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혀, 혀, 형까지 그러면 어떡해요…….”
“너 때문이잖아.”
강현 형은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자꾸 시선을 회피하기 바빴다. 나도 형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라 할 말 없긴 했지만…….
“등 돌리고 있을 테니까 벗고 엎드려. 다 되면 말해라.”
그래도 강현 형이 먼저 특유의 무덤덤한 투로 상황을 수습했다. 완전히 뒤돌아서 있는 형을 보고서도 민망해서 손만 꼼지락대다가 다됐냐고 묻는 말에 “아니요!”하고 다급히 대답했다.
“형, 그냥 저 나가면…….”
“안 돼.”
단호히 으름장을 놓는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셔츠를 벗고, 바지까지 벗은 뒤 옷을 어디에다 둬야 하나 고민하다가 침대 밑에 내려놓았다.
이제 엎드리면 되나? 너무 적나라하지 않아? 나 혼자 벗고 있어서 그런가? 차라리 형도 벗으라고 할, 아니야. 이건 아닌 것 같아. 강현 형한테 헛소리하기 전에 정신 차려라, 진하온.
“됐어?”
“다 되긴 했는데, 저 진짜 좀…….”
“하아, 좀. 부끄러워하지 말라니까.”
강현 형이 제 머리를 헝클인 뒤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 바람에 엎드려있다가 형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훤히 드러낸 등이 한여름 뙤약볕에 익어버린 것처럼 회끈거렸다. 괜히 베개만 끌어안고 얼굴을 푹 파묻어버렸다. 그때였다.
똑똑.
“얘들아, 나 들어가도 돼?”
노크하며 그렇게 물어오는 정이한의 목소리에 나는 말 그대로 식겁해서 소리쳤다.
“안 돼요!”
한 명도 부끄러운데 두 명은 더 부끄러워!
……아니지, 차라리 셋이 있는 게 덜 부끄러우려나? 어느 쪽이 나을지 잠깐 상상해 봤는데, 아니다.
강현 형 혼자인 게 차라리 낫다. 형들은 번듯하게 입고 있는데 나 혼자 홀라당 벗고 엎드려있는 건 너무 이상하다고!
“으, 으응…….”
시무룩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미안하다, 정이한. 하지만 지금은 좀 그래……. 이따 방에 가서 기분 풀어줘야지, 생각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애꿎은 베개에 대고 얼굴을 마구 비비적대고 있는데, 갑자기 엉덩이 위에 뭔가가 푹 덮이는 느낌이 들었다. 살그머니 고개를 돌려보니 강현 형이 엉덩이를 수건으로 덮어준 거였다. 이 작디작은 수건이 뭐라고, 지금은 커다란 담요라도 덮은 듯 듬직했다.
“이제 좀 괜찮아?”
“네, 네! 훨씬 낫네요.”
그와 동시에 강현 형이 내게서 베개를 빼앗아 가면서 팔을 가지런히 놓으라고 요구했다. 차렷 자세를 취한 채 고개만 한쪽으로 살짝 틀어서 누웠더니 “어, 그대로 있어.” 하는 말이 돌아왔다.
“고개도 똑바로 하는 게 좋긴 한데, 일단 아쉬운 대로. 오일부터 바를게. 조금 차가워.”
척추를 타고 주르륵, 차갑고 미끄덩한 오일이 흘러내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예고해 줬는데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일과는 달리 따뜻한 체온을 가진 형의 손바닥이 맨 먼저 등허리에 닿았다.
형은 등 전체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지르면서 오일을 펴 발랐다. 등을 문지를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옆구리 쪽으로 내려오니까 슬슬 간지러워서 자꾸 몸이 움찔거렸다.
“간지러워?”
“……읏, 네, 조금.”
“참아.”
“네…….”
참으라면 참아야지. 하지만 간지러운 건 본능이라 몸이 자꾸 움찔대며 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기분 좋아서 의외였다.
하지만, 기분 좋은 건 잠깐뿐이었다. 강현 형은 정말…… 마사지에 진심인 남자였다. 엄지와 검지를 세워 척추를 따라 꾹꾹 누르면서 올라오는데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 왜 이렇게 딱딱해.”
“윽, 아, 형, 흐윽, 아파요……!”
“엄청 경직돼있네.”
급소만 찾아서 누르는 건지, 꾹꾹 눌리는 곳마다 아프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무리하고 있었어?”
“아윽? 흣, 으……. 아니요, 그건, 아닌, 데. 억, 형! 잠깐!”
팔꿈치에 힘을 실어 어깨를 꽉꽉 눌러 오는 동작에 너무 아파서 펄떡 뛰었다. 다급하게 상체를 비틀어 팔을 반대로 뒤집곤 허우적거렸다.
“아으, 혀엉, 너무 아파요. 살살…….”
“후……. 아파도 참아. 뭉친 거 풀어야 해.”
형은 내 어깨를 잡고 찍어 누르다시피 해 날 다시 정자세로 엎드리게 했다. 공포의 팔꿈치 어택이 다시 시작될 것만 같아서 눈을 꾹 감았는데, 다행히 이번엔 팔꿈치 대신 단단한 손바닥 위쪽을 써서 어깨를 눌러왔다.
“아.”
“이 정도는 괜찮아?”
“네. 으……. 좋아요.”
나는 빠르게 남은 체력을 스캔했다. 당연히 체력이 쭉쭉 빠졌을 줄 알았는데, 빠지기는커녕 차고 있었다. 형들이 해주는 건 아파도 다 괜찮은가 봐…….
강현 형이 척추를 기준으로 양쪽을 꾹꾹 누르면서 골반 쪽으로 내려갔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왔을 즈음 잠시 손이 떨어졌는데, 갑자기 수건이 아래로 쑤욱 내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바짝 쳐들며 긴장했다.
“팬티 조금 내릴게.”
“어? 네, 네에.”
어딜 마사지하려고……. 부끄러운 곳을 드러내 놓고 있으려니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갔다. 형은 끌어내린 수건을 내 속옷 밴드 안쪽으로 꾹꾹 끼워 넣은 뒤 이번에는 엉덩이 위쪽을 지압했다. 그 어떤 부위보다 민망함이 커서 자꾸 등허리가 움찔거렸다. 더는 못 참겠다, 싶어진 순간 형이 수건으로 오일을 닦아주더니 속옷을 올려줘서 한시름 놓았다.
“이제 다리 할게.”
“형, 힘들지 않아요?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아요.”
“해줄 때 얌전히 받아.”
“……넵.”
차가운 오일이 이번에는 허벅지 양쪽에 뿌려졌다. 손바닥을 넓게 펼쳐서 아래에서 위로 살갗을 밀어 올리듯이 허벅지를 쓸어주는데, 등이랑 달리 엄청 시원해서 기분 좋아졌다.
“아…….”
“시원해?”
“네…….”
“그것 봐.”
“미안해서 그러죠. 형도 피곤할 텐데…….”
“난 체력 좋아.”
강현 형은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전체적으로 꼼꼼하게 마사지해줬다. 형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물 위를 떠다니는 듯 잔잔하게 흔들거렸는데, 그 느낌이 어쩐지 기분 좋아서 눈을 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팔에 닿아 왔을 때야 눈이 번쩍 떠졌다.
“어? 혀, 형, 저 잠들었어요?”
강현 형이 따뜻하게 데운 수건을 들고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다리는 물론이고, 어느새 팔까지 다 끝낸 모양이었다. 당황한 나는 오일을 발라 미끈거리는 팔을 닦아내고 있던 형을 밀치듯이 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형도 수건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너무 곤히 자길래 안 깨우려고 했는데. 깨워버렸네.”
“헐, 와. 진짜 죄송해요. 잠들다니, 내가 미쳤지.”
하루 종일 예능 촬영하고 와서 피곤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내 생각해서 마사지까지 해준 형이었다. 그런 형 앞에서 대놓고 잠들어버리다니. 정말 미쳤다. 정신 나갔네 진하온. 형한테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한 채 무릎 꿇고 앉아서 꾸벅꾸벅 사과했다.
“그만큼 피곤했다는 거야. 일어난 김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자.”
강현 형이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줬다. 시, 심장에 해롭다……. 이렇게 다정할 일인가.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알 수 없는 부끄러움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손바닥으로 내 두 뺨을 철썩, 때리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 감사합니다. 형도 얼른 쉬세요!”
“이 정도로 뭘. 오일 묻힌 김에 나도 좀 풀고 잘 거니까 부담 갖지 마.”
형은 손바닥으로 종아리를 받친 뒤 그 위에 오일을 흘려보냈다.
“제가 해드릴까요?”
“할 줄 알아?”
“가르쳐주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아. 씻고 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그래도 저만 받고, 가는 게 미안해서요.”
다리를 문지르던 강현 형이 상체를 꼿꼿하게 세워서 날 봤다. 가을 하늘을 닮은 청명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너한테 해주는 건 안 힘들어.”
“……아.”
뭐라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데,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정도 크기의 애정을 받아 보는 게 처음이라서, 이렇게 귀하게 여겨진 게 처음이라서 아직도 멤버들이 주는 애정이 익숙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최고의 보답은 내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어나주는 거야. 푹 자라.”
“아, 네,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형.”
“난 너한테 특별한 사람이잖아.”
낯부끄러운 말과 다르게 얼굴은 장난스레 웃고 있길래, 나도 얼른 “맞아요, 특별한 사람이에요!”하고 대꾸했다. 강현 형이 기분 좋게 웃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그럼 저 거실에서 씻을게요!”
손 인사와 함께 방을 나가려는 순간, 강현 형이 나를 붙잡았다.
“하온아.”
“네?”
“옷 입고 나가라.”
“헉, 악!”
미쳤다! 미쳤어! 완전히 잊고 있었어! 내가 진짜 미쳤지! 나는 허둥지둥 침대 발치에 벗어 둔 옷을 잽싸게 껴입고 도망치듯 방을 나가버렸다. 등 뒤에서 강현 형의 시원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흑흑. 그렇게 크게 웃을 필요는 없잖아요.
닫힌 방문에 기대서서 고개를 푹 떨군 채 내 멍청함을 자조하던 때였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정이한과 유찬 형이 “끝났어?”하고 물어왔다.
“……네.”
“하온이 처음이라 그런가……. 신음 엄청 들리던데 많이 아팠어?”
정이한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어깨 눌러줄 때 아팠는데, 그 뒤부터는 너무 기분 좋아서 깜빡 잠들었어요…….”
“것 봐. 시원하지?”
이리저리 스트레칭 하면서 몸을 점검해 보다가 체감될 정도로 가벼워진 걸 확인하고는 조금 놀랐다. 오오. 진짜다. 강현 형의 말대로 피로가 꽤 누적되어 있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요 며칠 스케줄이 꽤 하드하긴 했지.
“나도 이제 자야겠다. 강현이 씻으러 갔어?”
“다리 풀고 씻는대요.”
“응, 알았어. 우리 막내 잘자~ 이한이도 잘자!”
“서호 형은 자요?”
정이한에게 묻자 제일 먼저 씻고 방에 들어간 뒤 함흥차사란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욕실로 들어갔다.
따듯한 물로 뽀득뽀득 샤워하니 여기가 천국이었다. 평소보다 더 개운한 게 마사지 효과인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만능일 리는 없는데 신기하네. 처음 받아 본 거니 내가 뭘 알겠냐만.
가만히 얼굴에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기분 좋은 여운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문득, 아까 강현 형이 ‘특별한 사람’ 운운했던 게 떠올랐다.
어? 잠깐. 예전에 강현 형이랑 특별하니 어쩌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럼 나는 특별한 쪽?」
「그럼요. 당연하죠.」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체력 회복을 위해 강현 형한테 갔을 때 나눴던 대화였다. 엄청 진지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거의 장난인 것처럼 주고받았었다. 이서호도 특별하지만, 쟤한테는 아직 비밀이라고 한 말 때문에 둘이 한참 웃었을 정도로 정말 가벼운 분위기.
설마 그때 나눈 대화를 여태 기억하고 있었어?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라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던 건가? 정작 나는 까무룩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괜히 웃음이 나와서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푸흐흐, 소리 내 웃었다.
강현 형, 귀여운 구석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