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내 불안한 시선을 눈치챈 강현 형은 입을 한 번 열었다가 다물었다. 마침내 나온 대답은 의외로 무난한 내용이라, 안도할 수 있었다.
“귀엽다기보다 예쁘죠.”
“맞아! 하온이 너무 예뻐!”
언제 만드신 건지, 한 팬분이 웃고 있는 내 사진이 들어간 슬로건을 흔들며 목청껏 외치셨다. 그쪽을 향해 감사합니다, 하고 웃어주자 행복한 비명이 돌아왔다. 우리 팬분들이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지!
이어진 질문들은 무난한 것들이었다. 우리 룸메이트가 어떻게 짝지어져 있는지, 서로에게 불만은 없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당연히 나와 유찬 형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우리 둘 다 조용히 자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저쪽 방은 달랐다.
“저는 불만 없어요!”
이서호는 해맑게 대답했고, 강현 형은 룸메에 불만은 없지만 2층 침대가 불편하다고 했다. 아침에 천장에 머리 박던 형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저는……. 서호가…….”
정이한이 이서호를 힐끔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이서호가 검지로 제 얼굴을 가리키면서 “나? 나 왜?”하고 물었다.
“잠꼬대할 때가 있는데…….”
“아! 맞아! 나 잠꼬대 있다고 그랬어!”
빠르게 수긍하자 정이한이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소리 지를 때 깨서 놀라요.”
“엌! 내가 소리 질렀어?”
“응. 피자! 하고 외치던데.”
“누가 내 꿈에서 피자 훔쳐 갔나!”
이서호의 마지막 말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훈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미니 팬미팅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도시락 차가 도착해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유찬 형이 메인 도시락을, 정이한은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숟가락, 강현 형은 음료수, 이서호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과일, 나는 쿠키를 맡았다.
우리는 팬 한 분, 한 분에게 다가가 각자 맡은 먹거리를 전달했다. 디아스 스티커가 붙은 도시락과 간식을 받고 너무 행복하게 웃는 팬분들의 얼굴을 보니,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
***
제목: 흔한 신인 아이돌의 사녹 애교 (댓글 87)
헉헉헉헣거겋겋겋겋겋거엏걱헉헉헉헉헉
(디아스_단체꽃받침.jpg)
(잘생긴애_옆에잘생긴애_옆에잘생긴애.gif)
순서대로 박유찬/이서호/진하온/정이한/백강현임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얘들 같이파자ㅠㅠㅠㅠㅠ
─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미친! 지구 뿌셔!!!!!!!
─ 헐 넘 굡다 ㅠㅠㅠ
─ 엄마, 전 오늘 다섯 명의 천사를 봤어요. 제가 성불하걸랑 지빠꾸리 폴더는 꼭 삭제해주새오...
┗ ㄱㅇㅈ
┗ ㅇㄷ) 뭐있는줄알고공유해달랰ㅋㅋㅋ
─ 와 애들 비주얼 씹탑이네;; 쟤네 ㄴㄱ?
┗ 디아스
┗ ㄱㅅ
여름에온 @D_summeron
어떤 목청큰 팬분이 ‘너네 신고할거야!’하니까 온이 동공지진ㅋㅋㅋㅋㅋㅋㅋㅋ
(와구와구_우리와기_놀라쏘요♡.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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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가오니 @my_oni
@D_summeron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저 뒤에 활짝 웃는거 ㄹㅇ 요정니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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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온 @D_summeron
엌! 맞아요!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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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릉 @blublue
@D_summeron 님에게 보내는 답글
초멘 죄송합니다! 저 친구 이름 여쭤봐도 될까요?
여름에온 @D_summeron
디아스의 진하온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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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릉 @blublue
@D_summeron 님에게 보내는 답글
감사합니다! 너무 귀엽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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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아스 하온이 애교&부끄부끄 (댓글 138)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서 진짜 진심 방송국 무너트릴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_하온이_뿌잉뿌잉애교_어색해서귀여웤ㅋㅋㅋ.swf)
(현타와서_부끄러워하는_우리요정.swf)
나 이날 깨달았짢아
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산화탄소를 존나게 생산하면서 살아온 건
하온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걸
하 내 삶의 이유ㅠㅠㅠㅠㅠㅠㅠㅠ
─ 야 부모님한테 사과햌ㅋㅋㅋㅋㅋㅋ
┗ ㄷㅊ...
─ 이것도 킬링포인트 아니냐
(이한이_어깨에_이마콩_누나죽어.gif)
┗ 맞아!!!!!!!!!
─ 하온이 ㄹㅇ 살인미수범임.. 심멎하는줄..
─ 이한이가 뿌잉뿌잉하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겈ㅋㅋ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웃음벨임ㅋㅋㅋ 표정도 개심각했음ㅋㅋㅋㅋ
┗ 하온이 수치사 시키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교하면 서호리버지!
(양뺨_콕_찌르는_내갱얼쥐.gif)
┗ 진짜ㅠㅠㅠㅠ 졸귀이뮤ㅠㅠㅠㅠ
┗ 몰랑몰랑귀...나도 찌르고싶다..
┗ ㅇㄷ) 안돼! 내가 막을거야! 서호지켜!
─ 그래서 서호랑 하온이 뽀뽀사건 언제 올라오나...
┗ 나 기다리느라 목빠져...
┗ 누가 나좀 기절시켰다가 올라오면 깨워줘라...
┗ ?? 이거 뭔데?? 나 주식잡아도 됨??????
┗ ㅇㄷ) 쉿... 음지로 돌아가!
[제목] 팬보다 먼저 역조공하는 아이돌이 있다? (댓글 548)
나 쇼케 때 백강현 얼굴 보고
제대로 덕통사고 당해서
이번에 사녹 보러 갔거든?
한 서른명? 정도 모였던거 같다.
근데 사녹 끝나고 가려니까
매형이 라방 끝나고
미니 팬미팅 한다는거임
배고파 뒤지겠는데
애들 얼굴은 보고 싶고...
그래서 편의점에서 대충 삼김 먹고 기다렸지
여기서 기다림ㅋ
(우리애들_언제오나_목빠지겠네.jpg)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회없는 기다림이어따!!!
미니 팬미팅 진짜 분위기도 오졌고
애들 친해보이고 좋더라ㅠㅠ
할말은 많은데...
진짜 ㅋㅋㅋㅋㅋㅋ
아니 얘네 완전 갑툭튀 신인이라
아직 조공도 안 받았을건데....
세상에 내가 조공을 먼저 받을줄이야..
(우리애들_줄줄이서서_나눠주는것좀_보고가라_ㅈㄴ귀여움_아기새들인줄ㅠ.jpg)
아 내가 움짤이라던지
그런거 찌는 재주가 없어서
사진만....올리는데
보이냐?
애들 먹을거 하나씩 쥐고
진짜 한명한명 다 나눠줌 눈 마주쳐주면서 ㅠㅠㅠㅠㅠ
개미쳤음ㄹㅇ...
(우리애들이준_모둠_도시락ㅋㅋㅋ_아까워서어케먹냐이걸.jpg)
마무리는 어케하지?
모르겠으니 우리 강현이 사진 투하!
(미소짓는_강현oppa^^_이건_귀하죠jpg)
(무표정한_얼굴도_걍_극락임;.jpg)
(백강현_착한줄_알았는데_조각상이_아이돌하네.jpg)
─ 나도 저기 있었는데!! 진짜ㅠㅠㅠㅠㅠ 기대이상이었다
┗ 부럽다....ㅠㅠ 나년은 집구석에서 쳐잤는데ㅠㅠ....
─ 저 도시락 나 그대로 집에 들고감ㅋㅋㅋ
┗ 2222... 진짜 먹기 아까워....
┗ 난 다 먹고 장식장에 넣어둠
┗ ㅇㄷ)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 ㅇㅇㄷ) 님 천재세요?
─ 그래봐야 신인시절 반짝임 쟤들도 한 오년쯤 지나면 아진짜요무새 될걸ㅋㅋㅋ
┗ 예언자 납셨넿ㅎㅎㅎ
┗ ㅁㄱ
─ 도시락 퀄이 좋네...? 고기 반찬이 있어!
┗ 고기반찬 있음 퀄 좋은거임?
┗ 당연한거아니냐?
─ ㅁㅊ 마지막 정면사진 뭐냐 개설레네;; ㅍㅇㅈ 줍줍 해간다
[제목] 디아스 벌써 서포트 모집하네 (댓글 19)
나 타팬덤인데 ㅇㅇ
디아스 서포트 모집글봄ㅋ
보덕님이 총대 하시는 바람에
내 탐라까지 들어왔다
ㅡ 어제 오늘 돌판에서 이름 좀 보이던데
┗ 애들 와꾸가 넘사라서 그런가?
┗ 그것도 있고 ㅇㅇ 보덕님 영향력이랑 주접이 넘 컸다
┗ 돌이 내 목숨 구해줬따? 당연히 충성하지 ㅇㅇ ㅈㄴ 아쉬운데 뭐라 말도 못하곘음
┗ 어 ㄹㅇ;;
ㅡ 조만간 디아스판도 생기는거 아냐?ㅋㅋㅋㅋ
┗ 그러기엔 미미하다ㅋㅋㅋㅋ
┗ 아 어케 뜰지 모르는게 아이돌 아니냐~
ㅡ 쟤네 뮤비 퀄도 좋더랑
┗ ㄷㅇㅅ ㅍ?
┗ ㄴㄴ 난 ㅌㅇㅅ 팜 ㄷㅇㅅ 찍먹중
***
미니 팬미팅까지 모두 마친 뒤 숙소로 돌아가는 벤 안, 다들 피곤해서 잘 줄 알았는데 흥분감이 남았는지 떠들썩했다.
내 옆에 앉은 이서호가 계속 들썩거리는 바람에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정이한이었으면 잤을 텐데. 그래서 메인 미션 진척도나 좀 확인해 볼까 해서 뮤직 어플을 켰다.
아직 안 보이네.
우리 타이틀곡은 아직 100위권 밖에 있었다. 그래도 조바심은 일지 않았다. 이제 막 활동 시작했는데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데뷔와 동시에 100위권 안으로 차트인 하는 건 이미 어느 정도 팬덤이 확보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디아스의 경우, 정식으로 대중들 앞에 나선 건 쇼케이스 이후부터였으니 이게 당연한 결과였다. 여돌은 노래가 좋으면 대중픽으로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돌은 여돌에 비해 허들이 더 높은 편이다.
우리를 좋아하는 팬분들이 더 늘어나면 실시간 100위권 차트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순위만 확인하고 끄려고 했는데 새로운 톡을 알리는 아이콘이 있어서 확인했다. 어차피 광고겠지.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나랑 같이 있으니까.
어?
그런데 의외의 인물한테 톡이 와 있었다.
[권세화 형: 안녕? 나 기억하려나?]
[권세화 형: 데뷔 쇼케이스 하는 거 라이브로 봤어. 데뷔 축하해(폭죽 이모티콘)]
심지어 어제 온 거다. 너무 늦게 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 헉. 죄송해요! 지금 봤어요...]
[나: 당연히 기억하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세화 형: 아냐 아냐. 바쁠 것 같아서 나도 보내놓고 잊어버렸어. (웃음 이모티콘)]
으, 뭐라고 대답하지. 휴대폰을 붙잡고 고민할 때였다.
“뭐 하냐?”
“……톡.”
내 휴대폰 액정을 힐끗 들여다 본 이서호는 곧바로 신경을 껐다. 그러더니 자신도 휴대폰을 꺼냈다. 바로 뮤직 어플을 켜는 걸 보니 쟤도 음원 차트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확인 안 해도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이서호가 알려줄 것 같기는 했다.
[권세화 형: 지금 바빠?]
오! 대답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물어봐 준다. 빠르게 휴대폰을 두들겼다.
[나: 아니요! 지금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권세화 형: 사실 부탁이 있는데...]
[나: 뭔데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뭐든지 할게요!]
[권세화 형: 내 노래 피처링 좀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세화 형 노래 피처링을?
이어진 형의 톡을 확인한 순간, 피곤에 절어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권세화 형: 나도 데뷔해. 겨울 바다 음원 내기로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