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52화 (52/320)

52.

“오, 쟤들인가 봐.”

“시작하려나?”

“미쳤다……. 얼굴 실화야? 보정빨 아니었어?”

단순 호기심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무대와 관객석이 가깝기도 했고, 굳이 목소리를 낮추려고 하지 않아서인지 적나라하게 들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화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아. 눈 마주쳤다. 나 표정 관리 잘하고 있었나? 일단 웃어야겠다.

“헉.”

“꺅!”

눈이 마주치자, 대화를 나누던 관객 둘이 양손으로 입을 가린 뒤 커다랗게 뜨인 눈으로 끔뻑끔뻑 나를 봤다. 이럴 땐 언제까지 눈을 마주쳐주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나는 계속 방싯방싯 웃었고, 두 사람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색한데…….

“자! 그럼 디아스 여러분, 인사 부탁드립니다!”

때마침 MC가 나를 구원해줬다. 나는 시선의 방향을 틀어 유찬 형을 바라봤다. 형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우리를 봤다. 손가락으로 보내는 신호에 맞춰 우리는 동시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디아스입니다!”

“꺄아아아아악!”

코앞에서 들리는 우리 팬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많이 쳐줘도 스무 명이 안 되는데 목소리만큼은 우렁찼다.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딜 가나 우리 팬은 아주 적었다. 그래도 사녹 때마다 앞자리로 옮겨와 멤버들 기 살려주겠다고 목이 쉴 때까지 소리쳐주었다. 그마저 내 몫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팬들을 좋아했다.

내가 먼저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다 보면 날 보는 시선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결국 포기했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그래도 이번에는 다르겠지.

[두리야♡ 하온아♡]

날 위한 게 분명한 플래카드가 무대 아래에서 흔들렸다. 그쪽을 보면서 웃어주자 흔들리던 플래카드가 툭 떨어졌다.

입을 턱 벌리고 날 바라보던 팬분은, 일행으로 보이는 옆자리 여성분이 툭툭 치자 머리를 흔드셨다. 그리고는 플래카드를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열심히 흔들기 시작하셨다.

“하온아! 내! 돌이! 되어줘서! 고마워!”

크게 외친 목소리는 내 귀에 콕 들어와 박혔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절 좋아해 주셔서요. 저한테 주시는 그 마음 정말 소중히 여길게요. 나는 내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야! 반응이 아주 뜨겁네요! 일단! 노래 한 곡 듣고 시작해야죠? 싱글앨범 1집 ‘Dear.'의 수록곡 ‘너에게 보내는 봄’입니다!”

MC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주가 흘러나왔다. 싱글앨범 1집은 타이틀 곡을 포함해서 총 세 곡이 실렸다. ‘너에게 보내는 봄’은 학창 시절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가사를 담은 곡이다.

풋풋하고 밝은 분위기라 우리는 가벼운 프리댄스와 함께 첫 곡을 성공적으로 불렀다. 프리댄스라고 했지만 오늘을 위해 안무를 만든 강현 형의 지휘하에 몇 번이고 동선을 수정해가며, 내리내리 연습했던 곡이기도 했다.

실수 없이 잘 마무리되어서 멤버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MC가 우리를 격하게 칭찬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자, 그럼 멤버 별로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소개가 끝난 뒤에 이 잘생긴 남자들의 다양한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니까요! 다들 자리 지켜주기!”

두 곡뿐인데 다양한 무대라니. 과장이 심하네.

MC가 유찬 형을 부르자 형이 먼저 인사를 시작했다. 내 차례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나는 날 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었고, 여전히 신경 쓰이는 조형물 위의 여성분을 힐끔거렸다. 정신없어 죽겠다. 쇼케이스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조금 아쉬워졌다.

“안녕하세요! 이서호입니다! 팀의 귀염둥이를 맡고 있고요! 서브 보컬이에요!”

“귀염둥이요? 막내가 따로 있는데요?”

MC가 짓궂은 어조로 태클을 걸었다. 그러자 이서호가 대뜸 날 잡아끌었다. 불시에 기습당한 나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서호는 내 뺨에 제 얼굴을 가깝게 붙여왔다.

“네! 제가 더 귀엽지 않아요?”

“아아아악! 둘 다 귀여워!”

“와하하!”

팬과 아닌 사람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고 있네…….

“네에! 이건 멤버들의 의견도 좀 들어봐야겠는데요? 리더 형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제가 형인가요?”

“어허! 그런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는 겁니다. 자, 그래서 자칭 팀의 귀염둥이인 서호 씨와 찐 막내인 하온 씨 중에 누가 더 귀여우시죠?”

“으음.”

유찬 형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와 이서호를 번갈아 보는 미간이 살짝 좁아져 있었다.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대답 안 해도 되는데. 침묵이 길어졌다. 이거 라디오였으면 방송 사고급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건가요?!”

MC가 적절히 치고 들어왔다. 유찬 형이 웃으면서 “네, 둘 다 귀여워서요.”하고 대답했다.

“그럼 둘째 형님! 우리 래퍼 이한 씨는요?”

“아, 저는 서호요. 하온이는 듬직한 편이라서요.”

“……듬직이요?”

“네.”

정이한이 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MC가 ‘듬직?’하고 중얼거리면서 날 봤다. 그 반응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마구 휘몰아쳤다. 나도 내가 듬직이랑 거리 먼 거 잘 안다…….

“저기, 잠깐만. 이한 씨? 이쪽으로.”

MC는 정이한의 팔을 잡더니 내 쪽으로 끌고 왔다. 그러더니 내 옆에 딱 세워놓고 예술품을 감상하듯 허리를 뒤로 젖혔다.

“저엉말 듬직합니까?”

“네. 의지 많이 되는 동생이에요.”

정이한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재주가 탁월했다. 개그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너무 진지한 대답이었다.

“이런 게! 신인한테서 볼 수 있는 풋풋함이죠! 정직한 답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한 씨는 원래 위치로 돌아가시고요! 마지막으로 듬직한 우리 막내 하온 씨 소개도 안 들어볼 수 없겠죠?”

MC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결국 귀염둥이는 누구인가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귀여움 담당은 이서호가 맞다.

“안녕하세요. 디아스의 메인 보컬 진하온입니다. 어, 제가 막내는 맞는데 정신연령으로 따지면 여기 서호 형이 더 어려요. 디아스 공식 귀염둥이 인정합니다.”

“……응? 잠깐. 중간에 이상한 게 들어 있는데?”

이서호가 귀를 쫑긋거리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형이 우리 팀 공식 귀염둥이라고 말했는데 아닌가요?”

“아니! 그건 맞지!”

“네. 그겁니다.”

“……어라?”

이서호가 갸웃거리는 사이 MC가 “과연! 공식 귀염둥이 맞네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이제 디아스의 메인 무대를 보기 전에 맛보기 무대부터 봐야겠죠? 바로바로! 디아스 골라 먹기!”

맛보기 무대? 골라 먹기? 이게 무슨 소리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멤버들을 힐끗 보자, 다들 금시초문인 듯 어리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디아스 분들은 못 들으셨을 겁니다! 아니, 근데. 잘생긴 남자들은 놀란 얼굴도 잘생겼네요?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합니다. 여러분!”

아, 뭔가 계획된 게 있었구나. 미리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의 리얼한 반응을 보려고 입 닫은 건가? 매니저 형을 찾아서 바라봤더니 환히 웃는 얼굴로 주먹으로 가슴께를 퍽퍽 쳐댔다. 파이팅……하라는 거 맞지?

“자! 그러면 어느 분이 제일 먼저?”

느낌상 장기자랑 같은 걸 시킬 것 같다. 일단 천재 타이틀이 붙은 정이한과 강현 형은 마지막 순서로 미루는 게 낫다. 기대감이 너무 높아져도 곤란하니까. 유찬 형이나 이서호, 아니면 내가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요!”

이서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잘했다. 우리는 스탭들이 손짓하는 대로 입장한 곳과 반대쪽으로 우르르 걸어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서호는 겁내기는커녕 아주 좋아 죽는다.

그나저나 사고 터질 만한 건 역시 안 보이는데. 중간중간 둘러봤지만 아직 예상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조형물 위에 올라가신 분. 아직도 저 위에 있다.

여기서 보니 의외로 무대랑 가까웠다. 무대 맨 끝에 서서 어떻게든 시선을 끌면 대화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확실히 조형물과 난간 사이의 폭이 넓다. 잘못 디뎌 떨어진다고 해도 크게 다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계속 신경 쓰이니 역시 말해야겠어. 이대로라면 데뷔 무대를 내가 망칠 것만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이서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서호는 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춤추고 있었다.

무대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티 안 나게 조용히 이야기할 방법이 있을까? 무대에서 직접 말을 걸면 소란스러워질 수 있으니까 안 된다. 그러면 조용히 내려가서 대화해 보는 건데…….

시도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대 가장자리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그러나 계단을 한 발자국 앞에 둔 순간, 강현 형에게 대뜸 손목을 붙들렸다.

“위험해.”

“아, 네에.”

무대 아래에 있는 스텝들이 손바닥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큰 규모의 무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뭘 해도 시선이 쏠렸다. 그럼 이 방법은 글렀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방법이 하나 남은 걸 깨달았다.

이서호의 무대가 끝났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갔다. 잔뜩 의기양양한 얼굴로 우리를 보자 형들이 잘했다면서 박수를 보내줬다.

“이야~ 정말 상큼하고 귀여운 무대였습니다! 다음은 어느 분이?”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저 시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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