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41화 (141/320)

141.

진하윤…….

내 동생.

아니, 전생에서 내 동생이었던 아이.

“엥? 이름도 비슷하잖아? 진하온 동생이야?”

이서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저으려다가, 유연이에게 형과 동생이 있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는……. 얼굴을 모르는 형과 동생이 있는 것이다.

“형이랑 여동생. 남동생은 없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엇? 진짜? 근데 왜 저렇게 닮았지? 설마 어릴 때 헤어진 형제, 뭐 그런 거 아냐? 배다른 형제라거나?”

지금 이서호가 느끼는 의문을 여기 앉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 어쩌면 하윤이 너도. 나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하윤이를 봤다.

말을 걸기만 해도 싫어했으니까, 하윤의 꿈이 뭔지 알 기회가 없었기에 몰랐다. 설마 아이돌을 꿈꾸고 있을 줄은…….

아니지, 전생에서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전생의 하윤과 지금의 하윤은 다른 사람일 테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다 기억하지만,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꾹꾹 묻어놨던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거세게 일렁였다. 아픔, 서러움, 부러움. 그리고……. 매번 부서져 버리는 기대.

어쩌면, 혹시, 이번에는.

「두 번 다시 오지 마. 쓰레기.」

날 대하는 그 애의 태도는 항상 그런 식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오랫동안 포기하질 못했다.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던 경멸 어린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연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을 정도로 하윤은, 나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우와, 디아스의 진하온 씨와 진짜 닮으셨네요.”

“헤헷, 네! 그 이야기 진짜 많이 들었어요. 사실 아이돌에 관심 없었는데, 주변에서 자꾸 닮았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제 꿈이 되었어요. 저도 진하온 선배님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윤이는 수많은 심사단 중 나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악의 없는 맑은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보지 마. 이상해. 너 아닌 것 같아.

아니, 당연히 내가 아는 진하윤이 아니겠지. 아니라는 거 알지만…….

머릿속이 혼란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전생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내 숨통을 틀어쥐고 조여왔다. 주먹을 말아쥐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꾹 누르던 중 스크린에 나와 하윤이의 얼굴이 동시에 뜨는 게 보였다.

나는 스크린 속의 환한 얼굴을 보고서야, 내가 지금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전생의 경험이 이럴 때만큼은 도움이 되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도록 연습했었으니까.

“에? 그럼 진하온 씨랑 혈연관계가 아니신 거예요?”

“네! 저는 외동이에요!”

“아닌데? 이 정도로 똑 닮았으면 뭔가 있는 건데?”

“사촌? 아니면 혹시 어린 시절 헤어진 형제, 뭐 그런 거?”

심사위원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보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파남이 마이크를 들었다.

“디아스 여러분의 감상도 궁금한데요~”

스크린에서 하윤의 얼굴이 사라지고 내 얼굴만 풀 샷으로 잡혔다. 나는 온몸을 굳힌 채 가까스로 입꼬리만 올려 웃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이한이 이상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테이블 아래에서 내 허벅지를 꽉 잡아주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할 법도 한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온기를 나눠주는 게 고마웠다.

이서호가 이럴 땐 주인공이 먼저 말하는 거라면서 마이크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그 마이크를 강현 형이 가로채 갔다. 원래 이렇게 나서는 형이 아닌데……?

“그러게요. 닮았네요. 우리 하온이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요.”

강현 형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덕에 겨우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형을 볼 수 있었다. 형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불안한 외줄 타기를 하다가 단단한 지면으로 내려온 것 같은 듬직함을 느꼈다.

유찬 형이 강현 형의 어깨에 팔을 터억 걸친 채 마이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장난치듯 윙크했다.

“아, 우리 하온이랑 좀 닮으신 건 맞지만…. 그래도 원조 하온이의 잘생쁨은 아무도 못 따라가죠!”

“죄송합니다. 저희 리더 형님이 가끔 이렇게 주접을 부리셔서요.”

두 사람의 대화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찬 형이 뭐야? 그럼 넌 우리 하온이가 안 예뻐? 하고 따지자, 강현 형은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안다면서 정리했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나는 이번에는 좀 다른 의미로 주먹을 말아 쥔 채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니, 진짜 주접 꾼은 강현 씨 아닙니까? 디아스 막내 사랑 끔찍하기로 유명하다던데,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이호경 심사위원님의 말에 다른 두 명의 심사위원들이 웃는 소리가 고스란히 마이크에 잡혔다. 강현 형은 급 민망해졌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대로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어? 잠깐. 하온 씨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라일라 심사위원님이 나를 지목했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타이밍이었는데, 굳이 또 지목했다는 건 제작진 지시가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꼭 본인에게서 한마디 들어야겠다 이건가.

내 가정사를 아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닮은꼴 참가자가 나왔다는 것 하나로 어떤 편집 점을 찾은 모양이지? 어쩌면 우리에게 압력을 넣어서 참가시킨 것도, 지금 이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사로잡혔던 전생의 기억에서 빠져나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진정된 마음으로 웃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 장면이 무조건 방송에 송출될 텐데 다행이었다.

“아하하. 저도 너무 놀랍고 신기해요.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세 명은 있다던데, 그중 한 분을 이렇게 방송을 통해 만난 것 같습니다.”

연신 방긋방긋 웃던 하윤에게 나를 만난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이 돌아갔다. 하윤이는 올곧은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 채, 맑은 음성으로 답했다.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멀리서나마 뵙게 돼서 정말 기뻐요! 디아스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저 진짜 팬이에요!”

17살에 어울리는 풋풋한 인사였다. 형들이 웃으면서 의례적인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때마다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기뻐하는 하윤을 보면서, 잠시 밀어냈던 두려움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하윤이는 내게서 형들을 빼앗아 가지 못해. 부모님은 처음부터 날 싫어했잖아. 그러니까 빼앗긴 게 아니야…….

하, 진하온 너 진짜 나약하다. 거세게 울리는 심장 소리가 신경에 거슬릴 지경이었다. 천천히 심호흡하면서 가라앉히는 사이 하윤의 무대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하윤의 무대를 지켜봤다.

그런데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음정 이탈은 기본이고, 춤도 가까스로 못 볼 꼴을 면했다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탈락이네. 잠깐의 이슈 몰이, 예고편으로 써먹고 끝나지 않으려나. 아니면 한 번 정도 합격하거나.

남몰래 안도의 숨을 삼키면서 형들과 어떤 버튼을 누를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나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유찬 형의 주도하에 노란색, 보류 버튼을 누르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합격을 주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고, 탈락을 주면 지금 상황에서 또 한 번 이목이 쏠릴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내가 지금 주목받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뜬금없이 물었는데도 유찬 형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강현 형을 지나 내 쪽으로 손을 뻗어왔다. 테이블 위에 얹어진 내 팔뚝을 꼭 붙잡아온 형이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너 긴장한 것도 못 알아챌까 봐? 강현이도 일부러 마이크 채 간 거 아냐?”

강현 형이 얼굴을 붉히더니 내게서 시선을 피해 반대쪽을 바라봤다. 이서호는 또 자기만 몰랐다면서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가운데 낀 정이한이 이서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주는 사이, 나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되찾았다.

뭘 걱정했는지 모르겠네. 멤버들과 함께 쌓아온 시간만큼, 관계는 더욱 튼튼하고 돈독해졌는데.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거머쥐던 전생의 하윤을 알아서일까, 또다시 나도 모르게 그때처럼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관성적인 두려움이 일었던 것 같다.

“하온이 표정 좋아졌네.”

정이한이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덮어오며 안심된다는 어조로 말했다. 좋아하는 온기를 한껏 느끼면서, 나는 밝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들 덕분에 긴장 풀렸어요. 아, 결과 발표하려나 봐요.”

“그럼 진하윤 연습생, 결과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심사단 평가입니다!”

MC가 말하는 사이 무대 바닥에서 세 가지 색상이 요동쳤다. 그리고 모두 같은 출발점으로 정렬됨과 동시에, 게이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스크린에 뜬 결과는 불합격. 하지만 노란색 게이지의 비율이 높았다. 이런 경우 심사위원의 결정이 중요했다. 심사위원들의 무대 평가가 팽팽하게 접전한 끝에, 마지막 심사위원의 선택으로 진하윤은 합격했다. 합격…….

“진하윤 연습생.”

“네!”

“실력은 아직 부족해요. 그런데 진심으로 노래를 즐긴다는 느낌이 전해졌어요.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음 무대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아요. 아시죠?”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타트를 끊은 라일라 심사위원님을 시작으로 다른 심사위원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유찬 형이 예상했던 것처럼 디아스는 왜 보류를 줬는지 물었고, 유찬 형이 대표로 무난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별도 지시를 받은 게 없던 모양인지 다행히 추가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윤이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제야 내내 긴장해 굳어 있던 내 어깨에서도 힘이 빠졌다.

우리 역할은 오디션까지다. 오디션이 끝나고 합숙 훈련에 들어가면 세 명의 심사위원단과 참가자들만 별도의 합숙소로 이동하게 될 터였다. 아마도 이제 하윤이와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방송국에서 나와 하윤이를 더 엮으려고 들지 않는다면 말이지…….

하윤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줄 알았는데, 내게 남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유찬 형이 아까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궁금해했다.

형은 별 뜻 없는 듯 가볍게 물어본 것 같았는데, 나 혼자 찔려서 심장이 시끄럽게 요동쳤다.

“아는 애였어?”

추가적인 유찬 형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 심사단으로 편하게 나온 거니까…. 주목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 좀 놀란 것 같아요.”

“그랬어?”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찬 형이 납득하길 바랐다. 형은 정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물었는지, 별안간 활짝 웃으면서 큰 소리로 나를 귀여워했다.

“아우, 우리 막내가 아직도 이렇게 풋풋해!”

자리만 가까웠으면 콱 안아줬을 텐데 강현이가 방해된다면서 투덜거리자, 갑자기 강현 형이 팔을 쭉 뻗어서 나를 품에 꼭 안았다.

“혀, 형?”

“유찬 형 포옹 대신 전달.”

“야! 내가 언제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내가 안고 싶다고 했잖아!”

유찬 형의 성난 음성을 들으면서 나는 소리 내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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