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75화 (75/320)

75.

짜고, 비려…….

미역이 바다에서 온 해초라고 격하게 주장하는 듯한 맛이었다. 마치 바닷물을 그대로 퍼먹은 듯한 강렬함에 정신이 희미해졌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어떻게든 살려볼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어떻게?

장렬한 서브 미션 실패의 예감을 느끼면서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역국을 들여다봤다.

“으악! 탔다!”

멀리서 들려온 이서호의 외침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정신 가출시킬 게 아니라, 남은 시간 동안 뭐라도 해봐야 한다. 포기는 할 수 있는 걸 전부 해보고 안 될 때 하는 거잖아.

짠맛이 가시면 좀 먹을 만해질지도 몰라. 비린 맛은 도대체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냄비의 절반을 퍼낸 뒤 다시 그만큼 물을 부어 채웠다. 알알이 뭉친 마늘이 자꾸 돌아다니길래 국자로 꾹꾹 눌러서 뭉개줬다. 저게 알아서 풀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새로 퍼부은 물이 다 끓기도 전에 시간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 피디님이 무척 기뻐 보이는 얼굴로 우리를 불렀는데…….

왜 저한테 엄지를 세우십니까?

나만 실패한 거야? 그래? 태웠다던 이서호도 잘했어?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식사를 시작하시죠! 식사가 끝나는 대로 익명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멤버들이 열심히 상을 세팅하는 사이 바다를 담은 미역국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을 많이 넣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슬쩍 다시 도전해봤지만 여전히 비리고, 짰다.

물을 그렇게 많이 넣었는데 왜 아직도 짜? 이 냄비 소금으로 만든 거 아니야?

딱 두 번 간을 봤을 뿐인데, 입은 짜다 못해 쓰고 속은 뒤집힐 것 같았다.

이걸 멤버들한테 먹여야 한다고……?

탈 나면 어떡하지?

그냥 미션 실패하자. 그게 좋겠어. 내 양심이 차마 이런걸 멤버들한테 먹일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괜히 내 손에 요리되는 바람에, 제 몫도 못 하고 허망하게 하수구로 직행하게 된 재료들이 아까웠다.

“형들…….”

“하온아, 네가 만든 국만 가져오면 돼.”

와중에 유찬 형은 내 마음도 모르고 해사하게 웃었다. 고개를 잘게 저으면서 “못 먹는 거예요.”라고 솔직하게 터놓은 순간…….

“하온이 첫 요리 아니야?”

옆에 서서 국자로 냄비 안을 휘적거리던 정이한이 용감하게 미역국을 한 국자 퍼서 국그릇에 담았다.

“안 돼요! 그거 먹으면 탈 나요!”

“탈 안나. 하온이가 만든 건데 먹어야지.”

“야~ 어떻길래 그러냐?”

필사적으로 정이한을 말리는 사이, 국을 한 입 떠먹어 본 이서호가 곧장 싱크대로 달려가 허리를 숙인 채 퉤퉤 거렸다. 그래, 그게 정상이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셔 입을 헹군 뒤 기함하여 외쳤다.

“으억, 이게 뭐야!”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이서호, 진짜 밉상이네.

“고등어는 잘 굽고 말하는 거야?”

“완벽하지!”

이서호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내 팔을 질질 잡아끌었다. 테이블 위에는 새까맣게 탄 고등어였던 것이 있었다. 어딜 봐서 완벽한데?

“……완벽의 사전적 의미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야야, 겉만 탄 거야. 겉만! 속은 맛있을걸!”

이서호는 거만하게 팔짱을 껴 보이곤 이겼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고등어들의 형체가 온전한 걸 보니 이서호도 맛을 보진 않은 모양이었다.

“자, 얘들아! 국 왔다!”

“아, 혀엉…….”

설상가상 유찬 형과 정이한이 접시에 내 국을 퍼서 가져왔다. 아무리 요리 재료를 낭비한 게 맘에 걸렸어도 저걸 버렸어야 했는데!

그래도 한 번 먹으면 알아서 뱉겠지. 미련하게 다 먹진 않을 거 아냐. 어차피 투표도 하긴 해야 하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일자형 테이블 정면에는 스태프분들이 앉아 있고, 카메라가 우릴 찍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를 마주 본 채 일렬로 주르륵 앉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굴던 멤버들의 모습이 이제는 꽤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정신없이 진행한 미션 때문에 다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나도 카메라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가 돼서 그래도 우리 훈련이 헛된 건 아니구나 싶었다. 아이돌로서의 역량이 레벨업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을 숨기고 테이블 위에 주르륵 늘어선 요리들을 살폈다.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건 강현 형과 정이한이 만든 닭볶음탕과 탕수육이었다. 유찬 형의 계란찜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고.

“내 거 먼저 먹어봐!”

이서호가 고등어구이를 멤버들 쪽으로 밀며 빠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기대감 어린 시선에 일단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새까맣게 탄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탄력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젓가락을 한 짝씩 들고 찢어보니 횟감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날 것 그대로인 살점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꼬리 치며 튀어 오를 것 같은 싱싱함이었다.

“어라? 이상하다? 여기 왜 이러지?”

밉상이라던 거 취소다. 망한 사람이 두 명이라 든든했다.

“진짜 이상하네? 이렇게 구웠는데 안 익을 수가 있나?”

“얼마나 구웠는데?”

“겉이 까맣게 탔길래 보자마자……. 뺐지?”

이서호를 놀리려던 나는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깨닫고 재빠르게 선회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을 것 같거든…….

“그런데 왜 안 익었을까?”

“그러게?”

“서호야, 불 조절은 어떻게 했어?”

“화력 짱짱하게 했지!”

“원래 생선은 약불에 천천히 구워야 해. 아니면 겉만 타고 속은 안 익어.”

정이한이 뭘 잘못했는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이서호는 장렬하게 실패한 고등어구이를 보면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럴 수가…….”

이렇게까지 시무룩해 하는 거 보니까 또 애처롭네. 나는 이서호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고등어는 회로도 먹으니까.”

“……놀리는 거지? 그래도 네가 끓인 국보단 낫거든!”

여기서 이렇게 나를 물고 늘어지시겠다? 기껏 위로해줬더니 놀린다고 하질 않나. 잘해줘도 소용없어.

“하, 하온이 것도 맛있어.”

정이한이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내 국을 떠먹으면서 애써 웃었다. 하지만 경련하는 입꼬리와 눈꼬리가 내게 진실을 알려줬다. 언제 뱉을까 싶어서 정이한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더니 허둥지둥 말을 덧붙였다.

“밥이랑 먹으면 괜찮아! 지, 진짜야. 하온아.”

정이한이 한 번 더 떠먹으면서 애써 웃었다. 내 예상이 빗나갔다. 내버려 뒀다간 최선을 다해 미역국을 먹을 기세였다. 저러다가 진짜 배탈 난다.

“아니에요, 형. 먹으면 탈 나요. 먹지 마요.”

뺏으려고 했는데 정이한이 팔로 국그릇을 감싸면서 사수했다. 심지어 내게 뺏길까 불안했는지 국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원샷을 때려버렸다.

놀란 내가 벌떡 일어나서 정이한을 말렸지만, 이미 미역과 소고기 건더기만 몇 점 남았을 뿐 전부 먹어 버린 뒤였다.

“켁, 켁. 쿨럭, 쿨럭.”

“악! 형! 그걸 다 먹으면 어떡해요!”

재빠르게 물병을 집어 들어서 뚜껑을 따 건네줬다. 의리로 먹어주긴 했지만 본인도 괴로운지 물병을 건네받자마자 벌컥벌컥 들이붓는다. 500밀리 생수병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괜찮아요? 안 뜨거워요? 입 다 덴 거 아니야?”

“……조금 식어서 괜찮아. 그리고 마, 맛있었어!”

“……형, 마음만 받을게요. 고마워요.”

“도대체 어떻길래…….”

유찬 형이 미역국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입술을 말아 물고는 떨리는 손으로 미역국을 한 숟가락 뜬다.

“나도 먹어볼게.”

“안 드셔도 돼요.”

이번엔 유찬 형을 말려야 하나…….

“아니야, 투표하려면 맛은 봐야지.”

유찬 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후우, 하고 심호흡한 뒤 눈을 꽉 감은 채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독이 든 게 확실한 음식을 삼켜야 하는 기미 상궁 같은 처절함이 느껴졌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갑자기 요리에 회의감이 든다.

“자, 잘 먹었어……. 강현아, 너도 먹어.”

지목당한 강현 형이 유찬 형을 슬쩍 쳐다봤다. 유찬 형은 얼빠진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 버렸다.

“…….”

강현 형은 젓가락으로 아주 짧고 가느다란 미역 하나만 건져낸 뒤 혀끝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미역을 삼키더니, 곧장 입가심하듯 탕수육을 집어 먹었다.

“……맛있네.”

네에, 탕수육은 맛있겠죠. 이 사람들이 진짜. 너무 내 요리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이서호가 구운 싱싱한 고등어 좀 보라고!

“하온아, 이거 먹어봐.”

정이한이 접시에 탕수육을 가득 담아 건네줬다. 소스를 듬뿍 적셔서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서, 잠깐이지만 뾰로통해졌던 마음이 금세 사르륵 녹아 없어졌다.

“맛있어요!”

“다행이다. 앞으로 요리는 내가 할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시스템: 서브 미션 실패!>

<시스템: 재료 본연의 맛만 살린 소고기미역국을 만들었습니다.>

<시스템: 멤버들의 신뢰가 하락합니다.>

잠깐, 지금 이 타이밍에 서브 미션 실패가 떴다는 소리는…….

모든 멤버들이 내가 만든 미역국을 ‘인간이 먹을 게 못 된다.’라고 평가했다는 뜻인가. 요리 하나 못 했다고 신뢰를 잃어버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이번 서브 미션 너무 가혹하다.

“……아니에요. 저 다음에도 도전해 볼래요.”

“우, 우리 막내는 맛있게 먹기만 하자!”

“하온이는 힘들게 요리 안 해도 돼. ”

“참아.”

“으악! 진하온 또 요리하려고?”

“…….”

아, 혹시 잃어버린 신뢰가 이거였어? 내 요리 실력에 대한 신뢰? 아주 자알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다들 이래?

두고 보자. 꼭 공부해서 맛있다는 소리 나오게 해줄 테니까. 잃어버린 신뢰는 회복하면 그만이다.

“유찬 형 계란찜도 먹어봐야지!”

이서호가 계란찜을 입에 물더니 모든 안면 근육을 총동원해 얼굴을 찌푸렸다. 유찬 형 계란찜도 장렬하게 망한 모양이네. 좋아, 이걸로 세 명이나 미션을 망친 셈이니 좀 묻어갈 수 있겠지.

“으, 으읍, 으으윽?”

뱉고 싶은 모양인데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까 좀 참아 봐, 그런 의미를 담아 이서호에게도 친절하게 생수병을 따서 건네줬다. 물의 도움을 받아 꿀꺽 삼켜보렴.

“유찬 형, 계란찜 퍽퍽한데 비려…….”

“어? 그래?”

유찬 형이 자신이 만든 계란찜을 먹어보더니 이서호와 똑같은 반응을 했다. 안 먹어봐도 알 것 같았지만, 투표하려면 맛은 봐야 하니까 나도 조금 먹었다가 곧바로 생수병을 찾았다.

식감은 스펀지 같고, 달걀 비린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내 미역국이 더 비려…….

그나마 닭볶음탕은 두말할 것 없이 맛있어서 강현 형과 정이한은 성공, 나머지는 모두 실패였다. 1등은 저 둘 중 한 명이겠네.

결국 닭볶음탕과 탕수육만 동났고, 당연히 그걸로는 우리의 배를 채우기 역부족이었다. 다들 입맛만 다시고 있던 그때, 영웅이 나타났다.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정이한과 강현 형이 나서서 계란찜에 다른 조미료와 야채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요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서호의 고등어는 탄 부분을 벗겨내고 맛깔나게 구워줬으며, 내 회생 불가 소고기미역국은…….

미역을 건져내서 빨 듯이 씻어낸 뒤 다시 끓였다. 그래도 요리 재료 낭비는 덜 됐으니까 그걸로 위안 삼아야지…….

새로 끓인 미역국의 미역은 보들보들해서 입에 넣자마자 사르륵 녹을 정도로 맛있었다. 맛있는데 왜 슬픈 거지.

왠지 모를 쓸쓸함을 끝으로 식사가 끝났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투표를 끝냈는데, 나는 내 미역국을 기꺼이 먹어준 정이한한테 투표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탕수육이 내 입맛에 딱 맞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표를 까보니 황당하게도 내가 정이한과 공동 1위였다.

[진하온 2표]

[정이한 2표]

[백강현 1표]

[박유찬 0표]

[이서호 0표]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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