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50화 (50/320)

50.

마이크 팩이 단단히 고정된 걸 확인한 뒤 보기보다 너른 등을 툭툭 두들겨줬다.

“괜찮네.”

“훗. 나도 할 땐 하그든~”

“그래그래.”

“아으! 긴장돼!”

볼에 바람을 잔뜩 넣었던 이서호가 한 번에 후우! 하고 숨을 뱉더니 가슴을 퍽퍽 두들긴다.

“아르르르르르르!”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건지, 흐트러트리려는 건지 모르겠다. 강현 형은 스트레칭 하면서 심호흡했고, 유찬 형은 제 자리에서 콩콩 뛰기 시작했다. 정이한이 가장 얌전했는데 역시나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유찬 형, 땀 나면 메이크업 지워져요.”

“어? 아! 으응. 후우, 긴장된다. 하온아…….”

“네?”

“너 한 번만 더 안…….”

“안 돼요.”

“으윽.”

유찬 형의 고개가 시무룩하게 수그러들었다. 이번에는 안 된다. 아까 혼났잖아. 나는 대신 유찬 형 옆으로 가서 손을 잡아줬다.

“이걸로 참아요.”

“……응. 이것도 도움 되는 것 같네.”

마주 잡은 손을 타고 떨림이 전해졌다. 엄청 긴장되나 봐. 우리 형 이렇게 연약해서 어떡하냐. 신경 쓰여 죽겠네. 서브 미션 꼭 성공해야지.

“하온아, 나도…….”

정이한이 유찬 형에게 내어주지 않은 반대편 손을 툭툭 건드렸다. 손바닥을 쫙 펴서 내어주자 꽉 잡아 온다. 이쪽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떨려서 잡자고 한 거 맞아?

어쩌다 보니 양손에 유찬 형과 정이한을 꿰어 버렸다. 온기는 일방적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나눠서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주는 만큼 나도 두 사람에게 받고 있었다.

어? 체력 또 찼다.

손만 잡아도 차는 거 맞네. 어리광쟁이 형들도 있고, 어차피 난 막내다. 심지어 파릇파릇한 열아홉!

이대로 형들 손 잡는 거 좋아하는 막내 이미지로 가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내년에 성인이 되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라고 하면 되잖아.

눈에 띄게 부쩍부쩍 차는 건 아니지만 이게 어디냐. 죽어도 고 스킬 사용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자꾸 약하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곤란하니까.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신인 그룹 디아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파이팅! 하고 외친 뒤 줄줄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

“아, 너무 긴장했다…….”

이서호가 소파에 철푸덕 주저앉으면서 신음했다.

“얘들아, 나 어떡하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

유찬 형의 안색이 창백했다.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이 또 물어뜯기기 직전이었다. 나는 형의 팔을 재빠르게 낚아채면서 말했다.

“형 말 잘했어요. 실수한 거 하나도 없었고. 기자 질문에 또박또박, 조리 있게 대답했어요.”

“진짜?”

“네. 그렇죠? 이한 형?”

“응. 유찬 형 대단하더라. 리더다웠어.”

정이한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강현 형은 조용히 유찬 형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줬다. 그제야 유찬 형도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긴 안도의 숨을 뱉었다.

“근데 유찬 형 진짜 말 잘하더라! 언제 그렇게 연습했어?”

이서호가 양손으로 엄지를 만들어 마구 흔들면서 말했다.

“그냥 열심히 했어.”

그렇게 말하며, 유찬 형은 날 보고 웃었다. 연습 끝나고 돌아와 매일 밤 중얼거리던 유찬 형이 떠올랐다. 멘탈이 약한 만큼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안심할 때까지 외우고, 또 외우더라.

“하온이가 많이 도와줬고.”

“가끔 기자 흉내 내면서 질문한 게 단데요, 뭐. 형이 혼자 다 한 거지. 저는 그렇게 못 해요.”

도와준 거 하나도 없다. 가끔 예상 질문만 던져 줬을 뿐이었다. 이미 완벽하게 외워서 내가 뭘 물어봐도 줄줄이 튀어나오던 상태였는데 뭘.

“아, 배고파! 긴장 풀리니까 배고프다. 뭐 먹을 거 없나?”

이서호가 배고픈 짐승이 되어 대기실을 휘젓기 시작했다. 귀신 같은 매니저 형이 간식거리를 사 들고 돌아왔다. 우리한테 잘했다면서 간식보다 달달한 칭찬을 막 입에 넣어주더라.

배포된 기사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랬다. 그사이 모니터링까지 해서 우리한테 보여주는 매니저 형의 업무 능력에 감탄했다.

어차피 이런 기사 찾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나는 관심을 끊었다. 내게 중요한 건 야외무대 쇼케이스다. 기자 쇼케이스 때 돌발은 없었고, 서브 미션도 그대로다. 그렇다면 야외 쇼케이스에서 무언가 일이 터져도 터진다는 거다.

***

우리는 또 한 번 벤에 실려 이동했다. 쉬는 시간에 푹 자둔 덕에 체력은 여유로웠다. 그래서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야외래서 일반적인 광장을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거대하고 높은 인공 분수대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기에 어디서 끌어오는 건지 모를 물줄기가 끊임없이 쏟아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넋 놓고 분수대를 보는 사이 벤은 넓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느리게 올라갔다. 마치 달팽이 집을 연상케 하는, 곡선으로 된 오르막이었다.

밑에서는 안 보이더니 중간쯤 올라오니 폭포가 보였다. 성인 남자의 키를 웃도는 나무로 만든 난간이 길가에 둘러쳐졌고, 중간중간 배치된 벤치 사이에는 거대한 합금 조형물들이 있었다.

난간 바깥쪽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폭포와 분수대뿐이었다. 경사를 따라 올라온 높이가 있으니 난간 너머는 절벽인 것 같았다.

“오! 여긴 언제 와도 멋있는 것 같아! 유찬 형! 나 이따 사진 찍어주라!”

“쇼케이스 끝나고 사진 찍을 시간이 있으려나.”

“안 되나? 사진 찍고 싶은데…….”

도시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 인공적으로 만든 웅장한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세계의 명소인가 봐. 처음 보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표정 관리하면서 밖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벤의 속도가 더 느려졌다. 원래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곳인데 무대 때문에 특별히 허가받았다고 들었다.

사람들을 헤치면서 도착한 장소는 무대 바로 옆이었다. 벤에서 내려 곧장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덕분에 벤 너머로 우리를 위해 준비한 무대가 한눈에 보였다.

거대한 전광판에 디아스 로고가 박혀 있고, 우리의 컨셉 포토 사진이 5초 간격으로 롤링 되었다. 개인 사진이 나올 때는 각자의 이름까지 콱 박혀 있었다.

공개된 거라고는 컨셉 포토 뿐인데 와중에 우리의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아주 소수였고, 대부분은 우리 전광판을 한 번 흘깃 보곤 그냥 지나쳤다. 이따금 멈춰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 원래 무대 없는 곳이잖아? 저거 다 만든 거야? 세트야?”

이서호가 입을 떡 벌리면서 창문에 붙었다. 얼굴을 고스란히 찍어낼 기세였는데 유찬 형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세트지. 여기 가끔 행사 열리는 곳이기도 해. 나 예전 소속사에서 먼저 데뷔한 형들 첫 행사 뛰는 거 응원하러 온 적 있어.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하게 될 줄이야…….”

이서호를 꽉 잡은 유찬 형의 눈이 몽롱했다. 조명 테스트 중인지 반짝거리는 빛이 무대를 영롱하게 만들었다.

나도 무대 세트 규모에 감탄하면서 한 편으로는 뭔가 놓치진 않았을까 싶어 주변을 훑었다. 문제가 터질만한 곳이 있는지. 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관찰은 멈추지 않았다.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

툭 나온 강현 형의 말에 이서호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나도, 나도!” 하고 외쳤다. 유찬 형도 기대감을 가득 품은 눈으로 동조했다. 이번에는 정이한도 기대된단다.

아까 기자 쇼케이스 할 때는 그렇게 긴장하더니 이 갭은 뭘까? 두 번째라서? 어차피 똑같은 데뷔 쇼케이스다. 오히려 이쪽 관중이 많으니까 더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자들은 소속사와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이기에, 대부분 우호적이지만…….

저 사람들은 아니다.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한없이 매몰차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시끄럽게 군다고 소리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어쩐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아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온아.”

“네?”

정이한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 달라는 건가? 원하는 대로 내 손을 내어주었더니 네 개의 손가락이 내 손등 위에 가지런히 올라왔다.

“신경 쓰이는 거 있어?”

“아뇨? 딱히 없어요.”

“얼굴 굳어 있는데.”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었나 보다. 의식적으로 얼굴에 미소를 되돌렸다.

“괜찮아요. 형이 손잡아주니까 안심돼요.”

“……으응. 그래?”

뭐지?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어쩐지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정이한의 검지가 내 손등을 톡톡 두들겼다. 무슨 신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약간의 혼란함을 느끼고 있을 때 대뜸 정이한이 미소 지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에.”

조금 찝찝하지만 넘어가자. 나는 잠시 정이한과 마주 잡은 손을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고개 돌렸다. 체력 회복에도 좋으니 계속 잡고 있어야지.

끼익, 하는 시트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 정이한이 바짝 붙어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면서 “아까부터 뭘 계속 찾는 거야?”하고 물었다. 아, 깜짝이야.

“제가 찾긴 뭘 찾아요.”

“오늘 하루 종일 찾는 것 같던데. 아니야?”

어떻게 알았지? 계속 붙어 다닌 이유가 그거였나? 다른 사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정이한만 알아차렸다.

“맞아. 너 계속 신경 곤두서 있던데. 왜 그래?”

응? 강현 형까지 알아차렸다고? 아니지. 저 형은 눈치 빠르니까 그럴 수 있긴 한데……. 정이한이 알아차린 게 제일 신기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티를 냈나?

“어? 전혀 몰랐어. 하온이 그랬어……?”

유찬 형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오늘 심적으로 가장 부담이 컸을 텐데 와중에 나한테 미안해한다. 서브 미션 때문에 표정 관리 못 한 게 분명해. 괜히 신경 쓰이게 했네.

“엥? 진하온 뭐 찾아? 뭔데? 아는 사람이라도 오기로 했어?”

오! 이거다! 나는 이서호가 던진 떡밥을 덥석 물었다.

“아, 으응. 사실 그렇긴 한데 안 올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아무 말 안 했지.”

둘러대듯 그렇게 대꾸한 순간 네 사람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뭐야……. 분위기 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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