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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모드 아이돌-132화 (132/320)

132.

진짜 뭐지? 왜 소리 질렀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서 얼른 텐트 지퍼를 열었다. 텐트 안 정이한과 강현 형은 서로 같은 극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침묵을 경계로 해 넘을 수 없는 선이라도 그어진 것처럼 보였다.

“…….”

“…….”

잠이 확 달아난 듯한 유찬 형이 내 옆으로 오더니 허리를 숙여 안을 들여다봤다. 두 사람이 비명 지를 만한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려는 듯 침착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놀라서 소리 지를 만한 건 없어 보이는데……. 의아함을 느끼던 그때, 조용했던 유찬 형이 한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안도하는 건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뭐 때문에 소리 지른 거야? 뱀이라도 나왔어? 아니면 벌레?”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등 뒤에서 기웃거리던 이서호가 그 말에 곧장 히엑, 소리를 내며 물러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도 다리 많은 거랑 없는 건 질색이라서 슬그머니 멀어지려고 했는데, 강현 형이 “그건 아니고…….”라고 대답해서 다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럼 뭐지?

“그럼 뭔데.”

유찬 형의 어조에는 얕은 짜증이 배어 있었다. 가뜩이나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멤버들의 비명에 놀라서 깬 탓인 것 같았다.

“이한 형이…….”

강현 형이 답지 않게 화두만 꺼낸 뒤 정이한을 봤다. 정이한이 회피해 버리자, 유찬 형은 “이한이가?”하고 날을 세워 되물었다.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본 촬영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거치 카메라는 돌고 있었기에 신경 쓰였다. 이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

“날 안고 있어서…….”

“아니, 잠깐. 강현아.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잖아!”

한발 늦게 정이한이 허둥지둥 끼어들었다.

“아니야, 유찬 형! 하온아, 진짜 아니야. 나는 하, 아니, 내가 원래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

“푸흡! …크흠, 흠. 어쨌든 이한이가 강현이 안은 건 맞네?”

유찬 형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 사이 정이한은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지 않냐면서 고개를 푹 떨궜다.

“아, 맞아. 이한 형 안고 자는 버릇 있었죠?”

“……으응.”

“그건 나도 아는데, 조심하자. 진짜 놀랐어.”

강현 형은 조금 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까지 부르르 떨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강현 형도 저 안고 잤는데요?”

“내가…?”

강현 형이 못 믿겠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게 아니었기에 나는 텐트 위에 달린 카메라를 가리켰다.

“네, 저기 찍혔을걸요?”

“……그, 그랬어? 미안, 무거웠겠다.”

“깰 때까진 몰랐어요. 괜찮아요.”

내가 두 사람보다 먼저 일어나서 빠져나오길 망정이지, 나였어도 똑같이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이한 형이!’대신에 ‘진하온이!’가 됐겠지. 좁은 텐트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잤으니 아침에 놀랄 만도 해.

응? 그러고 보니 나는 괜찮았는데? 형들한테 안겨 자는 거….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떠오른 것도 잠시, 형들이 텐트에서 주섬주섬 나오는 걸 보면서 길을 만들어 주려고 비켜섰다.

이렇게 작은 소동과 함께 무인도 리얼리티 2일 차가 밝았다. 이서호가 모닥불을 피워 둔 덕에 곧바로 어제 먹고 남은 소라, 고동과 훈제 해 둔 고기를 굽는 사이, 멤버 별로 돌아가면서 씻고 왔다. 우물가가 가까워서 참 좋단 말이지.

“물 빠졌던데 통발 설치할까? 우리 소라 좀 남았지?”

유찬 형이 아직 살아 있는 소라를 꺼내 들면서 묻자 정이한은 잠시 바다를 들여다보고 대답했다.

“지금 밀물 같으니까 이럴 때 깊숙이 들어가면 위험해. 큰 바위 아래쪽으로 던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밤에 물 빠지나?”

“그럴걸? 같이 가.”

정이한이 먼저 나서서 통발 두 개를 모두 들었다. 나는 따라나서려는 유찬 형에게 고동도 몇 개 더 얹어줬다. 산책할 겸 따라갈까 했는데, 어제 고생한 바람에 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얌전히 있었다.

두 사람이 돌아온 뒤 배가 차기에는 한참 부족한 아침을 먹은 우리는, 어제처럼 팀 단위로 움직이기로 했다. 이번에도 스팟 탐사 팀과 식량 수집 팀으로 나눴는데, 나는 강현 형, 이서호와 함께 낚시하게 됐다. 강현 형이 제작진으로부터 받은 무인도 지도에 어제 갔던 길을 표시하는 걸 기다리는 사이 미끼로 쓸 고동을 주워들었다.

***

12시에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벌써 11시 30분이다. 전에 어디선가 낚시에는 초심자의 행운 버프란 게 있다고 들었건만… 살면서 처음 잡아보는 낚싯대, 처음 해보는 낚시인데 왜 나한테는 그 버프가 적용 안 되는 거야?

“또 잡았다! 강현 형!”

잔뜩 흥분한 이서호가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강현 형에게 내밀었다. 얼른 흔들리는 낚싯줄을 채간 강현 형이 물고기 입에서 낚싯바늘을 빼면서 말했다.

“이거 복어야, 못 먹어.”

“아, 진짜? 나 찐 복어 처음 봐!”

어차피 못 먹는 생선이라서 그런가, 이서호는 놓아 줘야 한다는 말에도 그리 아쉽지 않은 것 같았다. 동그랗게 부푼 복어를 실제로 보는 건 나도 처음이라서 신기함 반, 부러움 반으로 이서호의 복어를 봤다.

내 건 왜 잠잠하지…….

하릴없이 낚싯대만 흔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뭔가 묵직하게 잡아 당기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낚싯대를 휙 잡아채곤, 열심히 릴을 돌렸다.

“잡은, 것 같아!”

“오! 진하온, 드디어!”

빠르게 릴을 돌리는 동안 낚싯대를 끌어당기는 듯한 묵직함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드디어 첫 물고기를 잡는구나! 뿌듯한 얼굴로 힘차게 낚싯대를 끌어 올렸는데…….

불가사리?

“으하하!”

이서호가 내가 잡아 올린 불가사리를 손가락질하면서 웃었다.

“아무르불가사리야. 유해 동물 지정된 거니까 놓아주지 말고 말려서 죽여.”

강현 형이 친절하게도 이게 뭔지 알려줬다. 가까이서 보니 바늘이 배 중앙에 박혀 있더라. 저기가 입인가 보다. 생각보다 덩치도 크고, 길쭉길쭉해서 징그러웠다.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보니까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딱딱해서 더 기분 나빴다.

“줘 봐. 빼줄게.”

강현 형은 불가사리를 빼낸 뒤 바다 반대편으로 휙 던져버렸다. 형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뒤 미끼를 갈아 끼웠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 고동 네 마리가 남았다! 다시 던져 봐야지!

“자리를 좀 옮겨볼래?”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거 아니에요?”

물고기 못 잡아서 시무룩한 티가 났나 봐……. 민망하네. 흠흠.

“다르지. 이쪽으로 와봐.”

형은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내게 손짓했다. 뭔가 형의 눈에만 보이는 좋은 포인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 강현 형을 따라갔다.

“바위 미끄러우니까 내가 밟는 것만 따라 밟아.”

“네!”

형은 체중을 싣기 전에 먼저 발끝으로 바위를 건드려 본 뒤 흔들리지 않는 걸 확인하면서 디뎠다. 형이 밟는 것만 밟으면서 따라가다 보니, 발밑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낚싯대 늘어트려 봐.”

형이 가리킨 곳은 큰 바위가 맞물리면서 생긴 틈이었다.

“여기에요?”

“응. 물고기들이 이런 곳에도 꽤 있거든. 이런 낚시 기법을 구멍치기라고 하는데, 의외로 잘 잡혀.”

“아하. 형은 어떻게 알아요?”

시키는 대로 바위틈에 낚싯대를 늘어트리며 물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낚싯대가 흔들거렸다.

“아버지 취미가 낚시였거든. 어릴 때 자주 따라다녔는데, 그러면서 이것저것 들은 게 많아.”

“아하! 요즘에는 형이 바빠서 같이 못 가겠네요.”

휴가 때도 형은 연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반나절, 혹은 하루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번 휴가 때도 마지막 날 하루만 숙소를 비웠었다.

“돌아가신 지 오래됐어.”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온 말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나는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느껴본 적 없기에 공감해줄 수도 없었고, 솔직히… 그게 얼마나 큰 슬픔일지 역시 어렴풋이 이해는 해도, 공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 훨씬 편안하고, 그리움조차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어떻게 대꾸해야 맞는 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 아, 그게… 미안해요…….”

그래서 멍청하게 더듬거리다가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강현 형이 웃으면서 내 머리를 슥슥 쓸어 넘겼다.

“오래된 일이야. 나 초등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거든. 이제는 아버지 얼굴도, 목소리도 잘 기억 안 날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만큼 오래전 일. 지금은 괜찮아.”

강현 형은 잠시 바위틈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를 내려보다가 내게 말했다.

“나한테는 누나가 있고…….”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리는 형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온이 네가 선물해 준, 가족도 있으니까.”

“……제가요?”

“응. 디아스.”

말을 마친 강현 형은 민망한 듯 내게서 시선을 피해 바다를 봤다. 나도 왠지 부끄러워져서 형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저도 디아스가 제 유일한 가족이에요.”

날 돌아보는 강현 형은 빛나는 바다보다 더 반짝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감탄할 새도 없이 그 순간, 갑자기 낚싯대가 아래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

“당겨!”

강현 형의 지휘 아래에 힘차게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불가사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 느껴졌다. 낚싯대가 부러질 것처럼 휘었다.

“어, 어? 이거……!”

“도와줄게.”

강현 형이 자연스럽게 등 뒤에서 날 감싸 안은 채 낚싯대를 같이 잡아줬다. 형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건져 올린 물고기는 횟집 수족관에 들어갈 법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카메라 감독님들의 감탄이 들렸다.

“헐, 우와!”

“우럭이야. 완전 대어네. 잘했어!”

강현 형이 나보다 더 뿌듯해했다. 형은 펄떡거리는 우럭의 아가미에 손을 넣어 단숨에 제압했다.

“이거면 다섯이서 충분하겠네. 돌아가자. 이번에도 잘 따라와야 해.”

“네, 그럼요!”

강현 형은 앞서 걸어가며 카메라를 향해 정중히, 개인 사정은 꼭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방영 전에 소속사에서 검토할 테니 형과 나눈 대화는 편집되겠지.

그리 멀리 나온 게 아니라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 금방이었다. 우리가 잡은 우럭을 보고 이서호가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와! 이게 뭐야? 진짜 크다!”

“우럭! 내가 잡았어!”

“헐, 진짜? 진하온, 니가?”

“응!”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쫙 펼친 뒤 흐뭇하게 웃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감탄하는 이서호를 보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이거 회 떠먹자!”

“회 뜰 줄 알아?”

“모르는데?”

이서호와 나는 자연스레 강현 형을 바라봤다. 설마 했는데, 형은 정말 회를 뜰 줄 알았다. 둘이 함께 ‘강현 형, 만세!’를 외치면서 동굴로 돌아갔다.

탐사 팀이 돌아오면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창백한 안색의 유찬 형과 우리를 보고 해맑게 웃는 정이한이 먼저 베이스캠프에 와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랐다. 뭐지?

“그, 스팟 찾았는데……. 서호랑…….”

유찬 형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옆에서 정이한이 기쁜 듯 웃으면서 말을 가로챘다.

“내가 하온이 거 찾았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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