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65화 (65/320)

65.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나는, 다음 앨범 컴백 무대도 꼭 우리 SVS에서 하기. 그때는 시간도 넉넉하게 배정해 줄 테니까. 어때요?”

우리를 보면서 말하던 피디님은 마지막에 매니저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건 문제없습니다.”

매니저 형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피디님이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롯이 매니저 형만 보면서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이번 테오스 컴백 무대도 우리 <음악 열차>한테 주는 거. 이건 협의가 좀 필요하시겠죠?”

아. 테오스. 우리 기획사의 선배 그룹으로 꽤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1군 아이돌 그룹이었다. 현재는 월드 콘서트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잠깐 휴식기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내가 SR에 들어왔을 때는 한창 해외 투어 중이었고, 마지막 국가에서 콘서트가 끝난 뒤 전원 휴가를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 테오스 멤버들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미끼로 테오스를 낚겠다는 거구나. 이게 안 되면 너튜브에도 안 올려주겠지? 괜히 기대하지 말고 잊고 있어야겠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건 싫으니까.

“네. 테오스 컴백 무대는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디아스도 <아이돌 추석 대축제> 출연하실 거죠? 나중에 섭외 넣겠습니다.”

아이돌 추석 대축제 참가는 조건도 아닌가 보다. 거의 반강제적인 권유형이었다. 매니저 형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네, 그럼요. 물론이죠.”하고 대답했다. 이걸로 출연 확정이네.

“그럼 좋은 대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피디님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동시에 일어나 피디님께 꾸벅 허리를 숙였다. 피디님이 먼저 회의실을 나가고 우리도 따라 나갔다.

***

피디실에서 나온 우리는 곧장 미니 팬미팅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약속대로 정이한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방송국 후문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흥분감과 기대. 그리고 아주 약간의 긴장이 나를 감쌌다.

“마이크 누가 가지고 있어?”

“저요!”

이서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언제 꽂아둔 건지 허리에 꽂아 넣은 마이크를 기사가 검을 뽑듯이 멋들어지게 들어 보인다. 그래봤자 개구리 마이크다.

“마이크 잘 챙기고, 편안하게 이야기해도 돼. 하지만 말했듯이 특정 팬만 챙기면 안 된다. 그리고 팬분들이 잘해준다고 해서 너무 풀어져도 안 되고. 혹시라도 너희한테 과도하게 접근하는 팬이 있다면, 내가 막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매니저 형이 가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솔직히 형이라면 막아설 필요도 없이 인상만 찌푸려도 슬금슬금 물러날 것 같긴 했다. 든든한 매니저 형을 옆구리에 낀 채 드디어 우리의 미니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뒷문으로 나가 건물 하나를 끼고 돌아 나오자마자 환호성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언제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렸던 팬분들의 함성이었다.

“꺄아아아아아!”

“아악! 아아악! 얘들아! 아아아악!”

모습만 드러냈는데도 이런 환영이라니. 펜스 바깥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팬분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았다. 잔뜩 상기되어 흥분한 모습을 보니 꼭 그 열기가 우리한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저절로 멤버들의 발걸음도 들떴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켠 유찬 형이 손을 흔들면서 상큼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형을 따라서 나도 손을 흔들거렸다. 이서호는 제 성격대로 폴짝폴짝 뛰면서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서호야! 귀엽다!”

“히힛!”

이서호가 발랄하게 웃으면서 검지로 제 볼을 콕 찌른 채 윙크를 보냈다. 잔망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동까지 덧붙였더니 아주 난리가 났다. 애교, 애교! 저걸 따라 해볼까?

“자자, 얘들아. 인사부터 하자.”

유찬 형이 우리를 진정시켰다. 팬분들을 마주 보고 펜스 안쪽에 일렬로 줄 맞춰 섰다. 형의 신호에 따라 동시에 꾸벅 허리를 숙이면서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디아스입니다!”

우리의 인사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가 화답하듯 들려왔다. 유찬 형이 개구리 마이크를 들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찬아! 마이크 그게 뭐야!”

“아, 매니저 형이 소품실에서 가져왔어요. 귀엽죠?”

형이 마이크에 달린 개구리 머리를 검지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네가 더 귀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찬 형은 머쓱하게 웃으면서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저희 오래 기다리셨죠?”

“어엌! 근데 너희 얼굴 보니까 좋아앜!”

“저희도 좋아요! 빨리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아아아앜!”

유찬 형도 잘하네.

“강현아! 강현아앜!”

“네.”

한 팬분이 강현 형을 애타게 불렀다. 형이 대답하자 소리 지르면서 뒤집혔다. 대답만으로 이런 호응이라니. 진짜 대단하잖아?

“말! 좀! 해! 줘!”

강력한 요구에 유찬 형이 눈웃음 지으면서 강현 형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형은 쭈뼛쭈뼛 마이크를 받아 들고는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놀랍게도 형이 마이크를 쥔 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아, 아. 안녕하세요. 디아스의 백강현입니다.”

“와아아앜!”

“꺄아아악! 잘생겼다아아!”

“어…….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서는 내게 마이크를 넘겨준다. 아쉽다는 듯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좀 더 이야기하라고 밀어냈다.

“형, 조금만 더요.”

“……더?”

“네.”

“무슨 말 해야 하는데?”

작게 속삭였는데, 이 형은 본인이 마이크를 들고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다. 그 때문에 모두에게 형의 비밀 질문이 밝혀져 버렸다. 뒤늦게 형은 굳어 버렸고, 덕분에 팬분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셨다. 즐거우시면 됐지.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귀여워!”

“잘생겼다아앜!”

강현 형은 헛기침한 뒤 기어코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개구리가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온아아!”

“네!”

날 부르는 목소리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질문을 받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이한이랑 왜 손 잡았어엌!”

“아, 이거요.”

정이한과 꼭 맞잡은 손을 번쩍 들었더니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리 팬분들이 뭘 좋아하시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이런 건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형이 여러분 만나는 게 긴장된다고 해서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한 분이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이한아! 하온이 듬직해?”

정이한은 내가 들고 있는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가슴께까지 고개를 숙인 정이한이 날 향해 빼꼼 고개를 틀었다. 고갯짓이 상당히 커서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팬분들도 눈치챌 정도였다.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네, 듬직해요.”

“하온이 어떤 점이 듬직해?”

“그냥 하온이라서요. 옆에 있어 주면 안심이 돼요.”

“와아앜! 아앜!”

“엌! 미쳤다! 아앜! 아아앜!”

“어떡해! 너무조아아아앜!”

어느 때보다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놀란 내가 눈만 깜박거리면서 팬분들을 봤다. 뭐, 뭐지? 어떤 걸 좋아하시는 거지? 좋아하는 거 다 해드리고 싶은데 이 열띤 반응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감이 안 온다.

“나도, 나도!”

이서호가 말하고 싶다면서 손을 뻗었다. 이서호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자 정이한이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여러분! 배고프시죠!”

“아니이! 너희 얼굴 보면! 배불러!”

“어? 안 되는데…….”

이서호가 울망울망한 눈으로 팬분들을 봤다. 그제야 팬분들도 무언가 눈치챈 듯 갑자기 말을 바꾸셨다.

“아니야! 배고파! 우리 배고파아!”

“헤헤. 사실 저희가 도시락 준비했거든요! 이따 직접 나눠 드릴 거예요!”

“꺄아아앜!”

“정곤 형! 도시락 언제 와요?!”

이서호가 매니저 형을 보면서 물었다. 팬분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이서호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부자연스럽게 움찔거리면서 굳었다.

우리 형 처음 보면 무섭지. 나도 그랬으니까 할 말 없다. 형은 손가락 열 개를 쫙 펼쳐 보였다. 아까 20분쯤 걸린다고 했으니 10분 남았다는 거겠지?

“10분! 남았대요!”

“와아아아!”

훨씬 얌전해진 환호성이 돌아왔다. 그게 왠지 웃겨서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 이건 알겠다. 나 웃는 거 좋아하시는구나.

나는 열심히 방긋거리면서 웃었다. 포토존에 선 것처럼 서 있는 방향을 조금씩 틀어가며 최대한 많은 팬분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자, 그러면 도시락 기다리면서 할 게 있죠?”

어느새 마이크는 유찬 형에게 돌아가 있었다. 이서호는 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팬미팅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우리가 아니라 팬분들에게 좋은 걸 해줘야 했다.

“질문 타임! 저희에게 궁금한 거 뭐든지 물어보시면 대답해 드릴게요! 손드시는 분 중 뽑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번쩍번쩍 손이 들렸다. 대부분이 든 것 같은데……. 팬분들을 슥 훑어본 유찬 형이 내게 물었다.

“음. 하온아. 너 좋아하는 숫자가 뭐야?”

“숫자요?”

“응.”

아. 왜 물어보는지 알겠다. 30 이내로 불러야겠네.

“15요.”

적당히 30의 가운데 숫자를 불렀다. 유찬 형은 끝에서부터 15를 셌다.

“열다섯 번째, 빨간 머리띠 하신 분!”

“꺄악!”

빨간 머리띠의 팬분이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멤버들 각각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

첫인상…….

우리 멤버들 첫인상이 어땠더라. 강아지랑 강아지 주인 형, 양아치, 미남……. 이었던 것 같은데. 이거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건가?

나는 그렇다 쳐도 형들은 내 첫인상 뭐라고 말하려나. 재수 없는 낙하산 새끼라고 말할 순 없을 거 아냐. 아, 잠깐. 이서호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미심쩍은 마음을 담아 슬쩍 이서호를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바로 날 본다. 이서호 옆으로 바짝 붙어서 귓가에 속삭였다.

“솔직하게 말하지 마.”

“으악! 내가 뽀뽀할 것처럼 오지 말랬지!”

아, 이 진상. 가뜩이나 목소리 큰 이서호가 기겁하면서 소리치자, 궁금증을 가득 담은 팬분들의 질문 폭격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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