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70화 (70/320)

70.

일단 이번에는 맨몸으로 헤딩해 보자. 그래야 앞으로 포인트를 어떻게 배분할지 각이 좀 나올 것 같았다. 내 욕심으로는 노래를 S-로 올리고 싶었지만, 원활한 연예계 활동도 중요하니까. 그래도 포인트를 넉넉하게 모아둔 덕에 선택지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식은…….”

매니저 형이 벤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더니 우리를 보고 한껏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눈가에 주름이 맺힐 정도로 크게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오늘 너희 데뷔 영상 클립 SVSKPOP 채널에 올라갈 거야.”

우리 모두 일시 정지라도 된 것처럼 제자리에 멈췄다. 너무 좋은 소식이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터라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세게 뛰었다.

이거 몰래카메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유찬 형과 눈이 딱 마주쳤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찬 형은 얼떨떨한 얼굴로 매니저 형에게 물었다.

“……몰카죠?”

“아니! 정 피디님이 되게 적극적이시더라고. 그 이후에 나한테 올라갈 영상이라고 보내주셨는데…….”

매니저 형은 유독 나를 보면서 입꼬리를 당겼다. 의미심장한 표정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진짜 좋더라고. 특히 엔딩 요정. 실장님께 바로 보냈고, 그 자리에서 컨펌하셨어. 이런 건 빨리 올려야 한다면서.”

“……그, 그러면 저희 때문에 테오스 선배님들 컴백 방송사가 벌써 정해진 거예요?”

매니저 형이 우리를 벤 안에 밀어 넣으면서 대답했다. 우르르 벤에 올라타면서도 형이 하는 말을 놓칠세라 귀 기울이고 있었다. 벤에 올라탄 우리가 안전벨트를 맨 걸 확인한 매니저 형은 차를 출발시키며 대답했다.

“테오스는 이미 1군이잖아. 어느 방송사에서 컴백 하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거거든. 그리고 지금 테오스 컴백 날짜는커녕 앨범 컨셉도 안 잡혔고. 방송사 픽스 한다고 문제 될 게 없어.”

아. 그럼 <음악 열차> 방송에 맞춰서 컴백 날짜를 정한다는 소리인데……. 그래도 되는 걸까? 괜히 선배 그룹에 밉보이면 곤란해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기대하시라~ 오늘 오후 8시에 바로 영상 올리기로 했어! 이런 건 빠를수록 좋거든~”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빨라진 일출 때문에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짙게 썬팅 된 창을 뚫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멤버들의 정신을 일깨운 듯 동시에 말이 쏟아졌다.

시끄럽게 방방 뛰는 이서호와 신나서 응수해주는 유찬 형, 좋아하는 우리를 보면서 연신 흐뭇해하는 매니저 형까지. 나도 흥분감을 감추지 못해 입꼬리가 자꾸만 움찔움찔 위로 솟구쳤다.

***

오늘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우리는 연습실로 복귀해 연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후 8시에 가까워지자 다들 집중력이 흐트러지더니, 연습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대기 시작했다. 그런 멤버들에게 뭐라 할 수 없었던 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시 정각까지 5분 정도 남았을 무렵, 우리는 결국 암묵적인 합의를 거쳐 연습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패드에 SVSKPOP 채널을 틀어놓고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침으로 적시고 있을 때였다. 8시 정각을 알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유찬 형이 재빠르게 새로고침을 눌렀다.

“아직인가?”

새로고침을 연타하던 중 갑자기 썸네일에 내 얼굴이 보였다.

“올라왔다!”

“와! 진하온!”

저게 나야?

썸네일 속의 내 얼굴 뒤로 반짝거리는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화려해 보였다. 부끄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어서 빠르게 썸네일을 클릭해 버렸다.

“왜~ 좀 더 보고 싶은데.”

유찬 형이 뒤로가기 하려는 걸 내가 필사적으로 막았다.

“아, 혀엉…….”

“우리 하온이 또 부끄러워하네.”

입꼬리가 샐쭉하게 말려 올라간 유찬 형은 아주 즐거워 보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도 막상 전주 구간 퍼포먼스가 시작되자 진중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모두 조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내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됐다.

“오! 엔딩 요정 진하온!”

“우리 막내 미모 열일하네.”

생각보다 내 얼굴 클로즈업 시간이 길었다. 숨이 차 헐떡이는 게 적나라하게 보여서 민망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첫 방송 무대를 영상으로 보니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불리던, 가슴이 벅차오르던 순간.

내 자리, 내 사람들, 사랑하는 우리 팬분들과 멤버들. 모두 하나 되어 호흡했던 그 황홀했던 시간이 너무나 선명했다. 그때 느낀 전율이 다시 찾아와 저절로 몸이 떨렸다.

영상이 끝난 직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오는 정이한에게 시선을 줬더니 특유의 맑은 미소가 돌아왔다.

“하온이 보고 있으니까 나도 행복해지는 것 같다.”

“어, 맞아! 좀 그런 느낌이 있어. 저건 진하온 재능인 듯.”

“그럼 그럼. 팬분들도 그러시잖아, 우리 막내 미소는 국보라고.”

그, 그만! 이런 칭찬은 왜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질 않는 거야! 매번 부끄러워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나중에는 이런 것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될까?

“다들 잘했는데, 아직 고칠 점들이 눈에 띄네.”

그때, 조용히 읊조리는 강현 형의 말에 정이한이 움찔거렸다. 삐그덕 소리가 날 것처럼 어색하게 고개 돌려 강현 형을 본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지……?”

“형 노력한 거 알아.”

강현 형이 무심하게 말했다. 정이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시무룩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런데 좀 더 해보자.”

“……응.”

이번에는 내가 정이한의 등을 토닥거려주자 날 보면서 방긋거렸다. 정이한은 다른 건 몰라도 춤 때문에 구박받을 땐 멘탈 안 흔들린다. 본인도 못 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진짜 많이 좋아졌어. 기특해. 장해.

“서호야, 너도.”

강현 형은 영상을 뒤로 돌리고서는 재생 속도를 느리게 맞췄다. 느린 배속으로 보는 영상 속의 우리는 안무를 추는 게 아니라 허우적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서호의 박자가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게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연습할 때도 이런 식으로 체크했는데, 다들 될 때까지 해서 강현 형의 기준을 통과했었다. 라이브에서 조금 밀렸나 보네. 진짜 매의 눈이다. 이걸 어떻게 알아차렸지?

“조금 느리지?”

“으, 으응. 그러네에.”

이서호가 입술을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강현 형의 팔을 턱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형! 우리 댓글 보면 안 돼? 분석은 항상 하는 거잖아아~”

“아, 그래.”

재빠르게 댓글을 살피려던 이서호의 행동이 이번에는 유찬 형한테 막혔다. 형은 패드에 띄워 놓은 우리 무대 영상을 보며 신중하게 말했다.

“혹시 악플이라도 있으면? 상처 안 받을 자신 있어? 댓글은 안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보고 싶은데……. 으으음.”

이서호의 검지가 아래에서 위로 까딱거렸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패드 액정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필사적으로 참는 이서호의 손을 유찬 형이 슥 내리누르면서 말했다.

“매니저 형한테 댓글 선별해서 보여달라고 하자. 굳이 안 좋은 거 볼 필요 없잖아. 좋은 것만 보자. 상처받는 건 우리야.”

맞는 말이지. 특히 유찬 형이랑 정이한을 위해서라도 혹시 달려 있을지 모를 영양가 없는 악플은 묻어두는 게 나았다.

그런데 왜 날 힐끔거리는데? 심지어 이서호도 나를 한 번 보고는 “그러는 게 좋겠다.”라면서 동의했다.

저 두부 멘탈들이 날 어떻게 보고……. 여기서 난 아무렇지 않다고 대꾸하면 내 꼴만 우스워지니까 그냥 입 다물었다.

“그래도 이렇게 큰 채널에 우리 영상 올라간 거 보니까 신기하다.”

정이한이 몽롱한 어조로 말했다. 벅차오른다는 듯, 패드를 보는 정이한의 손은 내내 가슴 한쪽을 꾹 누르고 있었다. 상체가 점점 앞으로 기울어져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어. 완벽해지고 싶어.”

“연습할까?”

강현 형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래, 연습은 못 참지!

나도 형을 따라서 벌떡 일어났다. 패드를 정리하고 온 유찬 형까지 대열을 맞춰 섰다. 우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

어느새 데뷔한 지 며칠이 지났다. 우리 스케줄의 대부분은 음방이었고, 보이는 라디오에 한 번 출연한 게 전부였다. 음방 일정이 빡빡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진 체력 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었다.

오늘 스케줄은 전부 밤에 몰려 있어서 한참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실장님이 우리를 소집하셨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서 가슴이 요동쳤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 실장님!

“얘들아~ 어서 와!”

실장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멤버들 한 명, 한 명 안아 주시면서 등을 토닥여 주셨는데, 나는 이런 식으로 안기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실장님이 지나간 후에야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다들 정말 수고했고, 장하다! 우리 애들!”

“그래도 저희 음원 차트에는 못 올랐어요…….”

이서호가 아랫입술을 쭉 내밀면서 칭얼거렸다.

“당연한 소릴 하네. 너희 이제 시작이야. 훨훨 날개 펼 일만 남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실장님은 모두 자리에 앉고 난 후에야 우리를 소집한 이유를 알려주셨다.

“너희 예능 픽스 된 거 들었지?”

“네. 들었어요.”

유찬 형이 대표로 대답했다.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여주시곤 말을 이었다.

“촬영 날짜는 2주 뒤로 잡혔고, 방송은 5월 첫 주야. 지난주에 올라간 SVS 너튜브 반응이 되게 좋아. 너희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팬카페 회원 수도 순조롭게 증가하는 추세야. 미리 이야기한 대로 내일부터 자컨 촬영 시작될 거고.”

우리의 첫 자체 콘텐츠는 리얼리티였다. 원래 더 있다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서둘러 준비하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 멤버들은 다섯 명 중 네 명이 조용했기 때문에, 정말 리얼리티로 촬영에 임했다간 막말로 ‘노잼 망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데.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는 허리를 쭉 편 채 목을 똑바로 세웠다. 전부 해낼 거야. 잘할 수 있어!

“숙소랑 벤에 카메라 잔뜩 설치해 놨다고 의식하지 말고, 평소 너희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돼. 팬들은 너희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은 거니까.”

그래도, 정말 그것만 보여주면 지루할 것 같은데. 피디님 모시고 촬영한다니까, 완전 리얼리티는 아니고 뭔가 미션 같은 게 주어지려나? 거기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그러나 리얼리티 촬영 당일.

아침부터 펼쳐진 황당한 풍경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거실 한 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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