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52화 (152/320)

152.

갑작스러운 형 호칭에 1차로 당황했고, 돌이켜 보니 하윤에게 ‘하온 형’ 소리 들은 게 처음이라 2차로 당황스러웠다. 전생에서는 내 이름을 모르는 것처럼 굴었었는데…….

“헉! 죄, 죄송합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한 건지 뒤늦게 자각한 듯, 진하윤이 두 손으로 입을 턱 가린 채 당혹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실수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디아스 진짜 찐팬이라서, 항상 무대 챙겨보면서 형들, 아니 선배님들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까 너무 반갑고 좋아서……. 그래서…….”

울먹울먹해진 눈동자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아, 정말 낯설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내가 아는 진하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윤이는 내 앞에서 저렇게 울먹이지 않았고, 나를 선망하는 눈으로 보지도 않았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일 따윈 시늉으로라도 하지 않던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서 동경을 가득 담은 얼굴로 울먹이고 있는 건 정말 다른 사람. 내 동생 진하윤이 아닌, 그저 O.D.I 참가자 진하윤일 뿐이었다. 그렇게 결론 내리자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그제야 하윤일 보면서 웃었다.

“하윤 씨는 정말 저희 팬이신가 봐요.”

“헐, 제 이름 기억하세요?”

“그럼요. 저랑 닮았잖아요.”

“헐, 아, 우와아! 맞아요! 저 디어리예요!”

긴장이 풀렸는지 순식간에 얼굴빛이 확 밝아져선 방방 뛰는 모습이, 심지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하윤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인생 두 번 살고 볼 일이네.

“와! 진짜 디어리야? 근데 반응 보니 진하온 개인 팬 같은데?”

“아, 아니에요! 서호 선배님도 좋아합니다!”

이서호가 히죽거리면서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슬쩍 건드렸다.

“에이, 누가 그러던데에, 차애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아, 아닌데……. 진짜 아니에요. 저 유찬 선배님, 강현 선배님, 이한 선배님, 하온 선배님, 서호 선배님 전부 다 같은 마음으로 좋아해요! 올 팬입니다!”

하윤이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쑥스러운지 발끝으로 바닥을 비비적거리면서 말을 보탰다.

“무, 물론 하온 선배님을 조금, 아주 조금 더 애정하긴 하지만요…….”

“으하하! 그래, 고맙다! 디어리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진짜 이렇게 나타나줬네~”

이서호가 분위기를 띄우자 문 앞에 우글우글 모여 선 채 굳어 있던 참가자들이 주춤거리면서 들어왔다. 다들 하윤이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놀랐는지 방송사고라도 목격한 것마냥 긴장하고 있다가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분위기를 띄우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이서호가 어색하니까 서로 인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게 더 어색해지지 않나…….

“아, 그럴까? 그럼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박유찬입니다. 리더이자 리드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아주 정석적인 인사에도 참가자분들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크게 환호해주셨다.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 형들이 인사를 이어나갈 동안 열심히 연호했더니…….

“……디아스 막내 진하온입니다. 아, 포지션은 메인 보컬입니다.”

“꺄아아악! 하온 오빠아아아!”

“진하온! 진하온! 진하온!”

“하냥아 사랑해!”

내 차례가 되자 형들이 제일 열심히 주접떨었다……. 아, 이 형들은 왜 맨날 나한테만…….나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려버렸다. 진짜 부끄럽다고!

하필이면 마지막 순서라 모두의 이목이 나한테 집중되어 있었기에, 나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도망쳐 버렸다. 강현 형 뒤로 숨었는데 형들이 날 끄집어내면서 놀렸다. 너무하다, 진짜…….

놀릴 만큼 놀렸는지 유찬 형은 뒤늦게 참가자분들께 소개를 부탁했다. 다들 부끄러운지 서로 눈치만 보던 와중, 한 참가자가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하며 손을 번쩍 들고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23살 강승운입니다. 현재 팀 리더를 맡고 있으며, 박유찬 선배님의 리드 보컬 포지션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 진짜? 저요?”

유찬 형이 나를 한 번 본 뒤 다시 강승운 참가자를 봤다. 솔직히 나도 놀랐다. 실력이 좋으니까 당연히 메인 보컬을 노렸을 줄 알았는데…….

“넵!”

이상하네. 그동안 뭔가 슬럼프라도 있었던 걸까? 유찬 형도 마찬가지로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길래 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제야 유찬 형이 나서서 강승운 참가자와 악수했다.

“아, 아! 다음은 전가요? 23살 이주한입니다. 저는 백강현 선배님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강현 형이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 주한 형에게 악수를 건넸다. 주한 형은 깜짝 놀란 듯 잠시 주춤하며 몸을 뒤로 물렀다가, 이내 크게 웃으면서 강현 형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은 김현진 참가자였다. 다람쥐 닮은 외모에 걸맞게 귀여운 목소리의 보유자인데, 포지션은 무려 랩퍼란다. 정이한 파트를 맡았다는 말에 모두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한이…파트요?”

“넵! 선배님처럼 멋진 저음은 아니지만, 곡의 분위기만큼은 잘 살릴 자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당!”

발랄한 목소리에는 이제 막 데뷔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딘 연습생 특유의 쾌활함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여실히 묻어 있었다. 아, 귀여워. 진짜 너무 귀여워서 냅다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따 꼭 한 번 쓰다듬어 봐야지……!

이제 남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하윤이와 마지막에 합류한 김민수 참가자. 하윤이 실력은….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메인 보컬 급은 절대 아니니 김민수 참가자가 의외의 실력파였던 걸까?

“안녕하세요! 진하윤입니다. 저는 진하온 선배님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 열심히 할게요. 못하면 많이 혼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한 듯 목소리 끝이 살짝씩 떨렸지만, 확실히 자신감을 내비치는 인사였다. 내게는 가장 의외인 인물이 내 파트를 맡게 되었다. 설마 닮았다는 것만으로 메인 보컬을 덜컥 맡긴 건 아니겠지? 아니길 바란다. 제발…….

***

와, 이 사람들 어떡하지…….

참가자들이 부른 ‘Dear.’를 듣고 난 후의 내 감상이었다. 심각한데? 밸런스가 하나도 안 맞아.

일단 중심을 잡아줘야 할 하윤이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동안 연습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메인 보컬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음 처리가 불안정해서 가만히 서서 부르는데도 여러 번 음 이탈이 났다.

무엇보다 리드 보컬이 너무 잘해서 2절 싸비에서 유찬 형과 내가 화음을 쌓아가면서 한 음씩 올리는 부분이 듣기 민망할 만큼 엉망으로 어그러졌다.

특히 여기 이 파트, 리드 보컬이 받쳐주는 만큼 메인 보컬이 확 터져야 하는데 거기까지 올리지도 못하고 그냥 묻혀버렸다.

오히려 이서호 파트를 맡은 김민수 참가자가 리드 보컬에 어울릴 것 같았다. 노래 잘 부르시던데. 다람쥐 소년은 의외로 랩 할 때 나온 묵직한 음성이 정이한과 다른 느낌으로 곡이랑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고.

“파트는 어떻게 나눈 거예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팔짱 낀 채 지켜보던 유찬 형이 자세를 풀면서 묻자, 다들 서로 눈치만 봤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동자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결국 리더인 강승운 참가자가 입을 열었다.

“저랑 하윤이가 메인 보컬 후보로 손을 들었고,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투표했는데도 하윤이가 됐단 말이야? 실력으로 뽑힌 건 절대 아닐 테니 역시 외모인가. 나랑 닮아서 내 파트 하라고 투표해준 거야? 다들 악편이 무섭지도 않은가.

진하윤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맞잡은 손을 연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지금 겁먹은 상태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희끼리 잠시 얘기 좀 할게요.”

급기야 촬영 중단을 요청한 유찬 형은 스태프분들이 있는 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갔다. 구석에 옹기종기 둘러서자마자 유찬 형이 입을 열었다.

“파트가 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내 파트는 괜찮아. 그리고 의외로 이한 형 파트도. 평소 목소리랑 랩 할 때 목소리가 완전히 다르네.”

나도 강현 형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이한과 이서호도 이견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이거 우리가 바꾸라고 해도 되는 거야? 좀 월권 아닌가? 그렇다고 저대로 무대 올리면 망할 것 같은데…….”

맞아. 그냥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디어리한테 혼쭐날걸……. 원래 선배 곡을 편곡하거나 커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다. 당연히 원곡 무대와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면 원곡 선배 그룹 팬덤에게 별의별 소리 다 듣게 되니까.

게다가 이번 미션은 편곡 없이 오리지널 커버로 승부를 봐야 했다. 이번 미션 의도에 대한 설명은 들었지만, 제작진의 의도에 완전히 동의하진 못 하겠다. 솔직히 시청률과 홍보 때문 아닌가?

데뷔 오디션에 참가한 연습생들이 아무리 잘한들 원곡보다 잘할 순 없다. 타이틀곡은 전문 트레이너 밑에서 아무리 짧아도 2개월 이상 그 한 곡만 혹독하게 연습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그걸 며칠 만에 뛰어넘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런데 이걸 일주일 연습해서 무대에 선다? 애초에 스타트 지점이 다르니 결과물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저희가 포지션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나요?”

유찬 형이 스태프 분에게 물었다. 스태프분은 잠시 기다리는 말을 하고는 어딘가에 무전을 쳤다. 결과는 오케이였다.

도와주러 온 우리는 의견을 모아 최종적으로 참가자분들의 파트를 어떻게 재분배할지 결정했다. 논의가 끝난 뒤 구석에 모여 있던 참가자를 불러 유찬 형이 대표로 말했다.

“음. 파트를 다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희끼리 이야기를 했는데요.”

유찬 형은 참가자들을 쭉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일단 이건 제안이고, 결정은 결국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지금은 조금 위화감이 드는 게 사실이라 저희 디아스의 의견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선을 먼 곳에 두려 고개를 들었다가 본의 아니게 진하윤이 마른침을 삼키는 걸 봤다. 본인이 생각해도 파트가 바뀔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걸까. 유찬 형은 우리의 결정을 참가자에게 전했다.

메인 보컬은 강승운, 리드 보컬에 김민수, 서브 보컬에는 진하윤. 그리고 주한 형과 꼬맹이 랩퍼는 메인 댄서, 메인 랩퍼 포지션을 유지. 이게 나와 멤버들이 내놓은 최종 의견이었다.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강승운 참가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유찬 형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참가자들을 기다려줄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연습실 문이 열렸다.

“얘들아, 선배님들한테 잘 배우고 있어?”

고정 멘토는 촬영 끝난 뒤에 최종 평가만 한다고 하지 않았어? 도대체 소파남이 왜 여기 나타난 건지,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했을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앗, 김호채 멘토님 안녕하십니까!”

카메라 앞이라서 참가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인사해야만 했다. 소파남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정확하게는 내 쪽으로. 그걸 눈치챈 순간 강현 형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행동이 자연스러워서 마치 소파남을 친히 마중 나온 것처럼 보였다. 강현 형에게 막힌 소파남은 미소 띤 얼굴로 형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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