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강현 형의 주도하에 멤버들이 모두 달라붙어 해먹을 설치했다. 두어 번 겹쳐서 튼튼하게 만든 건 좋은데, 천이 아닌 낚시용 그물이라 그냥 눕기에는 조금 아플 것 같았다.
그런데 유찬 형이 마치 준비라도 된 것처럼 커다란 바스타올을 가져왔다. 보들보들한 재질이 아주 찰떡이었다. 유찬 형은 조금 씁쓸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면서 바스타올을 쓰다듬었다.
“해외 가는 줄 알고……. 해변에서 쓰려고 챙긴 건데…….”
유찬 형의 아련한 눈빛이 허공을 더듬었다. 아, 이런.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매니저 형, 보고 있어요? 우리 해외여행 꼭 한 번 보내줘요……. 형들 의기소침한 것 봐.
“유찬 형! 먼저 올라가 봐요.”
나는 유찬 형의 마음을 모르는 척 애써 발랄한 어조로 말했다.
“응? 아니야. 난 괜찮아.”
“왜요? 올라가 봐요. 기분 엄청 좋아질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럼요!”
“……그럴까?”
유찬 형이 해먹을 잡고 흔들면서 관심을 보였다.
“네!”
나는 형이 편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해먹을 꽉 붙잡아줬다. 천이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안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하게 꼼지락거리던 유찬 형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눕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헐, 이거 대박인데?”
“어때요? 좋아요?”
“응! 생각보다 훨씬 편한데? 그리고 경치가……. 와. 진짜 너무 좋다. 여기서 별 보면 진짜 예쁠 것 같아.”
나도 궁금해져서 덩달아 해먹에 바짝 붙은 채로 고개를 올려봤다. 늘씬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풍성한 잎, 그리고 그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하늘이 빼꼼 인사하듯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찬 형, 그러다 입에 벌레 들어간다!”
“악!”
이서호가 찬물을 끼얹자 유찬 형은 곧장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유찬 형을 낄낄거리면서 놀리긴 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서호도 올라가고 싶은 눈치였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해먹에도 올라가고, 경치를 감상하면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다 좋은데 배고프다…….”
이서호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산딸기를 주섬주섬 입에 넣고 있었다. 그제야 우리가 아침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은 게 떠올랐다.
“그러게, 배고프다. 하온이가 우리 베이스캠프 자리 봐뒀다니까 그쪽으로 가서 밥 먹자.”
동시에 이서호가 나를 채근했다.
“진하온! 우리 어디로 가?”
나는 여유롭게 유찬 형의 깃발을 흔들면서 앞장섰다.
“디아스 반 어린이들, 따라오세요~”
“하핫, 하온이 귀여워~”
“네네, 선생님!”
“푸하학, 뭐래!”
“…….”
정이한만 호응해줬어! 너무하네.
웃어대기 바쁜 형들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어린이들을 불러대며 유찬 형의 스팟이자, 베이스캠프로 눈여겨 둔 동굴로 멤버들을 데려갔다.
다들 나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자연이 선사하는 신비로움과 웅장함에 연신 감탄했다. 괜히 내가 다 뿌듯해서 넋 놓고 감상하는 형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동굴에서 느낀 압도적인 자연은 배고픔을 잠깐 잊게 해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통을 깨는 이서호의 우렁찬 꼬르륵 소리에 우리는 두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뭘 바꿀지 고민했다.
피디님이 내민 코팅 된 종이에는 음식점 메뉴판처럼 교환 가능한 물품이 적혀 있었다.
“텐트가 2인용, 3인용 따로따로네.”
아, 제작진분들 악독하셔. 하나면 될 줄 알았는데 두 개나 필요하다니! 그 때문에 우리는 선택의 갈림에 서버렸다. 텐트 두 개냐, 텐트 하나와 고기냐.
하지만 우리는 지금 배고픈 짐승이었다. 무엇보다 내일도 종일 움직여야 했기에 3인용 텐트 하나와 고기를 교환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스태프가 친절하게 날라 준 도구함에는 조리도구와 각종 조미료도 들어 있었다.
요리를 전혀 못 하는 이서호와 유찬 형은 텐트 설치를 맡았고, 강현 형과 정이한을 메인 쉐프로, 그리고 나는 자잘한 심부름을 맡아 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요리 준비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형들과 함께 조리도구부터 뒤졌다. 캠핑용 버너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강현 형이 본인은 불 피워서 해보겠다며 양보했다.
“작은 게는 기름에 튀길 건데, 뜨거우니까 하온이는 가서 강현이 도와줄래?”
“어? 네, 그럴게요.”
강현 형에게 갔더니 형은 땔감 구하러 나갈 거라면서 정이한을 도와주라고 했다. 둘 다 내 도움이 필요 없다면 알아서 해야지. 나는 요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재료 세척을 위해 푸릇푸릇한 식용 풀을 들고 우물가를 향했다.
***
식사 준비가 끝났는데도 텐트 설치는 아직이었다. 둘 다 이런 건 해본 적 없어서 제대로 헤매는 중이었다. 결국 밥 먹고 다 같이 하자고 결론 내리고 먼저 배를 채웠다.
그리고 대망의 텐트 설치.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제자리에 맞게 끼운 것 같은데 왜 막대기가 남지?
남는 막대기를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어디에 들어가는 녀석일지 고민했다. 우리가 너무 헤매서 그런가, 이런 거 뚝딱뚝딱 잘하던 강현 형도 평소답지 않게 헷갈려하다가 한참 만에야 기억났다면서 완전히 분해한 뒤 다시 조립했다.
그렇게 완성된 텐트는 3인용 치고는 커 보였지만, 그럼에도 ‘인용’의 한계는 넘지 못해서 우리가 다 들어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다들 길쭉길쭉해서 더 그런가 봐. 그래도 몇 사람 편해지자고 누군가를 밖에서 재우고 싶진 않았기에 불편하더라도 다 함께 잘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머리랑 상체만 넣고, 발은 다 같이 밖으로 빼놓고 자면 되지 않아요?”
왼쪽 입구로 두 명, 오른쪽 입구로 세 명. 양문형이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도 내 의견에 찬성해 주지 않았다. 어째서지? 괜찮아 보이는데…….
“…일단 하온이는 텐트에서 자는 걸로 하자. 다들 괜찮지?”
“응? 당연하지. 진하온 골골거리는데 밖에서 못 재우지. 무조건 텐트.”
고오맙다……. 어쩐지 싱숭생숭한 기분이었지만, 체력 회복을 위해서는 편히 자야 했으므로 사족을 달지 않고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았다.
“나는 강현 형이 설치해준 해먹에서 잘래!”
이서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스로 야외 취침을 선언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어, 나도 해먹에서 자려고 했는데.”
유찬 형 역시 별 보면서 잠들기에는 그쪽이 더 좋아 보인다면서 해먹을 희망했다. 하긴. 여기 동굴 안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엔 모닥불을 피워버렸으니까 누워서 보기는 좀……. 머리카락 타면 어떡해.
다행히 남은 그물이 있어서 해먹을 하나 더 설치하기로 했다. 어차피 텐트 밑에 깔 마른 잎도 필요했기에, 강현 형이 해먹을 설치하는 동안 나와 다른 멤버들은 흩어져서 마른 잎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품에 마른 잎을 가득 안고 동굴로 돌아왔다. 텐트 바닥에 잎을 층층이 깔고, 그 뒤에 바닥 천을 덮었더니 생각보다 폭신폭신했다. 잘 준비를 마친 뒤 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경치 진짜 좋다…….”
완전히 밤이 되자 제작진분들이 잠깐 경치 감상할 시간을 주시겠다며 조명도 전부 꺼주셨다. 인공적인 빛이 모두 사라지자, 모닥불이 동굴 내부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흔들리는 불빛마저 예술이었다.
파도치는 소리와 나뭇잎 소리를 배경음 삼아 들으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창문을 낸 것처럼 뚫려 있는 동굴 틈으로 보이는 하늘에선, 촘촘히 박힌 빛나는 별들이 영롱하게 빛났다.
처음엔 무인도라고 칠색 팔색했는데, 진짜 힐링이 되긴 되네. 무엇보다 디아스 완전체로 이곳에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았다. 형들이랑 있으면 거기가 어디든 나한테는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도 나누고, 분위기에 취해서 노래도 불렀다. 제대로 분위기를 탄 강현 형이 멤버들의 환호와 주접 속에서 댄스 브레이크를 보여줬고, 그에 맞춰서 정이한이 즉석으로 랩을 했다. 흥이 많은 이서호는 디어리들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쉴 새 없이 꺅꺅대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그럼 이번에는 우리 막내!”
유찬 형이 나를 지목했다.
“저 또 불러요?”
“응. 불러줘. 바다랑 어울리는 발라드로!”
“같이 부를래요?”
“그럴까? 뭐가 좋으려나.”
짧은 논의 끝에 선곡을 마친 우리는 느릿한 선율을 따라 천천히 몸을 흔들어 리듬을 타면서 노래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유찬 형과 이서호는 취침을 위해 먼저 해먹으로 갔다. 솔직히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우리도 잘까?”
“네, 저 지금 너무 졸려요…….”
고개가 자꾸만 꺾이는 걸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적흐느적 텐트로 들어갔다. 구석에 딱 붙어서 누우려는데, 강현 형이 나를 끄집어냈다.
“……왜요.”
“가운데에 누워.”
“형들 안 불편해요?”
“너 잠버릇 없다며.”
아, 그러니까 날 방패 삼겠다는 건가. 어디든 상관없었으므로 텐트 중앙으로 꼬물꼬물 기어갔다. 양쪽에 강현 형과 정이한이 자리 잡고 눕는 걸 보자마자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했다. 잠결에 불편함을 호소하듯 몸을 꼼지락거리는데, 무언가에 단단히 묶인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상태 이상이 터졌나? 불현듯 든 생각에 눈을 번쩍 뜨자마자 곧바로 원인 파악이 됐다. 상태 이상이 아니라 정이한과 강현 형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나를 베개처럼 끌어안은 채 자고 있었다. 덩치 둘이 양쪽에서 이러고 있었으니 당연히 못 움직이지. 형들 편안하게 자라고 비켜주면 좋을 것 같은데, 잘못하면 깨울 것 같아서 신중하게 몸을 움직이려던 때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카메라 배터리 교체하러 오셨나 보다, 했는데 에취! 하는 재채기 소리의 주인은 영락없이 이서호였다. 이서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유찬 형이 깨웠나? 그럼 유찬 형도 돌아왔을까? 일단 텐트를 나가야 뭘 확인해도 하지. 나는 형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팔부터 내 가슴 위에서 떼어냈다.
허벅지와 배에 턱 하니 얹어져 있던 형들의 다리까지 내려놓았는데도 깨지 않고 조용했다. 서라운드로 들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팔꿈치를 세워서 머리 위쪽으로 몸을 쭉 밀어 올렸다. 텐트 입구가 두 군데라 참 다행이야. 완전히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푹 잘 수 있도록 다시 텐트 지퍼를 채워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춥네?
나는 손으로 양팔을 문지르면서 이서호를 찾았다. 이서호는 쪼그려 앉아 모닥불이 더욱 활활 타오르도록 들쑤시는 중이었고, 그 옆에는 유찬 형이 담요에 감싸인 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어? 왜 여기 있어?”
아직 자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낮췄는데, 이서호가 나를 힐끔 보더니 울상을 지었다.
“말도 마. 낭만은 낭만일 뿐이었어…….”
연신 목덜미를 긁적이는 이서호의 손을 따라가 보니, 울긋불긋한 자국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모기는 달려들지, 조명까지 꺼지니까 모닥불 그림자도 무섭지. 어휴, 유찬 형이랑 둘이서 자냐? 자? 아직 안 자? 하면서 서로 확인하다가 결국 밤 꼴딱 샜지, 뭐.”
“헐, 고생했네.”
“너는 잘 잤어?”
“나는 잘 잤는데…….”
체력도 만땅이다! 그만큼 따뜻하게 잘 잤다. 형들이 밤새 날 끌어안고 놔주지 않은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사람 체온만큼 따뜻한 게 없더라.
“그럼 됐지, 뭐.”
이서호가 코를 훌쩍였다. 얘 이러다 감기 걸리겠다, 싶어 물이라도 끓여주려고 도구함을 뒤적이는데 갑자기 텐트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악! 뭐야!”
“으악!”
그 바람에 곤히 자던 유찬 형까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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