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악! 그걸 왜 찾아!”
등 뒤에서 이서호가 빽 하고 소리쳤다. 질색하는 듯한 외침에 장난기가 발동해 방긋 웃으며 뒤를 돌았다.
“설마, 서호 형. 무서워?”
“누, 누, 누가! 그, 그런, 그런 걸, 무, 무, 무서워한다고!”
만지면 손이 시릴 것처럼 안색이 파래져서는 말을 더듬거리는 이서호는 누가 봐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먹히지도 않을 허세를 부리는 이서호가 귀여워서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찬 형이 갑자기 괴상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신음 사이에 섞인 단편적인 단어를 조합해 보니, 대충 공포체험 가기 싫다는 투정이었다. 유찬 형은 급기야 동굴 벽에 머리를 박은 채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유찬 형…?”
헉, 깜짝이야. 좀비 영화에서 좀비랑 눈 마주쳤을 때 주인공 기분을 간접 체험한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르자마자 형이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 탓이었다.
“하온아아…….”
형은 내가 이름 부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내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니까 진짜 광기에 찬 좀비 같아서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면서 물러났다. 그래봤자 금방 잡혔지만.
내게 달려든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고는 내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유찬 형의 등을 토닥여주다 보니 불현듯 강현 형이 떠올랐다. 맞다, 그 형도 무서워했었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린 끝에 강현 형을 찾아냈다. 형은 동굴 입구에 서서 이서호 못지않은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굳어 있었다. 와중에도 내가 잡아 온 우럭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게, 솔직히 이서호보다 더 귀여웠다. 안 그러던 사람이 이러니까 훨씬 귀여운 게 당연하잖아.
멤버들의 반응이 하나 같이 너무 귀여워서 소리 내 웃고 싶었는데, 공포체험을 적어 멤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자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나마 정이한은 멀쩡하니 다행이네.
그런데 웬걸?
정이한은 뭔가 불안한 사람처럼 내 주위를 얼쩡거렸다. 괜히 유찬 형 뒤에서 기웃거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치니까 깜짝 놀라서 반걸음 물러났다.
우리 멤버들이 다 고장 나버렸네…….
귀신이 뭐가 무섭지?
진짜 무서운 건 귀신 따위가 아니라, 사람인데.
그래서 다들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몰랐다. 그냥 예능 분량 좀 뽑으려고 했던 건데 이쯤 되니 공포체험 적은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하루 중 햇볕이 가장 쨍하다고 할 수 있을 정오를 갓 넘긴 시간이었지만, 지금 가도 충분히 무서워할 것 같아서 모두를 위해 제안했다.
“그럼 밥 먹기 전에 제 스팟 먼저 갈까요?”
낮에 가면 조금이라도 덜 무섭겠지.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무조건 밤에 가야 한대.”
거의 흐느낌에 가까운 우울한 대답이 목덜미에 미세한 진동을 전달하면서 들려왔다. 악, 근데 유찬 형이랑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 가까이에서 웅웅 울리는 형의 목소리가 간지러워서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렸더니, 정이한이 유찬 형의 팔을 꾹 잡아당겼다.
“형, 하온이 힘들어.”
“어으으, 안돼! 조금만 더. 치유가 필요해…….”
정이한에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를 담아 눈짓하자 삐죽 내밀고 있던 정이한의 입술이 쏙 들어갔다.
“……으응.”
어차피 지금 못 가는 거면,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야지. 다들 먹을 수 있으려나. 점심 먹고 이서호 어트랙션 체험하고 나면, 해가 저물 테니까 그때 가면 되겠다. 조금이라도 밝을 때.
그러려면 이 사람들을 달래야 하는데…….
“유찬 형.”
“으응.”
“저 엄청 큰 우럭 잡았는데, 안 봐줄 거예요?”
“우럭?”
유찬 형이 고개를 번쩍 들면서 관심을 보였다. 강현 형의 손에 단단히 아가미를 잡혀있는 우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따라 고개 돌린 유찬 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헐! 뭐야? 저걸 진짜 잡았어?”
유찬 형의 목소리가 신호라도 된 것처럼, 강현 형이 움찔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유찬 형의 고개가 강현 형을 따라 움직였다.
“네! 강현 형이 알려준 곳에서 잡았죠.”
나는 뿌듯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우럭은 회 쳐서 먹으려고.”
강현 형이 조리용 칼을 꺼내 들면서 말했다. 곧장 우럭에게 온 정신이 팔린 유찬 형이 내게서 떨어지자, 정이한이 기다렸다는 듯 헤실헤실 웃으면서 달라붙어 왔다. 옆구리에 정이한을 딱 붙인 채 강현 형이 우럭 회 치는 걸 구경하려고 따라갔다.
내가 잡은 우럭뿐 아니라, 이서호가 잡은 물고기 네 마리도 먼저 손질해 두자는 강현 형의 말에 모두가 나섰다. 다들 안 해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했다. 신기하게 날생선 못 만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네? 먼저 시범을 보인 강현 형을 유심히 보고 배운 우리는 우물가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서 물고기 손질을 시작했다.
자연산 회 처음 먹어보는데! 원래 이렇게 달고, 오독오독 쫀득한가? 아니면 내가 잡아서 더 맛있나?
***
이서호는 제 소원 스팟에 도착하자마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산 중턱에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미끄러운 바위를 따라 미끄럼틀처럼 급류를 탈 수 있었다.
“여기 얕아서 하온이도 놀 수 있겠다.”
계곡 수위를 확인한 유찬 형이 내게 미끄럼틀 탈 거냐고 물었다. 제일 깊은 곳이 유찬 형의 허리춤까지밖에 안 차는 걸 확인한 뒤에 호기롭게 타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면 나도 들어갈 수 있지!
솔직히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막상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까 경사가 생각보다 가팔라 보였다. 밑에서 봤을 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게다가 물살도 생각보다 엄청 세 보인다.
“무서워?”
“생각보다 경사가…….”
“막상 타보면 재밌을걸?”
눈웃음 지어 보인 유찬 형이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면서 나섰다. 바위 사이의 미끄러운 바닥에 앉자마자 급류가 형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내 쪽을 보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 거 같았는데, 물살이 계속해서 얼굴을 치는 바람에 찡그리면서 어푸거리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그러니까 자세 잡을 때까지 바위를 꼭 잡으라는 소리…인 건가? 제대로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러자 유찬 형이 고개를 끄덕이곤 “이얏호!”소리를 내면서 바위를 잡은 손을 뗐다. 급류에 떠밀린 형은 순식간에 아래로 떠내려갔다.
“와아, 진짜 시원하다! 완전 재밌어!”
흠뻑 젖은 몸을 일으킨 유찬 형이 해맑게 웃었다. 내게도 내려오라고 손짓했는데, 그 사이 이서호도 급류를 타려고 올라와서 발을 동동 구르며 대기 중이었다.
“진하온, 안 타?”
“형 먼저 탈래?”
“무섭냐?”
유찬 형에게는 순순히 무섭다고 할 수 있는데, 왜인지 이서호에게는 나약한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뻔뻔한 낯짝으로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니?”
“아닌데? 무서운 거 같은데?”
이서호의 눈동자가 장난기로 반짝거렸다.
“아니거든.”
“그럼 빨리 타고 내려가시지. 너 타면 나 탈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서호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역력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놀려댈 게 뻔해! 나는 보이지 않는 이서호의 손에 떠밀리듯 조심조심 바위 사이로 발을 디뎠다.
“야, 진하온. 미끄러우니까 조심해라.”
안 그래도 피부로 느끼고 내심 놀란 상태였다. 반들반들한 바위는 미끄러웠고, 급류가 떠미는 힘 또한 내 예상보다 더 셌다.
“어, 어.”
괜히 긴장되네. 그래도 지금 무섭다고 떨어봐야 바뀌는 건 없다. 하려고 발 뻗었으면 해야지! 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반대쪽 바위를 움켜잡고, 바닥에 앉는 것까지 한 번에 해결했다. 그 상태에서 잠깐 팔에 힘을 줘서 버티다가 손의 힘을 풀자마자 몸이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은 예뻤고, 나를 때리는 바람은 시원했다.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풍덩, 하고 머리까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물속에 가라앉은 걸 느끼자마자,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일어섰다.
“…푸하!”
“어때? 재밌지?”
밑에서 기다렸던 유찬 형이 바로 다가와 대답을 조르듯이 물었다.
“네! 생각보다 재밌네요. 소원 스팟 맞네.”
위를 올려보니 이서호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찬 형과 내가 뒤로 물러나 착지할 자리를 만들어주자마자 힘찬 외침과 함께 즐거운 비명이 들렸다.
“끼얏호! 디아스의 이서호! 출바알!”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물보라가 일었다. 우리도 저렇게 신나 했나, 보는 사람은 되게 웃겼겠다 싶어 나와 유찬 형은 흠뻑 젖은 채로 또 한 번 서로를 보고 웃었다. 물에 젖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뒤, 한 번 더 급류를 타러 올라갔다. 저항감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신나게 급류를 타고 내려가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슬슬 힘들어졌을 때, 주변을 살펴보러 간 강현 형과 정이한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근처에서 다이빙하기 좋은 위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게다가 촬영장에 상주 중인 안전 요원 스태프분에게 뛰어도 괜찮다는 허락까지 착실하게 받아왔다.
이서호는 빨리 가고 싶다면서 기뻐했고, 유찬 형은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건 괜찮아도 계곡에서 하는 건 싫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안 한다.
정이한도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었는데, 강현 형의 뛰는 폼이 너무 매끄럽고 멋있어서 감탄했더니 갑자기 도전하겠다면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역시 강현 형이 1등이야. 저 형은 진짜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나 봐.
한참 물놀이를 하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져서 우리는 충동적으로 사진 한 장을 내밀고, 후식 타임을 가졌다. 계곡물에 담가둔 수박을 꺼내 먹으니 여기가 천국이었다.
……하지만 결국 올 것이 왔다. 주홍빛 노을을 등에 진 채 공포체험 스팟까지 앞장서는 정이한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이서호는 아까부터 가기 싫다면서 징징징 울고 있었다.
“진하오오온……! 너 때문에!”
나를 원망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이를 따닥따닥 부딪치며 떨기 바쁜 유찬 형은 내 팔을 움켜 안고 간간이 ‘으으…….’ 하는 신음만 흘렸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는 꽤 커 보이는 폐가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무성히 자라난 잡초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쉬고 있던 풀벌레들이 신발을 피해 무릎 높이까지 튀어 올랐다.
“악!”
“으악!”
“헉.”
이서호가 놀라서 소리 지르면, 연쇄 반응처럼 유찬 형의 비명이 따랐다. 그리고 티를 잘 안 낸다뿐이지 계속해서 조용히 경악하고 있는 강현 형. 유일하게 겁이 없는 정이한은 몇 번이고 나한테 안 무섭냐고 물었지만, 인생 2회차가 이런 게 무섭겠냐…….
폐가 입구에서 피디님이 우리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여서 ‘어?’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만으로도 이서호와 유찬 형은 놀라서 기함했다. 이쯤 되니 좀 신기할 따름이었다. 스태프가 이렇게 많은 데다가 멤버들이 다 같이 있는데 뭐가 무서운 걸까?
피디님께 도착하자 그 앞에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이 나란히 세팅되어 있었다.
“체험에 들어가기 전, 먼저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그냥 안 보고 바로 들어가면 안 돼요? 진짜 티엠아이다.”
유찬 형이 잔뜩 울상을 지은 채 도리질 치면서 듣길 거부했지만, 피디님은 완강하셨다.
“안 됩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