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51화 (151/320)

151.

7위까지 곡 선택이 끝났다. 우리 곡은 6위를 한 참가자에게 선택받았는데, 고음을 내지를 때 두성을 쓰는 게 매력적이라 기억에 남았던 참가자였다. 아마 메인 보컬 포지션을 노리지 않을까.

내 파트는 저 사람이 하겠네.

주한 형이랑 겹치지 않을 포지션이라 다행이었다. 8위인 주한 형은 지금 막 곡을 선택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지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형은 마음속으로 미리 정해두기라도 한 것처럼, 주저 없이 우리 곡을 선택했다. 진짜 주한 형이 왔어!

형과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에 유찬 형을 봤는데 형도 마찬가지인지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카메라 앞이라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만 없었어도 유찬 형이랑 같이 좋아했을 텐데 아쉽다.

“지난번에 춤 잘 추셨던 그분이네.”

강현 형은 주한 형이 메인 댄서를 하게 될 것 같다면서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아, 맞아 맞아! 나도 기억나! 프리댄스로 무대 찢었던 분!”

이서호는 주한 형에게 선택받으니 성공한 것 같다며 호들갑 떨었다. 멤버들에게 형의 인상이 우호적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왜인지 모르지만 기뻤다. 너무 좋아하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카메라를 의식해 속으로만 내적 환호성을 내지르던 중,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유찬 형이 딱 보였다.

좋아서 웃고 싶은데,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느라 만들어진 듯한 괴상한 얼굴이었다. 형을 보자마자 결국 웃음이 팍 터져 나왔다.

“푸흡!”

“……하온이, 왜, 푸핫, 왜 웃어! 아하학!”

“형 얼굴이, 너무 웃기잖아요!”

“응? 뭔데? 유찬 형 얼굴 어땠는데?”

이서호가 궁금해했지만, 나와 유찬 형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웃느라 대답해줄 여력이 없었다. 형과 따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냥 웃겨서 웃는 것처럼 형성된 분위기 덕에 마음껏 웃었다. 금방 진정될 줄 알았는데, 우리를 번갈아 보던 이서호가 전염이라도 된 건지 같이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다.

덕분에 배가 땅기고 뺨이 뻐근해져서 얼굴 근육을 마구 움직여 간신히 진정한 뒤 다시 모니터를 봤다. 때마침 다람쥐를 닮은 앳된 소년이 우리 곡을 선택한 참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주한 형을 보자마자 밝게 웃으면서 달려드는 걸 보니, 그사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둘이 얼싸안고 둥가 둥가 하는 걸 보고 있는데 왜 내가 힐링 되는 기분인지 모르겠다. 우리 디어리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를 봐주는 걸까? 잠깐이지만 디어리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내 기분 좋았던 시간은 18위인 진하윤이 우리 곡을 선택하면서 끝나버렸다.

“어? 진하온 닮은 사람도 우리 곡 골랐네?”

“……그러네.”

나는 떨떠름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연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진하윤이 기어코 우리 곡을 고르는 바람에 한 카메라에 잡히는 걸 피할 수 없게 되었다. O.D.I 제작진들, 지금쯤 좋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으리라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더는 엮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어떤 얼굴로 진하윤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동생을 코앞에서 대면하고 나서도 제대로 표정 관리할 수 있을까? 괜히 이상한 티라도 나면 곤란한데…….

“나 지난번부터 궁금했는데…….”

그때 정이한이 슬쩍 운을 뗐다.

“하온이랑 저분이랑 그렇게 닮았어?”

“엥. 그렇지 않아?”

이서호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보고,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또 나를 봤다.

“내 눈에는 하온이 코가 더 오뚝하고, 턱선도 더 날렵하고, 눈도 훨씬 예쁜데. 아, 특히 하온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해서 예쁘잖아.”

정이한이 드디어 미쳤나 봐…….

정이한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고개는 수확 직전의 벼처럼 숙어졌다. 내려다본 팔이 잘 익어서 터지기 직전인 과육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달라. 나는 하온이처럼 미소 하나로 주변 사람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처음 봤어.”

그, 그만해. 정이한……. 나 놀리려고 작정했어?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아…….

“그건 그래, 세상에 어떻게 우리 사랑둥이 같은 사람이 둘씩이나 있겠어.”

유찬 형까지…….

“허이고, 저 형들 또 저러네.”

해탈한 사람처럼 헛웃음 지은 이서호가 저것도 중증이라며 혀를 차댔다.

“오글거려서 더 듣고 있다간 닭 되겠다! 꼬꼬꼬!”

“푸하학! 서호야, 너 진짜 닭 같아. 한 번 더 해봐!”

이서호의 닭 울음 흉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유찬 형이 판을 깔았다.

“어? 그래? 좀 리얼했어?”

“어어. 해봐. 넌 어떻게 이런 연기까지 잘하냐, 특기로 써먹어도 되겠다.”

“흠흠. 좋아. 한 번 더 해볼게! 꼬끼옥! 꼬꼬! 꼬옥, 옥, 꼬!”

“으하하!”

하여간……. 나는 장난치는 두 사람을 보며 언제 심란했었냐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이렇듯 내가 가진 고민은 전부 다 하찮고 쓸데없는 일로 느껴졌다.

전생의 나와 지금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욕심이 좀 많으면 어때. 그만큼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잖아.

행복하면 행복해질수록, 뭔가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

모든 참가자가 곡 선택을 끝낸 뒤 파트 분배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의 파트 분배가 끝나기 전에 이동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말을 따라 나와 멤버들은 밴에서 내렸다.

실장님이 예상했던 대로 현장엔 교주와 라스트 원 멤버들도 와 있었다. 그러나 교주는 우리 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 뿐 다가오지 않았다.

이동하던 중 그를 발견한 이서호가 반가움에 두 팔을 크게 흔들면서 폴짝 뛰었고, 유찬 형은 얌전히 손을 흔들었다. 교류라고 할 만한 건 그게 끝이었다.

“와! 디아스다!”

“오오! 오랜만이야아아!”

“서호 형아!”

별안간 등 뒤에서 쏟아져 나온 목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멈춰선 채 뒤를 돌아봤다. 익숙한 얼굴들이 손을 흔들면서 우다다 달려오고 있었다. 딥컬러 멤버들이었다.

이서호가 뛰쳐나가 저쪽 막내 멤버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렸다. 하여간 친화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가만히 이서호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이, 내 쪽으로는 그때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던……. 블랙이었나……. 흑, 흑화? 뭐였지. 어쨌든 그 사람들이 왔다.

두 번째 만나는 거라 그런지 자기소개를 생략하고 대뜸 아는 척을 해오니까 누군지 잘 모르겠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아쉽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해서 뻣뻣하게 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제법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사람 대하는 스킬이 좀 늘었나 봐!

눈치껏 주워들은 딥컬러 멤버들의 이름을 때려 맞추듯 부르며 어찌어찌 대화가 이어졌다. 나랑 동갑이라고 알고 있는 두 멤버가 특히 말이 많은 덕에 사실 추임새만 넣은 게 대부분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굴 수 있게 되었다.

딥컬러 멤버들과 움직여서 그런지 합숙소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제는 각각 지정된 연습실로 들어가 참가자 팀을 기다릴 시간이었다.

참가자 팀별로 분리된 연습실에서 진행되는 촬영인 만큼, 작정하고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그룹 간에 마주칠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훨씬 더 할만하지.

연습실에 들어가니 우리 데뷔곡 ‘Dear.’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요 며칠간 연습한 탓인지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하길래 가볍게 추고 있었더니, 어느새 형들이 호응하듯 대형까지 맞춰 섰다. 아, 이러면 또 설렁설렁 출 수 없지.

형들과 눈을 마주치며 호흡하고, 바로 앞에 디어리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팔다리를 크게 크게 뻗어 춤췄다. 실제 무대에 올라갔을 때처럼 전심전력을 다 해서일까, 낯선 연습실에 와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없는 건 디어리의 함성뿐이었다. 빨리 컴백 날짜가 됐으면 좋겠다. 디어리들 보고 싶어…….

“후, 뭔가 우리 데뷔 무대 다시 하는 것 같았어. 그치? 디어리들 없는 게 너무 아쉽다.”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유찬 형의 타이밍에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러니까요. 디어리 보고 싶어요!”

“나도! 나도, 나도!”

이서호가 폴짝폴짝 뛰었다. 우릴 좋아해 주는 디어리들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도 지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정말 기적 같은 사람들이니까.

“얘들아, 메이크업 수정 한 번씩만 하자.”

우리 코디팀 누나들이 와서 엉망이 된 헤어와 메이크업을 수정해줬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데다 손 선풍기로 땀까지 다 날려버려서 금세 얼굴이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멤버 전원의 재단장이 끝났을 때 스태프분이 외쳤다.

“디아스 여러분, 참가자들 출발했어요. 스탠바이 해주세요.”

“네!”

타이밍 좋고.

“얘들아, 파이팅! 형은 매니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잘해!”

“네!”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해 보인 매니저 형이 코디팀 누나들과 함께 연습실을 나갔다. 나는 길게 심호흡한 뒤 굳게 닫혀 있는 연습실 문을 들여다봤다.

드디어 진하윤을 직접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느낌이려나…….

솔직히 진하윤과 대화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기에 예상이 안 됐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옆에 형들이 함께 있어 주는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진대도 흔들리진 않을 것 같다는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실 문이 열리면서 와글와글 떠드는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주한 형이었다. 형은 우릴 보고 잠깐 놀랐다가 이내 눈을 접으면서 웃었다.

이어서 들어온 참가자는 아마도 내 파트를 소화할 거로 예상되는, 가창력이 좋은 참가자였다. 연습실에 있는 우릴 보고는 제자리에 서서 굳어 버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헐.”

“아우, 뭐예요! 왜 안 들어가요? 형 등에 코 박았잖아요. 내 잘생긴 코…….”

귀여운 목소리가 뒤에서 짱알거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안 봐도 다람쥐 닮은 그 참가자일 게 분명해서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들으니까 목소리가 더 귀엽네. 누구 파트를 맡았으려나? 귀여운 목소리와 어울리는 파트가 쉬이 매칭되질 않았다.

“형들 왜 안 들어가요? 어? 헐, 대박!”

눈에 띄게 키가 큰 참가자가 뒤에서 기웃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왔던 참가자였다. 그가 앞선 두 사람을 비집고 연습실로 들어오자, 틈이 생기면서 앞 사람에게 가려져 있던 다람쥐 소년과 진하윤이 보였다.

“……어?”

곧장 안을 살피는 하윤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윤은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서는 감격에 겨운 듯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하온 형!”

……형이라고? 이렇게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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