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카펫을 치우고 지하실로 통하는 문짝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어디서 날씨도 섭외해 왔나?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혔다. 큰 천둥소리 덕분에 우리 유찬 형과 이서호가 매미에 빙의라도 한 듯 서로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한 건 물론이고, 우리를 따라온 카메라 감독님까지 순간적으로 크게 놀라 하시며 소리를 냈다.
“포, 포, 포기하자…….”
이서호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파리한 안색으로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왜에, 아까 그으 할아버지가아, 비 오는 날 나온다잖아아아……! 하면서 두려워했는데, 아니다. 비 오는 날 귀신 나온다는 소리는 안 했다. 그냥 비 오는 날 난파선을 발견했다고 했지.
그래도 이왕 들어와 지하실까지 찾아낸 거 목적은 완수해야 하지 않나. 어차피 이런 가정집에 있는 지하 창고가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어. 끽해야 방 하나 정도 크기겠지. 와인이나 식량 창고로 쓰지 않았으려나.
“그럼, 제가 먼저 내려가서 무서운 거 없는지 보고 알려줄게요.”
“위험할지 모르니까 같이 가자.”
“위험할 게 뭐 있어요. 이한 형은 형들이랑 같이 있어 주세요.”
정이한은 세 사람을 힐끔 본 뒤 고개를 저었다.
“낡은 건물이라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아…….”
그러면 더 혼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다쳐도 나 혼자 다치는 게 낫지. 괜히 둘씩이나 다치면 그게 더 손해다. 게다가 다칠만한 곳이었으면 애초에 우리끼리 보내지도 않았을 거고.
“진짜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감독님이랑 같이 들어가는데요 뭐. 괜찮아요. 형은 다른 형들 지켜주세요.”
“그래도…….”
나는 정이한에게 다시 한번 형들을 부탁했고, 정이한은 언제나 그렇듯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대신 어깨가 축 처져서는 넓으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보다가 올라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내려가려는데, 카메라 감독님들이 침묵 속에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두 분 다 내려가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승패가 갈리자마자 승자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소리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패자는 입을 꾹 오므린 채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내게 바짝 붙어왔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감독님, 무서우시면 저 혼자 갔다 와도 돼요.”
지하실에도 카메라가 잔뜩 숨어 있을 게 뻔하니까 굳이 같이 안 가도 되지 않으려나. 하지만 감독님은 잘게 고개를 흔들면서 의지를 다잡으셨다. 직업 정신을 발휘하는 감독님의 의견을 존중해 두 번은 묻지 않았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는 탓에, 어두컴컴해서 도무지 깊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꽈르릉!
그 순간 다시 한번 천둥이 쳤다. 번쩍거리는 빛이 연달아 터지면서 안쪽이 아주 잠깐 비쳤다. 그때 무언가가 움직이는 형상을 본 것 같았다. 그림자인가? 내려가서 보면 알겠지, 뭐.
별생각 없이 손전등을 꺼내 전원을 켜자, 랜턴에서 뿜어져 나온 불빛이 어두컴컴한 지하실 계단에 조그마한 원을 만들었다. 막 발을 내디디려는 찰나에 팔이 붙잡혔다. 강현 형이 날 붙잡은 것이었다.
“같이 가자.”
“여기 있어요. 형도 무섭잖아요.”
지하실은 여기보다 배는 더 습하고 쾌쾌할 게 뻔했다.
“무섭긴 하지만… 너 혼자 보내는 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되겠어.”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온 강현 형이 어두운 지하실 입구에 시선을 뒀다. 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한지 야트막하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도.”
정이한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자, 그에게 의지하던 두 사람도 쪼르륵 딸려왔다. 겁 많은 두 사람은 차마 지하실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못한 채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찬 형이랑 서호 형만 두고 가기에는…….”
이서호가 자긴 절대 못 간다면서 버티는 와중, 갑자기 유찬 형이 제 손으로 양 뺨을 철썩 내리쳤다. 소리가 꽤 크게 나서 놀란 눈으로 형을 봤다. 갑자기 왜 저러지?
“이서호.”
유찬 형은 무언가 결심하기라도 했는지, 목소리에 힘을 줘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이서호를 불렀다.
“우리도 가자.”
“뭐어? 안돼! 싫어! 못가! 나 무섭단 말이야!”
“나도 싫어. 나도 가고 싶지 않아. 나도 무서워.”
말을 이을수록 유찬 형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형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여러 번 심호흡을 한 뒤 이서호의 양팔을 꽉 부여잡고는 자신을 향해 몸을 틀게 했다.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지?”
“그걸 말이라고 해애?! 당연하지!”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도 내려가야 해. 잊었어? 표식이 있는 곳에서 다섯 명 전원이 사진 찍어야 하는 거.”
“하, 하지만…….”
이서호는 웅얼거리면서 지하실에 없을지도 모르잖아……. 하고 말꼬리를 늘렸다. 유찬 형은 완전히 각오를 다진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있어. 여기는 전부 뒤졌는데 못 찾았으니까 지하실에 있는 게 분명해. 안 그래? 그러니까 가자. 빨리 끝내고 나가자.”
“그래도…….”
유찬 형은 여전히 다리만 베베 꼬는 중인 이서호를 내버려 둔 채 나와 강현 형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우리 둘의 팔을 각각 꿰찼다. 그 바람에 손전등을 든 손이 흔들리면서 지하실 입구를 가리키는 빛이 함께 일렁일렁 흔들렸다. 유찬 형은 그것만으로도 흠칫 놀랐다가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진정했다.
“그럼 서호는 여기서 기다려. 우리 다녀올게.”
“뭐? 나 혼자? 싫어! 같이 가!”
기겁한 이서호가 후다닥 달려들었다. 뒤에서 유찬 형과 내 옷을 목 소매가 늘어지도록 움켜쥔 뒤 불안한 눈치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매, 맨 끝은 싫은데, 차라리 내가 맨 앞에……. 으으, 아니, 아니다. 앞도 무섭다……. 나 가운데에 끼워줘!”
그렇게 한 줄 기차 대형이 만들어졌다. 유찬 형이 각오를 다진 덕분에 다 같이 내려가게 됐네. 어차피 지하실 입구가 좁아서 횡렬로는 못 내려간다. 그래서 내가 선두에 서고, 바로 뒤에 유찬 형, 이서호, 강현 형, 정이한 순서로 내려가게 됐다.
정이한은 내 뒤에 서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맨 뒤에 서는 걸 원하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맨 뒤는 카메라 감독님 아닌가 싶었지만, 마지막 자리가 제일 무섭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가? 하고 말았다.
시간을 오래 끈 만큼 속전속결로 처리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찬 형이 하도 내 어깨를 꽉 움켜잡고 있어서 원하는 대로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괜히 서둘렀다가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완만한 나선형 구조라는 걸 알았다. 생각보다 꽤 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랫동안 고여 있었던 듯한 지하실 특유의 공기가 반갑지 않은 침입자를 쫓아내려는 듯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바닷가 특유의 비린내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 죽은 동물의 사체라도 있는 건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었지만, 이런 퀴퀴한 냄새라면 정말로 동물의 사체를 발견한들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욱. 이게 무슨 냄새야!”
우리 중에 비위가 제일 약한 편인 이서호가 코 막힌 소리를 내며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무언가가 썩은 듯한 비린내 때문에 아까부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으니까.
“……빨리 찾고 나가요.”
나는 최대한 코로 숨 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지하실에 도착해 손전등으로 내부를 빠르게 스캔하듯 둘러보았다. 몇 개의 커다란 장식장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그 외에는 텅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계단을 끝까지 내려온 멤버들이 내 등 뒤로 켜켜이 쌓이는 걸 느끼면서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예상한 것보다는 공간이 꽤 컸다. 1층이랑 거의 비슷한 구조로 방이 세 개쯤 있어 보였다. 바닥은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 같았는데, 어디서 물이 스며들어 고였는지 곳곳에 웅덩이가 있었다.
“무, 무서워…….”
바들바들 떠는 이서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같이 가자는 유찬 형의 애달픈 목소리와 빠르게 접근하는 발자국 소리만이 지하실을 웅웅 울렸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한 비명이 들린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는 비명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절대 가까이서 들린 소리가 아니라는 거였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사방이 막힌 지하실이었기에, 저런 소리가 끼어들 틈이라곤 딱히 없었다.
어쩌면 어딘가 작게 나 있는 환풍구 같은 데서 들어오는 바람 소리가 비명처럼 들린 걸지도 모르지. 겁먹은 멤버들을 더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못 들은 척 표식을 찾으려고 했는데…….
“바, 바바, 방금, 방금, 들었, 들었어?”
유찬 형이 뒤에서 내 팔을 꽉 움켜잡으면서 거의 울 것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유, 유찬 형, 장난치지 마…….”
“비, 비명 소리, 나만 들었, 어?”
“으악! 악악! 유찬 형!”
공포에 질린 이서호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악을 썼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비명이 또 한 번 들려 온다 하더라도 제 목소리로 묻어 버릴 기세였다.
“…나도 들었어.”
제일 뒤에 있는 정이한마저 덤덤하게 말했다.
“일단 표식부터 찾을게요.”
나는 유찬 형을 매단 채 몇 걸음 더 걸어갔다. 그런 내 뒤로 멤버들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이서호는 천지신명,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부처님, 알라님 등등. 본인이 아는 모든 신을 찾으면서 무사히 돌아가게만 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네요.”
첫 번째 방 탐색을 빠르게 마치고, 두 번째 방으로 이동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나도 모르게 천장으로 고개를 올렸을 때, 스치듯 본 기묘한 빛이 시야 끄트머리에 잡혔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 한쪽 면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장식장 위에 두 개의 점이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눈동자 같은 빛이.
“……고양이?”
가장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 추측을 내린 나는 손전등으로 장식장 위를 비췄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한, 긴 머리의 여자였다.
“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히엑!”
얼마나 놀랐는지 유찬 형과 이서호의 비명 사이로 카메라 감독님의 간신히 억누른 비명이 함께 들렸다. 그 사이 유찬 형은 나를 마구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도망가자, 하온아, 빨리!”
다급하게 외치면서 형은 나를 끌어당겼다. 형한테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는 장식장 위에 있는 무언가를 관찰하길 멈추지 않았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자, 계단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이서호까지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엉엉 울면서 형과 함께 나를 끌어당겼다.
“지, 진하오온! 빠, 빨리, 가자, 가자고! 가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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