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10화 (110/320)

110.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미션 봉투를 쳐다본 횟수가 자막으로 [힐끔x1, 힐끔x2, 힐끔x3] 카운트되며 올라가고 있었다.

움직이면서 힐끔힐끔 진짜 많이도 봤다. 심지어 샤워하고 나와 젖은 머리를 털다 말고,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물끄러미 쳐다보기까지. 저렇게 많이 봤다고……? 왜 그랬어! 좀 참지…….

“푸하학!”

“아니, 그렇게 궁금하면 열어보지, 어떻게 참았냐?”

이서호가 이건 이거대로 대단하다면서 고개를 잘게 저었다. 잠시 후 강현 형이 나오면서 주저함이라곤 없이 곧바로 미션지를 열어보는 장면이 나왔는데,

[FM 막내와 그런 거 없는 셋째]

라는 자막과 함께 뜨악 하는 얼굴로 강현 형을 말리는 내 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미션 내용을 본 우리가 사색이 되어 각자 방으로 뛰쳐 들어가는 장면, 주차장에 모인 우리들, 마지막으로 현관문에 둘러쳐진 테이프를 뜯어내는 이서호를 차례차례 보여주는 걸 끝으로 예고편이 끝났다.

“예고편 보고 하온이 힐끔거리는 것만 기억에 남은 거 같은데?”

유찬 형이 남의 일이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채팅창도 온통 ‘힐끔’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어째서……. 나 왜 또 흑역사 생겼지?

“……놀리지 마요.”

내가 우울해하자 우리 디어리들은 오히려 귀엽다면서 더 좋아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첫 라이브 방송은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았다.

리얼리티는……. 이미 찍은 거 어쩔 거야. 이쯤 되니 흑역사 제조하는 것도 익숙해지네.

***

[제목] 리얼리티... 주말 눈치 없네 (댓글 999+)

좀 꺼져주라ㅠㅠㅠㅠ

왜 월욜에 리얼리티 본방?ㅠㅠㅠㅠㅠㅠ

엉엉 ㅠㅠㅠㅠㅠ

힐끔온 너무 커엽ㅠㅠㅠㅠㅠ

─ 애들 아침에 눈 땡그래진거 넘 귀엽던데ㅠㅠㅠㅠㅠ 빨리 본방보고싶다ㅠㅠㅠㅠ

─ 서호가 킵아웃 뜯은거 뭔지 궁금...

─ 힐끔온 ㄱㅇㅇ222222ㅠㅠㅠㅠㅠ깨물어주고싶다

─ 강현이는 그저 직진남ㅋㅋㅋㅋㅋ

─ 주말 조지러 갈 파티원 모집 (1/999999)

[제목] 떱라 착장 진짜 찢었다 애들 미모 미춌어 (댓글 999+)

(유차니닮은_순백니트_경건한미남의정석.jpg)

(남색니트_정이한_ㄹㅈㄷ남친룩.jpg)

(블랙강현_몸매가 아주 근양...군침이 싸악^^.jpg)

(서호강얼쥐_삐약이됐넼ㅋㅋㅋ.jpg)

(남자는_분홍이지_하온이♥말이필요없다_걍예쁨.jpg)

헉헉... 헉.... 진짜 짤올라오는 것마다 개처럼 주워먹는중... 츄릅...

화룡점정은 울 하온이ㅠㅠㅠㅠ

(아_나_오버핏_니트_좋아했네.gif)

쒸익쒸익...

너무 귀여워서 열받음...디아스코디님들 갓직히 인센줘야함 진짜 떱라는 전설이다...

우리 애들 미모는 세계에 알려야해!!!!

─ 디아스 보유국에 태어나서 감사합니다...

─ 애들 미모 국보로 지정해야 되는거 아닌가? 나 진지해. 궁서체임.

─ 나 지금 찐으로 울고이써..ㅠㅠㅠ 넘 좋아서ㅠㅠㅠ

┗ ㄴr는 가끔 눈물을 흘린ㄷr...

┗ 하지맠ㅋㅋㅋ

─ 떱라 자주 왔음 좋겠다ㅠㅠㅠㅠ 진심ㅠㅠ

─ 별스타 떡밥만으로는 허기지다 이거야 ㅇㅍ“ㅇ

┗ 먹어도먹어도배고파~계속고파~

[한궁] 얘네 진짜 뭐 있나벼...ㄷㄷㄷ

오늘 떱라에서 한궁 개떡상한건 알고 덕질들 하냐

궁이 남친 버전 모닝콜 찍고나서

한이 오늘도! 멜로 눈깔 장착하고 궁이랑 꼭 붙어 있었거든?

근데 궁이 뭐라 뭐라 속삭이니까

한이가 ...

둘이 속닥거린 후에..후아,,후아후아...

(한_웃는거_뭐냐고_진짜고소할거임.swf)

좋은건 한번 더 보자

저렇게 웃었따고!

뭔말인지 너무 궁금해서

호적메이트 독순술 할 줄 알아서 물어봤거든?

답 딱 나옴

한: 하온이 진짜 사랑스럽다. 나도 갖고 싶어(남친 모닝콜 영상 갖고 싶다는 뜻인거아는뎋... 아 나 음란마귀가 끼었넿ㅎㅎㅎ)

궁: 아침에 이렇게 깨워줘요?

한: 진짜 해줄 거야?

궁: 형이 원하면?

한: 응

궁: 그럼 내일은 내가 형 깨워 줄게요

한: 좋아!

이극악무도한녀석들아...

이 정도면 팬기만임 ㅇㅇ

이래놓고 안사귀면 팬기만이라고오옥

한궁 봄은 온다

오늘 떱라 실시간으로 달린 내가 승리자다아아!

─ 미ㅣ미미미미미미친!!!

─ 하... 내 새끼들 연애 발표는 언제하려나 마음의준비...해야될듯 아무래도...

─ 우리 애들 대놓고 연애하기에는 아직 대한민국 깜냥이 작다

─ ㅇㄷ) 사회적편견이 우리애들 연애를 지켜준다구 ㅇㅅ<

─ 얘드라 우리 이거 우리끼리만 알자^^

─ ㅁㅈ...한궁은 찐이라 더 캐면안됌 1월 1일에 예스패치에 열애설 뜰라ㄷㄷ!

[궁른] 떱라에서 알페스 발언 하지말자

나도 궁른 ㅈㄴ진심인데 애들 보는데서는 진짜 제발 하지말자

생각좀 하고 살자

나 오늘 떱라 보다가 진짜

개깜놀함 미친거아니야?

궁른러들아 내새꾸 예쁘고 떡밥땜에 정신 못차리는 거 알겠는데ㅇㅇ

정신줄잡고 덕질하자

같소속사 ㅌ오스 애들 손만 스쳐도 카메라 눈치 보는건 아냐? 진짜 오죽하면 그러겠음ㅋㅋㅋㅋ

얘들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계속 떡밥 받아 먹고 싶으면

머리에 제발 뇌 좀 넣고 다녀라

우동사리말고

─ 첨부터 막줄까지 다받음ㅇㅇ자제좀 해

─ 나도 보고 기함함 - -

─ 와 나 실시간으로 안달려서 몰랐네ㅠ 알페스는 우리끼리 먹자고...

─ 물위로 끌어올린냔 누구야!

─ 솔직히 익명들 중에는 없다고 생각함. 여기는 성인인증 받고, 주소 노출도 안 되는데 여기까지 와서 ㅇㅍㅅ파는 익명들은 짹에서 대놓고 설치는거 그켬이라 여까지 들어온게 대부분일거라 ㅇㅇ

─ ㅇㄷ) 이거지 ㅇㅇ 여기서 화내봐야 소용없음

─ 엥 나도 구본진 ㅌㅇㅅ였는데 눈치? 원글 너무 간듯ㅋㅋㅋ 걔들은 비7ㅔ퍼에 진심임;;ppt 따일까봐 여기까지만 말한다 내가ㅋㅋㅋ

[궁른] 오늘 떱라 궁른 떡밥만 몇 개냐...

일단 애들 남친 버전 모닝콜 찍은거

전부 궁이 대상인거 맞지?ㅎㅎㅎ이거맏따

─ 마즘

─ ㄹㅇㅋㅋ

─ 특히 빽잌ㅋㅋㅋ 하, 하고 궁이라고 말하려던겈ㅋㅋㅋ (수정)

─ ㅇㄷ) 써방 안해써!! 빨리 써방해!!

─ 난이제모르겠다...들켜도 모르겠어...넷다 궁 너무사랑함

***

궁금했던 건 바로 찾아봐야지. 침대에 눕자마자 아까 채팅에서 본 ‘ㅇㅍㅅ’가 뭔지 궁금해서 곧장 서치해봤다. ‘ㅇㅍㅅ’가 뭔지 묻는 글이 몇 개 보였는데, 대부분 댓글이 삭제되어 있거나 몰라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중에 ‘알페스’의 서치 방지용 용어라고 알려준 사람이 있어서 또 검색해봤더니…….

……어, 음. 그러니까 아이돌 멤버들끼리 엮어서 커플 만드는 거구나. 전생에 멤버들 앉는 순서까지 지정해주며 스킨십 좀 하고, 포옹도 하라고 요구했던 소속사가 왜 그랬는지 좀 알 것 같았다.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찾아볼까 하다가 괜히 형들 의식하게 될까 봐 그만뒀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이 세계에도 결국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프로그램 광고 기사가 최근 연예 뉴스란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중이라 알았다.

그런데 방식이 조금 달랐다. 심사위원이 세 명 있고, 시청자 투표를 받는 것까지는 똑같은데 그 외에도 심사단이 따로 발족 된다고 했다. 방청객처럼 가서 버튼 누르는 그런 건가?

심사단으로는 스칼렛, 엑시엘, 문라이트 등 유명한 가수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문라이트를 보는 순간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기사를 꺼버렸다.

우리는 여기 안 가겠지? 1~2군 아이돌이나 솔로 아티스트가 가는 것 같은데. 괜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시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써 버렸다.

***

월요일 음방이 끝난 후 우리는 언제나처럼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춤 스탯을 올린 덕에 아주 훨훨 날아다니다가, 형의 칭찬과 이서호의 부러움을 사며 잠깐 기분 좋게 쉬고 있던 그 타이밍이었다.

매니저 형이 험악하게 얼굴을 굳힌 채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라면 “얘들아~”하고 푸근하게 웃으며 인사부터 했을 텐데, 걷는 걸음마다 분노와 짜증이 배여 있어서 다들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멈춰선 채 매니저 형을 보고만 있었다.

“아흐으!”

매니저 형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다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절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게 아니리란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들 누구 한 명 먼저 입 여는 사람 없이 조용히 매니저 형을 응시할 뿐이었다.

“하아……. 얘들아…….”

“네, 넵!”

“네, 형.”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으……. 진짜 미안하다…….”

매니저 형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또 한 번 길게 한숨 쉬었다.

“……오디아이라고 혹시 들어봤어?”

“아, 네. ‘Our Dream Idol’ 말씀하시는 거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요.”

유찬 형이 얼른 대답하며 아는 체했다. 친한 연습생 동기 친구가 나가게 돼서 알고 있다는 사족을 붙였는데……. 아무래도 우리도 심사단으로 캐스팅된 모양이었다.

“어, 맞아. 참가자 모집 끝나고 일주일 뒤에 첫 촬영인데 너희 거기 심사단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요? 괜찮을 것 같은데.”

유찬 형은 친구를 응원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곧장 반색했지만, 매니저 형은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정이한이 내 어깨를 감싸고 잔뜩 경계하면서 물었다.

“문라이트도 심사단으로 참가해. 그래서 우리한테도 제안 들어왔던 거 거절했었는데…….”

매니저 형이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으면서 말을 이었다.

“압박이 들어왔어. 실장님 선에서 해결 안 돼서 대표님까지 나섰는데, 아무래도 엔넷에서 꽤 밀고 있는 프로그램 같아.”

매니저 형은 또 한 번 푸휴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방송국과 기획사 사이의 갑은 방송국이다. 케이블이라 하더라도 덩치로만 보면 방송 삼사에 뒤지지 않을 정도라 사이가 틀어지면 곤란할 터였다.

테오스야 인기가 있으니 케이블 하나 안 나가도 괜찮다 쳐도, 우리뿐 아니라 솔로 아티스트까지 전부 불이익을 당할 테니 회사 입장에서는 디아스만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건 어떻게 보면 내 개인적인 문제기도 했고.

“……문라이트요?”

내 어깨를 쥔 정이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야, 진하온. 너 무조건 우리한테 딱 붙어 다녀야 한다. 알았지?”

이서호가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사납게 말했다.

“응. 그럴게.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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