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지직,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이즈가 잔뜩 낀 영상이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흑백으로 된 영상 속에는 이 집이 멀쩡한 가정집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와 어부 몇 분이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 안 볼래…….”
유찬 형이 내 팔에 고개를 묻고는 바르르 떨었다.
“제가 볼게요.”
“……넌 안 무서워?”
“네. 별로요.”
“어으, 난 죽겠다…….”
나는 시작도 전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유찬 형을 다독이는 한편, 영상에 집중했다. 흑백 영상이 몇 장면 지나간 뒤 화면이 고화질의 컬러 영상으로 바뀌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나왔다. 인터뷰 장면인 듯 어르신 한 분만 화면 가득 잡혔는데, 아까와 달리 화질도 깨끗했고 불쾌한 노이즈도 들리지 않았다.
- 휴어도……. 거길 가시게?
어르신은 만류하듯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왜 굳이 그런 고약한 섬에 가려고 하는지 물었다. 촬영차 간다는 스태프의 대답에 구릿빛 피부의 어르신은 안색을 딱딱하게 굳힌 채 대꾸했다.
- 거 섬 중앙에 있는 오래된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가지 마. 알겠어? 절대 가면 안 돼.
이유를 묻는 스태프에게 어르신은 내키지 않는 듯 한참 입맛을 다시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이 말해준다는 듯 물꼬를 텄다.
어르신에 따르면,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이 폐가며 부서진 방파제, 인근의 허물어진 집들은 전부 이 섬의 주인이 지은 거라고 했다. 개인 사유지로 섬을 사들였으나 어부들이 휴식처로 삼는 걸 알고는 본인의 사비를 들여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쉼터를 만들어줬다는 거였다.
어부들은 섬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잡아 온 물고기를 나눠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렇게 훈훈한 마음이 오가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어부들이 섬에 고립되며 사건이 벌어졌다.
다 부서진 작은 난파선 한 대가 떠내려오면서였다. 난파선은 발견 당시 이미 절반이 침수됐었는데, 한 명은 사망한 상태였고 다른 한 사람 역시 가까스로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 아, 말도 마. 내가 그 시체를 직접 봤다니까?
당시 통신망은 지금처럼 촘촘하지 않았던 터라 섬에서는 외부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립된 사람들은 일단, 산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안전한 섬 주인의 집으로 부상자를 옮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는 상처가 심해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섬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중상을 입는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뒤부터였다.
-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말이야.
어르신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 다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고를 당하기 직전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다는 거야. 그 비명을 듣고 도와주려고 가다가 줄줄이 다친 건데, 어떻게 다쳤는지 아무도 기억을 못 해.
바로 그 순간 ‘꺄아아아악!’하는 데시벨 높은 비명이 들렸다. 인터뷰 장면과 별개로 편집해 넣은 효과음이었다.
“으아악!”
“아악! 악! 끼야아아!”
유찬 형과 이서호가 동시에 펄쩍 뛰면서 소리 질렀다.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주저앉은 이서호는 말 그대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효과음 타이밍이 죽여주네.
- 그렇게 시달리다가, 배 띄울 수 있는 날씨가 되자마자 다들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갔지. 그 뒤로 나는 간 적 없어. 하지만 듣기로는 요상한 비명과 부상이 계속되었다고 해. 그러다가 결국 주인 어르신은 사고로 돌아가셨고, 섬은 아무도 인수하지 않아 무인도가 된 거지.
최근에 섬을 산 사람이 있다는 스태프의 말에 어르신은 “응? 그래?”하고 말았다. 본인이 들려줄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면서. 아,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신 한 마디가 정말 화룡점정이었는데…….
- 그 비명 말인데, 나도 들은 적 있어. 지금도 생생해. 그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어.
동시에 영상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도 희게 질린 유찬 형과 이서호의 얼굴만은 선명했다.
“자, 영상은 여기까지고요. 지금부터 저희가 표시해 놓은 지점까지 가셔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오시면 됩니다.”
“거, 거기가 어딘데요?”
들어가서 직접 찾아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찬 형은 잔뜩 겁에 질려서는 기권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그런 거 없다는 피디님의 단호한 거절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가느다랗게 앓는 소리를 냈다.
“형들, 제가 앞장설게요.”
이대로는 체험 시작도 못 하겠다 싶어, 내가 먼저 폐가 현관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창문도 전부 깨져 있고, 현관문도 녹이 슬어 덜걱거리는 게 밖에서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 서늘해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습기가 곰팡내와 함께 피부에 끈적거리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막힌 곳 하나 없이 뻥 뚫려 있어서 환기 잘 될 것 같은데 신기하네.
“같이 가.”
정이한이 쪼르르 내 옆으로 왔다. 뒤를 돌아보니 유찬 형과 이서호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주춤주춤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나마 나은 게, 강현 형은 못 박힌 듯 서서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한 형.”
“응?”
“유찬 형이랑 서호 좀 챙겨주세요. 저는 강현 형 챙길게요.”
“……어?”
무서워하지 않는 건 우리 둘뿐이니 각각 챙기는 게 좋지 않겠냐고 의견을 냈다. 정이한은 나와 덩어리가 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마지막으로 강현 형을 보면서 주저했다.
“지금 믿을 사람이 형밖에 없어서 그래요.”
“어? 알았어. 내가 유찬 형이랑 서호 챙길게.”
“부탁해요!”
“응!”
다가오는 정이한을 본 유찬 형과 이서호, 두 사람은 아메바가 분열하듯 서로에게 떨어져 나와서는 정이한의 팔을 한쪽씩 덥석덥석 붙잡고 늘어졌다. 답답하니까 살살 잡으라는 정이한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나는 강현 형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들어가길 주저하는 형을 불렀더니 그것만으로도 조금 놀란 듯 움찔 하고 떨렸다. 우리 형 이렇게 약한 모습 처음 보네.
“형은 귀신 안 무서워할 것 같은데 의외네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슬쩍 잡아당기면서 그렇게 웃어주자, 강현 형은 야트막하게 한숨 쉬면서 나를 따라 걸었다. 맞닿은 체온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요란하지 않은 것뿐이지, 이렇게 보니 강현 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킨 강현 형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수지에 밤낚시 간 적 있거든. 아버지 따라서…….”
“아.”
말을 이으려던 강현 형은 정말 안 무서워하는지 확인하기라도 하듯 내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듣던 정말 상관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전 귀신 안 무서워해요.”
솔직히 귀신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데우스도 만난 마당에 귀신 정도야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는 귀신을 본 적도 없고, 귀신이 나한테 해코지한 적도 없으니 굳이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 것뿐이다. 잠깐 말없이 걷던 형은 앞서가는 세 사람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춰서 내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졸려서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꿈을 꿨어. 같이 놀자던 어떤 여자가 있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꿈에서요?”
“응. 그런데 춥고, 어둡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거야. 그래서 같이 놀기 싫다고 거절했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기괴한 몸부림 같은 춤을 추면서 나를 쫓아왔어.”
“이상한 꿈이네요.”
이상한 꿈과 귀신이 무슨 상관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강현 형은 떨리는 숨을 한 번 뱉은 뒤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여자에게서 도망치다가 아버지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는데, 텐트가 물로 흥건했어. 최근 며칠 동안 비가 온 적도 없었고, 마른 땅에 친 텐트가 왜 젖어 있는지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강현 형이 느릿하게 말을 맺었다. 그제야 생각나더라. 꿈속에서 봤던 그 여자가 잔뜩 젖어 있었던 게.
“헐…….”
이건 좀 오싹한데? 강현 형은 그 뒤로 귀신이니 심령현상 같은 건 그때가 생각나서 질색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섬이라 그런가, 이 폐가 내부도 굉장히 습하고 음울한 느낌이 가득했다. 강현 형이 싫어할 것 같긴 하네.
“제가 지켜줄게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강현 형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나와 마주 잡은 손을 내려보는 형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하긴, 하온이는 밝아서 귀신도 가까이 못 올 것 같긴 해.”
“제가요?”
내가 밝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조금 어리둥절해져서 반문했는데, 강현 형은 빈말이 아니라는 듯 “응.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밝아.”하고 확신에 차 대답했다. 형의 인간관계가 무척 좁다는 걸 이렇게 증명해 주네.
“아, 그리고 솔직히 형 이야기는 진짜 같은데, 저희가 아까 본 건 좀 페이크 영상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왜?”
정말 위험하고,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라면 촬영지로 선택될 리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사전답사를 했을 텐데, 다들 무사하잖아? 폐가 곳곳에 숨어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내 생각을 전하자 강현 형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
“아악!”
“으악! 악! 으아아악!”
그 순간, 갑자기 앞서가던 유찬 형과 이서호가 혼비백산해서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나와 강현 형을 방패 삼아 뒤에 숨은 두 사람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뭐예요?”
정이한에게 묻자, 조금 지친 기색으로 “거미줄.”하고 대답했다.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그 말이 안 들리는 건지, 이를 따닥따닥 부딪치는 이서호가 귀신이 얼굴에 달라붙었다면서 울부짖었다. 그게 귀신이 아니라 거미줄이라고 인지시키는 데 한참 걸렸다.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뒤에서 계속 옷을 잡아 당겨대는 두 사람 때문에 힘이 쭉쭉 빠졌다. 그래도 멤버들이랑 찰싹 붙어 있다고 체력 유지는 원활히 되는 게 웃겼다.
“표식이 어디 있다는 걸까요?”
“그러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묻는 말에 대답하는 건 정이한 한 명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뭔가 놓친 게 없는지 내부를 슥 둘러봤다. 1층짜리 폐가의 구조는 무척 단출했는데 거실 겸 부엌 공간으로 보이는 장소가 하나, 그리고 방이 세 개 있었다. 가구 하나 없이 뻥뻥 뚫려 있어서 제작진이 남겼다는 표식을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 보이질 않았다.
흩어져서 찾아보고 싶어도 나를 거의 나무 취급하고 있는 겁먹은 매미 두 사람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강현 형도 얼어붙은 채 내 옆에 딱 붙어 있었다. 심지어 정이한까지 내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탓에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비효율적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보는 사람은 재밌겠지? 재밌어야 하는데. 디어리들 재밌으라고 쓴 건데, 멤버들 겁은 겁대로 먹고 재미없으면 완전 망하는 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유찬 형이 뒤에서 나를 밀쳤다. 정확하게는 머리로 등을 들이받은 것 같은데……. 이번엔 또 뭐지? 확인하려고 뒤를 곧장 뒤를 돌자, 유찬 형이 손바닥을 딱 붙인 채 내게 미안하다고 굽실거렸다.
“발에 뭐가 걸렸어……. 미안.”
나무 장판이라도 올라와 있었나? 괜찮다고 대답하면서 아래를 내려봤는데, 유찬 형의 발에 걸린 건 나무 장판이 아닌 먼지를 잔뜩 먹은 카펫이었다.
“어? 이거 움직인 흔적이 있는데?”
신발 끝으로 카펫을 툭툭 건드려보던 정이한이 발을 살짝 들어 올린 순간……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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