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유찬 형은 혹여나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힐까 봐 염려스러운지 은근슬쩍 강현 형 앞에 서서 시야를 가렸다. 나는 강현 형의 한쪽 팔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거의 매달리다시피 꽉 붙들었다.
서슬 퍼런 강현 형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덜컹덜컹 난리가 났다. 악, 진짜 튀어 나가서 소파남 멱살이라도 잡아 올릴까 봐 무서워. 이렇게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강현 형은 처음이었다. 설마 이야기도 안 듣고 다짜고짜 뛰쳐나가려고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백강현. 너 그렇게 뛰쳐나가봤자 여기선 아무것도 못 해. 진정 좀 해.”
한껏 낮아진 유찬 형의 목소리 역시 무섭도록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강현 형은 짙은 한숨을 후욱, 내뱉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번호 받아 간 거 말고는 없었어?”
나는 빠르게 끄덕거리면서 얼른 대답했다.
“없었어요! 주한 형이랑 같이 있었거든요.”
강현 형은 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덩달아 긴장한 탓에 숨을 쉬는 것조차 멈춘 채 그 시선을 받아 내자니, 괜히 긴장돼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저 사람이 연락해 오면 무조건 나한테 말해.”
“네! 그럴게요! 다 보여줄게요!”
원한다면 아예 휴대폰을 맡길 수도 있다면서 내밀었더니, 그제야 강현 형이 설핏 웃음 지었다.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그럴 필요까진 없어.”하고 한결 유순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유찬 형.”
“응.”
“미안…….”
“어쩌려고 했는지부터 대답해 봐.”
“……그게.”
강현 형이 눈동자를 슥 굴려서 먼 곳을 바라봤다. 팔짱 낀 유찬 형이 “대답.”하고 한 번 더 종용했다. 입술을 꽉 다물고만 있던 강현 형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패려고 했어.”
“그, 하아….”
순간적으로 언성이 높아지려던 유찬 형은 몇 번 심호흡한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지 뒷일은 생각해봤어? 그게 정말 하온이를, 그리고 디아스를 위한 일이야?”
“미안해……. 나도 내가 그럴 줄은 몰랐어.”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대화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큐 싸인이 떨어졌다. 유찬 형은 강현 형을 안쪽 자리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유찬 형은 강현 형이 내 쪽으로 당겨 앉은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강현 형은 이어지는 촬영 시간 내내 유찬 형을 힐끔거리다가 야트막하게 한숨 쉬길 반복했다.
다음 참가자를 기다리며 주어진 막간의 휴식 시간에 강현 형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형의 고개가 내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유찬 형 많이 화났어요?”
“……그런 거 같아.”
“에휴, 미안해요. 저 때문에.”
“네가 미안할 일 아니잖아. 내가 과민반응 한 건데.”
강현 형은 소파남과 내가 단둘이 마주친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애들 전화만 제때 받았어도 이런 일 없었을 텐데. 휴대폰 무음 돌린 거 잊어버리고 눈 감고 있었거든. 나 때문에 네가 혼자 남겨진 줄 알았어. 저 자식이 널 어떤 눈으로 쳐다보는지 알잖아. 그래서 나는…….”
형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짐작됐지만,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형 입을 통해 직접 들으면 기분이 좀 껄끄러울 것 같아 그냥 가볍게 웃었다.
“유찬 형이 절 혼자 둘리 없잖아요.”
“……그러게.”
한숨과 함께 대답한 강현 형은 한 번 더 유찬 형 쪽을 힐끔거렸다. 그사이 새로 올라온 참가자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강현 형에게 가까이 붙어 앉아서 위로하듯 허벅지께를 토닥거려줬다.
무척 길게만 느껴졌던 O.D.I 촬영이 모두 끝났다. 그때까지도 유찬 형은 얼굴을 굳히고 있었고, 강현 형도 그런 유찬 형을 묵묵히 따라 걸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우리가 모두 밴에 올라탄 순간 유찬 형이 강현 형을 따로 불러냈다.
우리 셋만 밴에 남겨 놓고, 두 형들은 매니저 형과 함께 나갔다. 분위기 파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밴 안의 공기가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형들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데, 뒤에서 한껏 처진 목소리가 들렸다.
“……진하온, 미안.”
“나도 미안해, 하온아…….”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이서호와 정이한을 봤다. 촬영 끝날 때까지 둘 다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길래 신경 쓰였는데, 죄책감 때문이었나 보다. 잘못한 거 없는데…….
아, 나 진짜 조심해야겠다. 별일 아니었는데도 다들 나한테 미안해하는 걸 보니 내가 더 심란했다. 남 탓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전부 자신들이 잘못했다는데 이 사람들 어떡하냐고. 내가 처신 잘해야지.
형들이 대화로 잘 풀고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을 어르고 달래면서 다짐, 또 다짐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
O.D.I 촬영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에도 소파남은 잠잠했다. 바로 연락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아, 설마. 내가 먼저 하길 바라는 건가? 그런 거면 더 좋지. 나는 연락할 생각이 없으므로 이대로 영영 없는 사람 취급할 수 있을 테니까.
연습이나 하자.
오늘은 모처럼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이라 컴백 타이틀 안무 연습에 집중하던 참이었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아낸 뒤 휴대폰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연습실 안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았는데도, 하도 뛰어다녀서인지 홧홧한 열기가 가시질 않았다. 목 소매를 잡고 펄럭거리면서 다시 형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흐트러진 대형을 다시 잡고,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려던 때였다. 매니저 형이 밝은 얼굴로 연습실 문을 벌컥 열었다.
“얘들아, 너희가 만든 곡. 서브 타이틀곡으로 넣기로 했다!”
“……헐.”
“진짜요?”
서브 타이틀이라니……. 이건 진짜 예상 못 했다. 그저 미니 앨범 수록곡 중 하나로 들어가면 디어리들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멜로디도 좋고, 안무도 잘 나왔지만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데다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탓에, 우리가 아직 아마추어라는 걸 실감하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무려 서브 타이틀이라니! 다들 너무 놀라서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굳은 채 눈만 끔벅거렸다.
“그래! 타이틀곡으로 한 달 활동하고, 서브 타이틀곡으로 이 주 동안 스페셜 무대 설 거야.”
“우와……!”
헐. 좋잖아! 우리 곡으로 무대에 설 수 있어? 사람이 너무 좋아도 소름이 돋을 수 있구나. 나는 팔을 문지르면서 유찬 형 옆으로 바짝 붙었다.
믿기지 않는지 배터리 수명이 다 된 사람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던 유찬 형이 한참 만에 삐거덕거리면서 나를 돌아봤다.
“유찬 형, 축하해요. 작곡가로서는 첫 성과네요.”
“어? 아……. 허, 아니, 이거 괜찮은 건가? 내, 내가 만든 건데? 아직 엉망진창인데…….”
“제가 형 곡 좋다고 했잖아요. 다른 형들도 다 좋아했는데~ 우리 유찬 형만 못 믿네.”
유찬 형은 현실감이 너무 떨어진다면서 연신 심호흡했다. 매니저 형이 그런 우리를 기특하다는 눈으로 보다가 손뼉을 쳐서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자, 얘들아. 얘기 안 끝났어. 먼저 유찬이는 A&R팀이랑 같이 추가 작업이 필요해. 아직 어설픈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어서 이대로는 안 돼. 시간이 촉박해서 바로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자신감은 또 어디다 팔아먹었지? 나는 미래의 마에스트로 유찬 형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형은 할 수 있어요!”
“……내가?”
“그럼요! 형 재능있다니까? 제 말 좀 믿어줘요.”
“맞아, 유찬이 재능있다더라. A&R 팀장님이 이게 진짜 첫 곡이냐고 완전 놀라시던데?”
매니저 형까지 가세해 칭찬을 퍼붓는데도 유찬 형은 불안해 보였다. 형의 두 손을 잡자, 자연스럽게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해 봐요. 디어리도 좋아할 거고, 저는 형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잠시 고민하던 유찬 형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매니저 형을 봤다.
“해볼게요.”
여전히 자신감은 부족해 보였지만, 그래도 곡 창작에 대한 각오가 느껴졌다.
“가사는 이한이가 썼지?”
“……네.”
셔츠 목깃을 늘려서 땀을 닦아내던 정이한이 나를 슬쩍 한 번 본 뒤 대답했다.
“가사 진짜 좋다더라. 타이틀곡 가사 공모받는 중인데 이한이도 참여할 생각 있냐고 물어보던데, 해볼래?”
“……타이틀곡을 제가요?”
“응. 감성이 말도 안 되게 좋다고, 다들 얘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하던… 잠깐, 너 설마……. 아니지?”
매니저 형의 눈매가 게슴츠레하게 좁아 들었다.
“아, 아니에요!”
부정하는 목소리가 와락 터져 나와서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얼어붙은 채 정면으로 날 보고 서 있던 정이한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니야, 그런 거 안 해.”하고 한 번 더 말했다. 왜 나한테 변명하는 느낌이지…….
“아닌데, 이거 의심스러운데?”
팔짱 낀 매니저 형이 정이한을 탐색하듯 쪼았다. 유찬 형조차 “에이, 설마요.”하고 편을 들어주면서도 설마, 하는 눈으로 정이한을 바라봤다.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향하자 눈만 끔벅거리던 정이한의 고개가 아래로, 아래로 떨궈졌다.
“제, 제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멤버들이랑 맨날 같이 있는데…….”
그건 그렇지. 혼자 어딜 갈 일도 없을뿐더러, 가더라도 공식 스케줄이라 늘 매니저 형과 함께 움직인다. 누굴 좋아한다고 해봤자 연예인을 팬심으로 좋아하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평소 정이한이 너튜브 보는 걸 보면 딱히 누굴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지?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너희 연애는 절대 안 된다.”
매니저 형은 지금은 사랑보다는 팬들을 생각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시선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전부 맞는 말이지. 열애설은 아이돌에겐 언제 터져도 곤란한 스캔들이었다.
매니저 형의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정이한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왔다. 내 셔츠를 잡아서 살짝 당기는 느낌이 들길래 돌아봤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한다.
“나 다른 사람 안 좋아해.”
“……네?”
“……그냥 그렇다고.”
뭐지? 뭔지 모르겠으나 아니라면 다행인 일이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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