶은 마음이 드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꽤 잘 간파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 감정은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이 촬영을 끝으로 진하윤과 더는 얽히고 싶지 않은 건 맞다. 제대로 된 애정이 쌓일 틈이 없었으니 그리움도 없었다. 짝사랑처럼 계속된, 가족이 되고 싶어 했던 내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었으니 이제 와 가족의 끈끈한 정 같은 걸 느낄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내 동생이니까. 고작 17살이니까. 이 세계의 하윤이는 나를 모르니까. 전생의 하윤과는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를 향한 수많은 변명 끝에 이어진 결론은 하나였다. 하윤이가 다른 사람들의 비난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행복하게, 혹은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생 신경 끄고 살 수 있게.
나는 강현 형의 등에 이마를 쿵 찧듯이 기댄 채 고개를 숙였다. 뭐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냥 이기적인 마음이었네.
“선배님, 저…….”
말 걸기를 주저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진하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유찬 형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형은 눈짓으로 앞을 보라고 신호를 줬다. 강현 형 뒤에 숨어 있다 반걸음 옆으로 나왔더니, 하윤이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올곧은 시선만큼이나 또박또박한 말이 나왔다.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한 거 알고, 정말 피 토할 정도로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아는데요. 그래도 하고 싶어요. 저 정말, 진하온 선배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열정과 진심이 느껴졌다. 나한테 진하윤은 전생에서나, 이번 삶에서나 여러 의미로 특별한 존재가 맞았다. 하지만 진하윤에게 나는 그런 존재까진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윤은 나를 보고 방긋 웃어 보인 뒤 이번엔 참가자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에 민폐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난처한 듯 입술을 말아 문 강승운 참가자는 하윤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참 만에 무언가 결심한 것 같은 홀가분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더니 하윤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면서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럼 하윤이 네가 메인 보컬 해보자. 내가 맞춰 줄 테니까.”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포지션 변경 없이 해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반대할 순 없지. 고정 멘토도, 참가자들도 원하는데 원곡자라는 이유로 고집부릴 순 없었다.
“그래요. 그럼 포지션 변경 없이 해보죠.”
유찬 형이 디아스 리더로서 최종 결정을 내렸고, 멤버들도 이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하지만 네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열심히 해야 해.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 알겠어?”
“네!”
하윤은 제게 조언해주는 소파남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안 되겠다. 떼어 놔야겠어. 내 얼굴이 소파남 취향이라면 하윤이도 저 인간 취향일 거 아냐.
소파남에게 정말 최소한의 양심이 있긴 할까? 소파남을 따라다니는 물 밑의 소문들과 그동안 내게 보였던 행태들을 떠올리자 불안해졌다.
“진하윤 참가자.”
“앗! 네!”
주의를 끌자마자 하윤은 주인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강아지처럼 빠르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 이렇게 바로 버리고 올 줄은 몰랐는데……. 하윤의 뒷모습을 보는 소파남이 황당함을 실은 헛웃음을 흘렸다.
“……힘들 텐데 괜찮겠어요?”
“네! 저 해낼 거예요. 할 수 있어요!”
힘차게 대답하는 하윤에게 이서호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진하온 연습벌레라 훈련 강도도 장난 아닐 텐데, 지금 웃을 때가 아닐걸! 그치? 이한 형?”
“……어? 으, 으응. 그랬…지…….”
정이한이 내 눈을 피해 얼른 시선을 허공으로 향하면서 동의했다. 얼마 전에 미친 듯이 굴렸던 게 사실이라 나는 그 평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흠흠.
“저 디어리잖아요. 당연히 알죠! 팀 내 연습 벌레 투톱!”
하윤은 손가락을 브이자 모양으로 쫙 벌린 채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올릴 뻔했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에 팔만 움찔거리는 선에서 멈췄지만.
어쨌든 포지션 확정은 됐으니 이제 1:1 맞춤 트레이닝을 실시할 차례였다. 딥컬러는 포지션 구분 없이 그룹 전체가 봐주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개개인의 숙련도를 높인 뒤 동선과 군무의 각을 잡아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파남이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연습하는 것까지 구경하려고 저러나? 신경 쓰이니까 구석으로 데리고 가야겠어. 그렇게 마음먹으며 하윤의 팔을 붙든 순간이었다.
“하온아.”
소파남이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트레이닝 중이던 멤버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쏠렸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저요?”
“그럼 여기 하온이가 너 말고 또 있어?”
소파남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웃었다. 여기는 합숙소인 만큼 복도건 어디건 지천에 거치 카메라가 널려 있었다. 그러니까 건물 내에서 이야기한다면 문제없겠지만, 카메라를 의식해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 곤란해진다.
합숙소의 위치가 외진 곳에 있는 만큼 스태프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 분명 있을 테니까. 멘토로 출연하며 이곳 구조에 익숙해졌을 소파남만 아는, 으슥한 장소가.
명분도 있으니까 거절하자.
“지금은 촬영 중이라서…….”
“내가 그걸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 그렇지?”
카메라, 카메라, 카메라.
카메라가 너무 많은 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여기서 버릇없게 굴었다가 누가 녹음본이라도 유출시켰다간 인성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하잖아.
세상에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비밀은 없다. 언젠가, 반드시 유출되기 마련이다. 선후배 간의 불화 같은, 기사로 쓰기 딱 좋은 내용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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